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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저Ⅵ

 

 

우리 세계의 성장과 발달

 

 

 

 

 

 

1. 자비와 인식의 어머니(a) 관음, 관음천에서 거주하시는 관세음의 삼위일체의 힘으로(b), “포하트”, 그들의 자손의 숨, 자식들의 자식은 아래쪽의 심연(카오스)에서 “쉔찬(Hsein-chan, 우리 우주)”의 환영적 형체와 칠 원소를 생겨나게 했다.

 

(a)자비와 지식의 어머니를 관세음의 “삼위일체”라고 말한다. 그 분의 형이상학 및 우주적인 면에 있어서의 상호관계를 살펴보면, 그 분은 로고스의 “어머니이며 아내이자 딸”이기 때문이다. 후세에 와서 기독교 신학에서는 이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여성)”으로 해석했다. 즉, 이는 샥티(Śhakti) 혹은 에너지로서 삼위일체를 이루는 에센스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베단타파의 비교(秘敎)에서는 로고스인 이쉬바라(Īśvara)를 통하여 나타나는 광(光), 즉 다이비프라크리티(Daivīprakṛiti)는 하나이며 로고스, 즉 파라브라흐맘의 말씀(Verbum)의 어머니이자 딸인 것이다. 또 모든 히말라야의 가르침에 의하면(비유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신들의 계보인 하이어라키에서 볼 때), 그것은 어머니이며, 추상적이며 이상적인 질료인 물라프라크리티, 즉 자연의 뿌리라고 한다. 형이상학적 입장에서는 로고스, 즉 아발로키테스바라(Avalokiteśhwara, 觀自在)안에서 현현되는 아디 부타(Ādi-Bhūta)에 해당되는 것이고, 순수한 오컬트와 우주적인 입장에서는 볼 때는 포하트(Fohat), “자식들의 자식”, 말하자면 이 “로고스의 빛”에서 생겨나는 양성적인 에너지인 것이다. 그 에너지는 객관적(현현) 우주의 세계에 보이지 않게 현현하기도 하고 전기와 같이 드러나서 현현하기도 하는데, 이 전기는 생명인 것이다.

 

(b) 관음천이란 “아름다운 음(音)의 천국”, 문자 그대로 관음, 즉 “성스러운 소리”가 거하는 곳이다. 여기서 말하는 소리(Voice)는 버붐(Verbum), 즉 말의 동의어로서, 생각의 표현인 “발화(發話, Speech)”인 것이다. 이와 관련된 것을 추적해 올라가면 히브리어의 기원까지 거슬러간다. 즉, 바스 콜(Bāth-Kōl)을 말하는데, 이 말의 뜻은 “성스러운 소리의 처녀”, 버붐(Verbum), 남성-여성 로고스, 그리고 “천상의 인간”이며 동시에 세피라(sephira)인 아담 카드몬(Adam Kadmon)인 것이다. 세피라보다도 오래된 힌두교의 바치(Vāch, 앞에서 언급한대로 브라흐마의 딸이며 여성적인 부분이다. 그리고 여러 신들에서 나온 하나이다)는 발화(發話) 혹은 말의 여신인데 관음이나 아이시스(오시리스의 딸이며 아내이며 누이), 그리고 다른 여신, 여성 로고스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자연의 활동적인 힘, 말(Word), 소리(Voice or Sound), 발화(發話, Speech)의 여신인 것이다. 관음과 마찬가지로 바치도 “아름다운 소리”이다. 젖소는 젖을 짜서 양분과 수분을 제공한다. 그처럼 바치는 아름다운 멜로디를 발하는 젖소와 같으며 어머니가 되는 자연이다. 그녀는 우리에게 자양물을 공급해주는 것이다. 그녀는 프라쟈파티(Prajāpati)와 함께 창조의 일에 관계한다. 그녀는 마음먹기에 따라 남성인 것이고, 여성인 것이고, 아담과 함께 하는 이브인 것이다. 또한 모든 자연력의 총합체인 아카샤(Ākāśa)안의 아디티(Aditi, 에테르의 상위 원리)의 형상이다. 그러므로 버치(아름다운 소리)와 관음은 대자연과 에테르의 안에 감추어진 음의 불가사의한 잠재력인 것이다. 이 소리는 혼돈으로부터 쉰찬(Hsien-chan) 즉, 우주의 환영적인 형체와 7원소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브라흐마(로고스이기도 하다)는 마누(Manu)안에서 여성과 남성,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 보습으로 보인다. 두 부분 중 여성인 바치 안에, 비라지(Virāj)를 창조하지만, 이 또한 브라흐마 자신이며 또 다른 브라흐마를 낳는 것이다. 어떤 박학한 베다파의 오컬티스트가 이쉬바라(또는 브라흐마)가 왜 버범 혹은 로고스인지 또한 실제로 그것이 샤브다(Śabda) 브라흐만이라고 부르는지를 설명하면서, 여신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설명이 지나치게 신비적으로 느껴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설령 신비적이라 하더라도 올바르게 이해할 수만 있다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우리들의 고전 작가들에 의하면, 바치는 4종류가 있다.(리그 베다와 우파니샤드를 참조) 우리들이 언급하는 바치는 바이크하리 바치(Vaikharī-Vāch)이다. 모든 종류의 바이크하리 바치는 마드햐마(Madhyamā) 안에 존재하고 더 넓게는 파시안티(Paśyantī) 안에 존재하며 궁극적으로는 파라(Para)의 형(形) 속에 존재한다. 이 프라나바를 바치라고 부르게 된 연유는, 대우주의 네 원리가 네 가지 형태의 바치와 상응하기 때문이다. 현현해 있는 모든 태양계는 그의 숙쉬마(Sūkshma)의 형(形) 안에 있고 그것은 또 로고스의 빛 혹은 에너지 속에 존재해 있다. 왜냐하면 그 빛이 우주적 질료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 . . 객관적인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 전 우주는 바이크하리 바치이다. 그리고 로고스의 빛은 마드햐마의 형(形)이며 로고스 자체는 파시안티의 형(形)이고 파라브라훔은 파라의 형(形) 혹은 바치의 일면이다. 이러한 설명을 빛으로 해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철학자들이 말한, 드러난 우주는 버범 즉, 말씀이 현현된 것이라는 그 특정한 상태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2. 빠르게 움직이며 광휘을 발하는 존재(포하트)가 일곱 개의 “라야(Laya)”(a) 센터를 낳았다. “우리와 함께 있으라”라고 할 위대한 날까지는, 그의 중심보다 훌륭한 것은 없다. 원소의 씨눈인 “쉔찬”을 둘러싸고, 이 영원의 토대에 우주를 정착시킨다(b).

 

(a) 7개의 라야(물질의 한점)센터, 혹은 7개의 영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화학자들도 같은 뜻으로 영(零)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비교에서는 분화의 단계가 시작하는 점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중심의 저쪽에 비교철학은 생명과 빛인 “7개의 자식들” 즉 헤르메스학파와 그 외의 모든 철학사조에서 말하는 7개의 로고스들의 형이상학적인 윤곽을 가냘프게 그리고있지만, 그것들의 중심에서부터 우리들의 태양계의 구성요소가 되는 여러 원소의 분화가 시작된다. 포하트에는 기성종교에서 이해하고있는 인격신의 능력과 기능이 부여되고 있는 것처럼 비추어졌기 때문에 포하트의 능력과 기능의 분명한 정의에 대한 질문이 종종 있었다. 그 답은 스탠저Ⅴ의 주석에 쓰여져 있는 그대로이다. 「바가바드기타」의 강의에서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는 것처럼, “전 우주는 필수적으로, 이 광 포하트가 발산해내는 유일의 에너지 원천 속에 존재해있는 것이 틀림없다. 우리들이 코스모스와 인간의 본질을 7개로 하거나, 4개만으로 하건, 물리적인 자연에 속해있는 힘, 또는 자연의 안에 있는 힘은 7개인 것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수바 로우의 설명에 의하면 “프라즈나(Prajñā) 즉, 인식하는 능력은, 물질의 7개의 꼴에 상응해있는 7개의 별도의 틀린 면으로 존재해있는 것이다” 포하트 역시 그러한 것이다. 포하트는 하나인 것이면서 7개인 것이다. 그리고 우주적 단계에서는 빛이나 열이나 음이나 점착력 등인 것이며, 우주의 생명이 되는 전기(電氣)의 “영”인 것이다.

 

우리들은 그것을 추상개념으로 해, 유일의 생명이라 부른다. 객관적이며 분명한 현실로 해서 우리들은 현현의 일곱 계단의 사다리로 비유해서 말한다.

 

그 “사다리”는 유일의 알 수가 없는 큰 원인에서 시작해 물질의 각 원자에 내재해 있는 보편적 마인드와 생명으로서 끝맺는다. 그러함으로, 과학에서는 정신이란 것이 없는 물질과 맹목적인 힘과 무감각의 운동을 통해 펼쳐 가는 진화에 관하여 말을 하고 있지만, 오컬티스트들은 지성이 있는 법칙과 유정(有精)의 생명으로서 지칭하여 나타내며, 포하트는 그의 모든 것을 지도하고 있는 영(靈)이라고 덧붙여 말한다. 그러나 포하트는 결코 인격신이 아니다. 그의 배후에 있는 여러 세력에서 온 발산인 것이다. 그의 여러 세력들도 그리스도교도들은 그들의 신(그의 신은 실제, 엘로힘에 불과한 것이고, 혹은 오히려 엘로힘이라고 불려지는 7인의 창조자 중의 한 사람에 불과한 것이다)의 “사자(使者)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원초의 생명과 빛의 자식들의 사자(使者)”라고 말한다.

 

(b) 천심(天心)(절대적인 것들)에서 쉔찬(宇宙)에 채워지는 “원소의 씨눈”인 것을, 과학의 원자에서는 레이브니츠(Leibnitz)의 모나드에 해당되는 것이다.


 

 

 

3. 일곱 개(원소) 안에서 첫 번째가 나타나고, 여섯은 숨겨진다. 다음에 두 번째가 나타나고 다섯은 숨겨진다. 다음에 세 번째가 나타나고, 넷은 숨겨진다. 네 번째가 생겨나고 셋은 숨겨진다. 네 번째와 하나의 츠안(tsan, 조각)이 나타나서, 둘과 이분의 일이 숨겨진다. 나타나는 것은 여섯이고 하나는 물러서 있다(a). 마지막으로, 일곱 개의 수레바퀴가 회전을 하면서 하나는 다른 것을 생기게 한다(b).

 

(a) 이러한 스탠저는 마하-프랄라야(우주적인 파괴) 이후에 오는 전 우주를 가리키는 것이다. 오컬티즘을 공부하는 학도라면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겠지만, 이 문장은 유추에 의하여 우리들의 지구에 있어 7개의 원시적(하지만 합성된) 원소의 진화와 마지막 형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원소중 4개는 이미 완전히 나타나 있다. 우리들은 제4라운드의 후반부에 막 들어선 무렵이기 때문에, 제 5원소인 에테르는 부분적인 것만이 나타났을 뿐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제 5원소는 제5 라운드에 이르게 되어서만 완전한 모습을 나타내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우리들 세계를 포함해 여러 세계는 두 번째 단계("아버지-어머니“, 분화된 세계의 혼, 이는 에머슨이 제기한 용어인 대령(大靈, Over-Soul)은 아니다)에서 씨눈으로 시작한다. 근대 과학에서는 그것을 우주진(Cosmic dust), 또는 “불의 안개(Fire Mist)”라고 하고 오컬티즘에서는 아카샤, 지바트만(Jīvātman) 혹은 신성한 아스트럴빛, “세계의 혼”이라 말해도 똑같은 것이다. 진화의 이런 제1단계 후에, 시간이 흘러지나가면서 다음 단계가 찾아온다.

 

만약 여러 원소가 라야의 안에서 휴식해 지내던 그의 근원적 지반(Ilus)에서부터 분화하지 않고 그대로 지내고 있었다면, 어느 세계이거나, 어느 천체이거나, 객관적인 지금의 세계는 건설되지 못했을 것이다. 라야는 열반(涅槃)과 동의어이다. 그것은 실제 열반 안에 있던 모든 실질(현실)을 분해돼 버리고 마는 것으로, 하나의 생명 주기가 완성을 이루어낸 끝에, 그 원의 잠재적 모습으로 뒤돌아 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라야는 지난 날, 물질(존재)의 빛나게 반짝이던 몸체만 없는 그림자이고, 소극의 세계이며, 우주의 활동적 여러 가지 힘은 그의 휴식기동안 거기에 잠재하는 것이다. 원소에 관해서 말한다면, 고대인은 “원소를 불가분해(不可分解)한 단체(單體)라고 생각했다”고 해서 종종 비판을 받았지만, 이것 역시 근거가 없는 주장인 것이다. 하여튼 처음부터 비유와 종교적인 신화를 만들어 낸 것은, 비전을 받은 고대 철학자(오컬티스트)들이었으므로, 그들에게 그런 비판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이 여러 원소의 이질성을 몰랐다면, 화, 풍, 수, 지, 공 등을 의인화시키지 않았을 것이고, 그의 우주의 남신들이나 여신들에게는 그렇게 수많은 아들과 딸이, 즉 각 큰 뿌리원소부터 생겨나고, 또 그 속에서 생겨 나온 여러 가지의 원소는 결코 없었을 것이다. 만약에 고대인이 풍(風)이나 수(水)나 지(地)나 화(火)를 구성하는데 쓰여지던 각 원소(구성요소)의 가능성이나 상관성에서 나오는 기능과 특성을 알지 못했다면, 연금술이나 오컬트 현상은 이론으로도 그리고 실천적으로도 또한 환영으로도 낭떠러지로 내려앉는 구멍에 불과 했을 것이다.

 

근대과학은 다음의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말하자면, 단순한 화학적 원자는 시초의 여러 원소가 분화되어 이루어진 것이라 했어도, 과학이 지금의 모습으로 알고 있는 것과 같은 혼합물은 아니었다. 화학적 원자에 관해서 아주 옛 태고의 철학은 “자신의 어버이들의 창조자들”, 자신의 어머니의 아버지이고, 형제이고 남편이었던 자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아디티(Aditi)와 다크샤(Daksha)처럼 자기 자신의 아들의 딸이라고 했다. 수(水)와 풍(風)과 지(地)(일반적으로 고체라고 알려져 있다)는 과학에서 인식하고 있는 유일의 물질 상태를 대표하지만, 이것들 모두는 이미 만들어져 현현해있는 별의 대기에 의해 개량되어 짜여지고 바뀌어진 것들이다. 화(火)조차도 그러하지만, 이러한 원소들은 지구형성의 초기에는 완전히 다른 독특한 것들이었다. 지금은 우리들의 태양계를 지배하는 상태나 법칙이 완전히 발전되었고, 다른 혹성과 똑같이 지구의 대기는 불의 도가니이기 때문에, 오컬트 과학은 가르치기를 분자 혹은 오히려 원자의 공간에서 끊임없는 교환이 일어나서 연관된 각 혹성간에 결합된 등가량(等價量)에 변화를 가하고 있다고 한다.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나 화학자를 포함한 과학자들은, 먼 옛날부터 오컬티스트에게만 알려져 왔던 이런 사실을 깨우치고 있는 중이다. 분광기(分光器)는 바깥쪽 증거를 가지고서, 지상의 질료와 별의 질료와는 놀라울 정도로 닮은 것이라고 하는 것을 표시해주는 것에 불과하다. 그 이상의 것은 해낼 수 없으며, 또 지구상에서 원자의 서로 간의 인력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물리학적 및 화학적 조건이 과연 다른 천체의 원자에게 똑같이 맞추어져 해당하는 것인지는 표시할 수 없다.

 

생각할 수 있는 최고온도에서부터 최저온도까지의 온도의 기준은 전 우주 어디서나 똑같다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해리(解離)와 재결합이라고 말하는 특성을 빼고, 물질의 특성은 혹성마다 틀린 것이므로, 원자는 물리과학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는 것이고, 알아낼 수 없는 새로운 존재 형태로 들어가는 것이다.

 

「신지학의 5개년」에서 이미 말한바 있지만, 혜성 물질의 원질은, “지구의 가장 위대한 화학자나 물리학자들이 알고 있는 화학적 혹은 물리학적 여러 특성과 전혀 틀린 것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물질 조차도 지구의 대기 속을 빠른 속도로 뚫고 지나가는 사이에 어느 정도 성질이 변해간다. 지구의 여러 원소뿐만이 아니고, 태양계의 다른 혹성의 여러 원소는 그의 조합(짜임새)이 대단한 차이가 있다. 그것은 마치 태양계를 넘어가서 우주의 여러 원소와 조합(짜임새)이 틀린 것과 똑 같은 것이다.

 

따라서 그것들을 다른 세계의 여러 원소와 비교하는 척도로 삼아보려고 해서는 안 된다. 어머니의 품속에서 처녀의 꼴로 소중히 간직되어 있던 각 원자는, 어머니 세계의 문 바깥에서 태어나게되면, 끊임없이 분화해 나가게끔 운명이 결정지어진다. “어머니는 잠을 자고 있으나, 늘 호흡하고 있다”. 숨을 내뱉을 때마다, 어머니의 천변만화(千變萬化)의 산물인 현현세계가 만들어져 흘러가는 파도를 타고 운반되어가면서 포하트에 의해 사방으로 흩어진다. 어느 혹성의 대기를 향해가노라면 때로는 넘어가고 때로는 쫓겨서 뿌려져 버린다. 한번 혹성의 대기에 잡혀져버린 원자는 그제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지고 만다. 운명의 덕택으로, 원자가 “유출(流出)의 흐름”(오컬트적인 용어가 의미하는 바는 일반적으로 의미하는 것과 많은 차이가 있다)에 들어가는 경우를 얻지 못한다면, 그 원래의 순수했던 영원이란 것은 없어져 버리고 만다. 또한 유출의 흐름에 들어가게 되는 경우에 있어, 원자는 지난날 이미 해체되어버린 “경계지(境界地)”로 운반되어 날아오르는데, 위의 공간이 아닌, 내부의 공간으로 날아오른다. 그리고 차이가 나는 균형상태에 이르게 되어, 재 동화하게 될 것이다. 만약, 진정한 지식을 얻어낸 오컬티스트(연금술사)가 “원자의 생애와 체험”과 같은 책을 저술한다면, 근대 과학자로부터 영원히 경멸을 받게되겠지만, 요행히 일이 잘 풀어지면, 후에 감사의 뜻을 받게 될지 모를 일이다. 어째든, “아버지-어머니의 숨은 차가운데서 반짝이고 토해지고, 또 한번 토해질때는 뜨거운 열로 변질된다. 또 다시 냉한 것이 되어, 내부 공간의 영원한 품안에서 정화되어 간다”고 주석서에서는 말한다.

 

인간은 산정(山頂)에서 냉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고, 불결하며 뜨거운 것으로 변질된 상태로 내뱉는다. 각 혹성에서 고급의 대기(大氣)는 입을 가리키고, 저급의 대기는 폐(肺)를 가리키는 것이니, 지구의 인간은 어머니의 쓰레기를 마시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죽어야하는 운명으로 되어있다.”

 

(b) “일곱 개의 수레바퀴가 회전을 하면서 하나는 다른 것을 생기게 한다”고 말하는 과정은 위에서부터 여섯 번째의 세계 그리고 현현한 코스모스의 가장 물질적인 세계, 즉 우리들의 지상계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의 “일곱 개의 윤(輪)”은 우리들의 혹성의 연쇄이다. (5절과 6절의 주석 참조). 보통 “차륜”이란 여러 가지의 영역(Spheres)과 힘의 중심을 나타내는 것이 있지만, 이 경우는, 우리들의 7중의 환(環, ring)을 뜻한다.

 

 

 

4. 그는 옛날의 차륜(車輪)과 닮은 것을 만들어 불멸의 중심에 앉힌다(a). 포하트는 어떻게 해서 그것을 만들어 내는가? 그는 불의 먼지를 모은다. 불의 구를 만들고, 생명을 불어넣으면서, 그것을 뚫고 통과하고 그리고 그것 주위를 돈다. 그리고 그 안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다음에는 그것들을 여러 가지로 움직이게 한다. 그것들은 차갑다. 그러자 그는 그것을 뜨겁게 한다. 그것들은 말랐다. 그는 그것들에게 습기를 준다. 그것들은 반짝인다. 그는 그것들을 부채로 식힌다(b). 포하트는 이와 같은 일을 새벽 해뜰 무렵부터 저녁 해가 저물어 갈 때까지, 일곱의 영원동안 계속 일을 해간다.

 

(a) 여러 세계는 “옛 차륜과 닮게” 만들어 졌다. 즉, 이전에 있었던 만반타라의 차륜과 닮았다는 것을 뜻한다. 이 만반타라는 프랄라야로 들어가 버렸다. 왜냐하면, 태양에서 풀벌레에 이르기까지, 코스모스 안에 있던 모든 것의 탄생과 성장과 소멸하는 법칙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매번 새롭게 전개되는 상황을 완성시켜나가는 것은 영원한 일인 것이나, 질료-물질과 여러 힘은 하나이고 늘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 대법칙은 각 혹성에서 보다 더 작고 다양한 여러 가지 법칙을 통해 일을 하는 것이다. “불멸의 라야 센터”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고, 지금은 오컬티즘의 가르침으로 되어있는 태고의 우주발생론의 이론을 충분히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를 알아야만 한다. 한 가지는 말할 수가 있다. 즉, 여러 세계는 라야 센터 위(上)나, 안(內)이나 그것을 넘어선 곳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영점(零點, zero-point)이라고 하는 것은 어떠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 수학적인 점(•)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b) 포하트, 즉 우주전기인 건설력은, 루드라(Rudra)가 브라흐마에서 솟구쳐 나온 것처럼, “아버지의 뇌에서 그리고 어머니의 품속에서” 솟구쳐 나와 남성과 여성으로 스스로 변한 것이라고 비유적으로 말하고 있다. 요는 양성과 음성이라고 말하는 양극성의 전기를 말하는 것임을 유의해야 한다. 포하트에게는 일곱의 자식이 있지만, 자식들은 동시에 그의 형제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자식이자 형제인 둘은 포옹이나 싸움으로 너무나도 가깝게 접촉하게 될 때마다, 포하트는 고쳐 다른 것을 재생시키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포하트는 이질의 것들을 서로 맺어지게 결합시켜, 동질의 것들이 떨어지게끔 한다. 당연한 것이지만, 이것은 마찰에서 생겨난 전기와 이극성의 것들은 서로 간에 끌어당기고, 동극성의 것들은 튕겨 버리는 법칙과 관계 되어있다. 일곱의 “자식-형제”는 실천적 오컬티즘에서 “칠극(七極, Seven Radicals)이라 말하는 우주적 자기의 일곱 종류를 상징적으로 인격화한 것이다. 그들과 함께 일하는 활동적 자손은 전기, 자기, 음, 광, 열, 응집력 등의 여러 꼴의 에너지이다. 오컬트 과학의 정의에서는, 이것들은 모두 그의 감추고 있는 작용에 있어 초감각적인 결과이고, 감각 세계에 있어 객관적인 현상이다. 후자를 볼 때, 우리들의 보통의 감각력만으로 충분하나, 전자의 것을 지각하려면 보통의 것을 넘어서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것들에는 모두 더한층 초감각적인 영적 특성에 속해 있으며, 그의 발산물인 것이다. 그것들의 영적 특성은 실제의 의식적인 원인에 의해 상징되는 것이 아니고, 그것들의 원인에 속한 것이다. 그와 같은 실재들의 묘사를 해보려고 하면 잘못을 저지르고 만다. 독자는 다음의 것들에 유념해 주길 바란다. 이 현상우주를 대환영이라 보게끔 하는 우리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하나의 체가 어떤 미지(未知)의 질료에 가깝게 다가서면 다가선 만큼, 이런 마야(환상)의 세계에서 멀리 떨어져 진실에 가까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것의 실재들의 체의 분자적 구조는 이승의 의식계에서 현현해 온 것으로 추정해 볼 것은 아니지만(현상적인 것들과 대립하는 것으로 해서) 비교되는 원체(元體)적인 우주에 있어, 그러한 체가 설령 물질은 아닐지라도, 확실하게 객관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들이다.

 

과학자들이 이러한 실재를 “힘”이나 “물질에서 생겨난 여러 힘”, 물질의 “운동양식”이라고 부르고 싶다면 그렇게 불러도 좋다. 오컬티즘은 이런 것의 결과를 “사대령들”(여러 힘)이라 보며, 그것들을 생겨나게 하는 직접 원인을 지성을 지닌 신성한 일손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의 지배자들의 실수가 없는 손에 인도를 받고있는 이런 것의 사대령들과 순수한 물질의 여러 원소와의 긴밀한 관계는 광(光), 열(熱), 자기(磁氣) 등으로 지상에서의 현상을 나타나게 하는 것이 된다. 물론, 광이든, 열이든, 자기나 응집력 등 모든 힘과 모든 에너지를 “실재”라고 부르는 미국의 실체론자들에게 결코 동의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차륜(車輪)이 돌아가면서 나오는 음을 “실재”라고 부르기 때문에 차(車)의 바깥에 있는 마부나, 차안에서 지도하고있는 “지배적 지자(Master)”와 혼동해서 동일시해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마부들”과 “지도하는 지자들(즉, 앞에서 말한바 있는 디야니-초한)”들 모두에게 “실재”라는 명칭을 붙여도 좋을 것이다. 사대령들, 즉 자연의 여러 힘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혹은 오히려 지각을 느끼지 못하지만, 활동적인 부원인(副原因)인 것이고, 그러한 것들 자체는 지상계에 있을 모든 현상의 베일의 배후에 있는 기본적인 원인이 준 결과이다.

 

전기나 광이나 열 등은 “운동 중의 물질의 령 또는 그림자”라고 정확히 말을 한 적이 있었던 것이고, 우리들에게는 그의 결과만 보고서 알고있을 뿐 참으로 알 수가 없는 초감각적 물질 상태인 것이다.

 

위의 비유를 좀더 자세히 말한다면, 광(光)의 감각은 굴러가는 차륜의 음(音) 같은 것이고, 순수한 현상적인 결과이며, 관찰자와 떨어져 나온 순간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감각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있는 가까운 원인은 “마부”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운동하고있는 초감각적 물질 상태인 것이고, 자연의 힘 즉, 사대령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마차를 가진 주인이 안에서 마부에게 길을 알리는 것처럼, 그런 배후에도 더 높은 원체적인 원인이 있는 것이다. 그러한 것이 “지성이 있는 자들”의 원질에서 앞서 말한 “어머니”가 여러 상태로 방사되어있어, 마치 물의 한 방울 한 방울이 물질적 미생물을 나오게 하는 것처럼 헤아릴 수가 없는 몇 조(兆)에 이르는 사대령들이 거기에서 생겨 나온다. 하나의 혹성에서부터 다른 혹성으로, 하나의 항성에서 자(子)가 항성(恒星)으로, 여러 원질(原質)이 옮겨지는 것을 지도하는 것이 포하트인 것이다. 혹성은 죽고 나면, 그것에 생명을 불어넣었던 여러 원질은 잠재 상태의 에너지를 지닌 라야, 즉 잠자고 있는 중심으로 옮긴다. 그러면, 그 에너지는 다시 눈을 뜨고 깨어나서 새로운 천체의 형성의 일을 시작하게된다.

 

물리학자들은 원초질료를 다소 비현실적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지상의 물질의 진정한 성질에 관해서 조차 완전히 무지하다는 것을 정직하게 인정한다. 한편, 그 물질에 관해서는 제 멋대로 판단해서 어떤 조합이 가능하며 어떤 조합은 불가능한 지에 대해서 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과학자들은 겨우 물질의 바깥 면만 알고 있을 뿐인데, 그것에 관해서 독단적인 주장을 한다. 물질은 “운동양식”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책상 위에 있는 하나의 티끌의 먼지를 불어서 날려 버릴 수 있는 살아있는 사람이 내뱉는 숨의 고유의 힘도 “운동의 한 양식”인 것은 부정할 수가 없고, 또, 그의 충동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 힘은 먼지의 물질 혹은 여러 분자의 특성은 아니다. 숨을 뱉어낸 것은 살아서 생각을 하는 “실재”로부터 발생했다고 하는 것도 부정 할 수가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에 있어 아직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물질”에 “힘”이라 말하는 고유의 특성을 부여하는 것은, 각 자연현상에는 “자연령”이 개입해 있다고 말하는 우리들의 가르침보다도 훨씬 커다란 무리가 있다고 본다.

 

오컬티스트들이 자신들의 철학을 엄밀히 표현해서, 물질은 아니고 물질의 원질 혹은 에센스(만물의 뿌리인 물라프라크리티)만이 불멸로서 영원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전기나 자기나 빛이나 열과 같이 자연의 여러 힘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물질적 분자의 운동양식인 것이라기보다는, 그의 원질 즉 궁극적인 성질에 있어서는 이 책의 첫 몇 장에 설명되었던 “보편적 운동”의 분화된 면이라고 주장한다(“프로엠” 참조).

 

포하트가 “7개의 라야 센터”를 만들었다고 것은, 우주 형성 혹은 창조적 목적을 위해 대법칙(유신론자들은 이것을 신이라고 말하는지 모르지만)이 머무른다는 뜻, 혹은 오히려 현현 우주의 범위 내의 7개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점의 둘레에서 영원운동을 바꾼다고 말하는 뜻이다. 커다란 숨은 공간을 통해 라야 속에 7개의 구멍을 파고, “그것들을 만반타라 동안 줄곧 원형으로 회전시킨다”(「오컬트」 문답).

 

앞서 말한 대로, 라야란 과학에서 영점 또는 선(線)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다. 그것은 절대적 무의 영역인 것이고, 유일의 진정한 절대적인 힘이며, 우리들이 무지이면서도 “힘”이라 부르거나 생각하는 제7상태의 원체인 것이다. 또한, 그것 자체가 유한한 인식으로써는 도달할 수 없는 미지의 대상이 되는 미분화의 우주적 질료의 원체이다. 그것은 객관성과 주관성의 양편의 모든 꼴의 뿌리이고 기초이다. 또한 여러 가지 면 중의 한 면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중성의 축으로서 중심이다.

 

영구운동을 발견해 보려고 애쓰고 있는 자들이 기도하는 “중성(中性)의 중심(Neutral Center)"을 상상해 해보면, 한층 명확하게 되어질 것이다. 하나의 면에 있어, 중성의 중심은 어떤 감각작용의 하나의 조로 제한을 주는 점이다. 이미 형성되어버린 것으로 해서 서로 이웃을 이루고 있는 두개의 물질 세계를 상상해 보라. 이것들 각각에 상응해있는 적당한 감각 기관의 한 조가 있다. 이 두개의 물질세계의 사이에는 늘 끊임없는 순환이 있으며, 가령, 아래의 세계의 분자나 원자의 상향에의 변질을 거슬러 오르노라면 그의 아래의 세계에서 쓰여지고 있는 감각 기관의 범위를 완전히 초월해버리는 점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우리들에게 있어 아래의 세계(지구)의 물질은 우리들의 지각 범위로부터 사라져 아무 것도 없고 혹은 오히려 더 높은 세계로 나아가 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의 과도점(過渡点)에 해당하는 물질의 모습은 쉽게 발견 해낼 수 없는 특성을 지니고 있음에 틀림없다. 따라서 포하트는 일곱의 중성의 중심”을 만들고, 밀튼(Milton)이 말한 것처럼 “건설하기 위해, 아름다운 터전을 설치”하며 물질의 활동과 진화를 촉진시킨다.

 

“원초의 원자”인 아누(anu)는 탄생 이전에도 그리고 최초로 태어났을 때도 증가시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것은 “총계(總計)”라고 불린다. 물론 총계는 무한인 것임으로 이것은 비유적인 표현이다(1권3부 참조). 그것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와 인과의 세계밖에 모르는 물리학자에 있어서는 무(無)의 심연이고 오컬티스트들에 있어서는 신성한 충만을 이룬 끝없이 펼쳐져 있는 공간 자체이다. “코스모스”가 영원에서 영으로부터 물질로 발전했다가 다시 영으로 되돌아가는(재흡수) 이런 과정은, 시작도 끝도 없다고 말하는 바라문교 및 비교의 가르침으로서, 이에 대한 이의가 많이 제기되어 왔다. 그 중에는 “근대과학사상의 모든 주장에 따르면, 자연은 필연적으로 쇠퇴해간다”는 주장으로 오컬티스트가 생각하는 영원한 진화란 불가능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자연의 “쇠퇴해간다”는 경향은 오컬트 우주 발생이론에 반박하는 대단히 강한 이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들은 다음의 것을 물어 보겠다. “당신들이 탐복하는 실증논자나 자유사상가나 과학자들은 우리들의 둘레에 무수한 항성계가 활동하고 있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 그것들의 항성계가 사라져 없어져 버릴 정도로 한없는 긴 시간이 흐르고 있었음에도, 어째서 코스모스는 자동력이 없어지고 팽배하게 굳어진 뭉치 덩어리로 되지 아니했는가? 달이 죽은 혹성이라는 것을 가설로 해서 믿고 있는 정도에 불과하면서, 천문학은 어째서 그와 같은 죽어버린 혹성을 별로 알고 있지 못하는가?” 이런 질문에는 답변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것은 별개로 하고, 우리들의 조그만 태양계 안에 “변형할 수가 있는 에너지”의 양을 전부 써버리고 만다는 생각은, 뭔가 메워 주는 것도 없이 공간에 자신(태양)의 열을 영원토록 발산하는 “백열(白熱)의 태양”이라는 잘못된 개념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자연은 쇠퇴하여 객관 세계에서 사라져 가기도 하지만, 휴식기간이 끝나면 주관적 상태로부터 나와 다시 객관적으로 되는 소위 상승하는 것이라고, 우리들은 그러한 반론에 대한 답을 준다. 우리들의 코스모스와 자연이 사라져 가는 것은, 각 프랄라야(브라만의 밤)를 지나고 난 후에 완전한 단계를 이룩하면 재출현한다고 하는 순리이다.

 

동양 철학자들의 “물질”은, 서구의 형이상학자들이 말하고있는 물질이나 자연과는 같은 것이 아니다. 결국에, 물질이란 무엇이겠는가? 우선 과학적 철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칸트가 정확히 그리고 아주 친절하게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한도내의 과학”이라고 정의해 주지 않았던가? 유기생명의 있을 수 있는 것을 통틀어 현상에 맺고 관계 붙여서 단순히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현현으로 정의해 버리려고 한 과학의 여러 가지 시도는 어떻게 된 것인가?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과학자들은 진정한 사실을 발견하기 직전에, 거품처럼 흩어져버리고 마는 공론을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한 것이다. 만약 과학과 그의 철학이, 그들이 말하고있는 물질에 대해서 단순한 일방적 지식에 근거를 둔 가설을 받아들이지만 않았더라면, 그와 같은 공론은 없었을 것이고, 지식의 발전은 거대한 진보를 이루었음에 틀림없다.

 

육체적 지성으로 몇 마일에 걸쳐 해안을 덮고 있는 모래알의 수를 헤아릴 수 없고, 자연과학자가 손바닥으로 감촉을 느끼고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래알의 궁극적인 성질 및 에센스를 찾아 내지 못한다면, 유물론자로서는 원래의 “혼돈” 속에 있던 원자의 상태나 그것이 바뀌는 여러 법칙에 제동을 걸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더불어, 세계를 형성하기 이전, 또는 그 이후의 원자나 분자의 가능성이나 잠재력에 대해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모른다. 공간 안에서 해안의 모래알에 비해 훨씬 촘촘한 불변하는 영원의 분자는 그의 존재계의 높고 낮음에 따라 구성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는 혼의 질료가 매체인 육체의 질료와 차이가 있는 것과 같다. 각 원자에는 7개의 존재계가 있다고 배워왔다. 지구 혹은 태양계의 연대를 확정하는 시도에 대략적으로라도 출발점이 될만한 연대학적 정보조차 없어 천문학자들이나 지질학자들이나 물리학자들은 새로운 가설을 생각해내지만 그럴 때마다 사실에서 점점 더 멀어져, 존재의 알 수 없는 깊숙한 밑바닥을 표류한다. 태양계를 넘어서 있는 여러 계와 태양계 안의 여러 혹성과의 구조 계획에서 보이는 유사의 법칙이 이 존재계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지배하는 유한의 조건에 반드시 맞는다고 할 수는 없다. 오컬트 과학에서의 유사의 법칙은 우주의 물리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자세한 곳까지 연구하려면 열쇠를 “일곱 번 돌렸을 때” 비로소 이해가 될 것이다. 그것을 가르칠 수 있는 과학이란 오컬트 철학만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무조건의 총합체로서의 코스모스는 영원인 것이며, 조건이 붙여져 현현해 있는 것은 유한인 것이다”라고 말하는 오컬티스트의 명제의 진위를 “어떻게 해서 자연이 쇠퇴해 간다”는 일방적인 물리적 선언으로 정해 버릴 수가 있겠는가?

 

 

스탠저 Ⅵ의 이 4절에서, 마지막 마하프랄라야 혹은 우주 붕괴 후의 보편적인 우주발생론과 관계된 부분이 끝이 난다. 마하프랄라야가 다가올 때는 신이든 원자이든, 분화했었던 모든 것들이 말라죽은 나뭇잎처럼 공간에서 날아가 흩어진다. 이 절의 뒤편 스탠저에서는 일반적인 우리들의 태양계와 추론적으로는 그 속에 여러 혹성 체인을, 그리고 특히 우리들의 구체(제4구체와 그것의 체인)의 역사에 관해서 다루게 된다.

이 책에서 이후의 모든 스탠저와 절들은 오직 지구의 진화와 지구상에서의 진화를 취급한다. 지구에 관해서 공표해야할 기묘한 가르침(물론 근대과학의 관점에서만이 기묘한 것이지만)을 우리들은 받아들인다.

 

전혀 새롭고 상당히 놀라운 이론을 독자들에게 제시하기에 앞서, 약간의 설명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이것이 절대로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이런 것들의 이론은 근대과학과 충돌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가르침에 관한 설명과 해석이 우리들과 똑같은 권위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다른 신지학도들이 행했던 이전의 성명과 어느 점에서 모순되어 있기 때문인 것이다.

 

같은 가르침의 창도자들 사이에 확실한 모순이 있다는 인상을 줄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그런 것들의 차이가 있었던 것은 신지학도들에게 주어졌던 정보가 불충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완성된 체계로서 일반에게 공표하려고 애썼지만, 어떤 틀린 결론을 내리고 시기상조인 추측을 했었다. 그래서 이미 출판된 문장에 정정을 가하거나, 불명확하게 설명된, 또는 어떤 점들에 대한 설명이 애매모호한 상태로 되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해도 놀라운 것은 못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들은 불완전한 상태로 남아있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많은 문제점들은 신지학의 저작들 중에서는 가장 훌륭하고 정확한 「비전불교(Esoteric Buddhism)」의 저자조차 말을 하지 않는다. 반면에 그 저자 자신도 몇 가지 잘못된 개념을 제시했다. 그래서 필자가 힘닿는 데까지, 잘못 제시된 개념들을 진정한 비교적 관점에서 확실히 제시할 것이다.

 

지금까지 해설한 절과 다음의 스탠저Ⅵ의 5절 뒤편사이에는 막대한 우주적인 기간이 생겨있으므로 여기에 잠시 틈을 두기로 하자. 그리고, 그간다소 불명확하게, 때로는 잘못된 형태로 공표되었던 「씨크릿 독트린」에 관한 몇 가지 문제점을 개괄적으로 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될 것이다.

 

 

혹성, 라운드 및 인간에 관한

초기 신지학의 몇 가지 오해에 대하여

 

 

11의 스탠저에는 원시(原始), 우주가 없는 상태(Acomism)에서 우주적 및 원시적 분화가 시작하게 된 후에, 혹성 연쇄가 차츰 순차적으로 형성되어 가는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생략되어 있다. “신이 창조를 준비하면 법칙이 생긴다”는 말은 근거가 없다. 그 이유는 (a)법칙들 혹은 대 법칙(LAW)은 영원 바로 그것이며 창조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b)신은 법칙 바로 그것인 것이다. 그의 역도 참이다. 그것에서 유일 영원의 법칙은 칠중의 원질에 의해서 현현해 있는 자연계의 모든 것들을 펼쳐 가게 한다. 그 안에서도 일곱 개의 구체로 구성되어 있는 무수히 많은 원형 연쇄의 세계는, 형성의 세계인 네개의 저급계로 내려올 수록 더 농밀화 되어간다. 다른 남은 세계인 3계는 원형적 우주에 속해있다. 이러한 일곱 개의 구체 중, 가장 낮은 것으로서 가장 물질적 것이 우리들의 인식 계이다. 즉 우리들은 하나만을 인식 할 수 있는 것이며, 다른 여섯 개는 그의 인식 범위 바깥에 있기 때문에 이승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여러 세계로 이루어져 있는 이러한 연쇄는 모두가 더 낮으며 지금은 죽어버린 다른 연쇄의 자손이며 창조물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다른 모습으로 환생한 것이다. 이런 일을 좀더 확실하게끔 하기 위해, 우리들은 여러 혹성에 관해 다음과 같이 가르침을 받았다. 여러 혹성 중에 일곱 개만이 신성한 것이라고 여겨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들 혹성은 천상의 통치자, 즉 신들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었다. 하지만 옛 사람들이 다른 혹성에 관해서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알려져 있는 것들이나 알려져 있지 않는 것들이나 혹성은 모두가 지구와 마찬가지로 일곱 개가 한 조로 된 체인이다(「에소테릭 부디즘」참조). 예컨대,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등이나 우리의 지구는 눈에 보이는 혹성인 것이다. 다른 혹성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있다고 한다면, 아마 그들 역시 지구가 눈에 보일 것이다. 이러한 혹성은 모두가 똑같은 수준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혹성의 보다 높은 동료 구체는, 우리들의 이런 감각 수준과는 전혀 별개의 수준에 있다. 그것들의 상대적 위치에 대한 것은 앞으로 자세히 설명할 것이고, 또 스탠저 Ⅵ의 6절의 주석에 그림을 첨가했으므로 여기서는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흥미로운 것은 이와 같이 눈으로 볼 수 없는 동료 구체들은 “인간의 본질”이라고 부르는 것과 상응하고 있다. 일곱 개의 구체는 세 개의 물질계(Three material planes)와 하나의 영계(靈界)에 있고, 인간을 분석했을 경우 세 개의 우파디(Upadhis, 물질적인 토대)와 하나의 바한(Vāhan, 영적 매체)으로 나누어진다. 더 명백한 지적 개념을 위해서, 인간의 본질이 다음과 같이 배열되어 있다고 상상하면, 상응(相應)을 나타낸 다음의 그림(1)을 이해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림1.png

 그림 1

 

낮은 계의 검은 수평선은 인간 본질의 경우에는 우파디이고, 혹성 연쇄의 경우에는 계를 나타낸다. 물론 그림 상에서는 인간 본질에 관한 여러 가지 것을 순서에 맞게 배열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취급하고 있는 주제인 인간과 혹성간의 상응과 유사성을 나타내는 데는 충분할 것이다. 독자들도 알게 되겠지만, 이것은 영이 물질로 하강하는 것이며 신비적, 물질적 의미에서 영과 물질 양자의 조절이 생겨나서 두 실재 모두가 기다리는, 다가올 생명의 대 투쟁을 위해 서로 간에 섞여지게 되는 것이다. 구체에 실재(實在, Entity)라는 말을 쓰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될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구를 커다란 동물이라고 생각했던 먼 옛날의 철학자들은 근대 지질학자들보다 현명한 편이었다. 인간에게 있어서는 해를 끼치지 않으며 하나 뿐인 원소인 지구를 우리들에게는 부드럽고 친절한 유모나 어머니라고 생각했던 플라이니(Pliny)가 지구를 신의 발판이라고 상상했던 와츠(Watts)보다는 진실에 가까운 편이었다. 왜냐하면, 지구는 인간이 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상승하기 위한 발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 . . . . . . . . . 영광스러운 저택의 현관,

그 현관을 지나고 있는 무리들은 서로 밀치며 영원히 나아간다.”

 

이것은 또한 오컬트 철학이 얼마나 멋지게 자연의 모든 것들과 들어맞는지, 그리고 그런 가르침이 물질과학의 생명이 없는 가설적 추론보다는 얼마나 논리적인가를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근대과학을 연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오컬트의 가르침을 터무니없는 헛소리로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아마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신비가라면 이 정도에 이르는 배움에는 도달했기 때문에, 오컬트의 가르침을 더 이해하고자 하는 각오를 가질 것으로 안다. 어째든 오컬티즘을 공부하는 학도들은 지금 의논하고자 하는 이 이론이 다른 어떠한 것보다 훨씬 도리에 맞고 근거가 있다는 것을 알고있다. 뭐라고 해도, 이 지구가 물렁물렁하게 용해되어 있는 구체의 상태로 녹아있을 때 배출한 방사물로 형성된 것이 달이라는 이론보다는 더 논리적인 것이다.

 

혹성 연쇄에는 낮과 밤이 있음으로, 말하자면 생명의 활동기와 비활동기, 즉 죽음 혹은 휴식의 기간이 있는 것이기에, 지구상의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것과 똑같은 것이 하늘에서도 일어난다. 혹성연쇄도 자신들과 닮은 것들을 낳고, 나이를 먹고, 개별화된 것들은 소멸하도록 되어져, 영적 원질만이 자신 속에 살아 남고 자손을 남기는 것이다.

 

전과정의 세세한 곳까지 빠짐없이 묘사하는 어려운 작업 대신에 대략적인 개념을 제시해도 충분할 것이다. 혹성 연쇄의 마지막 라운드에 이르게 되면, 제 1구 즉 A 구는 죽기 전에 자신의 에너지와 여러 원질 모두를 “라야 센터”라고 말하는 잠재력의 중립 센터로 보낸다. 그 곳에서 미분화로 있는 실질 또는 질료의 새로운 핵에다 힘을 불어넣는다. 알기 쉽게 말하면, 핵의 눈을 뜨게 해서 생명을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이 달 혹성 연쇄에 생겨났다고 해 보자. 또한, 아래에서 인용하고있는 다윈의 이론은, 설령 수학적 계산으로 사실을 확인하지 않았다 해도 최근에 뒤집어졌지만, 일단 달은 지구보다도 훨씬 이전의 것이라 가정해보자. 달과 여섯의 동료 구체들을 상상해 보자(그것은 우리들 지구의 일곱 구체 중, 제 1구가 펼쳐지기 훨씬 이전이다). 그리고 우리의 지구와 동료 혹성들이 놓여있는 것과 똑같은 위치에 달과 여섯의 동료구체가 있었다고 상상해 보자. 그렇게 하면 달 연쇄의 A구가 지구 연쇄의 A구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고 죽는다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선 연쇄의 B구는 새 연쇄의 B구에게 그의 에너지를 보낸다. 그 후 달의 연쇄의 C구는 지구 연쇄에 자신의 자손인 C구를 만든다. 그리고 달(우리들의 위성)은 지구 혹성 연쇄의 가장 낮은 구체 즉 D구인 지구에 그의 모든 생명, 에너지, 힘을 불어 넣어주고, 즉 새로운 중심에 옮겨 놓고 사실상 죽어버린 혹성(달 연쇄에서의 D구)으로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지구가 탄생해 있기 때문에 달은 거의 자전하지 않는 것이다. 달은 지금은 차가운 찌꺼기이고, 자신의 살아가는 힘과 원질을 쏟아 넣어 준 새로운 구체(지구)의 뒤에 끌려 다니는 그림자이다. 달은 지금은 끝없이 지구에 쫓아다니는, 말하자면 자신의 자식(지구)에게 오랫동안 매달려 가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 끝없이 자기 자식에게 생기를 빨아 먹히기 때문에, 달의 숨겨져 있는 면에서 발산해 나오는 사악한 성질이, 눈에는 보이지 않는 유독한 영향력으로 자식인 지구에 몽땅 스며들어 한을 풀어 간다. 달은 죽었지만, 또한 살아있는 몸이기도 하다. 달의 분자가 만들어내고 있는 체는 혼도 없고 생명도 없지만, 썩어 가는 사체의 분자는 활동적이고 파괴적인 생명으로 꽉 채워져 있다. 그래서 그에게서 나오는 발산은 이득을 주기도 하면서 유해하다. 묘지만큼 풀이나 나무가 활기 있고 잘 번성한 곳은 없지만 동시에 묘지의 사체의 발산물로 인해 식물들이 죽기도 하는 것을 예로 보면 달의 작용을 보다 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모든 귀신이나 흡혈귀처럼, 달은 마법을 쓰는 패거리와 한통속이고, 조심성 없는 자들의 적인 것이다. 아주 먼 옛날부터, 혹은 최근에 해당되는 테살리아의 마녀들의 시대부터 현재 벵갈의 탄트라 수행자들에 이르기까지 달의 성질과 특성은 모든 오컬티스트들에게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물리학자에게는 잠겨둔 채로 있다.

 

천문학적, 지질학적, 물리학적 견지에서 보는 달은 그러하다. 달의 형이상학적, 사이킥적인 성질에 있어서는 이 저작에서 오컬트의 비밀로 남겨두어야만 한다. 「에소테릭 부디즘」에서는 “제 8영역에 대한 수수께끼는 지금으로서는 그다지 신비스러울 것도 없다” 라는 약간의 다혈질적인 태도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달의 성질은 비밀로 했다. 실제로 “아데프트들은 아직 비전을 전수 받지 못한 제자들에게 설명하는 것을 대단히 꺼리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아울러 아데프트들은 그런 이야기에 관한 추론이나 그 어떠한 출판물이라도 결코 허가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서도 더 이상 말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본다.

 

그러나 “제 8영역”이라는 금지되어 있는 영역에 발을 들여놓지 않고, 지난 날, 달 연쇄의 모나드였던 달의 선조들에 관해 몇 가지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들은 앞으로 있을 다가 올 인류의 주역을 맡을 것이기 때문이다. 달의 선조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들의 화제는 인간의 칠중 구조로 직접 들어간다. 어떤 논의가 제기되었는데 이는 우주적 실재인 인간을 구분하기 위한 분류에 대한 논의였다. 비교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두 가지 체계가 첨부되고 있다. 추가한 짧은 논문은 베단타 학파의 박학한 학자인 T. 수바 로우의 손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라자 요가의 바라문교의 구분에 공감하고 있다.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그의 선택은 지극히 옳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선택과 편의상의 문제임으로, 이 저작에서는 모든 히말라야의 “아르하트 비교학파”의 오래된 분류법을 고수하고 있다. 다음 장의 표와 그에 대한 설명은 마드라스에서 발간한 「신지학도」에서 발췌한 것이며,「신지학의 다섯 해(Five Years of Theosophy)」에 나오는 내용도 함께 실었다.(185-186p)

 

인도의 여러 가지의 체계에서 보이는 칠중의 분류

 

인간의 본질에 대한 불교와 베단타 학파의 교사들이 사용하고 있는 분류를 표로 제시한다.

 

「에소테릭 부디즘」의 분류

베단타 학파의 분류

타라카 라자 요가의 분류

1. 스툴라 샤리라

Sthūla-Śarīra

안나마야 코사

Annamaya kośa

스툴로파드히

Sthūlopādhi

(스툴라 우파디 혹은 원리의 본질)

2. 프라나(생명)

프라나마야 코사

Prāṇamaya kośa

3. 프라나의 매체

(아스트럴체 혹은 링가샤리라)

4. 카마 루파

Kāma-Rūpa

마노마야 코사

Manomaya kośa

석쉬모파디

Sūkshmopādhi

5. 마인드

(1)의지작용과 감정등

 

(2)비즈나나

Vijñāna

비즈나나마야 코사

Vijñānamaya kośa

6. 영적 혼(부디)

아난다마야 코사

Ānandamaya kośa

카라노파디

Kāraṇopādhi

7. 아트마

아트마

아트마

 

위의 표를 통해 보면, 불교도들이 세 번째 원질로 나누어 놓은 것을 베단타 학파에서는 따로 구분해 놓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단순히 프라나의 매체일 뿐이기 때문이다.

 

또 제 4원질은 제 3코사(덮개)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그 원질은 마인드의 에너지인 의지력의 매체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비즈나나마야 코사(Vijñānamaya kośa)는 마노마야 코사(Manomaya kośa)와는 틀리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제 6원질보다도, 제 4원질에 밀접한 친화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인드의 낮은 부분은 사후 마인드의 높은 부분에서 제 6원질에 고착하는, 실제에 있어 고급인 영적 개성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난의 분류는 라자 요가의 실천에 관한 한 가장 좋고, 가장 간단한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에게는 일곱 개의 원질이 있지만, 세 개는 특징이 다른 우파디(기초)로 되어있는데, 각각의 우파디에는 다른 것들과 독립적으로 아트마가 작용한다. 아데프트는 세 개의 우파디를 죽이지 않고 분리 해낼 수가 있다. 그러나 본질을 파괴하지 않고서는 서로 간의 일곱 개의 원질을 분리해 낼 수가 없다.

 

지금 학도는 라자 요가의 세 우파디와 아트마, 그리고 우리들 신지학의 세 우파디와 아트마를 보다 잘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 가지 구분 외에 실제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다. 거기에다, 히말라야의 이쪽 편과 건너편의 모든 아데프트와 파탄잘리 학파, 아리아상가 학파, 대승학파의 아데프트는 모두가 라자 요가에 입문해야만 한다. 실천적이며 오컬트적인 목적을 위하여 학도가 어떠한 분류를 따를지라도 타라카 라자(Trāka Rāja)의 원질과 분류의 원칙이나 이론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래서 세 가지 면이 있는 세 우파디와 영원, 불사의 총합체 아트마라고 말을 하거나, 그것들을 “일곱 개의 본질“이라고 말했어도 상관이 없는 것이다.

 

신지학의 책에서, 태양 우주에서의 세계의 칠중의 연쇄 이론을 읽어보지 못한 사람들, 읽어보았지만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간단히 그 가르침을 말해 보기로 하겠다.

 

1. 물질 우주와 똑같이, 초 물질우주(형이상학적인 세계)의 모든 것들도 칠중이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지 않거나, 보이거나, 모든 천체, 혹성은 다른 여섯 개의 동료 구체와 조로 이루어져 있다. 7라운드 즉, 7주기 동안에 제 1부터 제 7까지의 일곱 개의 구체 위에서 생명의 진화가 행해지는 것이다.

 

2. 오컬티스트는 이와 같은 구체를 "혹성연쇄(혹은 환(環, ring))의 재생"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와 같은 혹성연쇄의 하나가 제 7라운드, 즉 마지막 라운드에 이르게 되면, 최고 즉 시초의 A를 비롯해 구체 모두가 하나하나 순차적으로, 이전의 라운드와의 사이에 있었던 휴식기, 말하자면 엄폐기(掩蔽期. obscuration)같은 것들에 들어가 바꾸어지면서 죽어간다. 혹성의 붕괴(프랄라야)가 다가왔고, 죽을 때가 온 것이기 때문이다. 각 구체에서는 그의 생명과 에너지를 다른 혹성에게로 옮기는 것이다.

 

3. 우리들의 지구는 우리 자신의 눈으로는 볼 수가 없는 또래(동료) 구체, 즉 자신(지구)보다 높은 그것, 자신의 “주(主)들” 또는 “여러 원질의 것”들의 눈에 보이는 대표자로서, 다른 여섯 구체와 함께 7라운드 과정을 거쳐가면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처음의 세 라운드 동안에서 지구는 형성을 이루어 내고, 차츰 굳어져 가는 사이 제 4라운드에 이루어서 지구는 자리를 굳혀 딱딱한 것이 된다. 그리고 남은 마지막 세 라운드 동안에서는 우리의 지구는 차츰 처음의 정묘한 형태로 되돌아가는 길로 접어든다. 말하자면 영화(靈化)되어 가는 것이다.

 

4. 지구인류는 제 4라운드 즉, 현재의 라운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충분히 발달했다. 이 같은 제 4생명 주기까지 “인류”라는 말을 쓴 것은 적당한 용어가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로 표현해온 것에 불과하다. 번데기에서 나비가 될 애벌레처럼, 인간 혹은 오히려 인간이 되어 가는 존재들은 제 1라운드를 지나면서 자연의 여러 가지 모든 계와 형태를 경험했으며 제2, 3라운드 동안에는 “인간“의 모든 형태를 경험했다. 현재의 일련의 주기와 제 인종에서의 제4라운드의 초기에 우리들의 지구에 도달한 인류는 지구상에서는 최초였고, 그 이전에는 광물계와 식물계에만 있었던 것이다. 이 식물계의 진화조차도 인간을 통하여 전개해 가며 계속해야만 한다. 이것에 관해서는 2권에서 설명할 예정이다. 현재의 라운드 뒤에 올 세 개의 라운드 동안에는, 인류(인간)는 자신의 삶을 펼쳐가고 있는 집인 구체와 똑같이, 자기의 원래의 형(形)인 드야니-초한의 형(形)으로 다시 돌아간다. 우주에 존재해 있는 모든 원자도 그러하지만, 인간은 제일 먼저 일주(一柱)의 신이 되고 그후 신 바로 그것이 된다.

 

“제2라운드의 초반에 들어섰을 때, 이미 진화의 계획은 상당히 변경되었다. (천상의)인간이 A구에서 인간이 되었다가, B구나 C구 등에서 광물, 식물, 동물로 되는 것은, 제1라운드 동안만의 것이고 제2라운드부터 그 과정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대는 이미 모든 것에서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 . . 말을 해서도 상관이 없을 때가 올 때까지 무엇이거나 말하지 않은 자제력을 가질 것을 나는 충고한다. . . .(여러 가지 화제에 대한 대사의 편지에서 발췌)(편주23)

 

5. D구 즉, 우리의 지구상에서의 모든 생명 주기는 모두 일곱 개의 근본인종으로 구성되어있다. 지구상에서 라운드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근본인종은 육체적 진화와 정신적 진화라고 말하는 두 가지의 선에 따라 정묘한 체의 인종부터 시작해, 영적인 인간이 됨으로서 끝맺는다. (A구부터 일곱 번째의 G구의 주기를 혹성 라운드라고 말하고, 지상계(地上界)에서의 일곱 개의 근본인종의 주기를 “구체(球體)라운드” 또는 지상라운드라고 말한다).

이것에 관해 「에소테릭 부디즘」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며, 지금으로서는 그 이상 설명할 필요는 없다.

 

6. 제1 근본인종 즉, 형태는 어떻든 간에 지구 시초의 “인간”은 “천상의 인간”의 자손이다. 인도철학에서는 이들을 달의 선조들(Lunar Ancestor) 또는 피트리스(Pitṛis)라고 부른다. 달의 선조들은 일곱으로 나누어지는, 즉 일곱의 하이어라키가 있다. 이것에 관해서는 다음절과 2권에서 충분히 설명할 것임으로 여기서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두 가지의 저작은 양쪽 모두 오컬트의 가르침에 대한 주제를 취급한 것이므로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에소테릭 부디즘」은 신지학계에서나 신지학 외부의 일반사회에서나 대단히 유명하므로 여기서는 그 가치에 대하여 더 자세히 취급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훌륭한 책인 것이고, 훌륭한 일을 해왔다. 그렇지만 이 책에는 몇 가지 잘못된 개념이 있어서 그 때문에 많은 신지학도와 처음 읽어보는 독자들이, 동양의 비밀의 가르침에 관해서 잘못된 개념을 품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틀림이 없다. 거기에다, 아마 약간은 유물론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좀 뒤에 출판된 「인류-잃어버린 역사의 단편」은 보다 유심론적인 관점에서 고대의 가르침을 제공하려는 시도였다. 아스트럴광(光) 안에서, 혹은 아스트럴광으로부터 온 비전을 통해 어느 대사의 생각 속에 있는 가르침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것은 오해를 낳았다. 그 저작은 지구상 초기의 인종 진화에 관해서 말한 것이며, 철학적으로 훌륭한 장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약간 신비적인 로맨스에 대한 흥미위주였다. 그래서, 그러한 비전을 바르게 해석하는데 필요한 조건이 구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사명은 실패로 끝났다. 이와 같이 초기에 나온 책들에서 몇 가지 모순된 것이 있지만 그에 대해 그다지 놀랄 정도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우주발생론”과 특히 인간 모나드의 진화에 대해서는 앞서 말한 두 종의 책과 초심자들이 쓴 다른 신지학 저작은「씨크릿 독트린」과 본질적으로 대단히 차이가 있는 것이기에, 이런 두 종의 책에 관해 지나쳐 버리고 나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둘 다 숭배자가 있기 때문이다.「에소테릭 부디즘」편에는 특히 더 많은 편이다. 이것에 관해 설명해야할 때가 왔으므로, 잘못된 것을 원래의 뿌리의 가르침과 대조해 바로 잡지 않으면 안된다.「에소테릭 부디즘」이 물질 과학에 기울어 있다고 한다면「인류-잃어버린 역사의 단편」은 이상주의적인 측면이 너무 지나쳐 때로는 공상적이기까지 하다.

 

서구인에게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주기적인 휴식과 연쇄에 따르는 여러 구체의 연속적인 라운드에 관한 가르침은 처음부터 혼란과 오해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이와 같은 오해 중 한가지는 “제 5라운드”와 “제 6라운드”와도 관계가 있다. 하나의 라운드는 긴 프랄라야 뒤에 오는 것이다. 프랄라야란 다음의 생명기가 올때까지 거쳐가는 휴식기로 이 프랄라야 앞․뒤의 라운드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간격이 있다. 이러한 것들을 알고 있는 학도들은 현재의 제 4라운드에서 제 5라운드와 제 6라운드의 인종에 대해서 말을 하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이해하지 못한다. 고타마 붓다는 제6라운드의 존재이고, 플라톤과 다른 위대한 철학자들은 제5라운드의 존재라고 주장했다. 도대체 어떻게 그와 같은 일들이 있을 수 있을까? 한 매스터는 지금, 이 지구상에 이와 같은 제 5라운드 인종이 있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인류는 아직 “제 4라운드”에 있다는 생각이 들게 언급했는데, 다른 곳에서는 “제 5라운드”에 있다고 말씀하신 것 같다. 이것에 대해서 다른 스승으로부터 알쏭달쏭한 답이 전해졌다. “2, 3방울의 빗방울로 홍수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전조는 된다.”. . . “우리는 제 5라운드의 인종은 아니지만, 지난 몇 천년동안 빗방울처럼 제 5라운드의 사람들이 나타나기도 했던 것이다.” 이것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보다도 풀기 어려운 오컬트의 주제이기 때문에 학도들의 머리를 싸매게 해서 너무나 동떨어진 빗나간 추론을 짜냈다. 상당한 시간동안, 그들은 오이디푸스에 지지 않으려고, 두 매스터의 말씀을 일치시켜 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매스터는 돌로 만든 스핑크스처럼 침묵을 지키고 계시므로 학도들은 “모순”을 말한 것이라고 비난을 했다. 그러나, 매스터께서는 서구인의 마음에 반드시 필요한 교훈을 주기 위해 추론을 계속하도록 한 것이다. 서구인들은 그 교만함으로 인해 형이상학적인 모든 개념과 용어를 물질화 시키는 습관이 배어버렸다. 결국, 동양적 은유나 우화의 여유를 남겨두지 않고 힌두의 현교적인 철학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지금, 신지학도들은 비교적인 가르침에 대해서 꼭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신지학도들은 비교적으로 말하는 “제 5라운드”, “제 6라운드”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뜻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의 멘탈적, 사이킥적, 영적, 육체적 구조는 모두가 늘 상승하는 단계에서 진화해 가고 있으므로 각 라운드는 인간의 여러 원질에 새로운 전개나 전면적 변화를 가져온다. 따라서, 사이킥적, 멘탈적, 영적 진화에서 더 높은 계에 속해 있는 공자나 플라톤 같은 사람들은 제 5라운드에 가서야 보통 사람들이 이루어낼 수 있게되는 정신상태를 지금의 제 4라운드에 이미 이루어냈던 것이다. 장차, 제5라운드의 인류는 진화의 체계에 따르면 우리들 현재의 인류보다 훨씬 더 높은 위치에 있게 되는 것은 틀림없다. 마찬가지로 지혜의 화신인 고타마 붓다는 저자가 방금 언급했던 그 어떤 사람보다도 높고 위대했었다. 상징적으로 그 사람들(공자․플라톤)은 제 5라운드의 존재라고 보고 있지만, 붓다나 샹카라차리아는 제 6라운드의 존재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2, 3방울의 빗방울로 홍수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전조는 된다”고 했던 말씀이 그 당시로는 파악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감추어 있는 지혜를 표현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에소테릭 부디즘」에 의해, 그 진리가 분명하게 밝혀진 것이다.

 

전혀 훈련이 안된 사람에게 낯선 과학의 복잡한 사실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처음에는 능력에 맞는 것을 제시하고 . . .그리고 예외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 .우선은 총괄적인 원리만 다루는 것에 만족하고 예외적인 것은 뒤로 미룰 수밖에 없다. 특히 이러한 방법은 학습의 전통적인 교습방법과 연관되어 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처음에는 어려운 문제를 제시해서 자극을 줌으로서 이러한 새로운 개념을 인상에 남기고 나중에는 이것을 해결하여 좌절감을 덜어주는 것이다.

 

이런 의견을 쓴 사람은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오컬티즘에서는 “훈련받지 못한 사람”이다. 그 자신의 추론은 말할 것도 없고, 또한 고대의 가르침보다는 근대 천문학적 이론 쪽을 잘 알고 있었음으로, 당연히 또 무의식적으로 “총괄적 법칙”의 잘못보다는, 오히려 몇 개의 작은 잘못을 범하게 되었다. 지금부터 그와 같은 것들 한가지에 주목해 보기로 하자. 이것은 사소한 것이다. 그렇지만 많은 초심자에게 잘못된 개념을 심어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초기 판의 잘못된 개념은 제5판의 주석에서 개정되어 있는 것처럼, 제6판에서는 개정해서 보다 완벽해질 것으로 안다. 이와 같은 잘못이 생겨난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 스승들께서는 “애매한 답”으로 여겨지는 답을 주어야 될 처지에 있었기 때문이다. 주어지는 질문은 너무 집요하고 끈질긴 것이었으므로 그대로 놓아둘 수도 없었지만, 스승들께서는 일부분만 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 “반 조각의 빵이라도 없는 것 보다 괜찮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스승들의 이와 같은 입장은 종종 오해를 받아왔으며 진정한 의미는 거의 이해되지 못했다. 그런 결과 유럽의 입문 초보 제자들의 경우에는 근거가 없는 추측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와 같은 것 중에는 (a)달과 관계가 있는 “제 8영역의 신비”와 (b)지구연쇄 중 2개의 상위 구체는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혹성이라고 잘못 말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지구 외에. . . 지구 연쇄에는 육체의 눈으로 볼 수가 있는 다른 두개의 세계가 있다. . .바로, 화성과 수성인 것이다. . .고 말을 했던 것이다.

이것은 커다란 잘못이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책임은 배우는 사람 자신의 애매한 질문과 함께 스승의 대답 또한 막연하며 완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해야할 것이다.

 

이 질문은 “수성(水星) 외에 우리들 세계의 시스템에 속해있고, 일반적인 과학에 알려져 있는 혹성은 무엇입니까?”였었다. 여기에서 질문자가 “세계의 시스템”이라는 말을 “여러 세계의 태양계”가 아니라 우리들의 지구연쇄를 뜻하는 것으로 생각했다면, 당연히 오해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답은 다음과 같았다. “화성과 등등.. 천문학에서는 아직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다른 네 개의 혹성인 것이다. A, B에 대해서도 Y, Z에 대해서도 알려진 것은 없으며 제 아무리 완전하다해도 물리적 수단을 통해서는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a)천문학은 여러 혹성에 관해서 실제로 아는 것이 없다. 옛날에 발견된 것들이나, 근래 발견된 것들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b)A부터 Z의 어느 또래(동료) 혹성도 그리고 태양계의 어느 연쇄이건 상위의 구체는 볼 수가 없다.

 

화성과 수성과 “다른 네 개의 혹성”은 지구와 특별한 관계가 있다. 그것에 관해서는, 매스터나 높은 단계의 오컬티스트도 절대로 말하지 않으며, 그 성질을 설명하지도 않는다.

 

이런 오컬트 이론은 근대 천문학에서 나온 부가적인 증거에도 불구하고 실증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확실히 말한다. 물질과학은, 비록 여전히 불확실한 것이긴 하지만, 증거를 뒷받침할 만한 이론을 제시한다. 그러나 물질과 같은 계에 있는 객관적 우주의 천체(天體)에 제한된 것뿐이다. 화성과 수성, 금성과 목성이나 지금까지 발견되었던 모든 혹성(또는 지금부터 발견하게 될 혹성)은 원질적으로 그와 같은 혹성연쇄의 구성 안에 있는 혹성 중 우리와 같은 물질계에 있는 대표적인 별이다. 시네트씨가 스승으로부터 받은 여러 편지 중에서 한 통에 이를 확실히 밝히고 있는 것이 있다. “우리들의 태양계 안과 밖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만반타라의 연쇄에 있는 혹성들이 있다. 그러한 혹성들 중에 지적인 존재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화성이나 수성은 우리들의 지구연쇄에 속해있지 않다. 그것들은 다른 혹성과 같이, 우리의 태양계의 커다란 연쇄 안에 있으면서 다른 혹성과 마찬가지로 7중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들은 상위의 구체들이 눈으로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눈에 보인다.

 

아직까지도 스승의 편지에 있던 표현이 오해하도록 만들었다고 주장한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에소테릭 부디즘」의 저자가 “혼란을 유발하는 전통적인 가르침”이라고 적었을 때, 그는 그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혼란을 유발했다해도 상황에 따라서 풀릴 수도 있고 풀리지 않을 수도 있는 문제이지만, 어쨌든 지금 여기서 발표하고 있는 행성들의 진정한 성질에 대해서 미리 설명했더라면, 비교적인 것에 저촉 받는 것이기 때문에 답을 줄 수가 없는 많은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을 것은 분명하다. 결국 그것은 감당하기 힘든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다음의 것은 처음부터 선언되어 있었고, 반복하여 명백히 말해져왔다. 첫째, 어떠한 신지학도라도, 심지어 입문한 제자들조차(오직 학생으로서 받아들여질 뿐이다) 동포단에 불변의 서약을 하고 한가지 이상의 비전을 받을 때까지는 완전한 비밀의 가르침에 대한 내용을 들을 수 없다. 형체나 숫자는 비교체계의 열쇠이기 때문에 일반에게는 주어질 수가 없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 세계의 거의 모든 현교적 성전, 특히 그 중에서도 뛰어난 브라흐만의 성전이나 베다의 우파니샤드, 심지어 푸라나조차 비교의 바깥 윤곽에 불과한 것임을 밝혀두고자 한다. 이와 같은 것들은 여기에서 자세히 밝히려고 하는 것의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씨크릿 독트린에서 밝힌 것들조차 불완전하며 단편적인 것이다.

 

이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 저자는 화성과 수성에 관한 이론이 잘못된 것이라고 확신하고, 이에 대한 설명과 권위 있는 해석을 부탁하는 편지를 스승들께 보냈다. 얼마 지나서 설명을 얻었다. 그 설명을 발췌해서 여기에 옮긴다.

 

“. . . . . 화성은 현재 엄폐기 상태에 있고, 수성은 그런 상태로부터 막 빠져 나온 직후라고 말하는 것이 매우 바른 것이다. 금성은 최후 라운드에 들어있는 상태라고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 . 만약에 수성에서나 금성에서나 위성이 없는 것이라 한다면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인 것이다. . . (각주 51을 참조) 또 화성이 가져야할 권리가 없는 두 개의 위성을 가지고 있는 이유도 나와 있다. . . 화성 내부의 위성이라고 생각되는 포보스(Phobos)는 위성이 아니다. 훨씬 이전에는 라플라스가 지적했고, 그리고 지금은 페이예(Faye)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포보스의 회전주기는 너무 짧기 때문에 “포보스가 화성의 위성이라는 이론의 근거가 되는 개념에 잘못이 있다고 본다”. . .또한 화성과 수성은 지구의 주가 되는 태양과는 별개로 상위의 칠중 연쇄이다. 그것은 여러분이 다움링(Daumling)의 원리와 독립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 . . “어떤 사람에게는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것이 지식의 목적이 될 수 있다”라고 베이컨은 말했다. 이런 자명의 이치를 미리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지식과 지혜사이에 울타리를 치고, 한꺼번에 공표하지는 않았다. . . . 기억하라.

 

지식은 다른 사람의 사념으로 가득 차 있는 머리 속에서 살고 지혜는 자기 자신의 생각에 귀기울이는 마음에 산다. . . .

여러분들은 자신이 어느 정도의 비교적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아주 깊숙이 인상에 새길수록 좋다.“

 

아래에는 같은 분이 쓰신 또 다른 편지에서 발췌한 것인데, 스승들에 대한 반론에 답한 것이다. 그 반론은 비교적인 이론을 근대과학의 가설과 조화시켜 보려고 하는 시도에 관해서는 대단히 과학적이었지만, 아무 소용없는 이유의 핑계를 나열하는데 치우쳐 있었다. 그것은 비밀의 가르침, 즉, 씨크릿 독트린에 대한 경고로서 어느 젊은 신지학도가 쓴 것이다. 그는 만약, 그와 같은 지구의 동료 구체가 있다고 한다면, “우리들의 지구는 그것들보다 아주 조금 더 물질적인 것이 틀림없다”고 단정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것들은 보이지 않는가?

답은 다음과 같다.

 

“사이킥적인 가르침과 영적인 가르침이 좀더 충분히 이해를 얻어내고 있었다면, 이와 같은 부조화스러움은 거의 상상 할 일 조차 없었을 것이다. 조화되지 않는 일을 조화시키고자 쓸데없이 힘을 감소시킨다면 그다지 큰 진보는 없을 것이다. 즉, 여기서 말하는 조화는 형이상학적이고 영적인 과학과, 물질과학 즉 자연과학과의 조화이다. 자연이란, 그들 「과학자」에게 있어서는, 그들의 육체감각의 지각작용을 받는 것들과 동의어인 셈이다. 처음부터 가르쳐 주고 있는 것처럼, 우리들의 지구는 주기의 하강면에서 제일 아래쪽에 있는데 우리들이 지각해 얻는 물질이 가장 농밀한 형이다. . . 따라서, 우리들의 지구와 겹쳐있는 여러 구체는 별개의 훨씬 더 높은 계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 다시 말해, 그 구체들은 우리의 지구와 동질이 아니라 함께 통합된 상태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전혀 다른 의식상태에 속한다. 우리들의 혹성인 지구를 비롯해 우리의 눈에 보이는 모든 혹성은 각각에 거주하는 인류의 상태에 적합한 것이다. 즉, 보통의 눈으로 우리들이 살고 있는 행성과 그 행성의 물질, 그리고 이와 함께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항성체를 볼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목성과 화성, 그리고 그 외의 행성에 존재하는 주민들도 우리들의 작은 세계를 인지 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들 의식의 계는 다른 천체의 의식계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종류는 같고, 분화한 물질이 같은 계층에 있기 때문이다. . . . . 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작은 프랄라야는 우리들의 구체가 속해있는 작은 환(環)과 관계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용어가 정해져 있지 않았던 이 무렵에, 우리들은 연쇄를 환(環)이라 말했었다). . . .“우리들의 지구는 그와 같은 환(環)에 속한다.” 다른 혹성도 환(環) 혹은 연쇄로 된 것을 알았을 것이다. . . 만약, 어떤 사람이(반대하는 사람을 뜻함) 높은 계에서 이러한 “혹성”중 하나의 희미한 윤곽을 느꼈다면, 그는 우선 자신과 다음의 계 사이에 있는 아스트럴 물질의 엷은 구름을 제거해내야 할 것이다. . . . .”

 

아무리 우수한 망원경을 쓴다해도 물질 세계 밖에 있는 것에 대해서는 결코 인식할 수 없다. 그러한 것은 오로지 아데프트라 불려지는 존재들만이 가능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멘탈비전을 다른 존재계에 있는 육체와 사이킥체 양편의 의식으로 전송하는 방법을 알고 계시는 분으로서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 권위를 가지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우리에게 솔직하게 말을 하신다.

 

“이와 같은 지식과 힘을 획득할 수 있는 생활을 하라. 그리하면 지혜는 자연히 그대에게 올 것이다. 그대가 자신의 의식을 “우주 의식”의 일곱 개의 현(弦) 중 하나에 조화시킬 수 있을 때는 언제든지(이러한 현은 하나의 영원에서 다음의 영원으로 진동해가면서 코스모스의 음향판에 울려 퍼진다), 또한 그대가 “천구(天球)의 음악”을 완전히 체득했을 때, 비로소 그대의 지식을 그대가 안심하고 나눠 줄 수가 있는 사람들에게 자유스럽게 나누어줄 수 있게 된다. 그때까지는 신중하라. 미래의 인종에게 전해질 진실을 지금의 시대에서 마구 퍼뜨리지 마라. 아폴로의 7현에 숨겨져 있는 뜻을 알아낼 수 없는 사람들에게 존재와 비 존재의 비밀을 누설하지 마라. 빛나는 신의 7현(弦) 한 줄 한 줄에 코스모스의 영과 혼과 아스트럴체가 살고 있다. 근대과학의 손에 들어가 있는 것은 신의 껍질뿐이다. . . . . . 신중하고 현명하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대로부터 배우고 있는 사람들의 믿음에 유의하라. 자기 자신을 기만하는 것보다도 다른 사람을 속여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 . . 왜냐하면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모든 진실에 대해 아직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 . . 오히려, 혹성연쇄와 그리고 그 밖의 초우주적, 아(亞)우주적 신비를 볼 수 없거나 믿을 수 없는 사람들, 혹은 그런 것이 보인다고 하는 사람들을 믿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꿈으로 남겨두도록 하자.“

 

소수의 사람만이 앞의 현명한 충고에 따르지 않은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기 짝이 없는 것이다. 또한, 훌륭한 값어치를 가지고 있는 지혜의 진주나 보석이 그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에게로 던져져서, 그가 우리들을 공격해 오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럽다.

대사는 계속해서 두 사람의 “초보제자”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대사는 「에소테릭 부디즘」의 저자와 잠시 동안은 그의 생도였던 또 한 사람의 신사를 지칭해 초보 제자라고 불렀다).

 

“우리들의 지구가 일곱 개의혹성, 즉 인간의 삶의 터전이 될 일곱으로 된 세계 중 하나라고 상상해 보자. . . (일곱 개의 혹성은 고대인이 말하는 일곱 개의 신성한 혹성이고, 모두는 칠중이다.) 지금까지는 우주진(라야 센터)에 지나지 않았던 생명 충동이 A( 장차 A로 될 것이 더 정확하다)에 다다른다. . .”

 

이처럼 초기의 편지를 통해서 용어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링(ring)”은 “라운드”로 되고 “라운드”는 “생명주기”가 되며 그의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라운드”를 “세계의 링”이라고 쓴 편지에 대해 대사는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그런 언어(말)는 더욱더 혼란을 일으킬 것으로 생각된다. A구(球)부터 Z구(또는 G구)까지 모나드가 지나가는 길을 라운드라고 부르는 것에 찬성한다. . . ”세계의 링“은 바른 것이기는 하지만. . . 더 이상으로 혼란이 가중되기 전에 ”라운드“라고 용어를 정할 것을 강하게 찬성한다. . .”

 

이런 협약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초기의 가르침에는 이와 같은 혼란이 많이 보인다. 인종에서조차도 종종, “라운드”나 “링”이 혼동되어 「인류-잃어버린 역사의 단편」의 경우에서도 잘못 되었다. 대사는 처음부터 다음과 같이 쓰고있다.

 

“어떠한 진리도,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단편일지라도 그대에게 알려주는 것이 허락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나는 그대를 만족시킬 수 없다.”

 

이것은 다음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만약 우리들이 옳다면, 인간주기 이전의 모든 존재는 637이다, . . .” 숫자에 관한 모든 질문의 답에는

 

“777 화신에 대한 문제를 풀어 보려고 노력하자. . . . 나는 어쩔 수 없이 정보를 유보한다. 하지만 만약 그대가 스스로 그 문제를 풀어냈을 경우에는 그대에게 해답을 주는 것이 나의 의무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의 문제는 결코 풀리지 못했기 때문에 끝없는 혼란과 오류가 발생했던 것이다.

소우주 즉 인간의 일곱 개의 구분의 터전이 되는 천체 및 대우주의 칠중 구조에 관한 가르침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엄한 비교적인 가르침 속에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옛날에는 비전을 받을 때에 처음으로 밝혀주는 것이 보통이었고 그와 동시에 가장 신성한 주기 관계의 숫자를 가르쳐주었다. 어떤 신지학 잡지에서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여러 가지 질문을 했던 「에소테릭 부디즘」의 저자가 쓴 편지에 대한 답으로 인해서 약간의 정보가 주어졌을 때에도 우주 발생론의 전 체계를 공표하는 것은 결코 생각할 수도 없었던 것이고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한 질문 가운데에는 아무리 높고 독립적인 대사라 할지라도 답을 줄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가장 유서가 깊은 고대의 대학-사원의 신비를 세계에 누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광범위하게 걸쳐져있는 교리의 바깥 틀만을 조금만 가르쳐 주고 자세한 것은 꽉 묶어 두었다. 그렇게 해서 더 많은 정보를 얻어내려고 하는 사람들의 모든 노력은 애초부터 다른 길로 향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아주 당연한 것이다.「푸라나」에 나와있는 일곱 가지의 지식의 갈래 중에 있는 네 개의 비디야(Vidyā)는 다음과 같다.

 

“야즈나-비디야(Yajña-Vidyā)”는 어떤 결과를 생겨 나오게 하기 위한 종교의식의 실행이고 “마하-비디야(Mahā-Vidyā)”는 위대한 (마술) 지식인데 지금은 탄트리카(Tāntrika) 숭배로 타락해 버렸다. “구야-비디야(Ghuya-Vidyā)”는 만트라의 과학과 신비적인 주문의 진정한 리듬이나 창법에 관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트마-비디야(Ātma-Vidyā)”인데 이것은 진정한 영적인 신성한 지혜로서 위에 언급했던 세 개의 가르침에 절대적인 빛을 주는 것이다. 아트마-비디야가 없다면, 다른 세 개는 평면적 과학으로서 길이와 폭만 있으며 두께가 없는 평면형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의 혼과 사지(四肢)와 마인드로 비교해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즉, 혼돈스러운 꿈을 꾸면서 기계적으로 움직이며 심지어는 걸어다닐 수도 있지만, 이것은 지적인 자극에서 온 것이 아니고 완전한 의식을 가진 상태의 영적인 자극은 더더구나 아니다. 본능적인 원인으로 인한 자극에 불과하다. 처음에 말했던 세 개의 비디야에서 많은 것을 발표하고 설명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러한 가르침의 열쇠가 아트마-비디야에 의해 준비되지 않으면 그것들은 여러 조각으로 잘려 나간 텍스트로 영구히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위대한 진리를 살짝 귀뜸해 주는 것으로, 지고의 영적인 사람들에게는 가냘프게나마 느껴지겠지만, 모든 그림자의 벽에 멋대로 못질을 해버리는 사람들에 의해 굳어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또, 모나드의 진화의 가르침에 대한 불완전한 설명으로 인하여 학도의 마음에 또 다른 혼란이 생겨난다. 충분한 이해를 얻기 위해서는 모나드가 진화해 나가는 과정과 구체가 탄생되는 과정 양편을 통계적 견지에서보다는 철학적인 면에서 살펴나가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가르침을 철학적인 것으로 다루어 보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우리들의 가르침에 대하여 쓴 가장 뛰어난 서구인들조차 모나드의 진화에 관해 이야기 할 때는 “우리는 그처럼 순수한 형이상학에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관여되어 있지 않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태도에 대해 스승께서는 다음과 같이 편지를 보내셨다. “왜 우리들은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강물을 역으로 헤엄치는 것과 같이 힘들게 가르침을 전파하는 것인가? 서구의 독특한 요구를 결코 채워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것을 왜 서구인은 . . . 동양으로부터. . . 배워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들의 형이상학을 서구인에게 설명해 주려고 하는 모든 시도로 인해서 우리들(아데프트들)은 상당한 곤란을 겪게 된다.”고 대사는 주의를 주었다.

형이상학이 없었다면 오컬트 과학이나 비교가 있을 수 없다고 하는 대사의 말씀은 당연한 것이다. 형이상학과 떨어져서 비교(秘敎)를 이야기하는 것은, 열망과 감정, 사랑과 미움, 살아 있는 인간의 혼과 마인드의 안에 있는 신성한 움직임을 사체의 가슴과 뇌를 해부해서 설명해 보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면,「에소테릭 부디즘」안에는 거의 나와있지 않는 구체와 모나드의 가르침을 조사해보고 우리들 힘이 미치는 데까지 보충해 보자.

 

 

 

여러 구체와 모나드에 관한 추가 사실과 설명

 

「에소테릭 부디즘」안에 제시된 두 개의 진술에 주목해야 하기 때문에 저자의 의견을 인용하겠다. 저자는 49p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영적 모나드는 . . . A구에서 그의 광물 존재를 충분히 완성하는 것이 아니고 다음 B구에서 완성한다. 모나드는 광물로서 몇 회의 사이클을 돌고, 그리고 나서 식물로서도 몇 회 돌고, 동물로 몇 회를 돌게된다. 우리들은 아예 숫자로 말하는 것을 유보한다. . . .

 

이것은 수나 상징에 관한 내용을 최고의 비밀로 유지했던 것은 현명했던 방법이었다. SD에서는 수에 대해서 조금 더 자유롭게 가르치는 것을 허락 받았다. 그러나 라운드 등에 관한 것은 정확한 수를 한꺼번에 모두 표시하거나 혹은 아예 표시하지 않는 것이 좋기 때문에 시네트씨는 이 어려운 점을 이해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성에 관한 문외한에게는 이해시킬 수가 없기 때문에 오컬트 지식을 가진 자는 우주 발생론에 관한 사실을 공표하는 것을 특히 꺼린다. 그렇지만 비전에 입문한 사람이 아닌 자에게 왜 그것을 일반적으로 알려주어서는 안 되는지 이해시키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와 같은 사유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서구의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동양의 제자 중에도 스승의 침묵에 커다란 혼란을 느낀다. 그 두 가지의 교의를 받아들이는 데는 믿을 만한 근거가 더 이상 없기 때문에 대단히 어렵게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도리가 없다. 왜냐하면, 매스터께서 여러 차례 선언하고 계신 것처럼, 오컬트 계산의 숫자는 서약을 했던 제자 외에는 가르칠 수가 없는 것이며, 제자들 역시 이 규칙을 어겨서는 안 된다.

이 일을 좀더 단순하게 하기 위해서는 교리의 수학적인 측면은 고려하지 않고 주어진 가르침을 넓게 확장시키고 애매한 점을 풀어갈 수가 있을 것이다. 여러 구체의 진화와 모나드의 진화는 아주 밀접하게 서로 뒤섞여져 있어, 우리들은 두 가지의 가르침을 하나로 모아보자. 모나드에 관해서는, 어린아이가 새롭게 태어날 적마다 혼이 새 것으로 창조되어 온다고 말을 하고있는 서구 신학의 도그마를 동양 철학에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독자들은 잘 기억해 두어야 한다. 그것은 자연의 도리(이치)에 맞지 않기도 하며 비논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몇 차례 바꾸어 태어나는 사이에, 새로운 만반타라가 올 때마다 이어져 가는 인격의 에센스를 동화해서 더욱 진화하고 성장해 가는 모나드의 수는 한정되어 있다. 이것은 윤회와 카르마의 가르침의 측면에서도 그러하고 인간 모나드는 차츰 그의 뿌리, 즉 절대적인 신으로 돌아간다고 말하는 측면에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많건 적건 간에 진보를 이룩한 모나드의 무리는 이루 헤아릴 수 없지만, 그래도 분화되고 유한한 이 우주의 모든 것들과 똑같이 그들의 수 또한 유한한 것이다.

인간의 “원질”과 세계 연쇄의 구체를 그린 그림1에 나와 있는 것처럼 원인과 결과의 영원의 연쇄가 있고 진화가 모든 선을 뚫고 나가서 하나로 연결하는 완전한 유추의 법칙이 있다. 구체나 인격이나 하나의 것은 다음의 것을 낳는다. 그러나 더 비약하지 말고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보자.

계속해서 이어지는 혹성 연쇄가 형성되는 과정에 대한 일반적인 개요를 방금 알려주었다. 앞으로 발생하게 될 지도 모를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몇 가지를 더욱 자세히 설명해 보겠다. 그것은 달 연쇄의 자손인 우리들 자신의 지구연쇄 위에 있는 인간 역사에 빛을 던져 주게 될 것이다.

그림2의 오른쪽은 일곱 번째 혹은 마지막 라운드에서 시작하는 “달 연쇄”의 일곱 행성을 나타낸다. 왼쪽은 아직 존재해 있지 않지만 장차 나타나게 될 “지구연쇄”를 표시한 것이다. 각 연쇄의 일곱 구체는 순환하는 순서에 따라서 A부터 G로 구별했다. 지구 연쇄의 구체에는 지구를 상징하는 +자를 붙여 두었다.

이렇게 상상해 보면, 7중 연쇄를 순회하고 있는 모나드는 진화와 의식과  공로에 따라 7 클래스 또는 7 하이어라키로 나누어져 있다. 그러면 첫 번째 라운드에서 혹성 A에 나타나는 7 클래스의 모나드의 순서를 쫓아가 보자. 여기서부터 7 클래스에 나타나는 시간적 간격 사이에는 최후의 클래스 말하자면 제 7클래스가 A구에 나타나게 될 때에서는, 제 1클래스의 B구에 들어가도록 조정되어 있다. 이와 같이 해서, 한 발 한 발 연쇄 전체로 돌아가게 된다.

 

그림2.png

 

 

또한 달 연쇄의 제 7라운드에서 제 7클래스 즉 최후의 클래스가 A구를 나오면 A구는 앞서의 라운드에서 해왔던 것처럼 잠에 빠져들지 않고, A구의 프랄라야에 들어가서 죽기 시작한다. 그리고 죽어가면서, 지금 말한 것처럼 순서대로 그의 “여러 본질” 즉, 생명․제 요소와 에너지 등을 새로운 “라야 센터”로 옮겨간다. 그래서 지구 연쇄에서 A구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똑같은 경과가 “달 연쇄”의 각각의 구체에서 일어나서 각각 “지구 연쇄”의 새로운 구체를 만들어 낸다. 우리의 달은 과거에 달 연쇄에 있을 때의 제 4구체였고 우리의 지구와 같은 지각(知覺)계에 속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달 연쇄의 A구는 제 1클래스의 시초의 모나드들이 “달 연쇄” 최후의 구체G(또는 Z)구에서, 이 두 개(달과 지구)의 연쇄의 사이에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열반(라야)에 들어가게 될 때까지는 완전하게 죽지 않는다. 똑같이 다른 모든 구체들도 그러하다. 이미 말한바 있듯이 그것들은 “지구연쇄”에 상응하는 구체를 태어나게 한다.

 

더 나아가 새로운 연쇄의 A구가 준비되면, 달 연쇄의 모나드들의 제 1클래스, 즉 제 1하이어라키가 A구의 가장 낮은 계로 바뀌어져 태어나서, 계속 이어 나가는 것이다. 그 결과 제1 라운드 동안에 인간상태로 발달하는 것은 제 1클래스의 모나드들뿐이다. 제 2클래스는 각 구체에 훨씬 뒤에 도착하기 때문에 인간 단계에 이르는 시간은 없다. 따라서 제 2클래스의 모나드들은, 제 2라운드에서 처음으로 초기의 인간단계에 이르게 된다. 제 4라운드의 중간 점까지, 모나드의 진화는 그와 같이 계속해 간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인간계에의 “대문”은 닫혀버린다. 제 4라운드에서 인간단계는 충분히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후에는 “인간 모나드”들의 동료, 말하자면 인간이라 말하는 발달 단계에 있었던 모나드들의 수는 불어나지 않는다. 이 점까지의 인간단계를 달성해내지 못한 모나드들은, 일곱 번째 즉 마지막 라운드가 끝날 즈음에, 비로소 인간단계에 이르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 연쇄 동안 인간으로 다다르지 못했다면 다음의 연쇄까지 기다려야 겨우 인간단계에 이르는 기회가 온다. 다음에 돌아오는 만반타라 때에 인간의 형태를 얻어 전면적으로 모두가 더 한층 높아진 연쇄에서 “인간”이 됨으로써 보답을 받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카르마적 보상을 받게 되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하도록 하자.

 

이와 같이 코스모스와 개인의 진화과정이 얼마나 닮았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개인은 그의 생명주기를 통해서 살다가 죽는다. 혹성연쇄의 발전에 있어서 순환하고 있는 모나드와 상응하는 인간의 “고급본질”은, 데바찬(靈界)으로 들어간다. 그것은 두 개의 연쇄 사이에 있는 “열반”과 휴식상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저급한 “여러 본질”은 머지않아 붕괴해서 자연에 의하여 재활용되어 새로운 인간의 여러 본질로 다시 형성된다. 그리고 여러 세계가 붕괴되고 형성되는 것은 똑같은 과정을 거친다. 이런 것처럼, 유사의 법칙은 오컬트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가장 확실한 안내자 역할을 하고있다.

 

이것이 달에 관한 일곱의 신비 중에 하나로서 이제 공개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곱의 신비를 일본에서는 야마부시라고 부른다. 야마부시라는 것은 Lao-Tze 파의 밀교이다. 일본과 중국 불교의 고행 승려들이나 비전가들은 힌두교의 승려보다도 더 말을 삼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독자는 모나드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최고의 신비에 들어서지 않은 상태에서도 허락되는 모나드들의 성질에 관한 지식을 얻어내도록 힘을 다해야 한다. 그것에 관해서 필자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하지는 못한다.

 

모나드의 클럽은 대략적으로 세 클래스로 구분된다.

 

1. 가장 진보한 모나드들, 달의 신들, 즉 달의 “영”이고, 인도에서는 피트리스라고 말하고 있다. 이 모나드들은 새롭게 만들어진 연쇄의 자연을 몸에 감고서 이 연쇄에 동화하기 위해 제 1라운드에서 광물계, 식물계, 동물계의 세 주기 모두를 가장 희박한 안개처럼 미 발달의 형체로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그들은 제 1라운드의 A구에서 인간형체(거의 주관적인 영역에서의 형체라고 말하는 것들이 있다고 한다면)에 제일 먼저 도착하는 모나드들인 것이다. 따라서 제2, 제 3라운드 동안의 인간적 요소의 선두로서 가장 중요한 제 4라운드의 초기에, 제 2클래스나 그 뒤에 다가오고 있는 모나드들을 위해 자신의 그림자를 던져주고 있다.

 

2. 세 라운드의 반정도 사이에서 처음으로 인간단계를 이룬 인간 이 되는 모나드들.

 

3. 늦게 따라 온 자들로 카르마적인 장해들 때문에 뒤에 쳐져서 이 주기 또는 라운드에 전혀 인간단계를 달성해 낼 수가 없는 모나드들이다. 하나의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서 설명하겠다.

 

그렇다면 아스트럴체를 둘러싸고 있는 체, 즉 외부의 형체가 진화하는 것은 저급 자연계의 경우처럼, 지상의 힘에 의해 행해진다. 하지만 내적인 진정한 인간의 진화는 순수한 영적인 것이다. 그것은 바깥측 진화의 경우처럼 전혀 틀린 세계의 본능과 의식을 가진 물질의 다종 다양한 형체를 통과하는 비개성적인 모나드의 변천은 아니다. 즉, 물질뿐만이 아니고, 자아 의식과 지각의 여러 가지 상태를 통과하는 “순례의 혼”이 거쳐가는 여행, 혹은 통각(統覺)에서 나오는 지각에의 여행인 것이다.

 

모나드는 영적 및 지적 무의식 상태에서 나오게 되며 저급계의 어떠한 것들과도 상호관계를 갖지 않는 절대자에 가까운 것으로서 시초의 두 계를 뛰어 넘어 지성의 계(Plane of Mentality)로 직접 들어간다. 그러나 이처럼 넓은 경계, 즉 지각과 통각의 특성이 거의 무수한 등급으로 나누어져서 광범위한 활동분야를 지니고 있는 계는 전 우주를 통틀어 이것 외에는 없다. 그 계는 광물체를 거쳐 신성한 모나드가 되어서 꽃을 피우게 될 때까지 걸쳐 입게 되었던 모든 “형체”에 들어맞을 수 있도록 보다 적은 계로 바뀌었다. 모나드는 지적 영성과 물질이라고 하는 반대의 영역을 따라 내려갔다 올라갔다를 반복하면서, 영의 부분적 또는 전체적 엄폐와 물질의 부분적 또는 전체적 엄폐사이를 끊임없이 왔다갔다한다. 모나드가 구현되는 형태는 다양하지만 모나드 그 자신은 언제나 똑같은 그대로의 모나드인 것이다.

 

다시 「에소테릭 부디즘」으로 돌아가 보면, A구의 광물기와 인간기사이의 광대한 기간에 대한 설명이 있다.

 

A구에서의 광물기의 완전한 발달은, 식물발달을 위한 길을 만든다. 그래서 이것이 시작되면 곧바로, 광물생명의 충동은 B구에게로 흘러 들어간다. 그로부터 A구에서의 식물발달이 완성하게 되면, 동물발달이 시작되고, 식물의 생명충동은 B구에게로, 광물충동은 C구로 옮겨져 간다. 그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A구에 인간생명의 충동이 오게된다.

 

이와 같은 경로로 3라운드까지 나아가며 제 4라운드, 우리들의 구체(지구)의 입구에서부터 차츰 완만해지다가 정지하게 된다. 왜냐하면 일곱 번째의 인간기(진정한 육체인간)에 이르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진술은 명백한 사실이다. “광물질보다 앞선 진화과정이 있고, 구체를 빙빙 돌면서 진보하는 광물기를 앞서가는 진화의 파는 실제로 몇 개나 있었다.”

 

다음에는 「신지학의 다섯 해」안에 있는 「광물 모나드에 관해서」라는 제목의 글(273p 이하 참조)을 인용해 보자.

 

일곱 개의 자연계가 있다. 제1그룹에는 세 단계의 엘리멘탈 또는 원시적인 힘의 중심의 세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한 힘은 물라프라크리티 (또는 원초의 동질의 질료인 프라티나에서)에서 분화된 시초의 단계로부터 제3단계 말하자면 완전한 무의식에서 반지각상태까지 세 단계로 나누어진다. 제2의 보다 높은 그룹은 식물계로부터 인간계까지를 포함한다. 따라서 광물계에서 진화하고 있는 에너지로서의 모나딕 에센스(Monadic Essence)의 여러 단계에서 중심점, 다시 말해 전환점을 형성하고 있다. 즉 엘리멘탈의 3단계(물질 이하)와 광물계, 그리고 객관적 물질 측면의 3단계가 있다. 이것은 진화 연쇄의 첫 번째 일곱 연쇄이다.

 

그것은 시작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준비단계”이고, 실제로 자연의 진화에 속하고 있는 것이지만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자연 이하의 진화인 것이 된다. 이 과정은 제3단계로서 끝나고 제4단계의 입구에서 끝난다. 이렇게 해서 자연 진화의 계에서 본다면 진정한 인간의 진화를 향하는 시초의 단계에 들어간다. 이것은 엘레멘탈계와 합해서 10, 즉 세피로트의 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영이 물질로 내려오는 것은 육체적 진화의 상승에 상응한다. 영이 물질의 가장 깊은 심연(광물성)에서부터 구체적 유기체가 붕괴해 가는 원래의 상태로 재 상승하면서 열반까지 다다른다. 열반이란 상승에 상응해서 분화되었던 질료가 사라져 없어지는 점이다.

 

따라서 「에소테릭 부디즘」에서, “진화의 물결”이라는 적절한 용어를 사용하면서 광물, 식물, 동물, 인간의 각각의 “충동”이 어째서 제 4라운드의 우리들 구체의 입구에서 멈춘다고 했는지 명백해 진다. 우주 모나드(부디)가 아트마의 광선과 맺어져서 그 매체로 되는 것은 이 시점에서 생기는 일이다. 즉, 그것(부디)은 그것(아트마)의 통각(統覺)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그래서 일곱으로 이루어진 진화의 첫 번째 사다리에 오르는 것이다. 제일 아래서부터 위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면 마지막에 세피로트 나무의 열 번째, 말하자면 “왕관(王冠)”에 이르게 될 것이다

 

우주의 모든 것들은 유추의 법칙에 따른다.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인 것이다. 인간은 대우주에 상응하는 소우주인 것이다. 영의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우주에서 반복되고 있다. 구체화는 추상의 선에 따른다. 최고의 것들에 상응해서 최저의 것들이 펼쳐나가지는 것이다. 물질적인 것들은 영적인 것들과 상응되어 있다. 이와 같이 세피로트의 관(또는 위쪽의 3개조)에 상응해서, 광물계에서 앞서간 3단계의 엘레멘탈계가 있다.(「신지학의 다섯 해」의 277p의 그림 참조) 카발리스트에 의하면, 엘레멘탈계는 우주적 분화과정에서 초영적 세계로부터 원형계까지의 형체와 질료의 세계에 상응한다.

 

“모나드”란 무엇인가? 그리고 원자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다음 답은 앞서의 논문「광물 모나드에 관해서」에서 저자가 쓴 설명에 기초를 두고 있다.

 

두 번째 질문에는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모나드는, 현재의 과학적 개념에서 보고있는 원자나 분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 전에는 적충(滴蟲)으로 분류되었다가 지금은 식물이라고 생각하게되는 초류(미역.파래)의 부류에 들어가 있는 미생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고, 또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모나드와도 조금 틀린 것이다. 인간 모나드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며 화학적인 원소에 의해서 구조를 표현할 수도 없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영적 모나드는 유일의 보편적이며 무궁한 것이기 때문에 나누거나 분리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그 광선은 우리들의 무지로 인해 인간이 “개인 모나드”라고 부르는 것으로 형성되어 있다. 여러 가지로 내려오는 설명과 같이 광물 모나드는 원의 반대쪽 편의 점이만, 역시 유일의 것이고, 거기에서 무수한 물질적 분자가 나오는 것이다. 과학에서는 그것들을 개별화한 것들로 인식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자연의 4계의 진화가 나선적으로 전개되는 것을 어떻게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모나드”는 인간의 최후의 본질 즉,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의 본질(초물질)을 조합시켰던 것이다. 바르게 말한다면, “인간 모나드”라는 말은 2중의 혼(아트마-부디)에게만 해당시킬 수 있는 것으로서 최고의 영적인 생기를 주는 원질(아트마)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후자(아트마)로부터 절연을 당하면 영적 혼(부디)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모나드라고 불러왔다. . . . 그렇다면, 광물, 식물, 동물의 모나딕 에센스(만약 이와 같은 말을 쓰는 것을 허락해 준다고 하면 오히려 우주적 에센스라는 말이 더 정확하지만)는, 최저의 엘레멘탈로부터 데바의 세계까지 일련의 주기를 통해서는 같은 것이지만 진보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다.

 

개별화된 하나의 모나드가 저급 자연계를 천천히 확실하게 거쳐가면서 헤아릴 수 없는 변화를 겪어 마침내 인간으로 꽃을 피우는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흄볼트와 같은 자연과학자의 모나드가 되기 위해서 각섬석(角閃石)의 원자 모나드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생각은 오해를 가져온다. 물리 과학적인 측면에서 광물 모나드라고 하는 용어는 적절하지 않다. 모든 원자를 분화시키며, 더 정확하게는 광물계라고 하는 “프라크리티”의 형태 안에 나타나 있는 모나드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보통의 과학적 가설에 따른 원자는 사이킥적인 무엇에 의해 활기가 불어져,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 꽃피는 운명에 있는 미립자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또 개별화 되어있지 않다. 보편적 에너지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고, 유일의 보편적 모나드의 순서를 쫓아서 나타난 것들이다. (물질의) 바다는 생명충동의 전개가 인간 탄생의 진화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잠재적인 구성물질로 나누어지는 일이 없다. 고급의 동물에 다다라 정점에 이르기까지 개별의 모나드는 서서히 분리된다. 아리스토텔레스 학파는 범신론적인 의미로서 전 우주를 모나스라고 하는 말로 표현했다. 그리고 오컬티스트들은 편의상 이러한 사상을 받아들이면서도, 추상에서부터 구체로 되어 진화해 가는 단계에 따라 “광물, 식물, 동물 등의 모나드”라고 구별한다. 모나드라는 것은 말하자면 실례로서 영적 진화의 주기적인 흐름을 순회하며 지나가는 것을 뜻하는 말에 불과하다. “모나딕 에센스”는 식물계에서 개별적 의식으로 가냘프게 분화를 시작한다.

 

라이프니쯔(Leibnitz)가 바르게 정의하고 있는 것처럼, 모나드는 합성물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모나드를 구성하는 것은, 분화의 여러 가지 단계에 따른 활기를 넣어주는 영적 에센스이지 원자의 집합체는 아니다. 원자로 이루어지는 체라는 것은 지성의 여러 가지 단계에서 진동매체나 질료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라이프니쯔는 모나드를 기본적으로 파괴할 수 없는 단원(單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다른 단원과 주고받으며 모든 영적, 물질적 형상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통각(統覺)이라고 부르는 언어를 만들어 낸 것도 그였다. 그것은 신경과 (지각력이 아닌 오히려) 감각과 함께 인간까지 이루어지는 여러 자연계를 통과해 나가는 모나드의 의식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아트마-붓디를 모나드라고 부르는 것은 형이상학 원칙에서 엄밀히 말하면 틀린 것이다. 즉, 물질적인 관점에서 보면 아트마-부디는 이중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합성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물질은 영이고, 그 반대도 맞는 말이다. 우주와 우주에 잦아드는 신이란 서로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아트마-붓디의 경우도 역시 그렇다. 아트마와 그의 매체인 부디와의 관계는 카발라의 로고스의 격인 아담 카드몬과 아인-소푸 그리고 물라프라크리티와 파라브라훔의 관계와 같은 것이다.

 

달(月)에 관해서 좀더 말해보자. 지금까지 말해왔던 “달 모나드”란 무엇인가? 피트리스의 7클래스에 대해서는 뒤에서 말하고 지금은 일반적인 설명을 하겠다. 피트리스는 지구연쇄 보다는 낮은 단계의 달 연쇄에서 생명주기를 끝낸 모나드들이었고, 이 연쇄에 화신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덧붙여야할 세세한 사항이 몇 가지 있지만 금지되어 있는 분야와 너무 가깝게 접해있기 때문에 충분히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신비의 최종적인 지식은 아데프트에게만 들려주는 것들이지만, 우리들의 위성인 달은 그러한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원질의 농밀한 체라고 말할 수가 있다. 일곱 개의 지구가 있는 것처럼 달도 역시 일곱 개가 있는데 그 중에 가장 낮은 단계의 것이 우리들 눈으로 보는 것이다. 태양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마야 즉 반영이라고 한다. 인간의 체(육체) 역시 그러하다. “진정한 태양과 진정한 달은, 진정한 인간처럼 똑같이 우리들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오컬트의 속언에서 말한다.

 

그리고 “일곱 개의 달”이라는 것을 처음 말하기 시작한 옛 사람들이 우둔하지 않았다는 것을 덧붙여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오늘날 이런 개념을 물질적인 관점으로 오직 시간의 천문학적 척도를 가지고 써먹고 있지만 그런 꺼풀의 밑에 감추어져 있는 심원한 철학적 사상의 흔적을 인식할 수가 있다.

 

진정한 달은 한가지 면에서만 지구의 위성이다. 말하자면, 물질적인 관점에서 달은 지구의 둘레를 돌고 있다. 그러나, 다른 모든 점에 있어 지구가 거꾸로 달의 위성이다.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런 말에 놀랄지 모르지만, 과학적으로도 확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달의 상(相)과 일치하는 조수의 간만이나 여러 가지 병의 주기적 변화에 의하여 입증되고 있고, 식물의 성장에서도 영향을 받고, 인간의 수태, 임신의 현상 같은 것을 보면 아주 분명하다. 달의 주요성과 지구에의 영향력은 옛날의 종교, 특히 유태교에서는 더 잘 알려져 있으며, 사이킥적, 물리적 현상을 관찰해 봄으로써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과학이 알고 있는 범위에서 달이 지구에 끼치는 작용은 달에게 지구 궤도를 돌게끔 해주고있는 물질적 인력에 한한 것이다. 이런 사실만으로 달은 다른 활동 여러 계에서도 진정한 지구의 위성이라는 것을 충분히 입증했다고 반론을 제기해온다면, 다음과 같이 묻고 답을 해주면 된다. 유아를 보살피면서 아기의 침대 주위를 걸어다니는 어머니가 자신의 자식에게 종속해서 따르고 있는 것인가? 어떤 의미에서 어머니는 아이의 위성이지만, 자신이 돌보고 있는 아이보다는 더 오래 살았고 그만큼 진보해 있다.

 

그러한 것에서 지구를 만들어내고 더불어 인류를 채운 달의 역할은 커다랗고 주요한 것이다. 달의 피트리스(모나드), 우리들 인간의 선조는 따지고 보면 인간 자신이다. 그들은 A구에서의 진화의 주기에 들어간 모나드들로서, 혹성연쇄를 돌아서 지금 표시해왔던 것처럼 인간형체를 진화시켰다. 이 지구에서의 제4라운드의 인간단계의 시초에 피트리스는 제3라운드에서 진화시켰던 “원숭이 모양” 형체에서, 자신들의 아스트럴 복체를 “새어 나오게” 했다. 자연이 그의 둘레에 육체인간을 만들어 내는 원형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은 이런 정묘하면서 희박한 형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것들의 “모나드들”, 즉 “신성한 불꽃들(모나드)”은 달의 선조들이고, 피트리스 자신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 “달의 영들”은 자신들의 “모나드”가 활동하여 의식을 더 높은 수준으로 말하자면, 마나사푸트라 정도에 이르기 위해서는, “인간”으로 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마나사푸트라(Mānasaputra)들은 제 3근본인종의 후기에 피트리스가 창조해서 지식을 갖게된 “지각이 없는” 껍질에 “마인드”를 주었던 분들이다.

똑같이 우리들 지구의 제 7라운드의 인간의 모나드, 즉 자아는 A구, B구, C구, D구 등이 가졌던 생명 에너지를 방출하고 나서, 좀더 높은 존재계에 살고 활동하도록 운명지어진 다른 라야 센터에 생명을 불어넣어 생명을 일으키게 될 것으로 본다. 그리고 달의 선조들처럼 지구의 “선조들”은 자신들보다는 훨씬 훌륭하게 될 존재들을 창조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보면, 주기적 우파디를 만들기 위해 자연에 삼중의 진화 계획이 있는 것은 명백해진다. 오히려, 우리들의 모든 체계에 맞추어 짜여져 섞이고 합쳐져 있는 진화 계획이 세 가지로 따로 따로 떨어져 있다고 보는 것이 더 가까울 것이다. 그것은 모나드의 (또는 영적인) 진화, 지적 진화, 그리고 육체의 진화이다. 이런 세 가지는 유한한 측면으로서 일곱 번째 유일의 실재인, 아트마의 우주적 환영의 장을 반영한다.

 

1. 모나드의 진화는 그 이름처럼, 지성과 결합을 한 모나드가 더욱 높은 활동양상으로 성장해서 발달하기 위한 것이다.

 

2. 지적인 진화는 인간에의 “지성과 의식의 부여자(주는)들”이 되는 마나사-디야니들(Mānasa-Dhyānis)(태양의 데바들, 즉 아그니쉬와타(Agnishvātta) 피트리스)에 의하여 대표되고 있다.

 

3. 육체적 진화는 달의 피트리스의 차야(Chhāyās, 정묘체)에 의하여 대표된다. 그의 차야의 둘레에 자연은 지금의 육체를 구체화시킨 것이다. 이런 체는 마나스를 통해 여러 가지의 경험을 얻고 또한 유한한 것은 무한한 것으로, 그리고 일시적인 것은 영원하고 절대의 것으로 성장(오해를 일으킬 말이지만)하고 변형해가기 위한 매체가 된다.

 

이러한 세 가지의 진화 각각에는 법칙이 있으며 다양한 레벨에 있는 최고의 디야니들 또는 로고스들에 의해 지배받고 인도된다. 디야니 혹은 로고스들의 세 그룹 각각은 위대한 대우주에 있어서 소우주인 인간으로 구성된다. 인간을 복잡한 존재로 만들어버린 것은 이러한 세 가지 줄기의 흐름이 결합했기 때문이다.

 

“자연” 즉 물리적인 진화의 힘은 도움이 없이는 결코 지성을 펼쳐 나갈 수는 없다. SD「인류발생론」에서 볼 수 있듯이 자연은 “무감각 형체”를 만들어 낼뿐이다. 달 모나드들은 진보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금까지, 자연을 수단으로 삼아 경험이 모아지게 할만큼 자연에 의해 만들어진 형체와 접촉을 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틈을 채워주는 것이, 마나사-디야니들인 것이고, 그들은 이번 라운드에서 “영”과 “물질”의 사이를 이어줄 것이며, 지성과 마인드의 진화의 힘을 대표한다.

 

제1 라운드의 A구에서 진화하는 주기에 들어간 모나드들은 여러 가지의 진화단계에 있는 것이라고 마음속에 접어 둘 필요가 있다. 따라서 문제의 것들이 약간 복잡성을 띄어간다. . . 그러면 개략적인 것을 살펴보기로 하자.

 

가장 먼저 발달해 있는 달의 모나드들은 제 1라운드에서 인간의 씨앗단계에 이른다. 제 3라운드가 끝날 때쯤에는 비록 에테르적인 성분이 강하긴 해도 인간적 존재이다. 제 4라운드에 들어서면 미래의 인류로 발화할 씨앗이 “엄폐기” 동안, 거기(C라운드의 구체)에 머물면서 기다린다. 그리고 제 4라운드(지금)의 첫머리에, 인류의 선구자가 된다. 뒤따르고 있는 다른 모나드들은 뒤의, 즉 제2, 제3 그리고서 제 4라운드까지만 인간단계를 이루어내게 된다. 마지막에 오는 모든 모나드들, 즉 뒤쳐져서 제 4라운드의 중간(복판)의 전환점인데도 불구하고 동물체의 몸을 지니고 거기서 못 빠져 나온 모나드들은, 이번 만반타라 동안에 인간으로 성장 할 수가 없다. 그들(동물체를 지니고 있는 모나드들)은 제 7라운드가 끝나 버리고 난 후, 비로소 인간단계의 근저에 이르게 될 것이다. 앞선 선구자들, 인류의 선조들 또는 인류의 씨앗, 말하자면 지구에서의 여러 라운드를 거치고 마지막에 만물의 우두머리가 된 사람들에 의해, 프랄라야가 지난 후, 뒤쳐졌던 모나드들은 새로운 연쇄로 인도될 것이다.

학도들에게 제 4구체 및 제 4라운드에 의하여, 진화체계의 안에서 연출되고 있는 역할에 관해서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필요한 변경을 덧붙인다면, 라운드, 구체, 또 인종에 적용할 수 있는 앞의 여러 그림에서, 일곱 구체 각각에서 네 번째 것이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다른 구체들과는 차이를 보이는 각각 제 4구체의 것은 같은 계이지만 자매 구체라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 연쇄의 밸런스의 지탱점이었기 때문이다. 제 4구체는 진화에서의 최종적인 조절의 영역이며, 카르마의 칭(저울)의 세계, 바꾸어 말해서 법정인 셈이다. 진화의 주기에서의 많은 여러 화신들의 남은 기간을 보내고 있는 즉, 모나드가 갈 미래의 길이 이곳에서 결정된다. 그러므로, 대주기의 동안에 이 중심의 전환점을 넘어서고 나면, 다시말해 우리들의 제4구(지구)에서 네 번째 라운드의 네 번째 인종이 지나고 나면 모나드들이 더 이상 인간계로 들어오지 못한다. 이번 주기에서의 인간에의 문이란 것이 있다면 잠겨지고 균형은 깨진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한사람 한사람이 탄생할 적마다 새 혼이 만들어진 것이고, 만약 윤회라는 것이 없다면 육체로부터 떨어져 나온 “영들”을 위한 별개의 공간을 준비해야 하는 공간이 없어 혼들은 대 혼란과 곤란에 빠져들 것이며 고통을 받아야되는 기원과 원인을 설명할 수가 없다. 오컬트 교의(敎義)에 대한 무지 그리고 종교의 가면을 쓴 교육으로 덮어 씌어진 허위의 개념을 밀어붙임으로 인해 소위 “신성한 질서”라고 주장하는 것에 반대하는 유물주의와 무신론을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말해왔던 규칙의 유일한 예외는 “벙어리 인종”이다. 그들의 모나드는 내부에서 이미 인간단계에 이르고 있지만 이와 같은 “동물들”은 인간보다 뒤쳐져 있어 심지어 반정도만 인간에 다가가 있다. 유인원과 원숭이가 그들의 마지막 자손들이다. 이처럼 “인간을 닮은 것들”은 실은 초기의 인류에서 왜곡된 복사판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것은 제 2권에서 충분히 설명할 것이다.

 

「주석서」를 의역하면 다음과 같다.

 

(1) 지구상의 모든 형체와 공간 안의 모든 미세한 원자는, “천상의 인간”을 향해 자신의 안에 놓여져 있는 길을 따라 가면서 자기형성을 향해서 노력하고 있다. . . . 그것(원자)의 하강 진화와 상승 진화, 바깥 및 내적 성장과 발달은 모두가 인간이 되어 보려고 하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즉 인간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단계의 육체적인 궁극의 형체이다. 그리고 모나드는 그것의 절대적 총합이고, 지구상에서의 신성한 화신들의 정점으로서 깨어난 상태이다.

 

(2) 디야니들(피트리스)은 스스로 부타(BHŪTA, 복체)를 만들어 낼 것이고, 그의 루파(형태)는 앞에 있었던 3개의 칼파(라운드)를 통해서 윤회의 주기를 완성해 낸 모나드들(제6과 제7의 본질)의 매체가 된다. 그리고 그들(아스트럴 복체들)은 그 라운드 최초의 인종에 속하는 인류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완전하지 않고 무감각의 상태였다.

 

이것은 다음 권에서 설명될 것이다. 인간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모나드는 이 라운드의 아주 이른 시초에 지구상에서 존재해 있었다. 그러나 우리들 자신이 제 5인종이 될 때까지, 이런 신성한 아스트럴 복체로 덮여있던 바깥 형체는, 매 번의 아인종 때마다 변화가 있었고 강해져왔다. 지구 형성 주기에 지질이 변화할 때, 이 구체의 생명도 변화에 적응해야 하기에, 동물상의 형체도 그리고 육체 구조도 다 함께 변화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모든 근본인종과 모든 주된 아인종의 각 주기에, 그와 같은 형체는 이번 라운드의 제 7근본 인종의 마지막 아인종까지 계속 변화해갈 것이다.

 

(3) 지금은 숨겨져 있는 내면의 인간은 초기에는 외부의 인간이었다. 디야니들(피트리스)의 자손은 “아버지를 닮은 자식”이었다. 연꽃과 같이 바깥에 있는 것은 안에 있는 것이 따라야 할 모델이 되어서 형체가 잡혀가는 것처럼 인간(혼․모나드)의 형체도 처음에는 안쪽에서 바깥으로 진화를 해갔다. 인간이 지금과 같이 동물계의 방식으로 자신의 자손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반대로 되었다.

 

인간의 태아는 3칼파(라운드) 동안 인간이 물질적 뼈대의 틀을 잡아오며 갖춘 모든 형체를 모방해 변형을 하는 것이다. 3라운드 동안은 지각이 없는 상태로 모나드 주위를 둘러싸고 유동성이 강한 것으로 형성을 만들어가면서 시험적인 노력을 했다. 왜냐하면 맹목적인 방랑 속에서 불완전한 물질이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시대에서는 육체적 태아는 최종적으로 인간이 될 때까지 자신의 속에서, 자기 자신의 정묘한 하나의 조각을 진화시켜나가면서, 순서에 따라 식물, 파충류, 동물을 거친다. 시초에는 지각이 없었던 탓으로 물질의 망으로 들어가 버린 것은 그의 아스트럴 인간이었다.

 

그러나, 이 “인간”은 제 4라운드에 속해 있었다. 이미 말한바 있듯이 모나드는 앞의 3라운드의 동안 모든 자연계를 여행했고 모든 과도적인 형체로서의 경험을 거치면서 그 속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될 모나드는 “인간”은 아니다. 이 라운드에서는 하나의 예외를 빼고는 식물계나 동물계에서의 어떤 것들이고 다음의 단계에서 인간이 되는 모나드들에 의해 활기를 부여받게 되는 일은 없다. 각각의 범위 안에서 저급의 사대령(四大靈)에 의해서만 활기를 얻는다. 이에 대한 단 하나의 예외는 인간 다음으로 가장 진화한 포유류 동물인 유인원이다. 유인원은 지금의 인종기 동안에 없어져서 끝나는 운명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모나드는 해방되어 제6 및, 제 7인종의 아스트럴 인간형체(또는 최고의 사대령들)를 입고, 그 후는 제5 라운드(지구는 제4 라운드)에서 가장 낮은 인간형체를 지니게 될 운명이다.

 

최후에 들어오게 되는 인간 모나드는 제 5근본인종이 시작하기 전에 화신을 한다. 지금의 우리들은 제 4라운드에 있고, 제 5근본인종기에 있으며, 인간 모나드의 윤회주기의 문은 닫혀져 버렸다. 이 책의 독자 혹은 「에소테릭 부디즘」을 읽은 사람은 SD 1권, 2권에 나오는 스탠저는 우리들 제 4라운드의 진화에 관해서만 말하고 있는 것을 유의해 주면 좋겠다. 제 4라운드란 전환점의 주기로 되어있는 라운드이다. 물질에 있어서는 가장 낮은 최저의 깊이(밑에)에 도달해 있는 것이므로, 그 후에는 상승해 가는 노력을 하게되고 새로운 인종 및 새로운 주기 때마다 영화(靈化)가 진화되어간다. 「에소테릭 부디즘」안에 라운드를 일괄적으로 말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제 4라운드 즉 현재의 라운드만을 말할 생각이므로 있지도 않은 모순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학도는 조심해야한다. 지금까지의 라운드에서 형성이 행해졌지만, 지금은 재형성과 진화를 완성하는 일을 해야 한다.

 

마지막에 여러 가지,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오해에 대한 것을 끝으로 이 절을 마치고자 한다. 많은 신지학도의 마음에 대단히 치명적인 인상을 주었던 「에소테릭 부디즘」 안에 나와있던 말을 언급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그 책에 있는 부적절한 한 문장은 이 가르침이 유물주의적이라고 입증하고자 하는 사람이 늘 들먹이는 문장이다. 다섯 번째 판 48 페이지에서 그 저자는 구체에서 이루어지는 유기체의 진보에 관해서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구가 충동을 받아서 원숭이로부터 인간으로 진화하기 전까지는. . . 광물계도 식물계로 전개되지 못한다.”

 

이 문장의 것이 문자 그대로 저자의 생각인지 혹은 단순한 실언인지(우리들은 그렇다고 생각을 해오고 있지만)는 분명치 않다.

어느 신지학도는 「에소테릭 부디즘」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그의 책은 “다윈”의 진화론, 특히 인간이 직립원인(直立猿人)의 직계 자손이라는 설을 완전히 지지했던 모양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우리들은 정말로 놀랐다. 한 사람의 회원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신지학도의 4분의 3은 인간의 진화에 관한 한, 다윈의 진화론과 신지학이 일치를 보고 있다고 하는 것을 귀하(그 책의 저자)는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필자) 알고 있는 한 「에소테릭 부디즘」에는 이런 것에 대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여러 번 반복해서 언급되어 있지만 마누와 카필라에 의하여 가르쳐진 진화설은 근대 진화론의 기초이다. 하지만, 오컬티즘도 그리고 신지학도 현재의 다윈 학파의 얼토당토않은 학설, 특히 무미원(無尾猿)이 인간의 직계 조상이 된다는 것을 지지한 적은 없다. 그것에 관하여 뒤에서 좀더 설명하겠지만, 「에소테릭 부디즘」의 47 페이지를 보면, “인간은 동물계와는 명백히 다른 자연계에 속해 있다”고 말하는 구절이 있다. 이와 같이 명백한 진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의력이 깊은 학도가 그처럼 잘못된 판단을 하게되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 책에 지나친 모순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는 한 그와 같은 결론에 이르게 마련이다.

 

매 번의 라운드에서는 앞선 라운드의 진화의 일들이 한 차원 높은 스케일에서 반복된다. 앞에서 말한, 예외가 되는 고급의 유인원의 경우를 빼고 나면 모나드의 유입 즉, 내적 진화는 다음의 만반타라까지는 끝을 맺는다. 인간으로 될 새로운 후보자의 무리들이 다음의 주기에서 처음으로 이런 구체에 나타나기 전까지 완벽한 인간 모나드를 먼저 거두어야 한다. 이런 일은 몇 차례 반복해 말해도 좋을 정도로 중요한 일이다. 말하자면 거두어야할 과정이 있는 것이라 일시 휴지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제 4라운드에서는 어떠한 동물보다도 빠르게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났다.

그러나 「에소테릭 부디즘」의 저자가 다윈의 진화설을 설명하고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어떤 문장에서는 확실히 이런 결론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과는 별개로, 오컬티스트들 자신은 다윈의 가설 뒷부분의 세부 사항과 진화의 부차적 법칙, 그리고 제 4인종기의 중간 지점 후에 일어났던 것에 관해서는 부분적으로 바르다는 것을 인정할 용의가 있다. 일어났던 일에 관해서는 물질과학은 정말로 아무 것도 알 수가 없다. 그와 같은 일은 물질과학의 조사범위의 외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컬티스트라면 인간이 이번 라운드나 혹은 다른 어느 라운드에서 원숭이였다는 것이나, 또 아무리 단지 “원숭이 모양”이었다고 해도 인간이 원숭이였다는 것은 결코 인정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결코 인정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일에 있어 「에소테릭 부디즘」의 저자에게 정보를 주었던 권위 있는 스승이 보증을 한다.

 

그래서 앞서 말한 책 중 다음의 문장으로 응수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들이 가정한 것이라도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이의가 제기 되었을 때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해줄 수 있다. 큰 원숭이를 원시적인 인류로 높이는 생명충동을 가정하는 것은 광물 형체를 낳은 생명충동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과 같다.” “결정적인 다윈의 진화설”을 합리화하기 위해 앞의 문장을 제시하는 사람들에게 오컬티스트들은 대사(시네트의 스승)의 설명을 들어 답을 한다. 위의 문장에서 만약 진정으로 다윈의 진화설의 입장에서 썼던 것이라고 한다면, 대사의 설명이 모순된 것이다. 이 편지의 사본은 2년 전(1886년)에 다른 편지와 함께 필자에게 보내졌는데 「씨크릿 독트린」에 인용하도록 하라는 말과 함께 주의사항이 있었다. 그의 편지에는 앞서 가르쳐 주신 몇 가지의 사실과, 동물로부터 인간에의 진화, 말하자면 광물, 식물, 동물로부터의 진화를 일치시키려고 하는 것은 서구의 학도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는 이야기에서부터, 그런 학도에게 유추와 상응의 이론을 충실히 지켜나가도록 충고하고 계신다. 그리고, 데바들과 신들도 “광물화, 식물화, 동물화, 인간으로 되는 육체화”라고 말하는 상태를 통해야만 하는 신비에 관해 언급하시고, 디야니-초한이라 말하는 천상의 종족조차도 필연적인 실패를 범하기도 한다고 암시하신 후 그것에 대해 설명하고 계신다. 그에 관해서는 이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실패자는 디야니-초한의 상태로부터 저급 자연계를 지나가서 새로운 기초적인 진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무리하게 던져지기에는 너무나 진보되어 있고, 영화(靈化)로 충만해 있으므로. . . . .”라고 하신 후 타락해 버린 아수라들의 우화에 포함되어있는 신비에 관해서 말씀하시며 힌트를 주고 계실 뿐이다. 이것은 2권에서 자세히 설명하겠다. 카르마로 인해 인간 진화의 단계로 왔을 경우에 그들 아수라들은 응보의 쓰디쓴 물 잔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기지 않고 마시도록 해야 한다. 그 후 그들은 활동적인 힘이 되어 사대령이나 순수한 동물계의 진보한 존재들과 섞여 서서히 완전한 인간을 개발해 간다.

 

이것으로 알 수 있듯이, 이러한 디야니-초한들은 저급인 피트리스처럼 광물, 식물, 동물이라고 말하는 자연의 3계를 거치지 않는다. 또한 제 3근본인종에 이루게 될 때까지는 인간으로 화신하지도 아니한다.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제 1라운드에서는 우리들의 지구인 D구에서 제 1인종이 되는 인간은 정묘한 존재(인간으로서의 달의 디야니)였다. 비지성적이었지만 초령적이었는데, 유추의 법칙에 따라, 제 4라운드의 제 1인종도 그러하였다. 후의 여러 인종과 여러 아인종 하나 하나를 거치면서 점차로 형태를 갖추어 인간은 육화(肉化)되어 가지만, 주로 에테르로 이루어져 있다. . . .그 존재는 성(性)이 없고, 동물이나 식물처럼 자신이 자리잡고있는 조악한 환경과 상응하면서 거대한 몸체로 차츰 나타내게 되었다.

 

제 2라운드에 오면 인간은 아직도 거대하면서 에테르적이지만, 몸체는 서서히 탄탄하게 굳어져가고 있으며 조금 더 육체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되어갔다. 그러나, 여전히 지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영적인 편이다(1). 마인드는 육체보다는 진화가 완만하게 이루어지며 진화가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 .

 

제 3라운드에 와서야 완전한 형태가 갖추어지고 탄력적으로 굳어진 몸체가 된다. 초기에는 거대한 원숭이 같은 모습이었다. 이제 영적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지적이지만, 오히려 교활함에 더 가까웠다. 왜냐하면 주기의 하강고(下降孤)에 있었기 때문에 원래의 영성은 새로 생겨 나오고 있는 지성에 덮여 숨겨지면서 그림자로서 밀려나는 시점에 이르기 때문이다(2). 제 3라운드의 후반에서 그의 거대한 신장은 줄어들고 몸은 골격이 잡혀간다. 그리고 데바라고 하기보다는 여전히 원숭이 같지만 앞에서보다는 이성적인 존재가 되어간다. . . . (이것은 모든 제 4라운드의 제 3근본 인종 때까지는 거의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제 4라운드에는 지성이 엄청나게 발달한다. 지금까지 말을 못했던 인류는 이 시점에서 우리들이 현재 사용하는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한다. 이 구체의 제 4인종에서부터 언어가 완성되고 지식이 증가한다. 제 4라운드의 중간 시점에서(제 4근본인종인 아틀란티스 인종) 인류는 작은 만반타라 주기의 축이 되는 시점을 통과해 나간다. . . . 세상은 지적 활동과 영성의 감소로 인한 결과들로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것은 「마하트마」로부터 온 편지를 인용한 것이다. 그리고 아래의 것은 각주의 형식으로 된 부연설명으로 같은 편지 안에 있다.

 

(1.) . . . 시초의 편지는 조망하는 관점에서 쓴 일반적 가르침이기 때문에 특별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 . 만약 초기 라운드의 인간의 “육체”에 관해서 말한다면, 아담과 이브를 위해서 순간적으로 나타난 불가사의한 그런 “가죽옷”에 대한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첫 번째 라운드에 속해있는 첫 번째 구체의 첫 번째 인식계(認識界)에서의 최초의 “자연” 최초의 “체(體)”, 최초의 “마인드”는 의미한다. 카르마와 진화란

“. . . .그렇게도 놀라울 정도의 극성을 모았다.

불가사의하게 뒤섞여 얽혀있으며 전혀 틀리는 자연 속에서. . .“

 

(2) “정정(訂正): 그는 여기서 자신의 원래(천사인 인간의)의 영성은 생겨 나오고 있는 인간적 지성에 덮여 숨겨져 그림자로 던져지는 시점(유추에 의하여 제 4라운드의 제 3근본인종에 해당)에 이른다. 이와 같이 정정하면 올바른 개략일 것이다. . . .”

 

이러한 본문(편지), 말씀, 괄호 안의 문장과 설명의 각주 등은 모두가 스승의 말씀이다. “객관성”과 “주관성”, “물질성”과 “영성”이라는 말은 같은 말이라도 틀린 존재와 인식의 세계에 맞추어 해당시켜보면 말할 필요도 없이 대단한 차이가 생긴다. 따라서, 저자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했어도 그 자신의 사고력에 빠져들기 때문에 가르침을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잘못된 것에 빠져드는 것이 조금도 이상스러운 것은 아니다. 편지에서는 “라운드”와 “인종”의 차이가 충분히 정의되어 있지 않지만, 일반적인 동양의 제자였다면 한 순간에 그런 차이점을 이해해 낼 수가 있었을 것이고, 앞서의 이런 종(種)의 정의를 요구해 온 적은 없었을 것이다. 거기에다, 대사의(188-) 편지에서 인용해 보면 “가르침은 틈틈이 주어지고 있었다. . . . 이것들은 말하자면, 밀수품인 것이다. . . 그리고 거래처가 단 한 곳 밖에 없는데, . . . 씨가 편지를 비벼서 못 알아보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규칙을 침해하지 않고서는 거의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관련된 신지학도들은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상징적인 의미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컬티즘에서 지난날 인간이 원숭이과의 동물인 유인원의 자손이라는 얼토당토않은 근대학설을 가르쳤다거나 또는 아데프트가 그러한 것을 믿었다는 주장을 입증하려고 하는 것 같은 “편지”는 결코 찾아 볼 수 없다. 오늘날에도 삼림의 속에 “인간처럼 생긴 원숭이”보다는 세상의 안에 “원숭이 같은 인간”이 훨씬 많다. 인도에서 원숭이는 신성한 것이다. 우화의 두터운 베일로서 감추어져 있기는 하지만, 그 유래는 비전가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하누만(Hanuman)은 비록 혈통은 복잡하지만 케사리(Keśari)라고 불리는 괴물인 안자나(Añjanā)와 파바나(Pavana)(바유(Vāyu), “바람의 신”)의 자식이다. 이것을 기억하고 있는 독자는 2권에서 이런 교묘한 우화에 대한 설명을 수시로 접하게 될 것이다. 제 3인종의(양성으로 분리됨) “인간”은 무자각이며 또한 아직 마인드는 없었지만 영성과 순결에 있어서는 “신들”이었다.

아틀란티스인의 선조였던 제 3인종의 인류는, 제 3라운드에서 인류를 대표하던 자들과 비슷하게 원숭이처럼 생겼고 지적인 면에서는 자각이 없었던 거인이었다. 도덕적으로는 무책임해서 자신들보다도 낮은 종의 동물과의 난교(亂交)를 통해, 몇 시대가 흐른 뒤에(제 3기의 처음) 우리들이 지금, 유인원과(類人猿科)에서 볼 수 있는 정말로 무미원(無尾猿)의 먼 옛 선조가 된 잃어버린 륜(輪)을 낳았다.

 

아무리 불충분한 것이고 막연하며 단편적인 것이라도 초기의 가르침에는 이와 같은 원숭이로부터 인간으로 진화했다고 하는 내용은 없다. 또 「에소테릭 부디즘」의 저자는 자신의 저작의 어디에도 확실하게 그것을 주장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 책의 저자는 근대과학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러한 해석을 정당화하는 뉘앙스의 말을 썼을 것이다. 제 4인종인 아틀란티스 인종 이전의 인간은 육체적으로는 “인간의 생명을 갖지 않는 인간의 모조품”이다. 하지만 “거대한 원숭이”처럼 보이긴 해도 역시 생각하는 인간이었고 이미 말도 할 줄 알았다. “레무로-아틀란티스인”은 높은 문명화를 이룩한 인종이었다. 그리고, 현대인이 말하는 “역사”보다는 구전에 의한 추론에 따르면 오늘날의 여러 가지 과학과 타락적인 문명을 가진 우리들보다는 더욱 고양되어 있었다. 어쨌든, 제 3인종의 끝 무렵에 있던 레무로-아틀란티스인은 그와 같은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스탠저로 돌아가 보자.


 

 

스탠저 Ⅵ 의 계속

 

 

5. 네 번째에(라운드, 일곱의 작은 바퀴를 돌고 있는 생명과 존재의 회전), (a) 자식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창조하도록 명을 받는다. 삼분의 일은 그것을 거절하고, 삼분의 이는 그것을 따른다.

저주가 나온다(b). 그들의 제 4에서 태어나고, 고통을 끌어당겨 생겨나게 할 것이다. 이것이 최초의 전쟁이다(c).

 

 

SD 2권에서의 인류발생론과 거기에 나오는 주석의 자세한 설명을 읽지 않고서는, 이 슬로카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이 절과 이 스탠저 앞쪽의 4슬로카 사이에는 많은 긴 시대가 흘러갔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지금 새 시대의 날이 밝아 오면서 햇빛이 빛난다. 우리들은 혹성에서 연출되고 있는 연극의 제4막이 막 시작하려고 하는 순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연극전체를 이해하려면, 독자는 앞으로 나가기 이전에, 먼저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여기에서 말하는 절은 태고의 책에서 주어진 우주 발생론에 속하는 것이나, SD 2권은 최초 인류의 “창조” 그리고 그것보다 오히려 그 형성 후에 제2, 제 3근본인종의 형성을 더 자세히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굳어져버린 지구는 처음에는 액상인 불의 구였고, 불타는 먼지의 구로서, 지구의 환(幻)인 허깨비 같은 원형이었던 것이고, 인간 역시 그러했다.

 

(a) “4번째”라고 말하는 조건을 “제 4라운드”라고 해설하는 것은, 주석서에 따른 것이다. 그것은 제 4“영원” 혹은 제 4구체(球體)라 말하는 뜻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지금부터 여러 번에 걸쳐 표시를 하게 마련이지만, 제 4구체는 물질 생명이라고 말하고 있는 제 4계 즉 가장 낮은 아래의 세계에 있다. 더불어, 우리들은 지금 제 4라운드에 있는데, 중기에서 영과 물질의 완전한 평충(平衝)을 이루어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이 절을 설명해주는 주역서에서 말하기를.

 

신성한 젊은이들(신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닮은 종의 자식이 태어나는 것을 거부했다. 그들은(젊은 신들) 우리들에게 알맞은 형체(루파)는 되지 못했다. 그들은 훨씬 더 멋지게 성장해야만 한다. 그들은 자신들보다는 낮은 자들인 쟈야(Chhāyās)(그림자 혹은 상)로 들어가는 것을 거절했다. 이렇게 해서 처음부터, 심지어 신들 사이에서조차 이기적인 감정이 퍼져 갔다. 그래서 그들은 카르마인 리피카들의 눈에 걸려들었다.

 

그들은 그것 때문에 훗날, 태어나게 될 때마다 고통을 받아야만 하는 처지로 되어버렸다. 신들에게 어떤 식으로 벌이 주어졌던가는 제2권에서 서술한다.

 

생리적인 “타락” 이전에는, 인간과 동물의 증식은 창조자들 혹은 그의 자손의 의지를 통해 행해지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보편적으로 전승되어 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타락이란 것은 반드시 죽어야만 되는 인간의 타락이 아니고, 영이 생식 쪽에 빠져버리는 일이다. 자기 의식을 가진 영이 되기 위해서, 영은 모든 생명 주기를 거치고 마지막에 지상에서 육체에 감싸진 인간의 경험을 정점으로 해서 길을 달성해낸다. 영(靈, spirit), 그 자체는 무의식적이고 부정적인 개념의 추상이다. 그 순수성은 내재되어 있던 것이지 공덕으로 쌓아진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앞서 말한바 있듯이 최고의 디야니-초한이 되기 위해서는 각각의 자아(에고)는 인간으로서 완전한 자기의식을 이루어야 한다. 즉, 인간이 됨으로 해서 많은 윤회와 경험을 걸쳐 통합을 이루어낸 의식적인 존재에 이르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루아(Rūaḥ, 영)와 네페쉬(Nephesh, 살아있는 혼)가 결합되어 있지 않다면 신성한 어떠한 영일지라도 하이어라키(大聖同胞團)의 일원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유태의 카발리스트들이 이야기한 이러한 사상은 동양의 비교적인 가르침을 다시 강조한 것이다. “디야니”란 반드시 “아트마-부디”가 된다. “부디-마나스”는 다시 한번 불멸의 아트마로부터 떨어져 나온다. 그렇게 되면 거기서 “부디”는 매체가 되고 아트마는 즉시 절대적인 존재인 무존재로 들어가 버린다. 순수한 열반상태란, 우주진화가 주기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우리의 세계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존재성유(有)(Be-ness)라고 하는 이상적인 추상으로 영이 되돌아가는 길이다.

 

(b) “저주가 나왔다”란 것은 이 경우 어떤 인격적 존재, 신, 혹은 상위의 영이 저주를 했다는 것이 아니라 나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러한 카르마적인 원인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게 함으로써 자연의 합법적인 진보를 방해한다. 결국 좋지 않은 화신으로 인해 고통이 주어진다.

 

(c) “많은 전쟁이 있었다”라는 것은 영적, 우주적, 천문학적인 조절을 위한 여러 형태의 싸움, 그리고 또한 지금의 상태에서는 인간 진화의 신비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창조하도록 명한다” 여러 힘 즉 여러 가지의 순수한 원질이라고 하는 말은 위에서 이미 다른 곳에서 설명한 신비와 관계가 있다. 그것은 발생 학자들이 아무리 머리를 맞대고 협력해봐도 좀처럼 풀리지 않는 생식(生殖)이라 말하는 자연에서 가장 신비한 것 중의 하나인 것과 마찬가지로 또 하나의 신비, 즉 천사들의 “타락”이라는, 종교적이라기보다 오히려 도그마적 신비에 관련된 신성한 기능에도 있다. 그 우화를 설명을 해보면 “사탄”과 반항군은 그저 “신성한 인간”의 직접적인 구제자이며 창조자가 되기 위해 육체적인 인간을 창조하는 것을 거부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상징적인 가르침에는 단순히 신비주의적이며 종교적인 것만이 아니고 뒤에 말하고 있는 것처럼 순수하게 과학적인 것이다. “반항하는” 천사는 어떤 헤아릴 수가 없는 어려운 법칙에 의하여 주어지는 지도에 따라 맹목적인 기능을 하는 단순한 영매가 아니라 독자적 판단과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의지로서 일을 하고 자신이 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했으며 이를 실천했다. 인간과 천사 양편 모두 카르마의 법칙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늘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미카엘과 그의 일꾼들이 용과 싸움을 한 것이다. 용도 자신의 일꾼들과 함께 응전했지만, 이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벌써, 하늘에서는 그들이 머물러 있을 곳이 없어졌다. 악마 또는 사탄이라고 불려지고 있는 이 거대한 용 즉, 전세계를 매혹시키는 오래된 뱀은 땅에 내던져지고 말았다. . . .

 

같은 이야기의 카발라적인 설명은 나사렛파의 세례자 요한 및 그리스도의 비전계통의 크리스트 신비성전인 나자레우스(Nazaraeus) 성전에 나와 있다. 말하자면 지니(Genii)들의 아버지인 바학 지보(Bahāk-zivo)는 살아있는 생물을 창조하도록 명령받는다. 그러나 “오르크스(Orcus)에 대한 무지”로 인해 그는 실패한다. 그래서 보다 순수한 영인 페타힐(Pthahil)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페타힐은 더 비참하게 실패해 버리고 만다. 이것은 차례로 실패를 거듭하는 “아버지들”인 빛의 주들의 거듭된 실수를 반복한 것이다.

다음은「이시스 언베일드」에서 인용한 것이다.

 

“창조의 이 단계에서, “영”이 등장한다. 이것은 소위 지구의 영으로 영혼, 그리고 성 야곱이 “악마적인 것”이라고 한 프쉬케이며 아니마 문디 즉, 아스트럴광(光)의 저급부인 것이다(이 슬로카의 마지막 부분 참조). 나사렛파와 그노시스파의 생각으로는 이 영(靈)은 여성적인 것이다. 따라서 지구의 영은 최근에 등장한 인간 페타힐에 그의 광휘(光輝)를 전했지만 광휘는 변해버렸다. 광휘가 저하되고 손상을 입을 것을 느끼고, 광란으로 분별력도 판단력도 없는 카랍타노스(Karabtanos)를 깨워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어나라, 최근에 등장한 인간 페타힐의 광휘는 (인간을 창조하는 데에) 실패했다. 그리고 그의 광휘는 눈으로 보일 정도로 저하되고 있다. 일어나라. 그대의 어머니(Spiritus)와 함께 그대를 속박하는 제한, 전세계보다도 커다란 제한에서 자유로와 져라.” 그후, 광란했던 명목적인 물질은 영(신성한 호흡은 아니다. 이중 원질에 의하여 이미 물질에 감염된 아스트럴 영을 말한다)의 속삭임에 안내되어서 어머니와 결합하여 스피리투스(영)는, “일곱 개의 상”과 일곱 개의 별(행성)을 낳게된다. 일곱 개의 별은 일곱 대죄(七大罪)를 상징하는데 신성한 기원(영)에서 분리된 아스트럴 혼과 물질, 즉 정욕이라 말하는 맹목적인 악마의 자손인 것이다. 이것을 본 페타힐은 물질의 심연에 손을 뻗쳐서 말한다. “힘이 있는 그 곳에 지구를 있게 하라.” 여러 힘이 삶의 집에 존재해 있었던 것처럼” 혼돈에 손을 뻗쳐서 그것을 압축하여 우리들의 혹성을 창조했다.“

 

그리고 나서 코덱스는 바학-지와(Bahāk-Ziwa)가 “스피리투스(영)”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이야기가 계속 된다. 즉, 지니나 천사들이 반항자들로부터 떨어져 나온 이야기이다. 그리고 위대한 페르호와 함께 살고 있는 마노(위대한 자)는 케바-지와(Kebar-Ziwa, 네밧 와바르 바르 이우핀 이파핀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려지고 있다) 타병(舵柄.조타장치)과 생명의 식량의 넌출기라고 부른다. 그는 세 번째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거대한 야망으로 인하여 반항했던 우둔한 지니들에게 동정을 느끼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니(영겁)의 주여, 지니들(반항심을 가진 천사들)이 무엇을 했고 무엇에 대한 논의를 했었던가를 보십시오!” 그들은 말한다. “세계를 불러내어 여러 힘을 불러일으키자”라고. “지니는 왕후들이며, 빛의 자식이지만, 그대는 생명의 메신저인 것이다.”

 

그리고 “성질이 나쁜” 7개의 원질 즉 “스피리투스(영)”의 자손의 영향에 대항하기 위해, 강력한 광휘의 주 카바르-지와(Kebar-ZIwa)는 7개의 다른 생명(일곱의 덕성)을 창조했다. 그들은 “높은 하늘에서” 스스로의 형(形)과 빛 속에 반짝인다. 그리고, 카바르-지와는 선과 악, 빛(光)과 암(闇)의 균형을 다시금 확립시킨다.

 

여기서는 배화교처럼 오래 전 초장기의 비유적이면서 이원적인 체계를 반복하지만 또한 미래의 독단적이고 이원적 종교의 씨눈을 발견할 수가 있다. 그 씨눈은 교회의 크리스트(오늘날의 기독교)에서 볼 수 있는 풍성한 번영의 나무가 되었다. 거기에는, 두 개의 “지고자” 즉 신과 사탄의 윤곽이 이미 보여져 있었다. 그러나, 스탠저에는 이와 같은 생각은 전혀 나와있지 않는다.

 

서양의 크리스트 카발리스트들, 특히 엘리파스 레비는 오컬트과학과 교회의 도그마를 조화시켜 보고자 아스트럴광을 크리스트교 초기의 성직자들이 말했던 프레로마(Plērōma) 즉 타락해 버린 천사단이나, “지배자들”이나 “여러 힘”의 주거지로 보았다. 그러나, 아스트럴광은 절대자의 낮은 측면에 불과하지만 이중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아니마 문디인 것이고 카발라적인 목적이 아니라면, 결코 그 이외의 것들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의 “빛”과 “살아있는 불”과의 차이를 투시자나 “영능자”는 늘 마음에 두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상위의 측면이야말로 살아있는 불인 것이고 그의 제 7본질인 것이다. 상위의 측면이 없다고 한다면 아스트럴광에서부터는 물질적인 물건밖에는 만들어 낼 수가 없다. 「이시스 언베일드」에서 그것을 자세히 묘사했다.

 

아스트럴광 즉, 아니마 문디는 이중이고 양성적인 것이다. 그의 (이상적인) 남성적 부분은 완전히 신성하며 영적인 것이고 지혜(영, 푸루샤)인 것이다. 그의 여성적 부분(나사렛파의 피리투스)은 감염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의미에서는 물질이다. 따라서 이미 사악한 어머니인 것이다. 그것은 각 생물의 생명 본질인 것이며, 인간이나 야수는 실제로 모든 생물의 아스트럴 혼, 즉 유동성을 지닌 “영의 외피(perio-prit)”를 구비하고 있다. 동물에는 최고의 불사의 혼의 씨눈(종)이 잠복돼 있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불사의 혼은 무수한 진화의 연속을 통하여 발전해갈 것이다. 그의 진화의 가르침은 카발라의 다음의 격언에 포함돼있다. “돌은 식물이 되고, 식물은 동물, 동물은 인간, 인간은 영, 영은 신으로 된다.

 

「이시스 언베일드」가 쓰여졌을 때, 동양 비전가들의 일곱 원질에 대해서는 아직 설명되지 않았었고 반 현교적인 카발라에서 말하는 세 가지의 카발라적 국면에 관한 이야기만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불의 영역 혹은 “불의 통치” 안에 있던 디야니-초한의 첫 번째 집단의 신비적인 성질에 대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다. 그 집단은 세 개로 나누어져 첫 번째 것들에 의해 합쳐져서 네 개, 즉 네 개조의 테트락티스가 된다. 주석을 주의 깊게 철저히 연구하는 사람은 천사의 성향에서도 마찬가지의 발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그 발전이라는 것은 수동적인 것에서 능동적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그것들 존재의 시초의 것은 미분화의 에센스에 가까운 것처럼, 최후에는 아함카라(Ahaṃkāra)의 요소 즉, 에고 성(Egoship) 혹은 “내가 존재한다(I-am-ness)”고 말하는 감각이 분명하게 곁들여있는 영역 또한 세계에 가까운 것이다. 전자는 아루파인 무형이고, 후자는 루파인 유형인 것이다.

「이시스 언베일드」 2권 183페이지에서는 그노시스파나 초기 유태인의 크리스트교도나, 나사렛파나 이피온파의 철학체계가 충분히 고찰되어 있었다. 그 체계에 의하여 그 시대의 사람들이, 모세의 율법을 고수하는 유태교의 종파 외에 여호와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그노시스파의 사람들은 여호와를 선(善)으로서가 아니라 악(惡)의 뿌리로 보았다. 그들의 생각에서 여호와는 이알다바오스(Ialdabaōth) 즉 “어둠 속의 자식”인 것이다. 그의 어머니 소피아-아카모스(Sophia-Akhamōth)는 신성한 지혜, 즉 초기의 크리스트교의 여성적 성령 소피아의 딸이다. 소피아는 아카샤인 것이다. 소피아는 아카샤이지만 소피아-아카모스는 저급 아스트럴광, 말하자면 에테르의 인격화이다. 이 이알다바오스 다시말해 여호와는 단순히 엘로힘(Elohim) 즉 일곱 개의 창조력을 지닌 영의 한 사람이고, 하위 세피로트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여호와는 자신 안에서 다른 일곱 주의 신을 만들어낸다. 그것들은 “별의 영”이라 말해지고 있으며, “달의 선조들”이라고도 하지만 모두가 똑같은 것이다. 그것들 모두가 여호와 자신의 형(이미지)에서 창조되어 있고(“얼굴의 령들(Spirits of the face)”이라고 말한다), 서로가 반영(이미지)해가면서 지나고 있는 것들이지만 연이어서 그의 창조자로부터 멀리 밀려나가 멀어져 갈수록 어두워져가서 물질적인 것이 된다.

 

또 그들은 사다리(梯子)처럼 가로(종적)의 구조를 하고있는 일곱 개의 영역에서 살고 있으며 그의 계단은 영과 물질의 아래를 나타낸 것이다. 크리스트교와 이교, 인도의 종교와 칼데아의 종교, 그리스 정교회와 로마 카톨릭 교회 등이 해석에서는 다소의 차이가 있지만, 칠 주의 신은 일곱 개의 혹성의 지니, 또는 우리들의 칠중 연쇄의 일곱 개의 혹성 구체(지구는 가장 아래쪽의 것이지만) 지니라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별의 영들이나 달의 영들은 더 높은 혹성천사들이나 힌두교의 사프타리시(Saptaṛishis, 별들의 일곱의 리쉬들)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앞의 것은 이러한 리쉬들보다는 아래(下位)의 천사들, 일꾼들인 것이고 “내려오고 있는 단계(下降段階)”에 있어서 나오는 발산물이다. 철학에 통달했던 그노시스파의 사람들의 의견으로는 현재 크리스트교도들이 숭배하는 신과 대천사들을 그러한 발산물로 본다. 어쨌든 “타락해버린 천사”나 “하늘의 전쟁”이라 말하는 전설의 기원은 완전히 이교였던 페르시아와 칼데아에서 나온 것으로 인도를 거쳐서 전해진 것이다. 크리스트교의 성서, 447p에서 인용 되어있는 묵시록부터 발췌해 낸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따라서, 교회의 미신적, 독단적, 비철학적인 입장에서 한 발 떨어져 본다면 사탄이란 지상계에서의 인간을 신성한 인간으로 하는 숭고한 이미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즉 마하칼파라고 말하는 긴 주기의 동안에 인간에게 생명의 영에게 법칙을 주어 무지의 죄로부터, 그러함에 죽음에서부터 인간을 해방시켰던 자이다.


 

 

6. 오래된 차륜(車輪)은 아래로 위로 회전했다. 어머니의 난(卵)은 전체에 꽉 채워졌다. 창조자와 파괴자 사이에는 전투가 행해졌다. 또 공간을 점령하기 위해 전투가 행해졌다. 종자(種子)가 끝없이 나타나고 또 나타난다.

 

(a) 지엽말절(枝葉末節)의 문제를 취급하게 되면 이야기의 줄거리가 끊어질는지 모르나 전세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그것도 필요한 것이다. 그러한 문제는 일단 옆으로 제쳐 두고, 다시 우주 발생론으로 되돌아가야 하겠다. “오래된 차륜”이란 앞에서의 여러 라운드의 지구 연쇄의 여러 세계, 또는 제 구체의 상태를 가리키고 있다. 비교적인 의미에서 해설을 하면, 이 스탠저의 전 내용은 카발라의 여러 저작들 안에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주기적으로 생겨나는 프랄라야의 뒤에, 진화를 해오는 무수의 구체의 발전의 역사가 거기서 발견될 수 있다. 그런 것들이 구체는 옛것을 재료로 해서 새것의 형체로 재건을 해낸다. 말하자면 이전의 구체를 분해시켜 생명의 새로운 모습이 되게 하기 위해 변질시켜 바르게 완성해내서 재출현케 하는 것이다. 카발라에서는 여러 세계를 대건축가인 대법칙의 금퇴(金槌)가 내리치는 아래로 튕겨져 나오는 불꽃으로 비유했다. 대법칙은 보다 작은 창조자들 모두를 지배하는 것이다.

 

그림3은 카발라 체계와 동양의 가르침의 체계가 일치함을 증명한다. 위의 3개는 3개의 높은 의식계로서, 어떤 학파이든 간에 비전을 받은 사람에게만 밝혀주고 해설해 주는 것들이다. 아래의 것은 4개의 저급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거기에서 가장 낮은 계가 우리들의 세계, 즉 눈으로서 보이는 우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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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일곱 개의 세계는 인간의 일곱 개의 의식상태에 상응한다. 자신의 내부에 있는 3개의 고급 코스모스와 조화를 이룩하는 것은 인간에게 책임이 있다. 그렇지만, 그런 조화를 시도하기 전에, 그러한 3개의 “자리”를 생명 및 활동으로 불러일으켜야만 한다. 아트마-비디야(靈-知識) 즉, 수피교도들이 루하니(Rūhānee)!라고 부르는 것을 표면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 책의 스탠저Ⅶ의 3절에 삽타파르나(Saptaparna) 즉, 인간의 나무에 관한 주석에서 위에 대해 더 명백한 설명이 있다. 2권의 590P [삽타파르나」의 항을 참조하라.

 

(b) “종자는 끝없이 나타나고 또 나타난다” 여기서 말하는 “종자”는 “세계의 씨눈”이라는 뜻이다. 과학은 그것을 대단히 희박한 것으로 이루어져있는 물질 입자라고 생각하지만 오컬트 물리학에서는 “영적입자” 즉 원시 분화의 상태로 되어 있는 초감각적 물질이라고 본다. 신들의 기원계보는, 각 종자는 정묘한 것인 유기체이고 훗날 거기서 천상의 존재 즉 일주(一柱)의 신이 되는 진화를 한다.

 

신비적 용어를 써서 말하면, 처음에 “우주적 욕망”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발전해서 절대적인 빛이 된다. 여하튼 과학에서 증명해보려고 애쓰고 있는 것처럼 그림자를 갖지 않는 빛이라면 절대광이고 바꾸어서 거꾸로 말하면 절대 암(闇)이기도 하다. 그가 그림자를 지닌 것이 되면 그의 그림자는 원초의 물질로 나타난 것이다. 그것을 바로 창조적 불 혹은 열의 형(形)이라고 비유적으로 말하지만 시적인 비유를 거부해 그것을 불과 같은 안개로 생각하고자 한다면 그렇게 해도 상관은 없다.

 

과학에서 자주 언급하듯이 유명한 “힘”은 우리들이 쓰는 포하트와 똑같은 명칭이 아니다. 이를 정의하는 것은 어렵지만 어쨌든 포하트가 되거나, 과학에서 말하는 힘이나 플라톤이 말한 바대로 “우주에 원형 운동을 일어나게 했다”는 것이고 오컬트의 가르침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중앙의 태양은 포하트로 하여금 원초에 먼지를 구의 형으로 모아서 그것이 똑같이 한 점으로 향하게 하고 마지막에 서로가 가까이 모여져 만나고 결합해지고 하는 일을 촉구하게 한다(「쟌의 서」). . . . . . “질서나 조직도 없는 공간 안에 산재해 있는 세계의 씨눈은 종종 서로 간에 충돌을 하게 되고 그 속에서 최종적인 결합을 이룬다. 그후, 방랑자들(혜성)이 된다. 그때쯤에 전투와 다툼이 시작된다. 오래된 물체는 새로운 것들을 끌어당기고 다른 것들은 그곳에서 내동댕이쳐지게 된다. 보다 강한 동료들은 약한 것을 탐내서 잡아먹고 없어져 버리고 마는 경우도 많다. 그러한 운명을 면해 낸 것은 우리들이 세계라고 말하는 것이 된다.”

 

천구 안에서 생겨나는 생존경쟁에 관해 상상력이 풍부한 사색적인 현대의 저작이 몇 권 나와있고, 특히 독일어로 된 것이 많다. 그런 말을 듣고 우리들은 대단히 기뻐했다. 우리들의 가르침은 태고의 어둠 속에 싸여진 비밀의 가르침(비교)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그의 문제를 「이시스 언베일드」에서 충분히 다루었다. 그리고, 다윈적인 진화, 생존에서의 우위를 지키기 위한 투쟁, 천상천하의 “적자생존”의 개념은 1877년에 쓰여진 우리들의 초기의 이 두 권의 저작은 어디에서든 볼 수가 있다. 그러나 그의 개념은 우리들의 것이 아니고 고대의 것이다. 「푸라나」의 작가조차도, 우화는 우주적 사실이나 인간의 세계에서 생겨난 일들을 아주 교묘하게 써넣은 것이다. 그의 전체의 뜻을 잡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나, 상징학 연구자라면 여기에 있는 천문학적, 우주적인 비유를 인정할 수가 있을 것이다. 「푸라나」안에 나와 있는 위대한 “천상의 싸움”이나 헤시오드 그 외의 다른 고전 작가에 의해 그려낸 데이단들의 전쟁, 오시리스와 타이푼의 싸움에 관한 이집트의 전설, 그리고 스칸디나비아의 전투에 관한 전설조차도 모두가 똑같은 것들을 나타내고 있다. 북유럽의 신화에서는 위그리드의 전쟁터에서 싸운 무스펠의 아들들의 결전이라는 말로 나타냈다. 이것들 모두가 하늘과 땅에 관계가 있고 때에 따라 삼중의 뜻을 가진다. 위편의 세계와 아래편의 세계에 해당되는 비교적인 해석들이다. 그것들은 동시에 천문학적인 싸움, 신들의 기원에 관한 싸움, 그리고 인간들간의 싸움과 관계를 하고 있으며, 천체의 조정과 나라(국가)들 간이나 부족 사이의 패권의 다툼을 나타내고 있다.

 

코스모스가 현현되기 시작한 아주 시초에서부터 “생존경쟁”이나 “적자생존”이 대단히 활발히 펼쳐지고 있었다. 그런 사실은 고대의 성자들의 날카로운 시야에서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늘의 신 인드라는 높은 신들의 지위로부터, 우주적 악마로 떨어져버린 아수라들과 또 브리트라(Vritra) 즉 아히(Ahi)도 늘 끊임없이 싸움을 해오고 있으며 그후 왕이나 반드시 죽게 되는 인간이 되어 육체에 화신한 별들이나 성좌, 달이나 혹성의 사이에서의 공간전투를 묘사하고 있다. 또, 미카엘과 그의 천사단은 용(목성 그리고 루시퍼-금성)과의 싸움에 반항하는 천사단의 별들의 삼분의 일정도가 공간 안에 내동댕이쳐져, “이쯤 되고 보니 하늘에서는 그들이 지탱할 곳이 없어지고 말았다”고 말해 오고있는 이야기와 똑같은 유래를 가진 것이었다. 훨씬 앞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밀의 주기의 진정한 기초의 돌에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바라문교 최고의 식자들도 타나임 즉 유태교의 율법 학자들도) 완전히 다윈적인 입장에서 세계의 창조와 전개에 관해 사색했었다. 종의 자연 도태, 자연의 점차적인 발전과 변형의 생각에 관해서는 다윈과 그의 학파보다 훨씬 앞선 이전의 것이었다. 옛 세계는 새로운 세계에 의해서 멸망했던 것이다.

 

라야 즉 미분화 상태의 원조질료의 핵이 방금 막 죽어버린 천체에서부터 해방된 여러 본질에게 생기를 넣으면 얼마 후에 모든 세계(별들, 혹성 등)는 먼저, 혜성으로 되었다가 그 다음에 항성이 되어 식어가면서 생물들이 살아갈 수가 있는 세계가 된다고 한다. 이러한 가르침은 리쉬들의 가르침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오래된 것이다.

 

그러므로 비밀의 서는 만약 현대의 사색가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만 있다면 결코 부정 할 수 없을 천문학을 분명하게 가르쳐 준다. 이 말을 하는 것은 태고의 천문학 그리고 고대의 물리학이나 수학은 근대과학과 완전히 같은 의견을 말해 주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의견보다도 훨씬 중요한 것들을 나타낸다. 적자생존은 위의 세계에서나 지상계에서나, “생존경쟁”을 확실히 가르쳐주고 있다. 그러나, 이 가르침은 과학에 의하여 아주 거부당하지는 않더라도 전체는 부인 당하는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삼위일체의 하나(一者)에서 일곱의 자생의 원초의 “신들”만이 발산되는 것이라고 단언하기 때문이다. 바꾸어 설명하면 “위대한 시대”의 처음에 최초로 현현을 성취해내고, 모든 세계(천체)는 언제나 엄밀한 유사에 따르는 다른 것에서부터 차례로 차츰 형성되었다는 뜻이다. 공간 안에서 천체의 탄생은, 불 제(祭)가 큰 많은 수의 순례자이라고 표현해 부르고 있다. 사원의 입구에 7인의 수행자가 나타나서 불이 붙여져 있던 일곱 개 선향(線香)을 가지고 있다. 제일 앞줄의 첫 번째의 순례자는 그의 선향(線香)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선향으로 불을 붙인다. 그 뒤에 일곱의 순례자는 자신의 선향을 머리 둘레의 공간에 빙빙 돌리고서, 다른 순례자들의 선향에 불을 붙여 준다. 천체의 경우도 그러하다. “라야”의 중심은 다른 “순례자”의 불에 의해 점화되며, 생명을 눈뜨게 한다. 그의 새로운 “중심”은 공간으로 날아와 혜성이 된다. 감속되어 혜성의 불꽃의 꼬리가 없어지게 되면, 비로소 “불의 용”은 천체 가족의 일원이 되어, 조용한 규율 바른 생활로 자리를 잡게된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말을 하고 있다.

 

우주의 물질의 각각의 핵은 공간의 헤아릴 수가 없는 깊숙한 속에서 세계의 혼이라고 말하는 근질(均質)의 원소 속에서 생겨나서 느닷없이(갑자기) 존재로서 내던져 나와 그의 생애는 가장 엄한 상태에서 시작이 된다. 무수한 시대를 거치고 있는 동안 그것들은 무한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싸워 이겨서 차지해야만 한다. 묵묵히 움직이면서, 더 농밀해지고 이미 고정되어 있는 다른 천체의 둘레를 빙빙 돌아서 자신을 끌어 당겨주는 어느 한 점 또는 하나의 중심으로 나아가 암초나 가라앉은 바위들이 이리저리 널려져있는 해협을 지나는 배처럼, 끌어당겨지기도 하고 내동댕이 쳐버리기도 하는 다른 천체를 피해 보려고 한다. 그래서 멸하는 것도 많이 있고, 또 그것이 가진 질량은 보다 큰 질량을 가진 것의 작용에 걸려서 분해 당하고 마는 것들도 많다. 어떤 태양계 안에서 태어나는 경우에는 대부분이 여러 꼴을 해 있는 태양이 한계 없이 배를 채우는 위장 속으로 먹혀버리고 만다. 좀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며 타원의 궤도(楕圓軌道)를 타고 있는 것들은 어차피 빠르거나 늦어서나 전멸 당하고 만다. 방사선으로 해서 움직이는 것들은 그의 빠른 동작(속도) 때문에 대부분 파멸을 피하게 된다.

 

모든 천체가 혜성의 단계를 거쳐야한다고 하는 가르침은, 달이 지구의 어머니라고 앞에서 말한 것과는 대단히 모순되어 있다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독자가 있을 지 모르겠다. 아마 그런 엇갈린 차이를 해결하는 데는 직관이 필요한 것이라고 그들은 제멋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실제, 직관은 전혀 필요치 않다. 혜성이나 그의 발생이나 성장이나 기본적인 작용에 관해서 과학에서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알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라야 센터, 즉 근질(均質)의 잠재 상태의 우주 원형질의 덩어리의 괴(塊)가 갑자기 활기가 붙어져 불이 붙어 타면서 공간 안의 자신의 침상에서 날아온다면 밑바닥을 알 수가 없는 깊숙한 곳에서 돌아가면서 분화되어 있는 원소의 축적이나 첨가에 의해 힘을 증가시킨다고 말하는 것은 왜 불가능하겠는가? 이와 마찬가지로 혜성이 자리잡고 얼마 후에 삶을 살 수 있는 구체로 되는 것은 아주 가능한 일이다.

“포하트가 거처할 곳은 많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넷의 화적(火的) (양전성:陽電性) 자식을 4개의 원안에 둔다.” 이러한 원은 적도와 황도의 두개의 회귀선인 것이고 그 기후를 지배하기 위해 넷의 신비적인 존재를 여기에 배치한다. 또한 다음과 같이 말을 하기도 한다. “다른 일곱의 자식이 물질의 란(卵)의 양쪽 끝(우리들의 지구와 그 양극)에 있는 뜨거운 로카와 일곱 개의 차가운 로카(정통파 바라문들이 말하는 여러 지옥)를 통치하도록 임명한다.” 일곱 개의 로카는 또 다른 곳에서는 “륜(輪)”과 “원”이라고 표현된다. 서구의 사람들이 말하는 이극권(二極圈) 대신에 고대인은 일곱 개의 극권을 말하고 있다. 북극에 있는 메루산에 이르기 위해서는 일곱 개의 금의 계단과 일곱 개의 은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고 말한다.

 

“포하트와 그의 자식들의 노래는 해와 정확히 중심에 떠있는 태양과 달을 합해 놓은 것처럼 반짝인다.” 그리고 중앙의 사중의 원에 자리잡은 네 명의 자식들은 “그의 아버지의 노래를 듣고 그의 태양 태음적인 광휘가 들어왔다.”고 어느 스탠저에 나와있는 기묘한 문장에 관해 주역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지구의 두 곳의 차가운 끝(남북양극)에 있어서의 포하트적 여러 힘의 동요(움직임)는 밤에 여러 색깔의 광휘가 생기게 하지만 여러 힘에는 색과 음을 포함시킨 아카샤(에테르)의 여러 가지 특성이 있다. 음은 아카샤(에텔)의 특질이다. 음은 바람을 낳고, 그의 특질은 촉각이다. 바람은(마찰을 통하여) 색과 광이 생겨난다.

 

이상의 것에 대해 고대인이 중얼거리는 소리라고 생각하겠지만, 독자는 지상계의 전기적 및 자력적 중심이 생겨나 일으켜지는 북극 광과 남극 광을 생각해보면 좀더 잘 이해할 수가 있다. 양극은 함께 우주적 및 지상계의 생명력(전기)의 저장고이며 동시에 수용하는 장소이며 해방하는 장소이기도 하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이 두 개의 자연스러운 “안전판”이 없었다고 한다면 지구는 훨씬 이전에 그와 같은 생명력의 여유분량에 의해 폭발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또 극광(極光)이라 말하는 현상은 휘파람소리, 혹은 ‘쉿’하는 소리, 또는 갑작스런 날카로운 소리의 강한 음을 낸다고 말하는 가설은 최근에 받아들여져 사실로 되었다(남극광이라고 하는 미해결의 문제에 관해, 트럼볼트교수의 저작과 편지를 참조).


 

 

7. 오! 라누여, 그대가 만약 작은 차륜(車輪)의 나이를 올바르게 알고 싶다면 계산해 보라. 네 번째의 바퀴 살은 우리들의 어머니인 것이다(a). 니르바나에 이르는 지식의 네 번째 길의 네 번째 열매에 이르게 하라. 그러고 나면 그대는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볼 수 있기 때문이니라(b).

 

 

(a) “작은 차륜”은 우리들의 구체들의 연쇄인 것이고, 네 번째의 열매는 우리들의 지구연쇄의 네 번째 것들이다. 그것은 “태양의 뜨거운(양성의) 숨”의 작용을 직접 받는 것 중 하나이다.

 

그러나 제자에게 지시하는 것처럼 그의 나이를 계산하는 것은 훨씬 어렵다. 우리들은 대칼파의 길이에 관해 가르침을 받지 못했고, 작은 유가에 관한 것도 공표하는 것을 허락 받지 않았다. “옛 차륜은 한 영원기(永遠期)와 반에 해당하는 동안 회전했다”고 말한다. 영원기는 브라흐마의 한 시대, 즉, 311,040,000,000,000년의 칠분의 일이라고 말하는 것을 우리들은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그의 숫자를 계산의 기초로 한다면, 브라흐마의 100년 (즉 311,040,000,000,000년)에서부터 산데이아(어렴풋한 여명)가 들어있는 2년을 먼저 빼놓아야 될 것이다. 그렇게되면 98 즉 14×7이라 말하는 신비적인 조합이 되고 만다. 그러나 우리들의 작은 혹성의 진화와 형성이 정확하게 언제 시작되었다고 하는 지식을 우리들은 갖지 못하고 있다. 그의 탄생 시간을 알지 못하고서는, 지구의 나이를 계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지금까지 대사께서는 그것을 가르쳐 주는 것을 거절해 왔다. 그러나, SD 1권 끝머리와 2권에서 어느 연대적인 힌트가 주어진다.

 

거기에다 유사의 법칙은 인간에게만이 아니고 여러 세계에게도 해당하는 것을 잘 기억해 두어야 한다. “하나(神)는 둘(데바 또는 천사)이 되고, 이는 삼(인간)으로 이루어진다.”등과 같이 간단히 말한다면 굳어진 것(세계의 재료)은 방랑자(혜성)가 되고, 혜성은 항성(소용돌이의 중심)이 되고 항성은 우리들의 태양과 여러 혹성이 되는 것이다.

 

(b) 현교적인 책에서는 비전의 네 단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것을 산스크리트어로서 스로타판나(Srotāpanna), 사크리다가민(Sakridāgāmin), 아나가민(Anāgāmin)과 아르하트(Arhat, 阿羅漢)라고도 말한다. 지금의 제 4라운드에서의 니르바나(열반)로 가는 네 개의 길 역시 같은 명칭을 지니고 있다. 아라한은 과거, 현재, 미래를 볼 수는 있지만 최고의 비전가는 아니다. 왜냐하면, 비전을 받은 자, 즉 아데프트 자신도 더 높은 비전가에게는 첼라(제자)에 해당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아라한의 사다리에서 가장 높은 단에 이르고자 한다면 아라한은 다시 3개의 더 높은 단계를 올라야 한다. 현재의 제5인종 중에서도 그곳에 이른 자가 있으나, 이러한 세 개의 고급 단계를 이루는데 필요한 능력은 보통 정도의 수련자의 경우 현재의 근본인종의 말기에 또는 제6, 제 7근본인종의 시대쯤에 이르러서 비로소 충분히 펼쳐나갈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작은 만반타라, 말하자면 현재의 생명주기가 끝날 때까지는 비전 전수자와 속인과의 구별은 있을 것이다. 제7단에 해당되는 아르하트 즉 “불의 안개”인 아르하트들의 하이어라키(聖人同胞團)는 지구와 지구 연쇄에서는 최고인 것이다. 그들은 그의 하이어라키의 초석에서 하나의 단만을 남겨놓고 있다. 이 “초석”의 이름을 영어로 고쳐서 쓰면 몇 가지 단어의 합성으로 될 수밖에 없다. 즉, “영원한 삶을 살고있는 반얀 나무의 인간”이다. 제 3시대의 초기, 즉 제 3인종이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어지기 전에 이런 “불가사의한 존재”가 “높은 영역”에서 내려왔다고 말한다.

 

이런 제 3인종은, 제 2인종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만들어 졌기 때문에 “수동적인 요가의 자식들”이라고 말했다. 제 2인종은 지적으로는 활발하지 못했기 때문에 요가의 관점에서는 일종의 막연한 추상적 묵상(黙想)이 결여되어 있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런 제 3인종의 초기에 아직은 순수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을 즈음에 다음에 설명하는 것처럼 제 3인종으로 화신해서 “지혜의 자식들”이나 “의지와 요가의 자식들” 등으로 불려지는 자손이 만들어졌다. 그의 인종의 일부는 이미 더 높은 영적인 지성의 신성한 불꽃이 불어넣어져 있었음으로 의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와 같은 자손은 하나의 인종으로 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비전가”라고 불려지는 훌륭한 존재였고, 훗날에는 반신반인적인 존재로 이루어진 집단이 되었다. 그들은 태고의 발생기와는 다르게 어떤 목적을 위해 별개로 되어있었으며 이 지상계에서는 현재의 이 주기에서의 미래의 아데프트를 양성하기 위해서 최고의 디야니들 즉 이 전의 만반타라 때의 무니들과 리쉬들이 화신한 것이라고 말한다. 해설에 의하면 순결한 방법에서 태어난 “의지와 요가의 자식들”은 다른 인류들과는 아주 별개의 상태였다.

 

앞에서 말해주신 “존재”의 이름을 밝힐 수는 없다. 그 분은 “위대한 나무”이고, 후세의 리시 카필야, 헤르메스나 에녹, 오르페우스등 역사에서 알려져 있는 위대한 성자나 고승이 그의 계보이다. 객관적인 인간으로 되어있는 그 존재는 속인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존재지만 어디서나 늘 계시는 신비적인 분이셨고 동양에서는 특히 오컬티스트들이나 신성한 과학의 학도들 사이에는 그 분에 관한 전설들이 너무 많다. 그 분이야말로 모습이 바꾸어지고 있지만 언제나 같은 인물이었던 것이다. 또 세계 안에서 비전을 받은 아데프트들을 영적으로 통솔하고 계시는 것도 그 분이다.

앞서 말한바 있듯이 이름이 없으나 대단히 많은 이름을 가진 그 이름이나 그 성향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는 “무명(無名) 존재”가 바로 그 분이다. 그분이야말로 “비전가”이고 “위대한 희생”이라고 부르는 존재이다. 왜냐하면, 광(光)의 문 앞에 앉아 계시고 암흑의 원의 안에서부터 광의 문 입구를 바라보면서 계시지만, 그의 원을 넘고자 하지는 않으시기 때문이다. 이번의 생명 주기의 마지막 날까지 그의 입구 자리를 지키고 계실 것이다. 이런 고독한 문지기는 왜 스스로 그 입구를 지키며 머무르고 계시는 것일까? 땅에서나 하늘에서나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고, 또 배우실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며 이미 더 이상 마시지 않아도 괜찮은 지혜의 우물언저리에 왜 앉아서 계시는 것일까?

 

자신이 살았던 집에 돌아가려고 애쓰며 다리를 다쳐 아파하고 있는 마음 약한 순례자들이 이승에서는 생명이라 부르고 있는 환영과 물질의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 속에서 최후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육체 환영의 속박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는 수인의 한 사람 한 사람을 그 분 스스로 내뿜은 자유와 빛의 영역으로 이르는 길로 인도하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바꾸어 설명하면, 인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기 때문이다. 설령 그 “위대한 희생”에서부터 득을 얻어낼 수가 있는 자는 헤아릴 수 있을 정도의 적은 소수의 “선발된 자”밖에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런 마하구루(대스승)의 침묵 속의 직접적인 지도 아래 그 존재 정도로 신성하지는 못한 인류의 스승들과 교사들은 인간의 의식의 최초에 번쩍거리는 섬광(번개)에서 초기의 인류의 안내자가 되었다. 이러한 “신의 자식들”을 통해 어린 인류의 영적 지식 외에도, 예술이나 과학에 관해서 처음으로 개념을 주었다. 현대의 학도나 학자들을 당혹시키는 고대문명 최초의 초석을 쌓아 올린 것도 그들이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이시스 언베일드」에서는 조금만 언급했지만, 1권의 589-593p에는 중앙 아시아의 신성한 섬에 대해 쓰여져 있으며 이 책의 「신의 자식들과 신성한 섬」에 관한 절에서 이런 이야기를 더 자세히 말할 예정이다.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여기서 2, 3개의 설명을 덧붙인다면 학도는 이런 신비를 담벼락 사이의 틈으로 볼 수 있다.

 

먼저 “신의 자식들”에 관해서 적어도 하나의 것을 확실히 말해 보겠다. 현대의 바라문들은 보다 낮은 편의 계급 사람들로부터 바라문이라 불리는 계층은 문자 그대로 브라흐마의 입에서 나왔던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지만, 자신들이 위에서 말한 브라흐마 푸트라들(브라흐마의 자식들)의 자손으로 비전을 받았던 고대의 바라문들은 “두 번째 태어난” 드위자(Dvija)들이 맞다. 이것은 비밀의 가르침이지만, 비교에서 다시 다음 것을 덧붙인다. 말하자면 “크리야샥티(Kriyāśkti)"에서 창조를 행했던 선조가 훗날에 이르러서는 양성으로 나누어지는 것처럼, “의지와 요가의 자식들”의 자손(물론 영적인 의미에서)도, 얼마 후에는 남녀로 나누어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타락해 버린 자손들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생식기능에 존경을 계속 가지면서 지금껏 일종의 종교적 의식의 관점에서 그것을 생각한다.

 

다른 한편에서 좀더 문명화되어 있는 민족은 생식을 단순한 동물적 기능으로 생각한다. 생식에 관한 서구인의 생각 방법이나 습관을 「마누의 법전」에 나오는 그리하스타(Gṛihastha)나 결혼 생활의 규칙과 비교해 보라. 진정한 바라문은 실제에 있어 그의 칠인의 선조는 달의 식물 소마의 즙을 마셨던 자이고 베다의 비밀을 이해하고 있는 “트리수파르나(Trisuparna)”이기도 하다.

 

그러한 바라문들은 오늘날까지 다음 것들을 잘 알고 있다. 즉, 태고의 그의 인종의 초기에는 정신적 및 육체적인 지성은 잠재되어 아직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영적 개념 구성은 그들의 물질적 환경과 일체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신성한 자는 인간의 형을 하고서 동물 형체를 가진 속에서 살아있었다. 그의 안에는 본능을 지니고 있었으나 잠재적 형태의 제 5본질의 어두운 안을 비추는 자기 의식은 전혀 없는 것이다. 지혜의 주들이 진화의 법칙에 자극되어 인간 안에 의식의 불꽃을 불어넣을 적에 불꽃이 인간의 속에서 가장 먼저 불러 일으켜낸 것은 자신과 자기의 영적 창조자와의 단결감, 통일을 이룬 감각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처음의 느낌은 자신의 어머니 혹은 유모에 대한 것인 것처럼 원시적 인간 안에 눈을 뜬 의식의 시초의 열망은 자기자신 안에 그의 본질을 느끼고는 있지만, 아직은 자신의 바깥에 있고 자신과는 별도로 존재해 있는 창조주들에 대한 것이었다. 헌신은 그런 기분을 가져야만 생겨나고 인간의 성질에서 최초로 최대의 원동력으로 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인간의 마음에 자연스럽게 솟구쳐 나와 우리가 살아서 얻어내는 것이고, 또 인간의 어린아이들이나 동물의 새끼들이나 똑같이 있는 것이다. 원시인간의 이와 같은 억누를 수가 없는 본능적인 열망을 칼릴리는 다음과 같은 말로 아름답게 또한 직관적으로 묘사를 하고 있다.

 

태고 사람의 위대한 마음은 아이들처럼 단순했고, 그의 진지한 엄숙함은 강한 남자다운 것이었다. 지구상의 어디에서도, 어디에 서 있어도, 자신의 위에는 하늘이 넓게 펼쳐있고, 이승에서의 모든 것들은 신비적인 사원이다. 이승에서의 일은 모두가 일종의 예배이다. 넘쳐흐르는 일광 속에서 반짝거리는 존재의 섬광, 천사들은 인간들 사이에 신을 내려주는 일을 행하시면서 공중에서 춤을 춘다. . . . . 고대인은 불가사의와 기적에 싸여, 그 바다에서 살아간다. 천국과 지옥이라 말하는 두 개의 무한한 영역처럼 높은 의무의 대 법칙은 다른 모든 것들을 조그마한 것으로 보이게 해, 다른 모든 것을 절멸시킨다. . . . . 의무의 법칙은 실재였다. 그리고 지금도 그러하다. 죽는 것은 그의 의복뿐이고, 그의 원질은 만대에까지 영원히 살아간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살아있는 것이고, 근철 시킬 수가 없는 그런 힘의 모두가 아시아의 아리아인들의 마음 속 깊숙이 자리했었다. 그런 힘은 크리야샥티의 성과이다. “마인드가 생겨나서” 자식들을 통해 제 3근본인종부터 똑바로 아리아인들에게로 왔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비전가라 부르는 신성한 계층은 그와 같은 완벽한 것들은 좀처럼 만들지 않게 되어갔다. 그와 같은 자들은 바깥 편에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것과 변한 것이 없지만, 내적으로는 전혀 별개의 존재이다.

원시적 제3인종의 요람기에

 

“이것보다는 높고, 깊은 지력이 깃들어 있으며

다른 모든 생물들을 지배할 수가 있는 존재는 아직 빠져 있었다.

거기에 인류가, 인간이 생겨 나왔던 것이다. . . . .“

 

그것이 태어나보니 보다 높은 세계의 자들로 화신하기 위해서는 아주 적합한 매체였다. 보다 높은 세계의 자들은 영적 의지와 인간 고유의 힘에서 생겨난 이러한 것의 형체 안에 삶을 가지게끔 되었다. 그것은 순수한 영의 아이들이고, 정신적으로는 이승에서의 요가는 조금이라도 섞여져있지 않았다. 그것은 지성을 직접 위에서부터 끌어온 것이라 물질적인 형체만이 시간과 생명의 지배 아래 있었다. 그것은 신성한 지혜가 살아 있는 나무였다. 그래서 북유럽 전설의 세계라고도 말한다. 그의 전설적인 나무는 인생의 최후의 싸움이 행해질 때까지, 말라버리거나 죽는 일이 없는 것이나, 그의 뿌리는 언제나 용의 니호그에 의해 갉아지고 있다. 똑같이 신성한 시초의 “크리야샥티의 자식”은 시간의 이빨에 의하여 몸체가 갉아지지만 그의 내적인 원질의 뿌리는 영구히 불멸로서 그대로 있다. 왜냐하면 뿌리는 땅에 내리는 것이 아니고 하늘로 성장해 넓게 퍼지기 때문이다. 그는 시초에서도 시초의 자이고 모두의 다른 것들의 종자였다. 다른 “크리야샥티의 자식들”은 두 번째의 영적 노력에 의하여 태어났지만 시초의 존재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신성한 지식의 종자 그대로 있고 지구상에서의 “지혜의 자식들”중에서도 유일자이고 지상자이다. 이 일에 관해서 더 이상 이야기할 것이 없다. 그저 각 시대에 이 문제를 바르게 이해했던 위대한 지성을 지니시고 계셨던 존재였고, 우리들의 시대에도 계신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인류의 육체는 어떤 경과를 거쳐서 지금처럼 완전한 상태로 되었을까? 그것은 수백만 년의 진화의 성과이기는 하지만 유물론이 가르치는 것처럼 동물을 통하여 또는 동물에서 온 것은 결코 아니다. 칼릴리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들의 존재의 본질, 즉 스스로 「나」라고 부르는 우리들 안에 있는 신비한 것(이와 같은 것을 표현하고자 하려면 우리들에게는 어떤 언어가 있을까?)은 하늘의 호흡이다. 지고자는 인간 안에 스스로 나타난다. 우리들의 이 몸체, 이것들의 기능, 우리들의 생명 그것이란 결코 이름 붙일 수 없는 존재의 의복과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하늘의 호흡, 혹은 성서에 네페쉬라고 말하고 있는 생명의 숨은 어느 동물 안에서도 있고 모든 살아있는 미생물이나 광물의 원자 안에도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인간과는 너무 틀리다, 그의 지상의 존재의 본질에 관한 것에서의 의식은 없고, 그것들의 형체에는 인간이 지닌 것처럼 신성한 조화는 없다. 노발리스처럼 그러한 진리를 멋지게 표현했던 사람도 드물다. 칼릴리는 다음과 같이 노발리스의 말을 인용한다.

 

“우주에는 하나의 사원만이 있다. . . . 말하자면 그것은, 인간의 체이다. 이 높은 형체보다 더 신성한 것은 없다. . . . 우리들이 인간의 체에 손을 얹어 놓았을 때, 실은 하늘의 감촉을 느낀다!” 그리고 나서 칼릴리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이것은 단순히 좋은 문구나 멋진 구절 같이 들리지만, 그렇지 않다. 잘 생각해보면 그것은 과학적인 사실이며 사물을 진실하게 표현한 것이다. 우리들이야말로 기적 중에 기적이며 불가사의한 신의 대 신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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