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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자를 애통해하는 이에게

2017.03.19 01:42

세 가지 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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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의 기분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잠시동안 참고 견디면서, 지금부터 말하는 세 가지의 주된 명제를 이해해 주길 바란다. 나는 먼저 큰 명제를 말하고, 그것에 확신을 가지도록 자세한 내용을 기술하겠다.

 

1. 당신의 상실은 당신이 보는 관점에서만 명백히 사실이다. 나는 다른 관점에서 보여주고 싶다. 당신의 고통은 커다란 환영으로 인한 것이고, 자연법칙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다. 
나는 몇 개의 단순한 진리를 설명하여 당신이 지식의 길로 나아가도록 거들어주겠다. 당신은 훗날 천천히 여유를 갖고 그 진리를 연구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2. 당신은 사랑했던 사람의 상태에 대해 불안해하거나 반신반의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사후의 생애는 더 이상 수수께끼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죽음의 저편에 있는 세계도 과학적인 정확성을 가지고 탐구하고 조사해온 물질계와 똑같은 자연 법칙에 따라 존재한다.

 

3. 죽은 자에 대해서 슬퍼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당신의 슬픔은 사랑했던 사람에게 해가 되기 때문이다. 일단 진리에 대하여 마음을 열게 되면, 더 이상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당신은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을 단지 주장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당신이 지금 지니고 있는 신조는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어떤 근거에서 세워진 것인지를 들어보고 싶다. 
당신은 어떤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쳤거나 혹은 어떤 성전에 그렇게 쓰여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는 지금도 받아들여지고 있는 당신 주위의 사람들의 일반적인 믿음이기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선입관을 떨쳐 버리고 본다면 그렇게 말하는 의견도 단순한 주장에 불과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교파마다 제각기 다른 견해로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성전에 쓰여진 말이 각기 다르게 해석되어 왔기 때문이다. 현재 받아들여지고 있는 견해도 확실한 지식에 근거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풍문에 불과하다.


이처럼 밀접하고 이만큼 깊숙이 우리들에게 영향을 주는 문제를 단지 추측이나 막연한 믿음에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문제는 과학적 탐구와 목록의 확실성을 요구한다. 그러한 탐구는 시도되어 왔고, 그 목록은 정리가 되어왔다.


내가 보여주려는 것이야말로 이러한 것들의 성과이다. 나는 스스로 알아낸 사실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당신도 또한 이러한 사실들을 조사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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