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씨크릿독트린

조회 수 44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스탠저 Ⅲ

코스모스가 깨어나다


 

1. 일곱 번째 영원의 최후의 진동이 무한을 뒤흔든다(a). 어머니는 부풀어올라 연꽃의 봉오리처럼 안에서 밖으로 팽창한다(b).

(a) “일곱 번째의 영원”이란 용어는 나눌 수 없는 무궁한 계속을 나눈 것이기 때문에 언뜻 보기에 모순처럼 보이지만, 비교철학에서는 인정되고 있다. 비교철학에서는 무궁한의 계속을 제한되지 않은 영원한 보편적인 시간과 제한되어진 시간(칸다칼라<Khaṇdakāla>)으로 나눈다. 전자는, 무한한 시간(칼라)의 추상성, 즉 원체(原體)이며, 후자는 만반타라의 기간 내에 그 활동이 제한되는 우주 지성, 즉 마하트(Mahat)의 결과로서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전자의 현상이다.


어느 학파에서 마하트는 (미분화된 상태의 질료 즉, 자연의 근원인 물라프라크리티의 주기적 측면인) 프라다나(Pradhāna)에게서 “처음에 생겨난 것”이라 해서 이 프라다나는 환영이라고 부른다. 이 점에서 비교의 가르침은 아드와이타 베단타 학파와 비시쉬타드와이타 베단타 학파의 이론과 다르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물라프라크리티 즉, 원체(原體)는 자존하며 뿌리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브라흐맘과 일체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어버이가 없다. 즉, 아누파다카(Anupādaka)인 것이다.

 

반면, 물라프라크리티의 현상인 프라크리티는 주기적이어서, 원체(原體)의 환영(幻影)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오컬트학도에게는 즈나나(Jñāna)(또는 영지<gnosis>)의 지식, 지혜 혹은 로고스에게서 최초로 탄생한 것인 마하트가 절대적인 니르구나(Nirguṇa)(“속성도 특성도 없는” 유일한 실체인 파라브라흐만<Parabrahman>; 우파니샤드를 보라)에서 반영된 하나의 환영에 불과하지만, 베단타 학자들에게 마하트는 질료 즉, 프라크리티의 현현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b)그러므로 “일곱 번째의 영원의 최후의 진동”이란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특정한 신에 의해 정하여진 것이 아니고, 활동과 휴지(休止)의 대 주기를 일으키는 영원불변의 법칙에 의해 생겨난다. 대단히 사실적이고, 또한 동시에 시적으로 표현해서, 이 주기는 “브라흐마의 낮과 밤”이라 불린다. “공간의 물”, “우주의 모체” 등으로 불리는 어머니의 “안에서 밖으로”의 팽창한다는 말은, 하나의 작은 중심이나 초점에서부터 팽창하는 것을 암시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크기나 한계나 영역과 관계없이, 무한한 주관성이 무한한 객관성으로 발전한다는 뜻이다.

 

 “영원히 존재하는 (우리가) 결코 볼 수가 없는 비물질적 질료는, 자신의 존재계로부터 마야의 무릎 앞에 주기적으로 그림자를 던졌다.” 이는 이 팽창이 크기가 증대하는 것이 아니고, 상태의 변화였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왜냐하면 무한한 확장은 크기의 증대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연꽃의 봉우리처럼 부풀어올랐다.” 연꽃이라는 식물은 씨앗 속에 작은 배종으로 존재하고 있을(하나의 물질적 특성이다) 뿐만 아니라 만반타라의 기간 동안에 사실 이 객관적 실체로서 현현한 이 물질우주에 있는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새벽”부터 “밤”까지, 아스트럴광 안에서 이상적 형태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간에서 진드기까지, 거대한 나무에서 가장 작은 풀잎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그러하다.


이 모든 것은 신의 생각 안에 있는 영원한 이상적 원형(原型)의 그림자, 즉 일시적 반영에 불과하다고 오컬트 과학에서는 가르쳐주고 있다. 영원(Eternity)이란, 언뜻 보기에는 끝이 없지만 그래도 제한된 활동주기 동안 계속되는 것으로서의 “영구한 시간(Aeon)”(만반타라<Manvantara>로 부른다)의 의미로 여기서 사용된 것을 다시 한번 유의해야 한다. 만반타라 혹은 마누-안타라(Manu-Antara)의 진정한 비교(祕敎)적 의미는 무엇인가? 만반타라는 비교(祕敎)에서 “두 마누 사이”를 뜻한다. 브라흐마의 낮에는 열넷의 마누(Manu)가 있다. 브라흐마의 낮은 네 개의 시대를 1,000개 합친 것, 즉 1,000개의 대시대(마하유가Mahāyuga)로 이루어져있다. 이제 마누라는 말을 분석해보자. 동양학자와 그들이 지은 사전에는, 마누가 “생각한다”는 뜻의 어근 만(Man)에서 왔으며, 따라서 “생각하는 인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비교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마누’는 자신의 특별한 주기 (즉, 라운드)를 위해, 인간의 형(形)을 주게 되는 담당자로서, (헤르메스의 “파이만더<Pymander>”처럼) 신성한 생각이 인격화된 개념에 불과하다.


따라서 각각의 마누는, 자신의 독특한 존속 주기, 즉 만반타라 동안에 나타나는 만물의 창조자이며, 조형자이고, 특별한 신인 것이다. 포하트(Fohat)는 마누들(혹은 디야니-초한들)의 심부름을 하며, 이상적 원형을 안에서부터 밖으로 확장시킨다. 다시 말하면, 원형이 본체에서부터 가장 낮은 현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를 차츰 내려와서, 마침내 마지막 계에서 완전한 객관상태(환영의 절정, 즉 가장 조밀한 물질)로 꽃피게 한다.



2. “진동”은 노도처럼 휘몰아쳐 가면서, 그 날쌘 날개로 (동시에) 전 우주와 암흑 안에 있는 씨눈에 닿았다. 암흑은 잠자는 생명의 물위에서 숨을 쉬고(움직이고) 있다(a). 

(a)또한 피타고라스도 모나드(Monad)가 “씨눈”처럼 암흑 속에 혼자 힘으로 살고있다고 말하고있다. 잠재상태의 영을 자체 안에 갖고 있는 원초적 질료인, 바로 그 “잠을 자고 있는 생명의 물” 위에 움직이는 암흑의 “숨”이라는 개념은 창세기 제 1장을 생각나게 한다. 그 개념의 기원은 브라만교의 나라야나(Nārāyana, 물들 위에 움직이는 자)였고, 나라야나는 동양의 오컬트 학도가 말하는 무의식적 전체(즉, 파라브라흐만)의 영원한 숨이 의인화된 표현이다. 생명의 물, 즉 혼돈(Chaos)(상징학에서 말하는 여성원리)은 잠재상태의 영과 질료가 위치하는 (우리의 마음으로 보면) 진공이다. 이로 인해, 데모트리투스는 그의 스승 레우시푸스를 이어서, 만물을 구성하는 원초적인 원리는 원자와 하나의 진공이라고 주장했다. 이때의 진공이란, 텅빈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소요학파(아리스토텔레스학파)와 고대의 모든 철학자들이 말한 “자연은 하나의 진공을 싫어한다”라는 의미에서의 공간이다.


어느 우주발생론에서도, “물(Water)”은 똑같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있다. “물”은 물질적 존재의 기초이자 원천이다. 과학자들은 “물”이라는 말을 산소와 수소의 화학물인 물질로서의 물로 오해하여, 오컬트학도들이 총칭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우주론에서 형이상적이고 신비적인 의미를 가지며 사용되는 “물”이라는 용어에 특정한 물질을 뜻하는 의미를 부여했다. 얼음은 물이 아니며, 또한 수증기도 물이 아니다. 하지만 셋은 모두가 똑같은 화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3. “암흑”은 빛을 발하고, 빛은 한줄기의 광선을 물들, 즉 어머니 속으로 깊숙이 떨어뜨린다. 광선은 처녀-란(virgin-egg)을 뚫고 나간다. 광선은 영원한 알을 흔들리게 해서, 영원하지 않은(주기성을 띠는) “씨눈”을 떨어뜨리게 한다. 이 씨눈은 응축되어 세계의 알이 된다(a).

(a) 어머니 속으로 깊숙이 떨어지는 한 줄기 광선은 혼돈(chaos)을 잉태시키는 신성한 생각 혹은 신성한 지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형이상적 추상의 세계에서 생겨난다기보다는, 오히려 하나의 형이상적 추상의 개념이 현실이 되는 세계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처녀-알은 어느 의미에서는 추상적인 “알의 성질”(Egg-ness) 즉, 수태를 통해 성장하여 성숙하는 힘으로서 영원하며 언제나 똑같다. 알을 낳기 전에 수정이 먼저 이루어지는 것처럼, 상징학에서 후일에 세계알이 되는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영원하지 않은 씨눈(배종)도 앞에서 언급한 상징(영원한 알)에서 나올 때에는, 전 우주가 될 “가능성과 잠재력”을 그 자체에 포함하고 있다. 영원한 알이라는 관념 자체가 물론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이지만, 무한의 개념을 끝이 없는 원으로 암시하고 있어서 진정한 상징인 것이다.


알의 개념을 통해 우리는 무궁한 공간으로부터 그리고 동시에 그 공간 안에서 우주가, 설령 객관적 현현을 할 때에는 무한하지 않을 지라도 한없이 큰 우주로서 나타나는 광경을 마음의 눈으로 그릴 수 있게 된다. 원자에서부터 천체에 이르기까지, 인간에서 천사에 이르기까지, 현현하는 만물의 원초의 형상은 타원형의 구체(球體)라고 오컬티즘에서 가르치는 사실을 알의 비유로 또한 표시하고 있다. 구체는 모든 민족에 있어 영원과 무한의 상징인데, 꼬리를 물고 있는 뱀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이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체를 그 중심점에서 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시야나 사고의 분야는 자신으로부터의 반경이 공간의 모든 방향으로 뻗어 나와 사방으로 무한한 전망을 열어주는 구체와 흡사하다. 그것은 파스칼과 카발라학자들의 상징적인 원이다. 카발라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원의 중심은 어디서든지 여러 곳에 있고, 그의 원주(경계)는 어디에도 없다.” 이 개념은 이 상징이 지니는 복합적인 개념의 하나이다.


“세계 알(Mundane Egg)”은, 암시하는 바가 아주 많기 때문에 영적인 의미로, 생리학적 의미로, 우주론적 의미로 아마도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된 상징의 하나인 것 같다. 따라서, 세계 알은 세계와 신들의 기원을 다룬 모든 이야기에서 발견되는데, 주로 뱀의 상징과 관련되어 있다. 뱀은, 교적 상징학에서 철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있어 지혜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영원, 무한, 재생, 회춘의 상징이다.1)


 알에서 일어나는 우주진화의 과정이, 스스로의 창조력을 통해 이루는 뱀의 자기생식과 진화에서 신비스럽게도 작은 스케일로 재현되기 때문에 고대인이 이런 사실적인 상징을 선택하게 된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뱀의 진화나 알에서부터의 우주의 진화나, 다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창조적 영의 유출 아래, 열과 습기(濕氣)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이다. “처녀 알(Virgin Egg)”은 대 우주적 원형(“동정녀 어머니<Virgin Mother>”, 즉 혼돈 혹은 원초의 심연)의 소우주적 상징인 것이다. 남성 창조주는 (어떤 명칭으로 불리든지 간에) 동정의 여성, 즉 그 한 줄기의 광선에 의하여 결실을 맺은 때묻지 않은 뿌리(근원)에서 나왔다. 만약 천문학과 자연과학에 정통 하다면, 그 상징이 시사하는 바를 누가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수용적 자연으로서의 우주는 결실을 맺은 하나의 알이면서, 또한 순결한 상태 그대로 인 것이다.


일단 현현해 있는 우주를 무궁하다고 생각하게되면, 타원형 외에는 우주를 표현할 것이 없다. 황금의 알은 일곱 개의 원소로 둘러 쌓여져 있다. 그 중에 “넷(공<空>, 화<火>, 풍<風>, 수<水>)은 나타나 있으나, 셋은 비밀”이다. 황금의 알에 관해서는 비쉬누 푸라나 안에 언급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거기에는 원소가 외피(Envelope)로 번역되어있고, 숨겨진 원소 중 하나는 아함카라(Ahaṃkāra)라고 부언하고 있다.2) 
원문에는 아함카라가 없다. 셋의 이름을 말하지는 않고 일곱 개의 원소라고만 언급하고 있다.3)

 

================================================
1) SD-권 2부 10장 「나무와 뱀과 악어 숭배」참조.

2) 「버쉬누 푸라나」 1권2장. 월슨역의 경우는 1권40p.

3) SD 1권 2부 6장 “세계의 알” 참조.
================================================

4. (그때) 셋(3개조)은 넷(4개조)이 된다. 빛나는 원질은 내부에 일곱, 외부에도 일곱이 된다(a). 본질적으로 삼위(三位)(즉 브라흐마<Brahmā> 혹은 비쉬누<Vishṇu>의 3중적인 실체, 다시 말하면 “셋의 아바스타스<Avasthās>”이다)이며 빛을 발하는 알(히란야가르바<Hiraṇyagarbha>)은 응유(凝乳)처럼 굳어져서 새하얀 우유빛의 응어리를 이루어 어머니의 심연 속으로 두루 퍼져 나간다. 어머니는 생명의 대양 깊숙한 곳에서 성장하는 뿌리이다(b).

(a)고대의 경전에서 기하학적 도형을 사용하고 수(數)를 자주 언급한 사실에 관하여(푸라나, 이집트의 파피루스, 「사자의 서」와 심지어 성경도 살펴보라) 설명해야 하겠다. 카발라 「쟌의 서」에는 연구하지 않으면 안되는 두 종류의 수(數)가 있다. 하나는 종종 진의(眞意)를 감추고 있는 단순히 눈가림의 역할을 하는 수이며, 다른 하나는 신성한 수인데, 그 참뜻은 모두 비전을 통해 오컬트학도들이 알게된다. 전자는 통속적인 표현에 불과하고, 후자는 모든 것의 기본적인 상징이다. 즉, 한쪽은 순전히 물질적이며, 다른 한쪽은 오로지 정신적인 것으로, 그 둘은 유일한 실질의 양극인 영과 물질의 관계처럼 상호 관련성을 갖고 있다.


프랑스 문학계의 오컬티스트인 발자크(Balzac)는 (자신은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어디선가 언급한 바와 같이, 수(數)와 마인드의 관계는 수와 물질의 관계와 같다. 즉, 마인드와 물질 쌍방에 있어서 수는 “불가해한 동인(動因)”인 것이다. (아마 세속의 사람에게는 그럴지는 모르지만, 비전가의 마음에는 결코 그렇지 않다.) 그 위대한 작가가 생각했던 것처럼, 수는 하나의 실재이고, 동시에 그가 신이라 부르고, 우리들이 전체(All)라 부르는 것에서 나오는 숨(Breath)인 것이다. 그 숨만이 물질 우주를 유기적으로 형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물질 우주에서는 수의 결과인 신을 통해서만 우주의 형체를 얻게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발자크의 말을 인용하는 것이 유익하리라 생각한다.

"가장 큰 창조물에서와 같이 가장 작은 창조물까지도 모두가 수(數)에 의하여 생겨난 것이다. 그의 양, 특성, 크기, 힘, 속성에 의해 서로간에 구별되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수의 무한성은 우리 마음에는 입증된 사실이나, 물리적으로는 전혀 증명할 수가 없다. 수의 무한성은 존재하지만 입증할 수는 없다고 수학자는 우리에게 말한다. 신은 운동성을 부여받은 하나의 수인 것이며, 이것은 느낄 수는 있지만 입증할 수는 없다. 통일성(Unity)으로서 신은 수를 생겨나게 하지만 수(數)와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 수의 존재는 통일성(Unity)에 의존한다. 통일성(Unity)은 단 하나의 수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모든 수를 생겨나게 한다. . . . . 신에 의해 그대에게 주어진 최초의 추상을 재어보거나 이해할 수가 없는데, 아직도 그대는 신으로부터 나오는 비밀과학(秘密科學)의 신비를 자신의 척도로 제한하기를 바라는가? . . . . . 그리고 만약 내가 수를 조직화한 힘인 운동의 심연 속으로 그대를 던져버리면, 그대는 어떻게 느낄 것인가? 만약 운동과 수4)가 선지자들과 예언자들이 말하는 지고의 이성(理性)인 말씀에 의해 태어난다고 내가 덧붙여 말한다면, 그대는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고대의 예언자들은 신의 힘찬 숨을 느꼈고, 성경의 묵시록이 그 증거인 것이다."

 

=================================

4) 사실 수이지 결코 운동이 아니다. 로고스, 즉 말씀을 낳은 것은 바로 운동이라고 오컬트에서 말한다.

=================================


(b) “빛나는 원질(原質)은 응유로 굳어져서,” 공간의 “도처에 깊숙이 퍼져나갔다”. 천문학적 견지에서 보면, 이것은 설명하기가 쉽다. 이것은 “새하얀 우유빛의 길”이고, 최초 형태의 세계-원료 즉, 원시물질이다. 그러나, 오컬트 과학과 상징학의 입장에서 보면, 몇 마디나 몇 줄의 말로 그것을 설명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 된다. 그것은 가장 복잡한 상징적 묘사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12개 이상의 상징이 숨겨져 있다. 첫째, 신비스러운 조상(彫像)들5)로 이루어진 만신전의 모든 신은 각각 어떤 명확한 오컬트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힌두신들이 “(우유를 거세게 휘젓듯이) 바다를 휘저었다”라는 우화적인 표현에서 유래한다.


생명의 물 혹은 불사의 물인 암리타(Aṃrita)만이 아니라, “수라비(Surabhi)” 즉 “젖이 풍부한 암소”(“우유와 응유(凝乳)의 샘”이라 불린다)는 바로 이 “우유의 대해(大海)”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암소와 숫소는 보편적으로 숭배되었던 것이다. 암소는 자연의 생산력을 숫소는 생식력의 상징이었다. 이 상징들은 태양신과 우주의 신 양쪽에 관련되어 있다. 오컬트적인 목적을 위해 응용되는 “열 넷의 보석”의 여러 특징은, 제 4 비전에 이를 때만 설명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말할 수가 없으나,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할 수는 있다. “사타파타-브라흐마나(Śatpatha-Brāhmaṇa)”에서는, “우유의 대양”을 휘저은 일은 “대홍수” 바로 직후의 최초의 시대 즉 사트야 유가(Satya Yuga)때에 일어났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제 4근본 인종의 대부분이 당하게 됐던 바이바스바타(Vaivasvata)의 “홍수” 이전 시대에 쓰여진 리그베다에서나 마누의 법전에서도 이 홍수를 말하지 않고 있으므로,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대홍수도, 아틀란티스를 휩쓸어버렸던 홍수도, 노아의 홍수도 아님이 분명하다. 이 “대양을 휘저음”은 지구의 형성 이전의 때를 말하고 있으며, 보편적으로 알려진 또 하나의 전설과 직접 관계가 있다. 그 전설은 여러 가지로 변형되어 서로 모순되기도 하는데, “하늘에서의 전쟁”과 천사들의 타락에 대한 크리스트교의 교리6)에서 절정을 이룬다. 같은 주제들에 관한 여러 가지 다른 전설(종종 서로 모순되기도 한다)을 가진 동양학자들이 비난하는 브라흐마나스(Brāhmanas)는 뛰어난 오컬트적인 작품이다. 그러므로 의도적으로 진리를 감추고 있다. 브라흐마나는 대중에게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고, 현재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일반 대중이 사용하여 소유한 결과로 살아남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아크바르(Akbar)의 시대에 이미 사라졌을 것이다.

 

=================================================
5)  “14개의 보배로운 것들.” 그 이야기 혹은 우화는 사타파타 브라흐마나(Satapatha Brahmana)와 다른 곳에서 발견된다. 일본의 불교신비가들의 비밀과학(오컬트), 즉 야마부시(Yamabooshi)에는 “일곱의 보배로운 것”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언급할 것이다.

 

6) SD 제 2 권과 성경의 묵시록 12장 참조.

=================================================



5. 뿌리는 남아있다. 빛은 남아있다. 응유(凝乳)도 남아있다. 그리고 OEAOHOO(a)는 아직 하나이다(b).

(a) “OEAOHOO”는 고대의 주석서에는 “신들의 아버지-어머니” 또는 하나 속의 여섯, 즉 모든 것이 유래하는 칠중적인 뿌리로 되어있다. 이 말의 효과는 모두 일곱 개의 모음에 주는 강세에 달려있다. 한 음절로, 세 음절로, 또는 O 뒤에 E를 붙어서, 일곱 음절로도 발음할 수가 있다. 삼중적인 발음을 완전히 통달하지 못하면 전혀 효과가 없으므로 이 신비적인 이름이 이렇게 공개되고 있다.

(b) 활성화되었든지 그렇지 않았든지간에, 살아있어 존재하는 모든 것의 비분리상태를 이것이 말해주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OEAOHOO”는 “만물의 뿌리 없는 뿌리”인 것이다. 따라서 파라브라흐만과 일체인 것이다. 다른 의미에서는 현현한 유일한 생명, 즉 영원한 살아 있는 통일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미 설명한 것처럼, 뿌리는 순수한 지식 “사트바(Sattva)”7)이며, 우리들이 파라브라흐만으로 부르든 물라프라크리티로 부르든 영원한(니티야Nitya) 무한 실재 혹은 사트(SAT, 사티야Satya)이다. 왜냐하면 이 둘은 유일한 것의 두 가지 측면이기 때문이다. 그 “빛”은 동일한 편재하는 영적 광선이다. 이 광선은 “신성한 알” 속으로 들어가 수정(受精)시키고, 우주 질료로 장구한 일련의 분화를 일으킨다.


응유(擬乳)는 최초의 분화이며, 아마 “은하수”의 근원으로 생각되는 우주질료를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들이 알고있는 질료인 것이다. 원초의 디야니-붓다들로부터 받은 계시에 의하면, 우주가 주기적으로 잠을 자고 있는 동안, 이 질료는 완성을 이룬 보디사트바의 눈에 인식될 수 있는 최고의 희박한 것들이다. 우주적 운동이 또 다시 일어나기 시작하면, 근원적이고 차가운 이 질료는 공간 속으로 흩어지게 된다. 지구에서 볼 때는, 엷은 우유 안에 응결되어진 응유처럼 덩어리와 포도송이 같이 무리를 이루면서 나타난다. 이것들은 미래의 세계를 이루는 씨앗 즉 “별의 재료”인 것이다.

 

===========================================
7) “이해”라는 말의 원문은 사트바인데, 샹카라(아차리야)는 사트바를 안타카라나로 번역한다. “희생과 다른 성스러운 활동을 함으로써 순화된다”고 말한다. 카타(Katha) p.148에서 사트바는 붓디(buddhi)를 의미한다고 상카라는 말한다. 붓디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사트바의 의미 중하나이다.(사나트수가티야<Sanatsugatya>와 아누기타<Anugita>가 있는 바가바드기타. 카쉬나트 그림박 텔랑<Kashinath Trimbak Telang> 번역, 막스 뮐러 편집) 여러 학파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든지 간에, 사트바는 아리야상가 학파의 오컬트 학도 가운데는 이중적 모나드 즉 아트마-붓디에 붙인 이름이다. 그리고 이 계에 있는 아트마-붓디는 보다 높은 계에 있는 파라브라훔과 물라프라크리티에 상응한다.

==========================================

 


6. 생명의 뿌리는 불멸(Amṛita, 암리타<Amrita>는 “불멸” 혹은 “불사”란 뜻이다.)의 대양의 모든 물방울 속에 있었다. 대해(大海)는 찬란한 빛이었다. 이 빛은 불이고, 열이며, 운동이었다. 암흑은 사라져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암흑은 불과 물의 체, 즉 아버지와 어머니의 체인 암흑자체의 에센스 안으로 들어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a)암흑의 원질은 절대광(絶對光)이기 때문에, 암흑은 프랄라야 동안, 즉 절대적 휴식의 기간, 다시 말하면 유한한 우리의 마음에는 비존재라고 생각되는 기간 동안 우주의 상태를 우화적으로 적절하게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불과 열 그리고 운동은 물론 물질과학에서 이야기하는 물질적 불과 열과 운동은 아니고, 그 물질적 현현을 이루는 에센스의 본체들, 즉 혼(魂), 다시 말하면 그 밑바탕에 놓여 있는 추상성을 말한다. 이것은 현대과학이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연구실의 기계와 기구로서는 전혀 관찰할 수 없고, 마인드조차도 파악할 수가 없는 것들이기는 하지만, 사물의 기초를 이루고 이와 같은 원질이 틀림없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또한 피할 수가 없다.

 

 불과 물, 즉 아버지9)와 어머니는 여기에서 신성한 광선과 혼돈(Chaos)의 의미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혼돈은 감각(sense)을 얻는 영과의 이러한 합일로 인해 즐거워서 (그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그리하여 최초로 탄생한 광(光)인 프로토고노스(Protogonos)가 생겨났다,”고 헤르마스(Hermas)는 말했다. 다마스시우스(Damascius)는 「신의 계통학」에서 이것을 디스(Dis: 로마신화에서 저승의 신) 즉 “만물의 처치자”라고 말한다.10)


세속 사람들에 의해 부분적으로나마 가끔 취급되어 설명되고 있는 장미십자단의 교의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빛과 암흑은 본질적으로 똑같은 것인데, 인간의 마인드에서 나누어질 뿐이다.” 또 로버트 플러드(Robert Fludd)의 말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암흑은 스스로를 불 수 있도록 빛을 선택했다”. 동양의 오컬티즘에서 가르치는 바에 의하면 암흑은 유일한 참된 실재이고, 빛의 기초이며 근원이다. 암흑 없이는 결코 빛은 나타날 수도 존재할 수도 없다. 빛은 물질이며, 암흑은 순수한 영인 것이다. 암흑은 그 근본적인 형이상적 기초에서는 주관적인 절대광인 반면, 보기에는 완전한 광휘와 영광 같은 빛은 거대한 그림자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빛은 결코 영원할 수가 없어 단지 환영 즉 마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도무지 무슨 뜻인지 마음으로 이해할 수 없고 과학계를 괴롭히는 창세기조차도, 빛은 암흑에서 창조되며 “암흑의 심연의 표면에 있었다.”(창세기 1장 2절)고 되어있지 반대로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 안(암흑)에 생명이 있었다. 그리고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복음 1장 4절). 사람들의 눈이 뜨여질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 사람들은 “빛이 어둠 속에 비치되 어둠은 빛을 알지 못했다”라는 요한 복음서의 구절을 지금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에 그들은 “어둠(darkness)”이라는 말이 인간의 영적 시력에 관계된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인간의 눈에 제아무리 초월적으로 보일지라도, 일시적인 빛을 이해(인지)하지 못하는 “암흑(Darkness)" 즉, 절대자에 관한 말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악마는 신의 반대인 것이다. 악마는 지금 교회에서는 암흑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성서에서 악마는 “신의 자식(아들)”(욥기 1장 6절), 새벽의 밝은 별, 루시퍼(Lucifer, 이사야서 14장 12절)라고 말하고 있다. 혼돈의 깊숙한 곳에서 뛰쳐나온 최초의 대천사가 룩스(Lux)(루시퍼), “아침의 찬란한 자식,” 만반타라의 새벽의 아들이라고 말하게 된 이유의 이면에는 독단적이고 교활한 사상체계가 도사리고있다. 최초의 대천사가 교회에 의해서 루시퍼 혹은 사탄으로 변해버렸다. 그것은 그가 여호와(Jehovah)보다 더 높고 더 오래되었으므로, 새로운 교리의 희생이 되어주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었다.(SD2권 참조)

 

=======================================

9) SD 1권 2부(部) 15장의 “관세음(觀世音)” 참조. 원문에 나오는 진짜 이름을 여기서 주어질 수가 없다.

 

10) 「Tractatus apologeticus integritatem societatis Rosed Cuce defendens」16,17년 라이덴, 50p
(코리(Cory)가 지은 「고대의 편린(Ancient Fragments)」 p.314를 보라)

=======================================

 


7. 보아라, 오 라누(lanoo)11)여! 그 둘이 낳은 찬란하게 빛나는 아이를, 상대해서 겨눌 자가 없는 눈부신 영광을, 빛나는 공간, 암흑 공간의 자식을. 거대한 암흑의 바다 깊숙한데서 나타나는도다. 그것은 젊은 OEAOHOO, 즉 ***(그대는 이 ***를 관세음으로 알고 있다)이다(a). 그는 빛을 발하며 태양으로 나온다. 그는 불타오르는 신성한 지혜의 용이다. 유일(에카<Eka>)한 것은 차투르(Chatur, 넷)로 되어, 차투르는 스스로 셋을 취한다. 이 결합으로 사프타(Sapta, 일곱)가 생겨난다. 그 안에서, 트리다사(Tridasa,12) 즉 30)가 되는 일곱은 만군(萬軍)과 무수한 무리가 된다(b). 그가 베일을 들어올려 동에서 서로 쫙 펼치는 것을 보라. 그는 위를 막아 버리고, 아래를 거대한 환영(幻影)으로 보이게끔 한다. 그는 빛나는 자들(별들)이 머물 장소를 정해주고, 위(공간)를 끝없는 불의 바다로 바꾸고, 유일의 현현된 (요소)를 거대한 물로 바꾼다(c). 

(a) “빛나는 공간, 암흑 공간의 자식”은 새로운 “새벽”의 최초로 떨림(전율)이 일어날 때 거대한 우주적 심연 속으로 떨어졌던 광선(光線)에 해당한다. 그 광선은 분화되어 보다 어린 Oeaohoo(즉 “새로운 생명”)로서 그 심연으로부터 다시 나타나 생명의 주기가 끝날 때까지 만물의 씨눈이 된다. 그는 “자신 속에 신성한 개념(idea)을 담고있는 무형의(영적인) 인간”이다. 즉, 필로 쥬내우스(Philo Judaeus)의 표현을 사용한다면, 빛과 생명을 낳는 사람이다. 그는 “불타는 지혜의 용”이라 불린다.


깊숙한데서 반짝거리는 공간은 보다 젊은 Oeaohoo 즉, “새생명”으로 분화해, 생명주기가 끝날 때까지 만물의 배종(씨)이 되기 위해 심연으로부터 다시 나타난다. 그 이유는 첫째, 그는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로고스 즉, 신성한 생각의 말씀(Verbum)으로 불리는 것이며, 둘째 비교철학에서는 우주적 지혜의 총합 또는 집합, “자식의 자식”, Oeaohoo인 이 최초의 현현은 그 안에 일곱의 창조적 천사단(세피로트)을 포함하고 있어 현현한 지혜의 에센스이기 때문이다. " Oeaohoo"의 빛에 목욕하는 자는 마야의 베일에 속아넘어가는 일이 결코 없다.

(b) 관세음은 산스크리트어로 아발로키스테와라(Avalokoteśvara)(관자재<觀自在>)와 같으며 동의어이다. 그러므로, 그는 테트라그라마톤과 고대의 모든 로고스들13)처럼 양성(兩性)을 가지고 있는 신이다. 그가 여성의 속성을 가져 여자의 모습으로 묘사되는 것은14)  중국의 일부 종파들에 의할 뿐이며, 이러한 경우, 여성적 측면에서의 관세음은 “신성한 소리”라 불리는 자비의 여신 관음이 된다.15) 관음은 티베트와 중국의 푸토(Puto)섬의 수호신이고, 거기에는 관세음과 관음을 모시는 절이 많다.16) (SD 1권 2부 15절의 “관세음과 관음에 대하여” 참조)

(c)“지혜의 용”은 유일한 것, 즉 하나이며, 산스크리트어에서는 에카(Eka) 또는 사카(Saka)이다. 여호와의 히브리 이름도 하나, 즉 에코드(Eḥād)라는 것은 흥미롭다. “그의 이름은 에코드이다”라고 랍비들은 말한다. 언어학자들은 언어학적으로나 상징적으로 이 둘 중 어느 것이 다른 것에서 나왔는가를 결정해야 한다. 산스크리트어가 더 근원임이 확실하지 않겠는가? 산스크리트가 히브리어에서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하나”와 용은 고대인들 각자가 자신들의 로고스들에 관련해서 써왔던 표현인 것이다. 여호와(비교적으로 <엘로힘처럼>)도 이브를 유혹했던 뱀 혹은 용이다. “용”은 “아스트럴광”(원초적 원리)을 나타내는 고대의 상징이었고, “아스트럴광”은 “카오스의 지혜이다”. 고대철학은 선이나 악을 하나의 근본적 혹은 독립적 힘으로 인정하지 않고, (영원히 우주적 완벽함인) 절대적 전체(Absolute ALL)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인식하여, 그 둘을 규명해 들어가 자연의 진화과정을 통해 순수 빛이 서서히 응축되어 형태가 되었으며, 그 결과로 물질 혹은 악이 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상징(즉 용)에 대한 철학적이고 고도로 과학적인 개념을, “악마”라 불리는 우스꽝스러운 미신으로 전락시켜 버린 사람은 초기의 기독교 교부들과 무지한 교부들이었다.


그들은 힌두교의 데바신들을 악마(devil) 혹은 악(Evil)으로 본 후세의 조로아스터교도들로부터 그와 같은 생각을 받아드렸다. 이리하여 악(Evil)이라는 말은 이중의 변형을 거쳐 모든 언어에서 D'EVIL(악-데바)로(디아볼로스<Diabolos>, 디아블<Diable>, 디아볼로<Diavolo>, 튜플<Teufel>)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교도들은 늘 자신들의 상징에 철학적인 식견을 나타내었다. 원래, 뱀의 상징은 신성한 지혜와 완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었으며, 정신적 재생과 불사를 나타냈었다. 그래서 헤르메스는 뱀을 만물 중에서 가장 영적인 것이라 말했고, 헤르메스의 지혜로 비전을 받은 모세는 창세기에서 똑같은 태도를 보였다. 더욱이 머리 위에 7개의 모음(母音)을 지닌 그노시스파의 뱀은 일곱의 창조주 즉 혹성 창조주로 구성된 일곱 개의 하이어라키의 상징이다. 또한, 힌두교의 뱀 세샤(Śesha) 혹은 아난타(Ananta)는 “무한”이라는 뜻으로 비쉬누의 이름 중 하나였다. 원초의 물위에서의 비쉬누가 최초로 탄 바하나(Vāhana)도 바로 이 뱀이다.17)


그러나 그들은 모두가 선한 뱀과 악한 뱀(말하자면 카발라학도들이 말하는 아스트럴광)을 구별했다.18) 예수는 뱀을 지혜의 동의어로서 받아들였으며, 이것이 “뱀처럼 지혜로워라”고 말한 그의 가르침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태초에, 어머니가 아버지-어머니로 되기 이전에는, 불의 용이 무한 속에서 혼자 움직이고 있었다”. (사르파라즈니<Sarparājñī>의 서) 아이타레야(Aitareya) 브라흐마나는 지구를 사르파라즈니 즉, “뱀의 여왕” 또는 “움직이는 모든 것들의 어머니”라고 말한다.19) 


우리의 지구가 (그리고, 우주도) 알의 모습을 띠기 이전에, “길게 꼬리를 끄는 우주진(宇宙塵) 즉, 불의 안개가 공간 안에서 뱀처럼 움직이며 꿈틀거렸다.” “혼돈 위로 운행하고 있는 신의 영”은 각 민족에 의하여 원초의 물위에다가 불과 빛을 내뿜는 불의 뱀의 모습으로 상징화되었다. 그리고 끝내는 그것은 우주의 질료를 품고 길러서, 입에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이 륜(輪)의 형태를 가지게 했다. 입에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은 영원과 무한의 상징할 뿐만 아니라, 우주 내에서 불의 안개로 형성된 모든 것들이 구체인 것을 상징하고 있다. 지구와 인간뿐만 아니라 우주도 뱀처럼 주기적으로 탈피(껍질을 벗어)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 새 옷을 입는다.


뱀은 인간의 영혼을 나타내는 그리스의 프시케의 상징인 나비가 탄생하는 애벌레와 번데기 못지 않게 혐오스럽거나 혹은 시적인 감각과는 거리가 먼 이미지가 틀림없다. 용은 이집트에서 로고스의 상징이며, 그노시스파의 로고스의 상징이기도 했다. “헤르메스의 서”에서, 서양의 로고스들 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 영적인 로고스인 파이만더는 “빛, 불과 화염”을 발산하는 불의 용의 모습으로 헤르메스에게 나타난다. “신성한 생각”이 인격화된 파이만더는 말한다.

빛은 나이다. 나는 누스(Nous)(마음 혹은 마누)이다. 나는 그대의 신이며, 그림자(암흑 즉, 숨어있는 신)에서 도망쳐 버린 인간의 원리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다. 나는 생각의 씨눈이며, 눈부시게 빛나는 말씀(Word)이며, 신의 자식인 것이다. 이러해서 그대 안에서 보이고 귀에 들리는 모든 것은 그대 주인(Master)의 말씀이다. 그 생각(마하트)은 아버지이신 신이다.20) 
. . . . . 천상의 바다, 에테르(Ether)는. . . . . . 아버지의 숨, 생명을 주는 원리, 어머니, 성령인 것이다. . . . . . 왜냐하면, 그것들은 분리되어있지 않고 있으며, 그것들의 합일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이상의 문장은, 지금 설명하고 있는 고대의 씨크릿 독트린을 반영해주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씨크릿 독트린은 생명의 진화의 첫머리에 아버지를 놓지 않는다. 아버지는 세 번째에 오며 “어머니의 자식”이다. 진화의 첫머리에 두게되는 것은 “모든것(ALL)의 영원하고 끊임없는 숨”이다. 이해, 보편적 마인드, 생각 등이라 말하는 마하트는 브라흐마나 시바로 현현하기 전에 비쉬누로 나타난다고 산캬 사라(Sānkhya Sāra p. 19)에서는 말한다. 따라서 마하트는 로고스와 같이, 몇 가지의 측면이 있다. 마하트는 최초의 창조에서는 주(主)라고 불리며, 이 뜻으로는 보편적 인식 또는 신성한 생각이다. 그러나, “최초로 형성된 마하트”는 제2창조인 “나”로서 태어났을 때는, 에고이즘(Ego-ism)이라 불린다.”21) 


그리고 (서구의 동양학자가 아니고, 유능하고 박학한 한 바라문) 번역자는 각주(6)에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하고 있다. “즉 마하트가 자기의식이 ”나“를 느낄 정도로 발전하면, 바로 그때 마하트는 에고이즘이라는 이름을 갖는다.” 비교적인 용어로 바꾸면, 이것은 마하트가 인간의 마나스로 (또는 유한한 신들의 마나스로) 변화되어 아함쉽(Aham-ship, 我性)이 됐다는 뜻이다. 왜 그것이 제 2 창조(또는 비쉬누 푸라나에서 아홉번째 창조, 즉 쿠마라<Kumāra>의 창조)의 마하트라 불리는지에 대해서는 SD-2권에서 설명할 것이다.


(d) “불의 바다”란 초 아스트럴(즉 본체의) 광으로, 근원인 물라프라크리티 즉 아스트럴 질료로 아직 미분화된 우주질료에서 처음으로 방사된 것이다. 그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불의 뱀”이라고도 불린다. 무한하고 불생불사인 유일한 우주적 원소만이 있으며, 그 외의 것들은 모두, 즉 대우주적 결과에서부터 소우주적 결과에 이르기까지, 또 초인에서부터 인간이나 인간보다 더 아래의 존재들에 이르기까지, 쉽게 말해, 객관적 존재는 모두 그 유일한 원소에서 다양하게 분화한 여러 측면이자 변형들(지금은 상호관련을 갖는 것)이라는 것을 학도가 기억을 한다면, 가장 어려운 점이 없어지게 되어 오컬트의 우주론에 숙달할 수가 있게 될 것이다.22) 


동양과 서양의 모든 카발라 학자나 오컬티스트는 (a) 원초의 에테르(Aether) 혹은 아카샤 (아스트럴광)와, “아버지-어머니”가 동일함을 인식했으며, 그리고 (b) 우주단계에서는 우주전기가 되는 포하트, 즉 자식이 진화하기 이전에는 아카샤가 동질성을 가진 것을 인정한다. “포하트는 일곱 형제를 굳게 하여 흩어버린다.” (SD-3권, 쟌(Dzyan))(편주10) 이것은 원초의 전기적 실체는 전기가 작용한 결과로 생명이 되어, 원초의 재료 혹은 창조이전 질료를 분리시켜 원자들로 만든다. 원자들 자체가 모든 생명과 의식의 근원이다. “모든 형체와 생명을 이루는 하나의 보편적 유일한 힘이 존재한다. 이것은 오드(Od)23), 오브(Ob) 그리고 오르(Or)라고 불린다. 그것은 낮과 밤처럼, 활동적이고 수동적이며, 적극성과 소극성을 띤다. 그것은 창조에서 최초의 빛이다.”(엘리파스 레위의 카발라) 그것은 원초의 엘로힘의 최초의 빛이었고, “양성”의 아담이었고, 과학적으로 말하면 전기와 생명인 것이다.


고대인은 뱀으로서 그것(포하트)을 표시했다. “포하트는 쉭하는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지그재그로) 미끄러져 나아가기 때문이다.” 카발라는 히브리 문자 테드ט로 그것을 묘사했다. 테드가 상징하는 것은 신비적 가르침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뱀이었다. 테드의 수값은 9이다. 왜냐하면, 테드는 알파벳의 아홉 번째의 문자이며, 숨겨진 생명의 신비로 인도하는 50개의 문에서 아홉 번째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주 탁월한 마법의 힘이며, 헤르메스 철학에서는 “원초의 질료에 부어진 생명,” 만물을 구성하는 에센스와, 만물의 형체를 결정하는 영을 표시한다. 그러나 비밀스러운 연금술 작업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영적이며, 다른 하나는 물질 상관적인 것으로 두 개는 영구히 맺어져있다. 

불에서 땅(earth)을, 딱딱하게 굳은 것에서 정묘한 것을 분리시켜라. . .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서, 하늘에서 땅으로 다시 내려오는 것 . . . 그것(정묘한 빛)은 모든 힘 중에서도 강한 힘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정묘한 것들을 정복하고 모든 굳은 것들에 침투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세계는 형성되었다.24)


우주의 원초질료가 불의 상태에서 공기의 상태로, 그리고 물 등으로 변형될 때, 우주는 진화한다고 가르친 것은 스토아학파의 창시자 제논뿐만이 아니었다. 에페수스(Ephesus)의 헤라클레이투수는 자연의 모든 현상의 근원에 있는 유일한 원질은 불이라고 주장했다. 우주를 움직이는 지성(intelligence)은 불이고, 불은 지성이다. 한편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바람)에 대하여, 밀레투스의 탈레스는 기원전 600년에 물에 대하여 같은 말을 했지만, 비교에서는 각각의 주장이 옳지만 어느 체계도 완전하지 못함을 보여줌으로써 모든 철학자를 조정한다.

 

=========================================

11) 라누는 실천적 비전체계를 공부하는 학도, 즉 첼라이다.

 

12)  “트리다사” 즉 30은 베다의 신들의 수를 대충 말하고 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33인데 이는 신성한 수이다. 이들은 열둘의 아디트야(Aditya), 여덟의 바수(Vasu), 열 하나의 루드라(Rudra)와 둘의 아스윈(Aswin)인데, 둘의 아스윈은 태양과 하늘의 쌍둥이 아들이다. 이 트리다사는 힌두교의 모든 신들을 이룬 기본 수이다. 힌두의 신은 그 수가 33 크로레(Crore) 즉 33억이 넘는다.

 

13) 그래서, 옛날의 모든 고급 신들은 모두가 “아버지의 자식들”이 되기 이전에 “어머니의 자식들”인 것이다. 크로노스-새턴 즉, “무한한 시간”(즉, 칼라<Kala>)의 자식인 쥬피터 혹은 제우스처럼 로고스들은 처음에는 남성-여성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제우스는 “아름다운 처녀”라고 불리워졌고, 비너스에는 수염이 붙여진다. 아폴로는 원래 양성(兩性)이다. 마누와 푸라나에 나오는 브라흐마-바흐(Brahma-Vach)도 역시 그렇다. 오시리스는 이시스와 바뀔 수 있으며, 호루스(Horus)도 양성이다. 끝으로, 계시록에서 본 요한의 환상, 즉 지금은 예수와 관계된 로고스에 대한 환상은 로고스가 양성으로 표현된다. 왜냐하면 로고스가 여자의 가슴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테트라그라마톤, 즉 여호와도 그러하다. 그러나 비교에서의 아발로키스테와르가 둘이 있는데, 제1 로고스와 제2 로고스이다.

 

14) 오늘날과 같은 정치와 과학의 시대에는 어떤 종교적 상징도 신성모독과 심지어는 조롱을 당할 수밖에 없다. 남 인도에서 필자는 여자의 옷을 입고 코걸이를 한 예수의 상 앞에 개종한 한 토착민이 예물을 드리면서 예배드리는 것을 본적이 있다. 예수의 상을 이렇게 꾸민 것에 대한 의미를 물었을 때, 그 상은 예수와 마리아가 하나로 된 것이며 파드리(Padri)의 허가를 받은 것이라는 대답을 듣는다. 그 열렬한 개종자는 두 개의 상(像)(이러한 상을 보는 사람, 즉 힌두교로서 개종하지 않은 사람은 말하기를 우상이라고 하는데 아주 타당한 말이다)을 장만할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독단적인 기독교도에게는 신성모독으로 보이겠지만, 신지학도와 오컬트학도에게는 그 개종한 힌두교 사람의 논리가 타당하다. 그노시스에 있는 비교적(秘敎的)인 크리스토스(Christos)는 물론 성(性)이 없지만 현교적 신학에서 크리스토스는 양성을 갖는다.

 

15) 그노시스의 소피아(Sophia), 즉 옥도아드(Ogdoad, 어떤 의미에서는 여덟 아들을 가진 아디티<Aditi>)의 “어머니”인 “지혜”는 고대의 모든 체계에서처럼 성령이고, 모든 것의 창조주이다. “아버지”는 훨씬 후에 나온 말이다. 가장 먼저 현현된 로고스는 어디에서나 여성으로 되어 있다. 말하자면, 일곱 혹성신(planetary Powers)의 어머니인 것이다.

 

16) 에드킨즈(J.C. Edkins) 목사가 쓴 「중국의 불교」128p 참조. 그는 언제나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으나 그의 결론은 틀린 곳이 많다.

 

17) 그러나 로고스들과 권능을 가진 존재들로 이루어진 하이어라키처럼 “뱀들”은 서로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쉬누의 침상”이 되는 세샤 즉, 아난타는 공간 속의 무한한 시간을 상징하는 비유적인 추상개념인 것이다. 공간에는 씨눈이 포함되어 있고, 주기적으로 이 씨눈이 꽃 핀 상태 즉, 현현된 우주를 내던진다. 반면에, 그노시스의 뱀 오피스(Ophis)는 7개의 모음 안에 태고의 가르침에서 말하는 일음절, 삼음절, 칠음절로 발성하는 Oeaohoo와 같은 삼중의 상징을 포함하고 있다. 말하자면 유일의 미현현의 로고스, 제 2 로고스인 현현된 로고스, 사개조 혹은 테트라그라마톤으로 구체화하는 삼각형, 그리고 물질계에서의 테트라그라마톤의 광선이다.  

 

18)  즉, 선한 뱀은 영적인 영역에서의 신성한 지혜의 구현으로, 악한 뱀은 신성한 지혜가 물질계에 구현한 것으로 구별했다. 고대의 이교도들이 말하는 아스트럴광 즉, 에테르(AEther)는 (아스트럴광이라는 명칭은 근대에 붙여진 이름이다) 영-물질이다. 아스트럴광은 순수한 영적 세계에서 시작해 차례로 내려와 농밀해져 끝내는 마야 즉, 우리의 물질 세계에서 사람을 속이고 유혹하는 뱀이 된다. 

 

19) M.호루역 「아이타레야 브라흐마나」1863년, 5권4장.

 

20)  “아버지가 되시는 신”은 여기서 확실히 인간과 우주의 제7 본질(principle)을 말하고있다. 이 본질은 에센스와 성질에 있어 제7 우주본질과 서로 분리할 수 없다. 어느 의미에서는 그리스의 로고스와, 비전불교에서 말하는 아발로키스테와라인 것이다.

 

21) 아누기타 제 26장

 

22) 인도의 신들의 계보학과 마찬가지로 이집트의 신의 계보에도 숨어있는 신이 하나 있었는데, 유일하며 창조적 양성의 신이었다. 그러므로, 슈(Shoo)는 창조의 신이고, 오시리스는 원래는 “이름을 알수 없는 신”이었다. (마리엣트(Mariette) 저, 「아비도스」 2권 63p와 3권 413, 414p, 1122번 참조)

 

23) 오드는 생명을 부여하는 순수한 빛 혹은 자기적 유체이다. 오브는 흑마술사가 사용하는 죽음의 사자로서 사악한 유체이다. 아오르는 그 둘의 총합이고 “아스트럴광” 그 자체이다. 오드(생명의 유체를 표시하기 위해, 라이헤바흐<Reichenbach>에 의해 쓰여진 말)가 또한 왜 빛, 밝음, 광휘를 의미하는 티베트 말인지를 언어학자들이 설명할 수 있을까? 오드는 오컬트적 의미에서는 “하늘”을 의미한다. 근원이 어딘가? 그러나 아카샤는 결코 에테르(Ether)가 아니며, 앞으로 설명하겠지만 그보다 훨씬 더 높다.

 

24) Smaragdine Tablet.

=============================================

 


8. 씨눈은 어디에 있었는가, 지금 암흑은 어디에 있는가? 오 제자여, 그대의 “램프”에서 타고있는 화염의 영(靈)은 어디에 있는가? 씨눈이 바로 그것(That)이고, 그것은 빛이다. 즉 숨어버린 암흑의 아버지에게서 난 백광(白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자식인 것이다(a).

(a)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두 번째 질문에 암시가 되고 있다. 두 번째 질문은 제자에게 한 스승의 답으로 간단한 말속에 오컬트 철학의 가장 본질적인 진리 하나를 담고있다. 말하자면, 육체의 여러 감각으로는 인지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함을 표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들은 육체의 감각 자체에 호소하는 것들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더 실재적이며 더 항구적인 것들이다. 제자는 첫 번째 질문에 포함되어 있는 초월적 형이상학적 문제를 이해하기 이전에 두 번째 질문에 응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두 번째 질문에 대한 제자의 답이야말로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의 실마리를 주게 될 것이다.


이 스탠저에 대한 산스크리트어 주석에는 숨겨진 드러나지 않은 원질에 대해 쓰여져 있는 용어가 많이 있다. 인도의 문헌 중 가장 오래된 사본에서는 나타나 있지 않은 추상적인 이 신에게는 이름이 없다. 이 신은 일반적으로 그것(That, 산스크리트어의 Tad)이라고 불리며, 현재 존재하며 과거에 존재했고 미래에 존재하게 될 모든 것 즉 인간의 마음에 의해 받아들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의미한다.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암흑,” “회오리바람”등 비교철학에서만 주어지는 그런 명칭 안에는 “칼라한사(Kalahansa) 혹은 칼라함사(Kala-haṃ-sa)의 그것” 그리고 심지어는 “칼라 함사(Kāla Haṃsa) 즉 검은 백조”라는 이름도 있다. 이 경우에서 ṃ과 n은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양쪽 모두 프랑스어의 비음 am과 an 또는 en이나 em (Ennui, Embarras 등에서와 같이)처럼 발음된다. 히브리 성경에서와 같이 산스크리스트어로 된 많은 신비적이며 신성한 이름은 세속의 일반 사람들의 귀에는 보통의 말이나, 종종 저속한 말의 뜻만 전달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 이름은 어구의 철자를 바꾸거나 다른 방법에 의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한사(Hansa), 비교적으로는 함사(haṃsa)라는 말이 바로 이와 같은 예이다. 함사는 아-함-사(a-ham-sa)와 똑같고, 이 세 단어는 영어로 “나는 그다(I am he)”라는 뜻이다.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구분하면 함사는 소-함(So-ham), 즉 “그(그대)는 나다”라고 읽는다. 소함은 사(Saḥ) 즉 “그”와 아함(aham) 즉 “나,”로 이루어진 뜻과 같다. 다시 말하면 “나는 그다”와 같은 것이다."


이 간단한 말속에도, 지혜의 언어를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인간의 본질과 신의 본질은 동일하다는 우주적 신비의 가르침이 포함돼 있다. 따라서, 칼라한사(Kālahansa)(또는 함사haṃsa)의 상징과 그에 대한 비유, 그리고 중성(中性)인 브라흐마(후에 남성 브라흐마)에게 붙여진 “함사-바하나(Haṃsa-Vāhana)”라는 이름이 여기서 나왔다. 함사-바하나는 “한사를 타는 자”란 뜻이다. 칼라함사는 “칼-아함-사(Kal-aham-sa)” 즉 시간의 영원 속에서 “나는 나이다(I am I)”로 읽을 수 있는데, 성경 또는 오히려 조르아스트교에서 말하는 “나는 나이다(I am that I am)”에 해당한다.(역주―성경에서는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고 모세에게 신이 한 말이다) 똑같은 가르침이 카발라에서 발견되는데, 학식 있는 카발라학도인 맥그레고 매터즈(S. Liddell McGregor Mathers)의 미출판 원고에서 다음을 인용한 것이다. 

세 개의 대명사 호아היא, 아타התא, 아니ינא, 즉, 그, 그대, 나는 히브리 카발라에서는 큰 얼굴(매크로프로소푸스Macroprosopus)과 작은 얼굴(마이크로프로소푸스Microprosopus)의 개념을 상징하기 위해 사용된다. 호아(Hoa), ”그“는 숨겨지고 감추어진 큰 얼굴에 해당한다. 아타(Atah) ”그대“는 작은 얼굴에 해당된다. 그리고 아니(Ani), ”나“는 그가 말하여 표현할때 작은 얼굴에 해당한다.25) 


이러한 명칭은 각각 세 글자로 되어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Lesser Holy Assembly, 204를 보라) 글자 알레프א 즉 A는 첫 번째 단어 호아의 마지막에 있고, 아타와 아니의 마지막에 있어, 마치 그 셋을 연결해주는 고리와 같다. 그러나 알레프א는 통일의 상징이고, 따라서 이 모두를 통해 일을 하고 있는 신의 불변의 개념의 상징이다. 그러나 호아라는 이름에서 א뒤에는 ו와 ה가 있는데, 각각 6과 5, 남과 여, 헥사그램(Hexagram)과 펜타그램(Pentagram)의 상징이다. 그리고, 이 세 단어 호아, 아타와 아니의 수 값의 합계는 각각 12와 406과 61이 되고, 테무라(Temura)라고 하는 성경해석 방법의 하나인 아홉 방(Nine Chambers)의 카발라에 의하면 각각 기본적인 수 3과 10과 7로 요약된다.

그 신비를 완전히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유물론자들과 현대 과학자들은 결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신비에 관해 명백히 인식하려면, 먼저 자연계에 편재해있는 영원한 신성이 존재한다는 가정을 인정하고, 둘째로 참된 본질적인 상태로서의 전기의 신비를 통찰하지 않으면 안되며, 셋째로 인간은 지구상에 있어서 유일한 대단원(大單元)(One Great UNIT, 로고스)의 7중의 상징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로고스 자체는 일곱 개의 모음으로 돼있는 기호이며, 말씀으로 결정화된 호흡이다.26)


이 모두를 믿는 사람은, 오컬티즘과 카발라의 일곱 혹성이 십이궁과 다양하게 짜여져 있는 것들을 믿어야한다. 또, 우리들이 하는 것처럼, 각 혹성과 성좌에는 독특한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프랑스의 한 오컬트학도인 엘리스타(Ely Star)가 말했던 바대로, 혹성을 지배하고 있는 혹성영에 따라 그 영향력은 좋든지 나쁘든지 간에 그 천체 고유의 것이다. 혹성영은 자신과 조화를 이루고 또 자신이 친화력을 느끼는 사람이나 사물에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또, 앞에서 말한 일을 믿는 사람은 적기 때문에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경우에 있어 한사(“나”이든 “그”이든 “거위든 백조든”간에)의 상징은 중요한 것이며, 예를 들면 신성한 지혜, 즉 인간이 이를 수 없는 암흑 속의 지혜를 나타낸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현교적으로는 모든 인도 사람이 알고 있는 것처럼, 한사(Hansa)는 물을 섞은 우유를 먹이로 주면 그 둘을 나누어서, 물은 남기고 우유만 먹는 상상의 새이다. 이와 같이 한사는 타고난 지혜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우유는 상징적으로 영을 말하며, 물은 물질을 나타낸다.


이 우화가 매우 오래됐으며 아득한 옛날부터 전해진 것이라는 것은 (바가바트 푸라나에) 함사 또는 한사라 불리는 어떤 카스트에 관한 이야기가 언급돼 있기 때문이다. 함사는 바로 “유일한 카스트”였다. 잊어버린 과거의 안개 속 저편의 시대, 힌두인들에게는 “하나의 베다, 하나의 신, 하나의 카스트(계급)”밖에 없었다. 또, 고서에는 메루(Meru)산의 북쪽에 있다고 기록된 함사라 불리며, 종교적 비의와 비전의 역사에 관련된 일화와 관련된 산맥이 하나 있다. 동양학자들이 가지고있는 현교적인 원문과 그들의 번역에 의하면, 브라흐마-프라자파티가 탔다고 상상하는 것의 이름이 칼라-한사라고하지만, 이것은 전혀 그렇지 않다. 중성의 브라흐마를 그들은 칼라-한사라고 부르고, 남성의 브라흐마를 한사-바하나라 부른다. “그가 타는 것, 즉 바하나는 백조 혹은 거위가 틀림없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힌두교 고전사전」을 보라) 그렇지만 이것은 완전히 현교적으로 그럴듯한 해석이다.


비교적 또는 논리적인 관점에서 말하자면, 무한자인 중성의 브라흐마가 동양학자들이 말한 대로 (그리고 베단타의 원문과 일치하는 것이지만) 인간의 속성으로서는 전혀 묘사할 수 없는 추상적인 신이고 또한 그 브라흐마가 칼라-한사로 불린다고 여전히 주장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그러한 추상적인 신이 현현해 있는 유한의 신인 남성의 브라흐마의 바하나가 될 수 있겠는가? 사실은 정반대다. “백조 혹은 거위”(함사Haṃsa)는 그 남성 신 혹은 일시적인 신의 상징이다. 왜냐하면 원초의 광선이 방사된 것인 그는 그 신성한 광선의 바하나 즉, 탈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신성한 광선은 우주에 나타날 수가 없다. 역설적으로, 그 신성한 광선 자체는 어쨌든 암흑(우리들 인간의 지성으로 볼 때)의 방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브라흐마(Brahmā)는 칼라-함사(Kala-Haṃsa)이고, 그 광선은 함사-바하나(Haṃsa-Vāhana)인 것이다.


고대인이 선택한 그 이상한 상징은 또한 암시적인 것이다. 진정한 신비적 뜻은 “깊음(심연)”의 원초적 물들로써 비유적으로 표현된 하나의 보편적인 모체, 즉 그 유일한 광선(로고스)을 수용하고 뒤이어 내보내기 위한 입구라는 의미이다. 그 한줄기의 광선은 다른 7개의 생식력을 갖춘 광선들 또는 힘들(로고스들 또는 건설자들)을 그 안에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장미십자단은 백조든지 펠리컨이든지 간에27) 일곱 마리 새끼를 가진 물새를 상징으로 선택했다. 그 상징은, 모든 나라의 종교에 맞게 수정되어 적합한 형태를 띠게 되었다.

 

엔-소프(En-Soph)는 「수의 서(the Book of Numbers)」에서 “펠리컨의 불의 혼”이라고 불린다.28) (제 2부 “숨겨진 신과 그 상징 및 상형문자”를 보라) 그것은 만반타라때마다 나라야(Nārāyaṇa) 또는 스와얌부바(Svāyambhuva, 자존하는 것)로 나타나, 세계의 알로 침투하여, 신성한 부화기간이 끝날 때 브라흐마(Brahmā) 혹은 프라자파티(Prajāpati)로서 그 알에서 다시 나타난다. 이 브라흐마는 자신이 확장해 들어가는 미래 우주의 선조이다. 그는 푸르샤(Purusha) 즉 영이지만 동시에 프라크리티(Prakriti) 즉 질료이다. 그러므로 프라자파티가 남성 브라흐마가 되는 것은 단지 자신을 두 부분(여성인 브라흐마-바흐Brahmā-Vāch와 남성인 브라흐마-비라즈Brahmā-Virāj)으로 나눈 후이다.

 

===============================================

25) 「조하르」의 “jdran Zuta qaddiasha(聖小集團)” 8장 204절 이하 참조

 

26) 이것은 또 피히테(Fichte)와 독일의 범신론자들의 가르침과 유사하다. 피히테는 예수를 인간의 영과 신-영(아드와이타의 가르침) 또는 보편적 본질과의 합일을 가르쳐주는 대스승으로서 존경한다. 서양의 형이상학은 거의 예외 없이 고대의 동양사상에서 이미 나온 것들이다. 칸트에서 허버트 스펜서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철학은 모두가 일반적으로 드와이타, 아드와이타 그리고 베단타 학파의 가르침이 다소간 왜곡된 채 반복된 것이다.

 

27) 새가 백조이거나, 거위이거나, 펠리컨이거나 간에 상관없다. 왜냐하면 영처럼 물위로 떠서, 움직이고 있고 새끼를 낳기 위해 물에서 나오는 물새이면 되기 때문이다. 장미십자단의 제 18 단계의 상징이 뜻하는 진정한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그것은 후에 시적으로 바뀌어, 자신의 가슴을 찢어 자신의 피로 일곱 마리의 어린 새끼를 먹이는 어미로서의 펠리컨의 심정으로 표현되었다.

 

28) 모세는 펠리컨과 백조를 부정한 것으로 분류하여 이것들을 먹는 것을 금지하고 “머리에 흰 점이 있는 메뚜기, 딱정벌레(갑충)를 그 종류에 따라” 먹는 것을 허락하는 이유는 (레위기 11장22절, 신명기 14장 17절) 순전히 생리학적인 이유이며, 그리고 다른 모든 단어와 같이 “부정한”이란 말은 문자 그대로 읽고 이해하지 않을 때에만 신비적 상징과 관련되어 있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표현과 똑같이 불결은 비교(祕敎)적이며, 신성하지 않다고 표현한 그 만큼 사실은 “신성하다”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교(祕敎)의 의미를 숨기는 눈가림으로서 어떤 미신들과 관련해서는 아주 암시적이다. 예를 들어 러시아인들이 비둘기를 먹지 않는 것은 불결하기 때문이 아니고, 성령이 비둘기의 형상으로 나타났다고 말한데서 연유한다.

===============================================


9. 빛은 차가운 불꽃이며, 불꽃은 불이고, 불은 열을 낳고, 열은 물 즉 거대한 어머니(카오스) 안에 있는 생명의 물을 낳는다(a).

(a)스탠저 안에 있는 빛(光), 불(火), 불꽃(焰)이라는 말은 원전에 있는 고대의 용어와 상징의 뜻을 보다 잘 전하기 위해 번역자들이 고대의 “불의 철학자”29)의 어집 안에서 선택한 것임을 기억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탠저는 서구 독자에게는 전혀 이해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컬트 학도들은 쓰여지고 있는 용어를 충분히 알 것이다.


“빛”, “불꽃”, “뜨거운”, “차가운”, “불”, “열”, “물” 그리고 “ 생명의 물”은 모두가 우리의 물질계에서는 전기의 결과이고, 근대 물리학자의 말을 빌리면 전기가 상호관련하여 작용하는 것들이다. 전기란 얼마나 힘찬 언어, 그리고 얼마나 강력한 상징인가! 전기는 자신 못지 않게 신성한 자손을 낳는 신성한 창조자(generator)이다. 창조자이고, 유지자이며 파괴자인 불을 낳고, 우리의 신성한 선조들의 에센스인 빛을 낳으며, 만물의 혼인 불꽃을 낳는다. 전기는 존재의 사다리의 윗 단계에서 유일한 대생명이며, 제일 아래 단계에서는 아스트럴 유체(연금술사가 말하는 아타노르<Athanor>)이고 신과 악마이며, 선과 악이다.


그렇다면 스탠저에서는 왜 빛을 “차가운 불꽃”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오컬티스트가 가르치는) 우주진화의 순서에서는 질료가 원자로 형성된 후에 질료를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가 우리들의 세계에서는 우주의 열에 의하여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리된 질료라는 의미의 우주는 그 기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원하고 공간과 공존하는, “시작도 끝도 없는” 원초적 질료는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독특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주석서(Ⅱ권)에서는 말한다.


 열과 냉은 상대적 특성이며, 현현된 세계들의 영역에 속해있다. 현현된 모든 세계는 현현된 힐레(Hyle)로부터 나온다. 힐레는 절대적으로 잠재상태인 면에서는 “차가운 처녀(cold Virgin)”라고 말하고 있으며, 생명에 눈을 뜨면 “어머니”라고 말을 한다. 옛 서구의 우주생성의 신화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처음에 차가운 안개만이 있고, 그것은 아버지였다. 그리고 많은 비옥한 점액(어머니, 일러스(Illus) 또는 힐레)이 있고, 거기에서 세계의 뱀 즉, 물질이 기어 나왔다고 말한다.30)


그러므로 원시질료는, 결코 현현하는 일이 없는 세계에서 나타나 포하트의 충동으로 인하여 눈을 떠 활발하게 작용하기 전에는, “무색, 무형, 무미이며 어떠한 특성이나 양상도 없는 차가운 광휘”일 뿐이다. 최초에 태어난 그녀의 “네 자식들”도 그렇다. 그들은 “하나이며 일곱으로 된다.” 이들은 실체이며, 고대의 동양의 오컬티스트들은 그들의 특성과 이름을 7개의 원시적 “힘의 중심” 혹은 원자 중의 4개에 붙였다. 이 일곱 개의 힘의 중심 혹은 원자는 나중에 거대한 우주적 “원소들”로 발달하며, 현재는 과학계가 알고 있는 70여 개의 아원소들로 분화된다.


최초의 디야니-초한들의 4개의 원초적 성질은 소위 (적절한 언어가 없어서) “아카샤 같은”, “에테르 같은”, “물 같은(Watery)”, “불같은(Fiery)”이라고 불린다. 실천적 오컬티즘의 용어에서 보면, 기체에 대한 과학적인 정의에 해당한다. 오컬티스트와 일반 세상 사람들 양자에게 명확한 개념을 전하기 위해, 이것들은 초수소적(Parahydrogenic)31), 초산소적(Paraoxygenic), 산수소적(Oxyhydrogenic), 오존적 또는 니트로오존적(Nitr-ozonic)이라고 정의해야할 것이다. 이러한 힘들, 즉 기체들은 (오컬티즘에서는 초감각적이지만, 원자적 실질이다) 좀더 농밀하게 분화한 질료의 세계에서 활기가 붙으면 효과적으로 활동화된다.32) 이러한 것들은 양전기와 음전기를 동시에 가진다.

 

===========================================================

29)  중세의 연금술사들에게서가 아니라 마기(Magi)와 배화교(불을 숭배하는 사람들)에게서, 장미십자단이나 마술사들의 후예인 불의 철학자들은 불을 신비적이고 신성한 요소로서 보는 모든 개념을 가져온 것이다.

 

30) 「이시스 언베일드(Isis Unveiled)」1권, 146p.

 

31)  para-는 “넘어서”, “바깥에”의 뜻이다.

 

32) 이 원소 각각과 더 많은 다른 원소는 아마도 화학에서 찾아내지 못한 연결고리일 것이다. 이것들은 연금술과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 오컬티스트들에게는 다른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위대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바로, 아스트럴 불로 “원소들”을 어떤 방식으로 결합하고 재결합(혹은 분리시킴)에 의한다.

===========================================================


10. 아버지-어머니는 거미줄 같은 망을 짠다. 위 끝은 영(푸루샤Purusha) 즉 유일한 암흑의 빛에 맺어놓고, 아래 끝은 물질(프라크리티Praḳriti) 즉, 영의 그림자의 끝머리에 맺는다. 이 망은 하나의 실질, 즉 스바바바트(Svabhavat)속에서 만들어진 두 개의 실질로부터 짜여져 나온 우주이다(a).

(a) 만두키야(Maṇḍukya) 우파니샤드에서는 다음과 같이 쓰고있다.

 

“거미가 실을 내보냈다 끌어넣었다 하는 것처럼, 풀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처럼. . . . 우주의 불후의 것(undecaying one)에서 나온다”(1권 1.7)

 

“거미가 뱉어내는 실처럼, 물에서 솟아오르는 거품처럼” “미지의 암흑의 씨눈”으로서의 브라흐마에게서 모든 것이 유래하여 발달해간다. 만약 “창조자” 브라흐마라는 말이 증대하거나, 팽창한다라는 뜻의 어근 브리히(brih)에 온 것이라면, 이것은 사실 그대로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을 따름이다. 브라흐마는 “확대(혹은 팽창)하여”, 자기자신의 실질로서 짜여진 우주가 되는 것이다. 
위와 같은 생각은 괴테에 의해 아름답게 표현되어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리하여 덜거덕거리는 시간의 베틀로, 나는 열심히 신을 위해 옷을 짠다. 그대는 그 옷을 통해 신을 보리라.33)

 

======================================

33) 「파우스트」상, 「지의 정의 노래」
======================================


11. 불(아버지)의 숨(Breath)이 망에 닿게 되면, 그 망은 팽창하게 된다. 어머니(질료의 근원)의 숨에 닿게 되면 수축을 일으킨다. 그때 자식들(각자의 힘 즉 지성을 가진 원소들)은 “거대한 날(Great Day)”이 끝날 때에 다시 어머니의 보금자리에 되돌아와서 어머니와 다시 일체가 되기 위해 분리되어 흩어진다(a). 그 망이 차가워지고 있을 때, 그것은 광휘를 발하고, 자식들은 자신의 자아와 심장(heart)을 통하여 팽창하고 수축한다. 그들은 무한을 포옹한다(b).

(a) 불의 숨의 영향을 받아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은, “불의 안개”의 기간을 이야기하는 학설에 비추어보면, 대단히 암시적인 것이다. 하지만 근대과학이 그 시기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말하고는 있지만, 거의 아무 것도 모른다.


막대한 열은 복합된 원소를 분해하여 천체를 원초의 한 원소로 환원시켜버린다고 주석서에서는 설명한다. 열(에너지)의 초점 또는 중심(많은 열의 초점을 공간 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인다)의 인력권 혹은 작용권 안에 들어감으로써 천체가 그 원초적 구성원소로 해체되면, 살아있든지 죽어있든지 간에 하나의 천체는 증발하여 “어머니의 가슴”에 안긴다. 그리하여 포하트가 우주질료의 덩어리(성운)를 몇 개 모아서 그것에 충동을 주어, 새롭게 운동을 일으켜 필요한 열을 발생케 하여, 그것이 스스로 새로운 성장을 할 때까지 어머니의 품속에 머문다.


망(網) 즉 세계질료 혹은 원자들의 팽창과 수축은, 여기에서는 맥동적인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 왜냐하면, 원자의 우주적 진동을 일으키게 하는 것은 바로, 스와바바트에 의해 발산된 물질의 원체라 할 수 있는 무한하며 경계가 없는 대해(大海)의 규칙적인 수축과 팽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이것은 다른 것을 암시하고 있다. 많은 과학자, 특히 천문학자에 있어서는 현재 수수께끼인 것을 고대의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질료 즉 세계-원료가 최초로 점화된 원인과 냉각의 결과로 발생하는 열의 모순, 그리고 그 외의 다른 우주의 수수께끼들을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표현은 고대인들이 그러한 현상들을 알고있었음을 분명하게 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원자에는 내부의 열과 외부의 열이 있다”라고 저자가 입수한 필사본의 주석서에서는 말한다. 말하자면, “아버지(영)의 숨과 어머니(질료)의 숨(열)이다.” 그리고 주석서에서는, 방사로 열을 상실함으로써 태양의 불이 꺼진다는 현대의 이론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주는 설명이 있다. 그런 가정이 잘못되었음을 과학자들이 스스로 인정하기도 한다. 뉴콤교수가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열을 잃어버림으로 인해 가스로 된 물체는 수축하는데, 수축에 의해 생겨난 열은 수축을 일으키기 위해 사용되어 상실되었던 열의 양보다 크기 때문이다.”34)


 어떤 물체가 냉각됨으로써 일어나는 수축이 크면 클수록 그 만큼 더 물체는 뜨거워진다는 이 모순은 오랫동안 쟁점거리였다. 잉여의 열은 방사에 의해 없어졌으며, 일정한 압력 아래서는 부피가 감소함에 비례하여 온도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추측한다는 것은, 찰스의 법칙(성운이론, 윈첼Winchell)을 완전히 무시하는 일이라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수축으로 인해 열이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냉각으로 인해 일어나는) 수축은 그 질량에 있는 열을 모두 발생시킬 수가 없다든지, 심지어는 일정한 온도로 물체를 유지할 수 없다 등등의 주장이 대두되었다. 윈첼 교수는 ”열 이외의 어떤 것“을 제시함으로써 그 모순을 조정하려고(호머 레인즈Homer Lanes가 증명한 것처럼 외관상으로만 조정된 것처럼 보인다) 노력한다. ”거리의 법칙에 따라 다양한 분자들 사이의 반발에 불과하지 않을까?“라고 그는 묻는다.35) 


그러나, ”열 이외의 어떤 것“이 ”원인 없는 열“, ”불의 숨“, 모든 것을 창조하는 ”절대지성과 열이 합쳐진 것“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으면, 이러한 질문조차도 모순된다. 하지만 물질과학은 이 사실을 받아들일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어쨌든, 이 스탠저를 읽으면 스탠저가 고대의 어구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심지어 현대과학보다 더 과학적임을 보여준다.

=============================================

34) Popular Astronomy, 1878, pp. 507, 508

 

35) 「American Annual of Science」1870년 7월호. A 윈첼의 「세계․생명」85p에서 인용했다.

=============================================



12. 다음에 스바바바트는 원자를 단단하게 결속시키기 위해 포하트를 내보낸다. (이 원자들) 각각은 망(우주)의 한 부분이다. 거울처럼 “자존의 주”를 그려내어, 각각의 순서에 따라 세계가 되어간다. . . . . 36)


“포하트는 원자를 굳게 한다.” 이것은 원자에게 에너지를 불어넣음으로써 일어난다. 포하트는 원자, 즉 원초질료를 흩어져 버리게 한다. “그는 질료를 흩어지게 하여 원자로 되게 하면서, 자기자신을 흩어지게 한다.” (사본 주석서)


우주 마인드(우주심)의 여러 가지의 개념이 질료에 인상이 새겨지는 것은 포하트를 통해서다. 포하트의 성질에 대한 막연한 개념은 “우주 전기”라는 명칭에서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보통 알려져 있는 전기의 특성에 지성을 포함한 다른 특성을 더 보태어야 한다. 모든 정신활동과 두뇌활동에는 전기적 현상이 일어난다고 말하는 근대과학의 결론은 흥미롭다.37)

 

============================================

36) 이것은 불에서 나오는 불꽃은 끝이 없으며, 전 우주의 불들은 그 불꽃을 줄지 않게 하면서 한꺼번에 확 불일 수 있다는 의미로 이야기 된 것이다.

 

37  “포하트”에 대하여 더 자세한 것은 스탠저 Ⅴ와 그 주석을 참조.

=============================================

?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