9) 회색지대의 사람
흡혈귀와 늑대인간은 인류 진화의 보다 전 단계의 근본인종에 속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존재들이라고 이미 설명했다. 그러나 우리들이 그러한 특이한 형태의 현현을 넘어설 정도로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비물질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에 물질적인 삶에 절망적으로 집착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이에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들은 너무나도 세속적이어서 지상생활동안 물질 이외에는 어떠한 종류의 생각이나 개념도 가져 본적이 없기 때문에, 급기야 자신이 이 물질계로부터 완전히 단절되는 것을 알게 될 때 두려움으로 미칠 지경이 된다.
이러한 사람들은 흔히 물질적인 생활로 되돌아가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감행하지만 대개는 그 뜻이 이루어 질 수 없음을 알고 점차로 그러한 투쟁을 포기하며, 그리되는 즉시 이들은 자연스런 무의식 상태로 미끄러져 들어가서 아스트럴 세계에서 곧 깨어나게 된다. 그러나 보다 집착이 강한 사람들은 자신의 에텔 복체의 몇몇 단편이라도 붙들고 늘어져서 그것에 매달리거나, 심지어는 때때로 그들의 물질적인 육체로부터 입자들을 끌어내기도 한다.
죽음에 대한 실제적인 정의를 내려보자면, 우리는 그것을 물질 육체와 에텔 복체의 완전한 분리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육체의 보다 물질적인 부분으로부터 에테르 부분이 빠져나감으로서 육체가 분해 되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질 육체와 에테르체가 분리되지 않고 있는 동안은 강직이나 마비, 트랜스의 상태를 유지할지도 모르며, 최종적인 분리가 일어날 때 진정한 죽음이 찾아온다.
죽음에 이른 사람이 육체를 떠나갈 때 그는 자신의 매개체로 에테르의 부분에 의존하게 되지만, 이 에테르 질료는 그 자체가 매개체의 구실을 하지는 못한다. 단지 매개체의 일부분이 될 뿐이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주위에 에테르 질료가 달라붙어 있는 한, 그는 이승에 있는 것도 아니요 저승에 있는 것도 아닌 애매한 상황에 머무르게 된다. 그는 육체적인 감각기능을 이미 잃어버렸지만, 아스트럴체의 그것은 아직 사용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는 에테르 질료의 구름에 덮여 있기 때문이다. 잠시 동안 ―다행히도 잠시 동안만이다― 그는 초조하고 불안한 흐린 회색지대에서 살게 되는데, 거기서 그는 물질계와 아스트럴계 어느 쪽의 일도 명료하게 볼 수가 없으며, 짙은 안개를 통해서 바라보는 것처럼 이따금씩 양쪽 세계를 희미하게 감지할 뿐이다. 이와 같은 상태에서 그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헤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라도 이런 불쾌함으로 인해 괴로워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그는 그렇게 붙들고 있는 의식의 조각마저 놓쳐버린다면 영원히 모든 의식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는 것이다(사실 소멸되어 버릴 수도 있다). 따라서 그는 자신에게 남겨진 그것에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그러나 에텔 복체가 분해 되기 시작함에 따라 결국 그는 이러한 상태에서 벗어나야 하며, 그리하여 그는 행복한 상태에서 보다 충만하고 넓은 세계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이러한 사람들은 비참한 상태가 되어 때로는 울부짖으면서까지 아스트럴계를 표류하게 될 수도 있는데, 원조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에게 당신은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오직 긴장을 풀고 당신이 그토록 원하는 평화로운 망각 속으로 잠겨들기만 하면 된다고 설득하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들 중의 하나에 속한다. 그들은 이러한 조언을 마치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바다에서 조난당한 자에게 마지막 널빤지를 내던지고 폭풍우치는 바다에 자신을 맡기라고 명령하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