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까지 이전 장에서 모든 사람이 정당한 대가로 필연적으로 받게 되는 작용과 반작용의 필수 불가결한 법칙에 대해서 꾸준히 살펴보았다.
왜냐하면 이 법칙을 알지 못하고는 신의 계획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계획을 올바로 이해해보고자 하는 노력은 충분히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 첫 번째 단계는 인간의 행위에 따라 보상과 처벌이 주어진다는 종교적인 관념에서 우리들의 마음을 완전히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러한 관념은 상과 벌을 내리도록 관장하는 심판관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 심판관은 상황에 흔들리며 어떤 사건에는 다른 사건보다 더 관대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애원이나 간청을 해서 법칙의 영향을 수정하거나 빠져나올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연상이 불러일으키는 모든 것은 커다란 오해를 자아낸다. 우리가 사실을 올바로 이해하고자 하면 그 전에 그와 같은 연상에 관련된 모든 생각을 버려야만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빨갛게 달구어진 철봉에 손을 올려놓는다면 보통의 경우 심한 화상을 입을 것이다.
그러나 신이 그를 처벌하기 위하여 손을 철봉에 올려놓으라고 했다고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화상을 입은 것은 바로 자연 법칙의 작용에 의해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열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화상에 대해서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의도는 물리적인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에게 해를 끼치려는 의도로 철봉을 잡았든, 혹은 누군가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잡았든 간에 그가 입는 상처는 똑같다.
물론, 다른 더 높은 측면에서는 매우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한쪽은 숭고한 행위였기 때문에 양심의 기쁨을 얻을 것이고 다른 한쪽은 가책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이건 간에 육체적 상처는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원인과 결과의 법칙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참다운 개념을 얻기 위해서는 이 법칙이 언제나 예외 없이 작용한다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만약 어떤 무거운 물체가 밧줄에 묶여 천장에 매달려 있고 일정한 힘으로 그것을 위로 민다면, 역학 법칙에 따라 미는 힘과 정확하게 같은 양의 힘이 손바닥에 가해질 것이다. 이러한 반작용은 균형을 깨뜨리고자 하는 의도에 전혀 영향 받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악한 죄를 저지른 사람은 진화의 위대한 흐름에 균형을 깨뜨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강인한 힘은 균형을 되찾고자 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그러므로 어떤 행위의 의도로 인해 그 당시에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는 생각은 거두어 들여야 한다. 비록 물질계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않을지라도, 의도야말로 가장 중요한 요인인 것이다.
우리들은 의도 그 자체가 힘이라는 사실을 곧잘 망각한다. 그 힘은 바로 멘탈계에서 작용하고 있다. 멘탈계의 질료는 매우 섬세하기 때문에 낮은 물질계의 질료보다 훨씬 빠르게 진동한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에너지라 할 지라도 엄청나게 커다란 결과를 몰고 온다. 물리적인 행위는 물질계에 결과가 나타나지만, 어떤 의도가 가미된 멘탈 에너지는 물질계와는 전혀 관계없이 동시에 멘탈계의 질료에 작용을 가한다.
이 두 가지 중, 멘탈계에 끼치는 영향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이처럼 언제나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조절이 가능한 것이다.
의도가 어떤 방식으로 뒤섞여 있어도, 그리고 물질계에 선과 악이 아무리 복잡하게 얽혀 있어도 균형은 언제나 완벽하게 다시 조절되고 모든 면에서 완전한 정의를 이룬다.
자신의 미래의 특성이나 미래의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지 다른 누구도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만 한다.
지극히 일반적인 관점에서 말한다면, 지금의 생에서 취한 행위가 다음 생의 환경을 만들어내며, 이번 생에서의 생각이 다음 생의 성격의 진화에 주요한 요인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는 작용 방법은 매우 흥미로운 연구대상이지만 여기서 다루기에는 너무 벅차다.
베산트 여사의 소책자 「카르마(Karma)」에는 이러한 내용이 상세히 설명되어 있고 「고대의 지혜」에서도 이러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장이 있다. 또한 시네트의 「에소테릭 부디즘(Esoteric Buddhism)」도 여러분에게 참고가 될 것이다.
이러한 모든 사실이 우리의 논리적 교훈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제공하고 있다. 만약 사념이 자신이 속한 멘탈계에 물질 생활보다 훨씬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만들어낸다면 그 힘을 제어해야할 필요성은 너무나 분명한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사고 방식에 따라 미래의 자신의 성격적 특성뿐만 아니라 자기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꾸준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힘을 만들어서 사용하는 데에는 중대한 책임이 따른다. 만약 어떤 일반적인 보통 사람이 가슴속에서 분노나 미움을 느꼈다면, 자연스러운 충동에 의해서 그는 그러한 감정을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할 것이다.
하지만 문명화된 사회의 일반적인 규칙은 그러한 언동을 금지시키고 가능한 한 밖으로 표현하는 것을 억제시킨다. 만약 그가 감정을 억제하는데 성공했다면, 스스로 만족해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오컬트의 길을 걷는 학도라면 그보다 훨씬 더 자기조절을 해야하며 편협한 감정을 갖는다거나 그것을 외부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완벽하게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자신의 감정이 작용을 가하기 시작하면, 아스트럴계에 어마어마한 힘을 미쳐서 마치 물질계에서 일격을 가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가 화를 내고 있는 대상에게 작용해서 물질계에서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지속적인 결과를 일으킨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이 물질이라는 것은 실제적인 의미에서 맞는 말이다. 투시를 통해 보면, 생각은 명확한 형체와 색깔을 취하고 있으며 그와 연관된 사념의 진동율에 따라 색깔이 변한다.
이러한 형태와 색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것이다. 「상념형태(Thought Forms)」에는 상념을 직접 그리고 색까지 칠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것을 고찰하면 여러 방면에 걸친 다양한 가능성을 우리 앞에 제시할 수 있게 된다. 생각으로 해를 끼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고 마찬가지로 선을 행하는 것도 쉽다.
이러한 흐름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괴로움에 처한 친구를 돕고 위로할 수 있기 때문에 완전히 새롭고 유용한 세계가 우리 앞에 열리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적인 도움을 받았지만 그에 대한 보답을 할 수 있을 만한 부가 없어서 속상해하고 있다. 하지만, 물질적인 부가 있건 없건 상관없이 최고의 보답으로 봉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남을 도울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은 그들에게 반드시 도움을 주어야 한다. 이런 경우,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는 것이 힘이며 법칙을 이해하는 사람은 법칙을 이용할 수 있다.
어떤 특정한 생각에 의하여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치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아는 것은 자의로 그러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은 현재 생에서 서서히 자신의 성격을 주조할 뿐 아니라 다음 생의 성격을 결정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생각은 멘탈 질료에 진동을 일으키는데 같은 생각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면 그에 대응하는 원인체의 질료(말하자면 한 옥타브 더 높게)에 진동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질이라는 것이 서서히 영혼 안에 형성되는 것이고 그러한 것은 다음 화신이 시작할 때, 말하자면 그 생을 살아갈 수 있는 밑천으로서 주어진다.
이처럼 영혼의 자질과 기능은 아래에서 위로 작용하면서 차츰 진화하고 그렇게 함으로 해서 인간은 자신의 진화의 대부분을 스스로의 힘으로 이룩하며 신의 위대한 계획에 지성적으로 동참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제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베산트 여사의 「상념의 힘, 그 조절과 훈련(Thought Power, its Control and Culture)」에서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