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개 괄
비록 그 대부분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지만, 인간은 아주 광대하고 그 어떤 존재들로 가득한 보이지 않는 세계의 한 가운데서 삶의 전부를 살아가고 있다. 강렬한 육체의 감각이 일시 중지되는 수면이나 트랜스 상태에 있을 때 다른 쪽의 세계가 어느 정도 그에게 열리며, 그는 때때로 그러한 의식상태로부터 돌아와서 그 곳에서 보고 들은 것을 어렴풋이 기억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기억들은 때로는 덜, 그리고 때로는 더 애매모호하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죽음이라고 부르는 변화의 순간에 육체를 완전히 버리고 떠날 때 가는 곳이 바로 이 보이지 않는 세계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계의 이 존재 상태로 재화신(再化身)해 올 때까지 그곳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게 된다. 이 오랜 기간 중에서도 훨씬 더 많은 부분은 천계에서 보내게 되는데, 이것에 대해서는 신지학 입문서 시리즈 중 여섯 번째 책자인 「데바찬계」에서 다루어진다. 우리가 여기서 고찰해야 할 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하위 부분으로, 인간이 죽은 뒤에 곧바로 들어가게 되는 상태, 즉 그리스인들이 하데스 혹은 하계(下界)라 불렀고, 기독교 신앙에서는 연옥 혹은 중간상태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곳을 중세 연금술사들은 아스트럴계라고 불렀다.
본 소책자의 목적은 신지학 문헌들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이 흥미로운 영역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것이며, 또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을 여기에 추가하는 것이다. 그렇게 추가된 정보들은 단지 몇 명의 탐구자들이 조사한 결과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그 정보들은 순수하게 그 정보가 가지고 있는 가치에 의해서 평가되어야지 어떤 권위에 의해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반면,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서 우리는 능력이 닿는 한 모든 주의를 기울였다.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것이든 새로운 것이든, 그 어떤 사실도 우리들 중 적어도 두 사람의 숙련된 조사자들의 독립된 증언에 의해 확인된 것이 아니면 이 책자에 넣지 않았다. 우리보다 더 뛰어난 지식을 가진 선배 학도들이 옳다고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아스트럴계에 대한 이 기술이 비록 완벽하다고 간주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상당히 신뢰할 만하다는 것을 알게 되기를 희망한다.
<이렇게 나는 대략 40년 전 초판에 적었다. 이제 그 40년 동안 내가 매일 체험한 것은 지난 세기에 이루어진 연구들의 정확성을 확인하는데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부언해도 좋을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어느 정도 이상하고 신기했던 것들 중 많은 부분이 지속적이고 깊이 있는 접촉을 통해 친숙하게 되었으며, 다량의 부가적인 증거들이 축적되었다. 여기저기 추가할 말도 조금은 있겠지만, 사실상 변경할 곳은 아무데도 없다.>
이 아스트럴계를 기술하는데 있어서 분명하게 해야 할 첫 번째 사항은 아스트럴계가 확실하게 실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실재라는 단어는 형이상학적인 관점에서 사용한 것이 아니다. 형이상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현현하지 않은 유일자를 제외한 모든 존재가 다 영속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실재이다. 나는 실재라는 단어를 일상의 평범한 의미로 사용하였으며, 그럼으로써 아스트럴계의 사물과 거주자들이 우리 자신의 육체나 가구, 집, 건조물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실재라는 것을 나타내고자 했다. 초기 신지학 저술 중의 어느 한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은 런던의 차링 거리만큼이나 실재적이다. 비록 아스트럴계의 사물들이 물질계의 사물들보다 오래 지속되지는 않겠지만 그들이 지속되는 한에 있어서는 실재인 것이다. 단지 대다수의 인류가 아직 그들의 존재를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거나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실재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나는 일반인들이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의 실재를 납득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우리 인간은 우리의 시야가 얼마나 편협한 것인지, 즉 우리가 아주 국부적인 것밖에 보지 못하는 광대한 세계 속에서 항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여간해서 잘 깨닫지 못한다. 하지만 과학은 확실한 어조로 “그렇다”라고 말하는데, 우리의 감각에 관한 한 우리가 전혀 그 존재를 모르는 미생물의 완전한 세계를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미생물들의 상태와 습성을 아는 것이 우리의 건강을 유지하거나 심지어 많은 경우 생명 그 자체를 보존하는 능력에 영향을 미치므로, 이 보이지 않는 세계의 어떤 생명체라 할지라도 그것이 미미하다는 이유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우리의 감각은 다른 방향에서도 제한을 받고 있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공기를 보지 못한다. 감각은 공기가 존재하고 있다는 그 어떤 신호도 보여주지 않으며, 다만 공기가 움직일 때 촉감에 의해서 그것을 알 뿐이다. 그렇지만, 공기에는 인간이 만든 거대한 배들을 침몰시키고 튼튼한 건물을 넘어뜨릴 수 있는 힘이 있다.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의 불완전하고 보잘 것 없는 감각에 포착되지 않는 유력한 힘들이 도처에 존재하며, 따라서 명백히 우리가 보는 것이 전부라고 가정하는 치명적인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탑 속에 갇혀있으며 우리의 감각은 어떤 일정한 방향으로만 열려있는 작은 창문과 같다. 이렇게 다른 많은 방향으로는 완전히 막혀있지만, 투시나 아스트럴 시력은 한두 개의 창문을 더 열어주어 조망을 넓혀주고, 비록 이전에는 알지 못했지만 이미 구(舊)세계의 일부분이었던 새롭고 더 넓은 세상을 우리들 앞에 펼쳐놓는다.
여하간 그 어느 누구도, 태양계에는 서로 다른 밀도의 질료로 이루어진 뚜렷하게 구별되는 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전에는 여러 종교나 지혜의 가르침을 명확히 이해할 수 없다. 이들 중 일부는 마치 외국을 방문하고 관찰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적임자들이 방문하고 관찰할 수 있으며, 이들 계를 지속적으로 탐구하는 사람들의 관찰 결과들을 비교함으로써, 최소한 우리 대부분이 그린랜드나 스피츠베르겐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만큼 만족할만한 정도로 그 존재나 특성에 대한 증거들을 얻을 수 있다. 나아가, 그럴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고 또 기꺼이 수고하기를 감수하고자 한다면 직접 그린랜드나 스피츠베르겐에 가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에 필요한 삶과 수고를 감당하여 자격을 갖춘 사람은 누구라도 조만간 자신의 힘으로 이들 상위계들을 볼 수 있다.
보통 이 상위계들은 물질성의 정도에 따라 그 밀도가 높은 쪽에서 희박한 순으로 물질계, 아스트럴계, 멘탈계, 붓디계, 열반계(니르바나계)로 부른다. 열반계보다 더 높은 계들도 둘이나 있지만, 현재 우리의 인식능력이 미치기에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 우선 당장은 고려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각각의 계에 속한 물질은 하위계의 물질 상태와는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 하는데, 훨씬 더 정도가 크긴 하지만 그것은 마치 기체와 고체의 차이에 비유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고체, 액체, 기체라 부르는 것은 물질계 하나를 세분한 일곱 하부 상태 중 저급의 세 가지 물질 상태에 불과하다.
이 책에서 기술하려고 하는 아스트럴 영역은 이와 같은 자연의 광대한 여러 계들 중 우리에게 친숙한 물질세계 바로 위(또는 내부)에 해당하는 두 번째의 것이다. 이 영역은 종종 환영의 세계라 불리는데, 그것은 아스트럴계가 물질세계보다 더 환영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훈련되지 않은 투시자가 신뢰성이 극도로 떨어지는 인상들만을 가지고 아스트럴 영역으로부터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크게 보아 아스트럴세계가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주목할만한 특성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첫째, 많은 아스트럴계 거주자들이 변화무쌍한 속도로 그들의 형태를 바꾸고, 희롱거리로 삼은 사람들을 무제한으로 매혹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실제로 가지고 있으며, 둘째, 아스트럴계에 작용하는 시력은 물질계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고 훨씬 더 확장된 기능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어떤 한 물체를 볼 때 물체의 모든 면이 동시에 보이게 되며, 고형체의 내부는 마치 외부에서 보는 것처럼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므로 필시 이 새로운 세계를 방문한 미경험자가 그가 실제로 본 것을 이해하고 더욱이 그것을 일상적인 대화의 부적절한 언어로 바꾸어 표현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우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있을 법한 실수의 좋은 예는 투시자가 아스트럴계에서 읽게 된 숫자를 종종 거꾸로 인식하는 경우인데, 가령 139를 931이라고 하는 식으로 반전된 형태로 표현하기 쉽다. 하지만 유능한 대사에게 훈련받은 오컬트 학도의 경우에는 제대로 보기 위한 장기간의 다양한 훈련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아주 서두르거나 부주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런 실수를 할 가능성이 없다.
대사나 혹은 앞선 일부 제자들이 그에게 가능한 모든 형태의 환영을 되풀이해서 보여주며 “무엇이 보이느냐?”고 질문한다. 대답 중에 어떠한 오류라도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잡혀지고 그 이유를 알 수 있으며, 이렇게 하여 초심자는 점차로 결국 물질계의 삶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훨씬 넘어서는 아스트럴계의 현상을 다루는 데 있어서 확신과 자신감을 얻는 것이다.
투시자는 올바로 볼 수 있어야할 뿐 아니라 자신이 본 것에 대한 기억을 한 계에서 다른 계로 정확하게 옮길 수 있도록 배워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물질계로부터 아스트럴계나 멘탈계로 의식이 단절됨 없이 오가는 법을 배워야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의식이 서로 다른 계에서 작용하는 기간들을 구분하는 공백의 틈 사이에서 그의 기억이 부분적으로 상실되거나 왜곡될 수 있는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온전하게 의식을 가지고 오는 능력을 완벽하게 터득할 때, 제자는 수면이나 트랜스 상태에서 육체 바깥에 나와 있을 때뿐 아니라, 일상의 물질계 삶 속에서 완전히 깨어있는 동안에도 모든 아스트럴 능력들을 사용할 수 있는 이득을 누리게 될 것이다.
아스트럴계를 경멸의 대상으로 말하거나, 전혀 주목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취급하는 것이 일부 신지학자들의 관례였다. 그러나 내가 볼 때 그것은 잘못된 견해이다. 물론 우리가 목표로 해야 할 것은 영혼의 삶이며, 어떤 학도라 할지라도 보다 높은 자질의 계발을 태만히 하고 아스트럴 의식에 도달한 데 만족하여 안주하는 것은 불행한 일일 것이다. 카르마적으로, 잠시 아스트럴계를 생략하고 상위의 멘탈 능력들을 우선적으로 계발하는 것이 가능한 사람들도 몇몇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지혜의 대사들과 그 제자들이 채택하는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다.
상위의 능력을 먼저 계발하는 것이 가능할 경우에 그것은 확실히 어려움을 덜어줄 것이다. 왜냐하면 보통 상위의 것은 하위의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대부분은 과거에 저지른 잘못과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순조롭게 그러한 진보를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것은 한 걸음씩 천천히 우리의 길을 나아가는 것뿐이며, 아스트럴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보다 조밀한 물질세계에 바로 이웃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겪게 되는 가장 초기의 초자연적 경험들이 일어나는 것은 대개 이 아스트럴계와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아스트럴계는 이와 같은 분야에 있어 초심자에 지나지 않는 우리에게 매우 흥미로운 대상이다. 또 아스트럴계의 신비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교령회나 유령의 집 같은 곳에서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현상들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주고, 우리 자신과 타인이 겪을 수도 있는 위험을 사전에 방지해주기 때문에 종종 매우 중요할 수 있다.
사람들이 이 놀라운 영역을 의식적으로 처음 인식하게 되는 것은 다양한 방법에 의해서다. 어떤 사람들은 일생에 단 한 번만 평상시와 다른 어떤 영향 아래 아스트럴계 거주자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민감해질 뿐인데, 그 경험은 또다시 되풀이되지 않기 때문에 십중팔구 조만간 그들이 환상의 피해자였을 뿐이었다고 믿게 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점점 증가하는 빈도로 다른 사람들이 보거나 듣지 못하는 것들을 보고 듣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은, 아마 이 경우가 가장 일반적일 텐데, 수면 중에 다른 계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점점 더 명료하게 회상하기 시작한다.
모든 계들에 대한 객관적인 지각능력은 의심할 여지없이 모든 사람들 속에 잠재해 있지만, 우리의 의식이 그러한 상위의 여러 매개체(vehicle)들 속에서 완전히 기능하기까지는 장구하고 느린 진화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아스트럴체의 경우에는 조금 다른데, 진보된 종족에 속하는 모든 문명인들의 의식은 이미 완벽하게 아스트럴 질료를 통해 전달되는 모든 진동에 반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역시 완벽하게 아스트럴체를 매개체와 도구로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대부분은 육체가 수면 중일 때 아스트럴계에 깨어있게 되는데, 아직까지는 대체로 아주 조금 밖에 깨어있지 못하며, 따라서 주위의 사물을 어렴풋이만 의식하고 있는 정도이다. 우리는 여전히 물질계의 상념들과 물질계의 일들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으며, 우리를 둘러싼 놀랍도록 활동적인 생명의 세계에는 거의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가 밟아야 할 첫 번째 단계는 이러한 상념의 습성을 떨치고 새롭고 아름다운 세계를 보는 방법을 배워, 그 세계에서 이성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성공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러한 아스트럴 경험들의 기억을 각성된 의식 속으로 가져올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물질계에서의 기억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로서, 우리가 아스트럴 활동을 뛰어나게 하는 능력에는 결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러한 주제들을 연구하는 사람들 가운데 얼마는 수정구 응시나 기타의 방법을 통해 아스트럴 시력을 개발하고자 노력할 것이고, 자격을 갖춘 스승의 직접적인 지도라는 더없이 귀중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은 스승의 특별한 보호 아래 아마도 처음으로 아스트럴계에서 그 완전한 의식을 각성시킬 수 있을 것이다. 스승의 보호는 다양한 시험들을 적용해봄으로써, 제자가 직면할 수 있는 어떤 위험이나 공포에도 대항해 견뎌낼 수 있음을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어떠한 방법이 되었건, 우리 모두가 역동적인 생명체들로 가득 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거대한 세계의 한복판에 놓여있다는 사실에 대한 최초의 실제적인 자각은 그의 인생에 있어 중대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아스트럴계의 생명체들은 아주 그 수가 많고 다양해서 초심자들은 처음에 매우 당혹하게 된다.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 연구자들에게도 그 생명체들을 분류하고 목록을 만드는 일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만약 미지의 열대 밀림을 탐험하는 탐험가에게 그가 통과한 지역을 완전하게 설명할 것을 요구하면서, 야채와 광산물들을 정확하고 세밀하게 묘사하는 것과 더불어 그가 목격한 무수한 수의 곤충과 새들, 동물들, 그리고 파충류들 하나하나의 속(屬)과 종(種)까지 진술할 것을 주문한다면, 탐험가는 그 일의 규모에 놀라 위축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이것조차도 심령연구가의 곤혹스러움에 견줄 바가 못 되니, 심령연구가의 경우에는 첫째 그가 본 것에 대한 기억을 저쪽 계에서 이쪽 계로 정확히 옮겨야하는 작업의 어려움에 의해서, 그리고 두 번째는 기억의 많은 부분을 표현할 일상 언어가 전적으로 부적절함으로 인해서 문제가 훨씬 더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어쨌든 물질계의 탐험가가 어느 한 고장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필시 그 고장의 풍경과 특징에 관한 모종의 보편적인 서술로 시작하는 것처럼, 아스트럴계의 이 대략적인 그림도 그 경이롭고 변화무쌍한 활동의 배경을 이루는 풍경에 대한 다소의 개념을 주려는 노력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기서 애초부터 거의 극복할 수 없는 한 가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즉 아스트럴계에서 온전히 볼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은, 아스트럴 풍경의 생생한 영상을 아직 아스트럴 시력이 열리지 않는 사람들 앞에 불러내려는 시도가 마치 눈먼 사람에게 저녁놀이 진 하늘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색조들의 절묘한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는데 동의한다. 아무리 자세하고 정성들여 묘사할지라도, 듣는 이의 마음속에 나타나는 심상이 진실을 충족시키는 표현이라는 확신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