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씨크릿독트린

조회 수 40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스탠저 IV

 

 

칠중(七重)의 하이어라키

 

 

 

1. 그대, 땅의 자식들이여! 그대들의 스승들인 불의 자식들에 귀를 기울여라(a). 최초도 최후도 없음을 배워라. 모두가 하나라는 수가 없는 것에서 나온 수(數)이기 때문이다(b).

 

(a) “불의 자식들”이나 “불의 안개의 자식들”등의 용어는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 말들은 위대한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신비 하나와 관계되어 있으며, 그것을 명확히 설명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바가바드기타의 8장 1절에서 크리슈나는 다음과 같이 상징적이고 비교적으로 말하고 있는 구절이 하나 있다.

 

이 세상을 떠나는 헌신자들이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게(다시 태어나지 않게) 떠나는 때와 되돌아오게 되면서(다시 화신하는) 떠나는 때(상태)를 말하겠다. 불, 불꽃(炎), 낮, 밝은(행운의) 2주일 (달이 채워져 가는 운 좋은 십오일간), 태양이 북쪽 위도에서 돌고 있는 6개월, 이러한 때에 이 세상을 떠나는 브라흐만을 아는 사자(死者)들은 브라흐만에게 가게된다. 연기, 밤, 어두운(불행한) 2주일, 태양이 지구의 남쪽 위도를 돌고 있는 6개월, 이러한 때에 이승을 떠나는 사자(死者)는 달의 빛(또는 성수(星宿) 아스트럴광)에 가서 다시 돌아온다(재생한다). 밝음과 어둠의 이 두 가지 길은, 세계(혹은 대 칼파(great kalpa) 즉 “시대")에서는 영원하다고 말한다. 앞의 길로 가면 사람은 결코 되돌아오지 않고, 뒤의 길로 가면 되돌아온다.

 

달의 길 끝에만 이르게 하는 “연기”, “밤” 등과 같이 “불”, “불꽃”, “날”, “밝은 2주일” 등의 이름은 비교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가 우주-사이킥(Cosmo-psychic) 능력을 지배하는 다양한 신들의 명칭인 것이다. 우리는 종종 “불꽃”의 하이어라키(SD-2권 참조)나 “불의 자식들”의 하이어라키 등에 관해 말을 한다. 인도에서 가장 위대한 비교의 스승 상카라차리야는 불이란 시간(칼라kāla)을 지배하고 있는 신을 뜻한다고 말한다. 바가바드기타를 훌륭하게 번역해낸 인도 봄베이의 유능한 번역가 카쉬나트 트림바크 텔랑(Kāshināth Trimbak Telang)은 “이 구절의 뜻에 대하여 자신은 명확한 개념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고 인정하고 있다.(p.81 각주) 그러나 오컬트 가르침을 알고 있는 사람에 있어서는, 그 의미가 아주 명확한 것 같다. 태양과 달의 상징이 의미하는 신비적인 뜻이 이 싯귀와 관계가 있다. 피트리(Pitri)들은 달의 신들이며, 육체 인간을 창조했기 때문에 우리의 선조인 것이다. 아그니쉬와타(Agnishvātha)와 쿠마라(Kumāra)(일곱의 신비적인 현인)도 태양의 신들이다. 하지만 전자는 또한 피트리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내적인 인간을 형성한 자들”인 것이다.(SD 2권 참조)

 

그들은 “불의 자식들”이다. 왜냐하면 근원적인 불로부터 태어난 최초의 존재들(씨크릿 독트린에서는 “마인드들“이라고 불린다)이었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다.” “주(크리스토스는 불꽃 속에서 힘을 지닌 천사들을 거느리고 나타난다” 성령은 “갈라진 불의 혀들”처럼 사도들 위로 내려왔다. 비쉬누는 백마 즉 칼키(Kalki)를 타고 마지막 아바타라(Avatāra)로서 불과 불꽃가운데서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배화교의 구세주) 소쉬안트(Saoshyant)도 마찬가지로 “불의 토네이도(tornado)” 안에 백마를 타고 내려오시게 될 것이다. “또 내가 바라보고 있으니, 하늘이 열리고, 보라, 거기에 백마가 서 있다. 그것을 타고있는 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불린다. 이것도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 가운데 나타난다.

불은 가장 순수한 형의 에테르(Aether)이기 때문에 물질로 보지 않으며, 그 보편성에는 에테르의 통일체(unity)(즉, 두 번째로 현현한 신격)이다. 그렇지만, 두 가지의 불이 있으며 오컬트의 가르침에서는 이것들을 구별한다.

 

중앙 영 태양(Central Spiritual Sun)속에 숨어 있는 최초의 완전히 무형으로서 눈으로 전혀 볼 수가 없는 불은 (형이상학적으로) 삼중적이다. 한편, 현현한 우주의 불은 우주에서도 우리 태양계에서도 칠중적이다. “불, 즉 지식은 환영의 세계에서 행해지는 모든 행위를 완전히 태워 버린다”고 주석서에서 말한다. “따라서 그 불을 얻어 해탈한 자를 ‘불들’이라고 말을 한다.” 호트리들(Hotṛis), 즉 제사장들로 상징화된 일곱 개의 감각에 대해서 말하면서, 브라흐마나(Brāhmaṇa)는 아누기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리하여 이들 일곱[감각, 즉 후각, 미각, 색이나 음 등등]은 해탈의 원인인 것이다”. 그리고 주석자는 덧붙여서, “이 일곱으로부터, 자아는 해방되어야 한다. ‘나’(여기에서 나는 특성이 없다)는 이야기하고 있는 브라흐마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자아를 지칭하는 것이 틀림없다.” (“동양의 신성한 책들” 막스 뮐러 편집. 제 8권 278p)

 

(b) “모두가 하나라는 수이고, 수가 없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다”라는 표현은, 스탠저 III(주석 4)에서 막 설명했던 보편적이고 철학적 교의에서 다시 표시해 주고 있다. 절대자란 말할 것도 없이, 수가 없지만, 그 의미는 나중에 시간뿐만 아니라 공간에도 적용된다. 이 말은, 인간의 지성에서 생각해 낼 수가 있는 무궁한 동안 이어지는 가장 긴 기간(시대)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시간 증가는 더 큰 단위의 일부인 것이고, 현현한 것들은 어떤 것이든 더 큰 전체의 일부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전체의 총합은 미현현자 혹은 절대자―존재 즉 “하나”와 구별하기 위해 비존재 즉 무수(No-Number)로부터 나오는 유일한 현현된 우주이다.


 

 

 

2. 시초의 일곱으로부터 내려왔고 원초의 불꽃에서 태어난 우리들은 아버지들이 가르쳐주는 것을 배워라(a).

 

(a) 이것은 SD2권에 설명이 되어 있고 “원초의 불꽃(焰)”이란 이름은, 이 스탠저 IV의 앞의 주석 첫 문단에서 말했던 것을 확인해주고 있다.

“원초의 일곱”과 그 다음 일곱 건설자들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전자는 시초의 “성스러운 넷” 즉 테트락티스, 다시 말해 영원히 자재하는 유일자(현현했을 때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영원하며 우주적인 유일자와는 구별된다는 것을 주의해야한다)에서 나온 광선이자 직접적인 발산인 것이다. 프랄라야 동안에는 잠재적이고, 만반타라 동안에서는 활동적인 그 “원초의 일곱”은 부-모(영-물질, 즉 일루스)에서부터 나오지만, 다른 현현한 4개조와 일곱은 단지 어머니에게서만 나온다. 이 어머니는 때묻지 않은 동정녀-어머니인 것이다. 그녀는 라야(laya) 상태 즉, 미분화의 상태에서 나오게 될 때, 보편적인 신비(神秘)에 의해 임신되는 것이 아니고, 가려지게 되어지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이러한 것들은 모두가 하나이지만 존재의 여러 세계에 있어 그들의 모습(측면)은 서로 다르다.(제 2부 “창조적 신들의 계보”를 보라.)

최초의 “원초의 일곱”은 존재의 단계에서 가장 높은 존재들이다. 그들은 크리스트교에서 말하는 대천사들이고, 창조하기를 혹은 자손을 많이 갖기를(미카엘이 크리스트교에서 하는 것처럼, 브라흐마의 “마음에서 태어난 자식들” 중 가장 먼저 태어난 자들(베드하(Veddhas)처럼) 거부하는 존재들이다.


 

 

3. 끝없는 어둠의 광선 즉 빛의 광채로부터, 다시 깨어난 “에너지”(디야니-초한들)는 공간으로 달려나왔다. 알에서 나온 하나, 여섯과 다섯(a). 다음에는 셋, 하나, 넷, 하나, 다섯, 합계는 7의 배수이다(b). 그리고 이것들은 에센스이고 불꽃이며 원소이고 건설자이며, 수이고 “아루파”이며, “루파”였고, 그 총합은 힘 혹은 신성한 인간이다. 그리고 신성한 인간으로부터 형체, 섬광, 성스러운 동물들, 신성한 넷 내부에 있는 신성한 아버지(피트리)들의 사자(使者)들이 발산되었다.

 

⒜ 이것은 신성한 수의 과학과 관계가 있다. 이 학문은 대단히 신성하고 오컬티즘의 연구에 아주 중요하므로 이 책과 같이 방대한 저서에서도, 그 주제를 지나쳐갈 수가 없다. 극히 희귀한 경우 외에는 우리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이러한 존재들로 이루어진 하이어라키와 정확한 수에 전우주의 신비가 바탕을 두고 있다. 예컨대, 쿠마라는 실제로 그 수가 일곱이지만 “넷”이라고 불린다. 왜냐하면 사나카(Sanaka), 사난다(Sananda), 사나타나(Sanātana), 그리고 사나트-쿠마라(Sanat-Kumāra)가 “4중의 신비”에서 나올 때 주된 바이드하트라(Vaidhātra)(이들의 아버지의 이름을 딴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 전체를 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얼마의 독자가 친숙한 교의 즉 브라만교의 가르침을 예로 들 수밖에 없다.

 

마누에 의하면, 히란야가르바(Hiraṇgarbha)는 인식 불가능한 원인 없는 원인에 의하여 “태양처럼 찬란한 황금의 알”의 속에서 형성된 최초의 남성 브라흐마이다. 힌두-고전사전에서도 이와 같이 말한다. 히란야가르바란 황금색, 혹은 “광휘를 발하는 자궁” 또는 알이라는 뜻이다. 이 뜻에 남성이라는 수식어구가 붙는 것은 어색하다. 그 문장의 비교적인 의미는 아주 명확하다. 리그베다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것, 만물의 유일한 주... 신들과 인간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유일의 원리”는, 태초에 황금의 자궁 즉 히란야가르바 속에 나타난다. 히란야가르바는 “세계의 알” 즉, 우리의 우주의 구체인 것이다. 그 존재는 명백히 양성이고, 브라흐마가 둘로 나누어져 한 쪽(여성인 바흐Vāch)의 안에 자신을 비라즈(Virāj)로서 재창조한다고 하는 비유가 그 증거다.

 

“알에서 나오는 하나, 여섯과 다섯”은 1065라는 수가되고, 그것은 최초에 태어난 존재들(나중에는 남성과 여성인 브라흐마-프라자파티Brahmā-Prajāpati)의 “수값”이며, 각각 7과 14와 21에 해당된다. 프라자파티는 세피로트와 마찬가지로 일곱이며, 그것은 일곱이 생겨나는 근원인 통합적 세피라 즉 삼개조를 포함하고 있다. 이리하여 히란야가르바 즉 프라자파티로부터, 다시 말해서 트리운(triune)(최초의 베다의 삼위일체인 아그니, 바유 그리고 수리야)으로부터 다른 일곱 혹은 열이 발산되어 나온다. 만일 우리가 하나로 존재하는 최초의 셋이자 셋 속에서 존재하는 하나를 분리한다면 열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모두가 "비밀스러운“을 뜻하는 구햐(Guhya)와 ”초월적 혼“이라는 뜻의 사르바트마(Sarvātma)라고 불리는 그 유일한 ”최상의“ 파라마(Parama)내에 포함된다.

“존재의 일곱 주님은 하나의 두뇌 속의 생각들처럼 사르바트마 안에 숨겨져 있다”. 세피로트도 그렇다. 케텔을 머리로 해서 위의 삼개조로부터 헤아릴 때 일곱 혹은 현교적으로 열이 된다. 마하바라타에서 프라자파티의 수는 21이다. 즉, 10과 6과 5 (1065) 혹은 7의 3배수이다.

 

(b) “셋, 하나, 넷, 하나, 다섯”(총계를 하면 7의 배수)은 31415 즉 여러 단계의 디야니-초한들이나, 내적(혹은 제한된) 세계의 숫자적 하이어라키를 나타낸다. “넘지 말라고 정해진” 거대한 원의 경계-또한 디야니파사(Dhyānipasa) 즉 “천사들의 밧줄”, 다시 말하면 현상 우주와 본체적 우주를 경계짓는 “밧줄”(이것은 현재 우리의 객관의식으로는 도달할 수 없다)에 놓여질 때, 이 수값은 그 숫자를 치환하고 확장시킴으로써 커지지 않을 때 아나그램적으로 그리고 카발라적으로 항상 31415이며, 원의 수이자 신비적인 스와스티카의 수이다. 즉 7의 배수 14이다. 왜냐하면 어떤 방식으로든지 두 세트의 수를 헤아릴 때, 개별적으로 숫자가 십자형으로 추가되든지 오른쪽에서 혹은 왼쪽부터 더하든지 간에 항상 14를 이루기 때문이다. 수학적으로는 이 숫자는 잘 알려진 계산, 원주율 3.1415를 나타내며 파이(π)값이라고 불린다. 이 파이는 그 값을 나타내기 위해 수학공식에서 상징으로 사용된다.

 

이 숫자는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1: 314,159와, 또 1: 3: 1,415,927(편주17)은 “최초에 태어난 자”의 여러 주기와 시대, 대략 311,040,000,000,000을 나타내기 위한 비밀스러운 계산방법에 의해 나온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다루지 않는 어떤 방법으로, 똑같은 13,415가 된다. 또 「측정의 기원」의 저자 랄스톤 스키너(Ralston Skinner)는 히브리어 Alhim(엘로힘)에서 0을 빼버리고 숫자의 위치를 바꾸어 같은 값 13,514를 얻고 있다, 왜냐하면 Alhim의 Aא는 1, Lל는 3(30), Hה는 5, Iי는 1(=10), 그리고 M은 4(=40)이며 숫자의 순서를 바꿈으로써, 그가 설명한 대로 31,415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형이상학의 세계에서, 하나의 중점을 가지는 원에는 수가 없고 아누파다카(어버이도 없고 수도 없다)라고(계산의 영역에 속할 수가 없다) 말하지만, 현현된 세계에서는 세계의 알 혹은 세계의 원은 선과 삼각형과 펜타클(五角星)과 두 번째의 선과 입방체(즉 13514)라고 불리는 여러 그룹 내에 제한되어 있다. 선을 이루는 중점은 양성(兩性)의 로고스를 나타내는 직경으로 되며, 그때 숫자는 삼각형과 선과 입방체와 두 번째 선과 펜타클, 31415가 된다. “자식은 어머니에서 떨어져 나오면 아버지가 된다.” 이 경우, 직경은 대자연 즉, 여성원리를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존재의 세계에서, 유일한 중점은 선(線)(우주의 동정녀-모태(알 모양의 0))이라는 결실을 잘 맺고, 때묻지 않은 어머니는 모든 형체를 결합하는 형체를 낳게 된다.” 프라자파티는, 처음 자손을 만들어내는 남성이자 “그의 어머니의 남편”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때가 묻어있지 않은 어머니에서부터 이후에 태어나는 모든 신성한 아들에게 기본방침이 된다. 또 다음의 의미심장한 사실에 의해서도 확인이 된다. 로마카톨릭에 의해 흠 없이(“마리아는 죄없이 잉태되었다”) 딸을 낳았다고 설명되는 (성모 마리아의 모친인) 안나는 칼데아어 아나(Ana), 하늘, 혹은 아스트럴광, 아니마 문디로부터 유래한다. 그러므로 시바의 아내 아나이티아(Anaitia) 즉 데비-두르가(Devī-durgā)는 또한 안나푸르나(Annapūrṇa)와 카냐 즉 처녀라고 불린다. 그리고 “우마-카냐(Umā-Kanyā)”는 그녀의 비전적 이름이며 아스트럴광의 무수한 측면의 하나인 “빛의 처녀”를 의미하다.

 

(C) 데바들, 피트리들, 리쉬들 그리고 수라나 아수라 또 다이티야들과 아디티야들 그리고 다나바들과 간다르바들(Gandharvas) 등등은 씨크릿독트린에서도, 카발라나 히브리의 천사론에서도 모두 같은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고대의 이름을 열거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혼란만 일으킬 뿐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신성한 힘을 가진 존재들과 천상의 천사들로 이루어진 크리스트교의 하이어라키에는 이러한 이름들을 많이 볼 수가 있다. 좌천사(座天使)나 주천사(主天使), 역천사(力天使), 권천사(權天使), 지천사(智天使)나 치천사(熾天使)나 악마 등, 별들의 세계에 살고있는 주민들은 태고의 원형들에 대한 근대의 복사물인 것이다. 이 명칭들을 그리스어나 라틴어로 음역하여 정리하면, 그 상징만으로도 그 사실을 충분히 보여준다. 아래에 몇 가지 예를 들어서 증명해 볼 생각이다.

 

“신성한 동물들”은 카발라에서만 아니라 성서에서도 나와있고, 그 의미(참으로 깊숙한 뜻을 담고 있다)는, 생명의 기원을 기록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형성의 서(Sēpher Yetzirāh)」에서는 말한다. “신은 신성한 넷 즉 오파님(Ōphannīm)(바퀴들 혹은 세계-천구World-Spheres), 세라핌(Serāphīm), 신성한 동물들과 봉사하는 천사들 속에 그의 영광의 보좌를 새겼다. 그리고 그 셋에서부터 (공기, 물 그리고 불 혹은 에테르) 그는 그의 거처를 형성했다.” 이리하여 세계는 “셋의 세라핌-즉, 세페르(Sēpher), 사파르(Saphār)와 시퍼(Śippēr)-를 통해” 다시 말하면 “수, 수들과 세어진 것”을 통하여 만들어졌다. 천문학적 열쇠를 사용하면, 이러한 신성한 동물들은 황도 12궁이 된다.

 

 

 

4. 이것은 목소리의 군대, 즉 신성한 7개조였다. 일곱의 불꽃은, 일곱 중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에 종속되며, 그 하인들인 것이다(a). 이 불꽃은 구체, 삼각형, 입방체, 선, 조형자(Modeller)들이라고 불린다. 영원한 니다나(Nidāna)는―“OI-HA-HOU”(Oeaohoo가 치환)―이와 같이 일어나기 때문이다(b).

 

(a) 스탠저의 이 절(sloka)은, 인도에서는 데바라고 불리는 디야니-초한들 즉, 자연계의 의식적이고 지적인 세력인 하이어라키를 간결하게 다시 분석하고 있다. 인류를 분류할 수 있는 실제의 유형들은 각각 이 하이어라키에 상응한다. 왜냐하면 인류 전체는 하이어라키로부터 물질화 되었지만 아직까지는 불완전한 하이어라키의 구현이기 때문이다. “목소리의 군대”는, 원인 즉 신성한 상념의 결과와 당연한 귀결로서의 소리와 말의 신비와 밀접하게 연관된 용어이다. 「매직의 역사」와 「튈르리 궁전의 붉은 사나이」의 학식 있는 저자 P. 크리스티언이 아름답게 표현한 것처럼, 모든 개인의 이름뿐만 아니라 그가 이야기한 말은 자신의 장래 운명을 주로 결정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들의 혼(마인드)은 생각을 창조하거나, 생각을 해낼 때, 그 생각의 표상적인 흔적을 스스로 아스트럴의 유체(流體)에 새겨 넣는다. 아스트럴 유체는 존재하는 모든 현현을 수용하는 그릇이자 투영하는 거울 같은 것이다.

그 흔적은 사물을 나타내고 사물은 그 흔적이 가지고 있는 (숨어 있는 또는 오컬트적인) 효력인 셈이다.

 

어떤 말을 발성한다는 것은 생각을 일으켜서, 그 생각을 실현시키는 것이다. 인간의 말이 지니는 자기적 잠재력에서 오컬트 세계의 모든 현현이 시작된다. 어떤 이름을 말하거나 발성하는 것은 어떤 존재(실체)를 명확하게 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그 말을 함으로써 그 존재를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오컬트적 능력의 영향을 받아 그 운명을 결정지음을 의미한다. 사물들은 우리 모두에 의해 이름 불려지는 동안에, 그 말[Verbum]에 의해 형성되어진다. 모든 사람의 말[Verbum]은 자신도 전혀 모르게 하나의 축복이거나 저주가 된다. 이것이 물질(MATTER)의 속성과 특징뿐만 아니라 개념(IDEA)의 특성이나 속성들에 관한 우리의 현재의 무지가 종종 우리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이름 혹은 명칭(과 말)은 유익하든지 해롭든지 둘 중 하나다. 이것은 최상의 지혜가 말의 요소 즉, 말을 구성하고 있는 문자와 그 문자에 상호 관련된 수(數)에 따라, 어느 의미에서는 유해하든지 아니면 건강을 가져다준다.

 

이것은 동양의 모든 오컬트 학파가 받아들이는 비교의 가르침 중 하나로서 진실 그대로인 것이다. 산스크리트어, 히브리어 그리고 그 외의 모든 언어의 알파벳에 있어서, 각 문자에는 비교적인 뜻과 원리가 있다. 각 문자는 하나의 원인이며, 이전 원인의 결과이고, 문자를 조합하면 종종 가장 불가사의한 결과가 발생한다. 특히 모음에는 가장 비밀스럽고 강력한 힘이 담겨있다. 만트라는 (비교적으로, 종교적이라기 보다는 마술적이다) 브라만교도들에 의하여 함께 발성되며, 베다와 다른 경전들도 마찬가지다.

 

“소리의 군대”는 “로고스 군대”의 원형, 즉 형성의 서에서 말하는 “말씀”이며, 씨크릿독트린에서는 유일의 영원한 원리인 “무수(無數)로부터 나오는 하나, 즉 유일자”라고 불린다. 비교의 신통계보는 현현했을 때에는 그 임재와 존재는 영원하지 않지만 그 본질에서는 영원한 유일자에서부터 시작한다. 그것은, 수(數)들과 헤아려진 것들의 수인 것이다. 헤아려진 것들은 소리, 즉 여성 바치(Vāch), “백가지 형태”의 사타루파(Śatarũpā) 혹은 자연으로부터 나온다. 10이라는 수, 창조적 자연, 또는 어머니(단일체인“나”로서의 하나, 곧 생명의 영과 결합해서 늘 생식하면서 증대하는 오컬트의 0)에서 전 우주는 생겨났다.

 

아누기타 6장 15절에는, 말의 근원과 그것이 지니는 오컬트적 특성에 관해서 어느 브라흐마나와 그의 아내와의 대화가 들어 있다. 아내는 말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말과 마인드 중 어느 편이 먼저였는지를 질문했다. 브라흐마나의 설명에 의하면, 주인인 아파나(Apāna, 들이마시는 숨)가 말 혹은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지성을 아파나 상태로 바꾸어 마인드를 연다. 그리고 브라흐마나는 말(Speech)과 마인드 사이의 대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말과 마인드는 함께 “존재의 자아”(닐라칸타Nīlakaṇṭha의 생각으로는 개인의 고급 자아, 주석자 아르쥬나 미스라(Arjuna Misra)에 의하면 프라자파니)에게 가서 자신들의 의문을 풀어주고, 어느 쪽이 먼저이며 뛰어난 지를 결정해주도록 요청했다. “마인드가 먼저다”라고 주인은 말한다. 그러나 말은 존재의 자아에게 답한다. “나는 참으로 당신의 소원을 이루어주고 있습니다.” 말을 함으로써 자신의 욕구를 이룬다는 뜻이다. 또 다시, 존재의 자아는 마인드에는 “움직일 수 있는” 것과 “움직이지 못하는” 것 두 가지가 있다고 말에게 이야기한다. “움직일 수 없는 마음”은 나와 함께 있지만, 움직이는 마음은 물질계에서 그대(즉 말)의 지배를 받는다.” “그대는 움직일 수 있는 마인드보다는 뛰어나다.”

 

오, 아름다운 이여! 그대는 대단히 자랑스럽게 나에게 이야기하러 왔기 때문에, 오, 사라스바티(Sarasvatī)여, 그대는 (거센) 숨을 몰아쉰 후에 절대 말을 할 수가 없게 되고 만다.” “말의 여신(바치Vāch의 훗날의 한 형태 혹은 측면인 사라스바티이자, 비밀의 학식과 비전적 지혜의 여신)은 참으로 언제나 프라나와 아파나의 사이에 살고 계셨다. 그러나 고귀한 이여! 프라나(내쉬는 숨)도 없이 서둘러 아파나 바람(생명의 공기)과 함께 가면서, 그녀는 프라자파티(브라흐마)에게 달려가서 ‘기뻐하십시오. 오 존귀한 분이시여!”라고 말했다. 바로 그때 프라나가 다시 나타나서, 말(Speech)에게 힘과 에너지를 주었다. 그래서 (거세게 숨을 내쉬거나) 숨을 몰아쉰 후는, 결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말은 항상 소리를 거느리는 것과 거느리지 않는(noiseless) 것이 있다. 두 가지 중에, 소리를 거느리지 않는 것이, 소리를 거느리는 것보다는 우위인 것이 된다. . . . 프라나에 의해 몸 안에 생기는 말은 아파나 안으로 들어가서(아파나로 변형되어) 우다나(육체의 발성기관)에 동화되는 그 말은 . . . . 마침내 사마나(Samana, 배꼽) 안에 거주한다. (아르쥬나 미스라가 말하는 것처럼 모든 말의 물리적 원인으로서의 소리의 형태로 배꼽에 있게 된다.) 말(의 여신)은 이전에 그와 같이 말했다. 따라서 마음의 특징은 그것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에 있고, 여신(말)의 특징은 자신이 움직인다는 것에 있다.“

 

이 우화는 다음과 같은 오컬트 법칙의 근본바탕을 이룬다. 영적 마인드(제6감)에 의하지 않고서는 인식을 할 수가 없고, “요란”하거나 입으로 발성된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는, 비밀스럽고 눈으로 볼 수가 없는 것들에 대한 지식에 관해서는 침묵을 규정하는 것이 바로 그 법칙이다. 아르쥬나 미스라에 의하면, 아누기타의 이 부분에는 프라나야마, 즉 요가 수행에 있어 호흡의 조절을 설명하고있다. 그러나, 뒤에서 설명할 예정이지만, 더 높은 두 개의 감각(일곱 개의 감각 중 상위의 감각 두 가지)을 미리 터득하던가 최소한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이러한 호흡의 조절은 오히려 낮은 차원의 요가가 된다. 하타요가가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르하트들은 그것에 반대한다. 그것은 건강을 해치고, 결코 라자요가로 발전할 수가 없다. 앞의 이야기를 여기서 인용한 것은, 고대의 형이상학에서는, 지성을 지닌 존재들, 오히려 “지자(知者)들” (Intelligences)이 육체적 및 정신적인 여러 감각이나 기능에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나를 나타내기 위해서다. 7가지 의식상태가 있는 것처럼 자연과 인간 속에는 7개의 감각이 있다는 오컬트의 주장은 인용한 책에서 프라티아하라(감각의 억제와 조절, 그리고 프라나야마는 “생명의 바람” 즉 호흡의 억제와 조절이다)에 관한 7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브라흐만은 “일곱의 희생적인 성직자(호트리Hotṛi)들을 임명하는 것”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코, 눈, 혀, 피부와 다섯 번째인 귀(말하자면, 후각, 시각, 미각, 촉각, 청각), 마인드와 이해(悟性), 이것들은 각각의 장소에 위치하는 일곱의 희생적인 성직자들인 것이다. 그들은 아주 좁은 공간에서 살고 있지만, 이 감각세계에서는 마음을 제외하고는 서로를 인식하지 못한다. 마인드는 다음과 같이 말을 한다. 내가 없으면, 코는 물건의 냄새를 맡을 수가 없다. 눈은 색(色)을 받아들일 수 없다. . . 모든 원소(즉 감각) 가운데서 나는 영원한 우두머리이다. 내가 없으면 감각은 빈집과 같이, 혹은 불길이 꺼진 불과 같이, 결코 빛을 발하지 못한다. 내가 없으면, 모든 존재는 덜 말라 물기가 있는 장작처럼, 오감(五感)이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해도, 여러 가지 성질이나 사물을 이해할 수가 없다.

 

물론 이것은 감각세계의 마인드에게만 해당된다. 영적 마인드(비인격적인 마나스(Manas)의 측면은 육체 인간 속의 오감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고대인이 여러 힘의 상호관계와, 최근에 발견된 정신적 및 물리적인 능력과 기능의 현상, 그 외 여러 가지 신비에 얼마나 정통했는가를 알려면, (철학과 신비적인 학식에 있어) 대단히 귀중한 「아누기타」의 7장과 8장을 읽으면 좋다. 거기에서 여러 감각 능력은 각각의 우열을 겨루며 언쟁하는데, 만물의 주 브라흐만을 중재자로 삼는다.

 

그대들 모두가 가장 우수하면서도 전혀 우수하지도 않다. (아르쥬나 미스라가 말한 것처럼, 감각 능력은 서로간 독립해 있지 않으므로, 사물보다 우수하지 못하다.) 그대들은 모두 서로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모두 각각의 영역 안에서는 가장 우수하며, 모두가 서로를 지탱한다. 움직이지 않는 것(생명의 바람 혹은 숨, 유일한 자아 혹은 상위의 자아의 숨인 “요가의 들이쉬는 숨”)이 하나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의 자아이며, 수많은 형상 속에 축적되어 있다.

 

이 숨, 목소리, 자아 또는 “바람”(프뉴마pneuma)은 일곱 감각의 총합인 것이다. 일곱의 감각은 본체적으로는 모두가 작은 신들이고, 비교적으로는 하나를 이루고 있으며, “목소리의 군대”인 것이다.

 

(b) 다음으로, 우리는 우주의 질료가 사방으로 흐트러지고 스스로 원소를 형성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질료는 그룹을 지어 제 5원소 즉 에테르 내에서 신비적인 사대(四大)로 된다. 제 5원소 에테르는 아카샤의 내부 혹은 아니마 문디 또는 우주의 어머니이다. “점․선․삼각형, 입방체, 원”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球)”로 되지만, 왜, 어떻게 해서일까? 그것이 자연의 제일법칙이고, 자연에서 모든 것의 현현은 일반적으로 기하학적 방법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라고 주석서에 말을 하고있다. 근원적 질료뿐만 아니라, 우리가 인식하는 현상계에 현현해있는 질료에서도 어떤 고유의 법칙이 있는데, 그 법칙에 의하여 대자연은 기하학적 형체와 또 뒤에는 자연의 복합적 요소들과도 상호 관계를 가진다. 그 법칙에는 우연이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대자연에는 운동의 중단이나 정지는 없다는 것이 오컬티즘의 근본 법칙의 하나이다. 운동의 중단처럼 생각되는 것은, 단지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의 변화에 불과하다. 또 질료의 변화에는 형체의 변화가 반드시 따르는 것이다. 이 사실을 우리는 오컬트 물리학에서 배우게 된다. 이러므로, 오컬트 물리학은 아득한 옛날에 이미 “물질은 보존된다는” 사실이 발견될 것을 알았던 것처럼 보인다. 스탠저 IV에 대한 고대의 주석서에는 다음과 같이 말을 한다.

 

어머니는 불의 “생명의 물고기”이다. 그녀는 알(卵)을 사방으로 흩날려버리고, 숨(운동)이 그것에 열을 주어 활성화시킨다. 하나 하나의 알은 모두 서로가 끌어당기면서 (공간의) 커다란 바다 속에 응유(凝乳)를 형성한다. 보다 큰 덩어리는 합체하여, 새로운 알을 받아드려 불의 점(点)들과 삼각형들과 입방체들을 이룬다. 입방체들은 성숙하여. 때가 이르게 되면 얼마의 덩어리는 분리되어 떨어져 구상(球狀)의 형체를 취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다른 덩어리에 의해 방해를 받지 않는 때에만 일어난다. 그후 제 .. 법칙이 작용을 개시한다. 운동(숨)은 회오리바람으로 되고, 그 구체들을 회전시킨다.

 

 

5. . . . .는 암흑, 무한한 것이며, 수(數)가 없는 것, 아디-니다나(Ādi-Nidāna) 스바바바트(Svabhavat)이다. 다시 말하면 ○(x, 알 수 없는 양)이다.

Ⅰ. 아디-사나트(Ādi-Sanat) 즉 수. 왜냐하면 그는 하나이기 때문이다(a).

Ⅱ. 말씀의 목소리 즉 스바바바트 다시 말하면 모든 수. 왜냐하면 그는 하나와 아홉이기 때문이다.

Ⅲ. “무형의 정방형” 즉 아루파(Arūpa)(b).

그리고, ○(무한한 원) 안에 갇혀버린 이 셋은 신성한 4이다. 그리고 10은 아루파(주관적, 무형의) 우주인 것이다(c). 다음에는 자식들(일곱은 전사이며 여덟째는 제외된다)과 그의 숨(Breath)이 온다. 그 숨은 빛을 만드는 자(Bhāskara)이다(d).

 

(a) 아디-사나트(Ādi-Sanat)는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최초의 것 또는 “원초적” 고대의 존재이다. 이 이름은 카발라의 “날(Day) 중 고대의 날(또한 성경에서는 옛적부터 계신이)”과 “성스러운 늙은 자”(세피라(Sephīrāh)와 아담 카드몬(Adam Kadmon))과 같으며, 창조주 브라흐마와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브라흐마는 여러 가지 이름과 칭호가 있으나, 사나트(Sanat)라고도 부른다.

스바바바트는 신비적인 에센스, 다시 말해 물리적 자연을 이루는 가소성(可塑性: 형성력)을 가진 뿌리인 것이다. 그것은 현현했을 때는 “수들(Numbers)”이 되고, 최고의 세계에서는 질료의 통일체 상태로서의 수인 것이다. 이 명칭은 불교에서 사용되며, 사중적인 아니마 문디이며 카발라의 원형세계와 동의어이다. 원형 세계부터 창조 세계, 형성세계, 물질세계가 나온다. 그리고 창조세계에서 물질세계에 포함된 다른 모든 다양한 세계들인 불꽃들 즉 섬광들이 나온다. 세계는 모두가 통치자, 말하자면 힌두교의 리쉬들이나 피트리들, 유태교와 크리스트교가 말하는 천사들 혹은 고대인이 일반적으로 이야기했던 신들의 지배를 받는다.

 

(b) ○. 이것은 “무한의 원” (영zero)은 다른 아홉 개의 숫자 중 하나가 앞에 놓여지게 되면, 처음으로 숫자 혹은 수로 되어, 그 값과 잠재력을 나타낸다는 뜻이다. 소리(음성) 및 영(靈)과 하나가 된 말씀 즉, 로고스는 아홉 개의 숫자를 나타내며, 영(0)과 함께, 자신 속에 전 우주를 포함하는 10을 형성한다. 삼개조는 원 안에 테트락티스 즉, 신성한 4를 형성한다. 그러므로 원 안의 정사각형은, 모든 마법의 도형 중 가장 강력한 도형이다.

 

(c) “거부당한 하나”란 우리의 태양계의 태양이다. 이에 대한 현교적인 내용은, 고대 산스크리트 경전 안에서 찾을 수 있다. 리그베다에서 아디티, “무궁한” 또는 무한공간이라 말하는 것, 막스 뮐러의 번역에서는 “육안(!!)에 보이는, 눈에 보이는 무한한 것, 즉 땅을 넘어, 구름을 넘어, 하늘 너머 한없이 넓게 펼쳐진 광활한 공간”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머니-공간”과 똑같은 것이다. 그녀는 “신들의 어머니”인 데바-마트리(Deva-Mātri)라고 불리는데 아주 적절한 표현이다. 왜냐하면, 우리 태양계의 모든 천체, 즉 태양과 행성들은 그녀의 우주적 모체에서부터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다음과 같은 비유로 묘사된다. “여덟 자식”이 아디티의 몸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일곱을 데리고 신들에게 가까이 갔지만, 여덟 번째의 자식인 마르트탄다(Mārtāṇḍa, 우리의 태양)를 버렸다”. 아디티야(Āditya)라고 불리는 일곱 자식은 우주적 혹은 천문학적으로 말을 한다면, 7개의 혹성이다. 태양이 그 숫자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은 천왕성으로 부르지는 않았지만 힌두인들이 일곱 번째 혹성을 알고 있었을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사실은 알고 있었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비교적으로 또 신학적으로 말한다면, 아디티야들은 가장 근원적인 고대의 의미가 힌두교의 만신 중에서 여덟의 위대한 신과 열둘의 위대한 신들이다. “일곱 신들은 자신들의 거처를 인간들에게 보여주지만, 아르하트에게만 자신들을 보여준다”고 옛 격언에서 말하고 있다. 여기서, “자신들의 거처”란 혹성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고대의 주석서는 이것에 관하여, 비유로써 설명하고있다.

 

“8개의 집이 어머니에 의해 지어졌다. 여덟의 신성한 자식들을 위해서 지은 것이다. 넷은 크고, 넷은 작다. 각자의 나이와 공적에 따른, 여덟의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태양이었다. 발-일루(Bal-ilu) 즉 마르트탄다는, 자신의 집이 제일 컸지만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큰 코끼리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형제들의 생명의 바람을 자신의 뱃속으로 흡입했다. 탐욕스럽게 그들을 잡아먹으려 했다. 보다 큰 네 형제는 먼 곳에, 멀리 그들의 나라 국경에 있었다. 그들은 생명의 바람을 빼앗기지(영향을 받지) 않았으므로 웃으면서 말했다. “마음대로 해 보라, 아무리 애를 써보았자 우리들 있는 곳까지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작은 형제들은 어머니에게 울며 매달려서 불평을 했다. 어머니는 발-일루를 나라의 중앙으로 추방했다. 그(태양)는 그곳에서 움직일 수 없게 됐다. (그때부터) 그는 단지 형제들을 바라보고 위협하기만 했다. 그(태양)는 서서히 자전하면서, 그들을 뒤쫓지만, 그들은 잽싸게 그로부터 멀리 떨어진다. 그리고, 형제들은 자신의 집을 둘러싼 길을 따라 나아가고, 그는 멀리서 같은 방향으로 따라간다. 그날부터 그는 어머니의 몸에서 나온 땀을 먹이로 삼고있다. 어머니의 숨과 배설물로 자신을 가득 채운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를 내버렸다."

 

그래서, “버림받은 자식”은 위에서 본 것처럼 우리의 태양이 분명하므로, “태양인 자식들(Sun-Sons)”은 우리 태양계의 혹성만 아니라 일반적인 천체를 언급한다. 자신은 중앙 영 태양의 반영의 하나일 뿐이지만, 수리야(Sūrya)는 자신 뒤에 진화하는 모든 천체의 원형이기도 하다. 베다에서, 태양은 로카-착슈(Loka-Chakshuh) 즉, “세계(혹성들로 이뤄진 우리의 태양계)의 눈”이라고 말을 하며, 셋의 주된 신 중 하나이다. 태양이 전혀 무관하게, 디야우스(Dyaus)와 아디티(Aditi)의 자식으로 불린다. 왜냐하면 비교적인 뜻을 구별하거나 허용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태양에는 일곱 마리의 말과 7개의 머리를 가진 말이 그를 끌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앞의 일곱 마리의 말은 태양계의 일곱 혹성을 표시한 것이고, 뒤의 한 마리의 말은 일곱의 혹성들이 가진, 유일한 우주적 원소에서 온 공통의 기원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이 유일한 원소는 비유적으로 “불”이라 말한다. “진정으로, 불은 모든 신들이다”라고 베다에서 가르친다.

 

이 우화의 뜻은 명백하다. 왜냐하면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쟌의 주석서와 근대과학이(비록 여러 세부 사항에서는 서로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7개의) 대혹성들이(현재 우리 눈에 보이는 태양이 아닐지라도 어쨌든) 태양의 중심 질료에서 진화하였다고 말하는 성운설에서 유래한 그 가설을 오컬트의 가르침은 부정한다. 우주적 질료의 최초의 응축은, 물론 하나의 중심 핵, 즉 어버이인 태양의 둘레에서 일어났다. 그렇지만, 오컬트의 가르침에 의하면, 회전하는 질료의 덩어리가 수축하는 순간에, 우리들의 태양은 다른 것들보다 더 빨리 어버이 태양에서 분리했을 뿐이므로, 혹성보다는 더 연장이고 더 크긴 하지만, 그들의 아버지는 아니다. “신들”이라고 불리는 여덟의 아디티야는 모두가 영원한 질료 (혜성의 물질 즉, 어머니), 바꾸어서 말한다면 “세계-질료”에서 생겨난 것이다. 이 세계재료는 우주의 제5 및 제6 원질이며, 우주혼(Universal Soul)의 우파디 혹은 토대이다. 이것은 마치 소우주인 인간의 경우에 마나스가 붓디의 우파디인 것과 같다.

 

우주가 최종적으로 형성되기 전에 일어난, 성장하고 있던 여러 혹성들 사이에 발생한 창세전의 싸움에 관한 시가 한편 있다. 싸움을 통해서 여러 혹성계가 왜 교란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가를 설명할 수 있다. 어떤 혹성들(가령, 고대인에게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고 말하는 해왕성과 천왕성)의 위성의 궤도면이 극단적으로 기울어져있어, 역행적 운동을 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지를 설명한다. 이러한 혹성을 전사(戰士) 또는 건축가라고 말하며, 로마카톨릭교에서 천군(天軍)의 지도자로서 받아들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비교에 의하면, 태양은 우주공간에 나타난 후, 혹성들이 최종적으로 형성되고 혹성의 성운이 고리를 형성하기 전에, 가능한 많은 우주의 생명력을 자신(질량) 속으로 깊숙이 끌어들여, 인력과 반발의 법칙이 마지막으로 바로 잡히기 전에, 더 약한 형제를 빨아들이려고 했다. 인력과 반발의 법칙이 자리를 잡고 난 후, 태양은 “어머니의 배설물과 땀”을, 다시 말하면, 과학에서 아직 그 존재와 구성을 전혀 모르는 에테르(보편적 혼의 호흡)의 어느 부분을 양식으로 삼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이론이 윌리암 그로브(William Grove)경에 의해 제시되었기 때문에, 태고의 가르침은 현시대에서도 충분히 과학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다음과 같은 이론을 주창했다. 여러 항성계는 “대기가 추가되고 감소함에 의해서, 즉 성운의 질료(물질)에서부터 일어나는 증대와 감소에 의해서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또한, ”태양이 공간 속에서 운동하면서 기체를 압축시켜 열이 발생할 수도 있다.“ 마티유 윌리엄씨는, 우주의 열복사의 수용체인 확산된 질료 혹은 에테르는, 그로 인하여 태양 깊숙한 곳으로 끌려간다는 설을 제창했다. 그의 설에 의하면, 이전에 응축되어 열을 소진한 에테르를 그곳에서 방출하면서, 새로 흡수된 에테르는 압축되어 그 열을 다 내놓아 복사열이 없는 차가운 상태로 방출되며, 새로운 열을 흡수한다. 이 새롭게 공급되는 열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에테르에 의해 흡수되어 우주의 모든 태양들에 의해 응축되어 재분배된다고 그는 생각한다.

 

이것은 과학에 의하여 생각해 낸 여러 가지 설 중에서 아마 오컬트의 가르침에 가장 가까운 것이다. 왜냐하면 오컬티즘은 그것을 마르트탄다가 내쉬는 “죽음의 숨(dead breath)”과, “어머니 공간”의 “땀과 찌꺼기”를 먹고산다고 함으로써 설명한다. 해왕성과 토성과 목성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하는 작용도, 수성이나, 금성이나, 화성처럼 비교적 작은 집들은 파멸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천왕성은 18세기말에서야 발견되었기 때문에, 이 비유에서 언급된 네 번째 혹성의 이름은 우리에게 있어 아직 신비이다.

 

(d) 그 “일곱” 전체의 “숨”은 바스카라(Bhāskara), 즉 빛을 만드는 것이라고 이야기된다. 왜냐하면, 그들(혹성들)은 모두가 원래 혜성과 태양이었다. 그들은 영원한 질료의 최초의 분화물을 모아 축적함으로써 (지금은 분해될 수 없는 성운들의 원체인) 태고의 혼돈에서부터 만반타라의 생명으로 진화한다. 주석서에 있는 아름다운 표현을 따르면 다음과 같다. “그리하여 빛의 자식들은 암흑으로 짜여진 천으로 몸을 둘렀다.” 그들은 “하늘의 달팽이”라고 상징적으로 불린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형상이 없는 그들의 지성을 지닌 실재가 항성 집과 혹성 집에 눈에 보이지 않게 살고 있으며, 그들이 회전할 때 달팽이가 움직일 때 하는 것처럼 그의 집을 운반한다. 모든 천체와 혹성에는 공통의 기원이 있다는 가르침은, 현재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이, 케플러, 뉴톤, 라이프니츠, 허셜과 라플라스 이전에, 고대의 천문학자들이 가르쳤다. 열(숨)과 인력과 반발은 운동의 세 가지 주된 요소이다. 그 조건하에서 이 태초의 가족들은 탄생하여 성장하고 죽어서, “브라흐마의 밤”이 끝나면, 다시 태어난다. 브라흐마의 밤 동안, 영원한 질료는 주기적으로 원래의 미현현 상태로 돌아간다. 근대 물리학자는, 가장 희박한 기체 상태를 관찰해서도 미현현 상태의 성질에 관한 개념을 얻을 수가 없다. 최초의 힘의 중심들, 즉 원초적 원자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불꽃(섬광)들은, 분화되어 분자로 되고, 태양이 되어 기체적 상태, 찬란한 빛을 발하는 상태, 그리고 우주적인 상태를 거치면서 서서히 물질적으로 현현하게 된다. 그리고 유일한 “회오리바람(운동)”이 마침내 그 물질적 형태(를 띤 태양)에게 자극을 주게되며, 이로 인해 일어나는 최초의 운동은 결코 멈추지 않는 숨들인 디야니-초한들에 의해 조절되고 유지된다.

 

 

6. . . . . 그 다음에는 두 번째의 일곱이 있다. 이들은 리피카(Lipika)들이고, 그 셋(말씀, 목소리, 영)에 의해 탄생했다. 버림받은 자식은 하나이며, “자식-태양들”은 무수하다.

 

리피카는 “글을 쓰다”라는 뜻의 리피(lipi)에서 유래한 말로써 문자 그대로 서기(書記)를 의미한다. 신비스럽게도, 이 신성한 존재들은 카르마, 즉 응보의 법칙과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간의 모든 행위와 생각까지도, 그리고 현상우주 안에서 과거에 있었던 것, 현재 있는 것, 그리고 이후 있게 될 모든 것들에 대한 충실한 기록을, 말하자면 “영원의 대화랑”을 아스트럴광으로 된, 우리 눈으로는 볼 수가 없는 서판에 새기는 기록관 혹은 연대기 편자인 것이다. 이시스 언베일드(1권 343p)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 신성한 눈에 보이지 않는 캔버스는 생명의 책이다. 수동적인 우주 마인드(우주심)로부터 건설자들이 각 프랄라야 후에 우주를 재건할 때의 청사진인 우주의 이상적인 계획을 객관적인 상태로 투사하는 것은 리피카들이므로, “신의 앞에 있는 일곱 천사들”(크리스트교에서는 일곱의 “혹성영들” 혹은 “별들의 영들”로 인식하고 있다)과 나란히 서는 존재들이 바로 그들이다. 왜냐하면 이처럼 그들은 영원한 관념작용, 플라톤에 따르면 “신의 생각”을 직접 기록하는 서기관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기록은 터무니없는 공상은 아니다. 왜냐하면, 조잡한 물질세계에서도 그와 똑같은 기록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림자가 벽에 비칠 때마다, 반드시 거기에는 없어지지 않는 영원한 흔적이 남는다. 적당한 과정을 거치면, 그 흔적은 눈으로 볼 수가 있다,”라고 드라퍼(Draper) 박사는 말한다.

 

친구의 초상이나 자연의 경치는 감광판에 숨어 있어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현상액을 바르면 바로 모습이 나타나게 된다. 말하자면, 유령 하나가 은판(銀板)이나 유리판에 숨어 있는데, 우리가 마술을 사용하면 그 유령은 눈에 보이는 세계에 나오게 된다. 외부의 눈길이 전혀 닿지 않는다고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가장 은밀한 아파트의 벽에는, 우리의 모든 행위의 흔적, 다시 말하면 우리가 행했던 것은 무엇이든지 그 그림자가 남아 있다.

 

제본스(Jevons)와 배비지(Babbage) 박사는 모든 생각은 두뇌의 입자들을 바뀌어 놓고 그것들을 움직이게 해서 우주의 구석구석에 골고루 흩어지게 한다고 믿고 있으며, 또 “존재하는 물질의 각 입자는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기록한 책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해서, 과학계의 여러 가지의 추측 가운데는 고대의 가르침도 포함되기 시작했다.

 

아멘티에서 오시리스의 앞에 영혼을 고발하는 자로 서 있는 40의 “사정관(배석판사)들”은 리피카와 같은 종류의 신들이다. 이집트의 신들이 나타내는 비교적인 뜻을 좀더 이해를 하고 있으면 이 사정관들은 리피카와 같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아그라-산드하니(Agra-Sandhānī)라 불리는 기록에서 혼의 일대기를 읽어 내려가는 힌두교의 치트라-굽타(Chitra-Gupta)와, 야마(Yama) 혹은 미노스(Minos), 오시리스(Osiris), 또는 카르마이든지 그 앞에는 활짝 펴놓은 책과 같은 사자(死者)의 심장으로부터 기록을 읽어 내려가는 “사정자들”은 모두가 리피카와 이들의 아스트럴 기록의 복사판이며 그 변형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피카는 죽음과 관련된 신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에 관련된 신들이다.

 

모든 사람의 운명과 모든 어린이의 탄생(그 인생은 숙명론적이 아니라 단지 미래는 과거와 똑같이 늘 현재의 안에 살아있기 때문에 아스트럴광에 그려진다)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리피카들은 점성학에도 영향을 준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인정하길 원하든지 않든지간에, 점성학에서 말하는 진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현대 점성학의 대가 중 하나가 관찰한 바와 같이,

 

이전까지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망원경으로도 발견하지 못했던 수십억의 별과 행성을 기계의 감광판에 고정시키는 사진촬영기법을 통해 항성계(별자리)가 끼치는 화학적 영향이 우리에게 드러났기 때문에, 어린애가 태어날 때 우리 태양계가, 어떤 일정한 방식으로 그리고 그러한 별자리나 황도대의 성좌가 천장(天頂)에 위치함에 따라, 아기의 두뇌(어떠한 인상(영향)도 새겨지지 않은 처녀지)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