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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자를 애통해하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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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모든 것은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배워온 천국이나 지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당신은 말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그러한 신화의 배후에 실재로 있었던 사실이다.

 

확실히 지옥이라고 말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폭음가라든가 호색가는 스스로 지옥과 같은 모습을 만들어 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영원히 계속 되는 일은 없다. 그가 현세적인 격정을 자신이 통제, 지배할 수가 있는 정도로 충분히 강하고 현명해진다면 또한 완전히 그러한 것을 극복해서 스스로 높일 수가 있다면 언제든지 그것을 끝내 버릴 수가 있다.

 

이것이 연옥이라고 말하는 카톨릭 교의의 밑바닥에 걸쳐있는 진리인 것이다. 그것은 사후 어느 정도의 고통에 의하여 인간 내면의 악덕을 소멸시키지 않으면 천국의 지복을 즐거워할 수가 없다고 하는 사상이다.

 

사후의 생애는 천국에 대한 이성적인 개념과 매우 밀접하게 대응하는 두 번째 그리고 보다 더 상위의 단계가 있다. 그 상위의 수준은 모든 낮은 수준의 이기적인 격정을 완전히 소멸시켰을 때 이루어 낼 수가 있다.

 

그 때에는 그의 성향과 지상 생활에서 에너지를 쏟아 넣은 방향에 따라 종교적으로 심취하거나 높은 지적 활동의 상태로 들어간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 더 이상 없는 기쁨에 빠져 있는 기간으로 진실에 대해 훨씬 많은 이해, 혹은 그것을 향하여 보다 더 가까워지는 기간이다.

 

그러나 이 즐거움은 단지 특별히 존경할 만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인간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결코 보답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것은 단지 지상생활에서 길러낸 품성의 피할 수 없는 결과라고 생각해야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고귀한 혹은 무욕의 애정이나 헌신으로 채워져 있다면, 더욱이 그가 훌륭하게 지적인 혹은 예술적인 경지로 높아져 있다면, 그와 같이 높아진 것의 당연한 결과는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과 같은 즐거움이 될 것이다.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은 이러한 모든 것들은 단지 하나의 생애에서의 단계에 불과한 것이며, 젊은 시절의 행실이 대략 그의 중, 노년의 상태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사람의 지상생활 동안의 행실이 사후의 단계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 지복의 상태가 영원한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답은 ‘아니다’이다. 이미 말한 바 있듯이 그것은 지상생활의 결과이고, 유한에서의 원인으로 인해 결코 무한의 결과를 생겨나게 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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