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장. 세상에 권하는 노래(勸世歌)
呂祖게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수행하는 이(行者)들이여! 내가 이제 세상을 건져 단(丹)을 이루는 이야기를 아낌없이 하였으니 속속들이 行하기를 바란다. 친절한 마음으로 아낌없이 한마디 하노라. 석가釋迦(世尊)께서도 큰 인연因緣을 위하여 生死의 근본 자리를 바로 가리켰건만 안타깝도다!
깨달은 자 얼마이던가! 老子께서도 우리 몸을 걱정하시어 곡신谷神을 가르쳐 주셨건만, 사람들은 알아내지 못하네, 내가 이제 진리의 길을 찾는 일을 간추려 말하노니, 한 가운데 길(黃心)을 쭉 통하는 이치가 역易이라는 큰 진리에 실려 있도다. 내 몸의 어디엔가 바른 자리가 알고 보니 진리의 관문(玄關)이며, 자子와 오午의 중간에서는 숨을 안정(定息)시킨다. 빛이 있어 태어난 뒤로 막혀 버린 그 구멍(祖竅)으로 빛이 돌아오면, 온몸의 神이 편안해지고, 丹藥이 몸에 흐르는 강물의 근원에서 생겨나니, 하나의 기(一氣)가 솟아나온다. 가려진 막을 뚫으면 금빛(金光)이 찬란하며, 한 덩어리 둥그런 해가 변함없이 붉게 빛난다. 세상 사람들은 감坎과 리離의 속 알맹이라 잘못 알고 있지만, 신(腎)에서 心까지 옮겨 가려면 아직도 그사이가 가로막혀 있다.
어찌하면 사람의 길(人道)이 하늘의 중심(天心)에 합할 수 있을까? 하늘이 만약 부합符合하여 준다면 사람의 길은 저절로 합하여 질 텐데……. 모든 연분(萬緣)을 내려놓고(放下) 털끝 하나의 생각(念)도 일으키지 말면, 이것이 바로 태어나기 이전(先天)이요, 진리에 합하는 참된 무극(無極)이다. 태초太初같은 텅 빔(太虛)이 아름답도록 고요하여 어떠한 낌새도 녹아 들어가 버리고, 性과 命으로 들어가는 곳(玄關)에서 의식意識을 잊어버린다. 의식意識이 사라진 뒤에야 본래의 참된 진리가 나타나는 것이니, 물이 맑으면 구슬이 보이지만 그 깊이야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처음을 알 수 없는 번뇌의 가로 막음(腸膜)이 하루아침에 걷혀 버리면 하늘나라(玉淸.玉京)에서 아홉 마리 龍이 수놓인 책을 내린다. 구름과 은하를 걸어서 하늘의 궁궐에 오르고 천둥 번개를 손에 잡고 벼락을 타고 달린다. 神을 엉겨 모이게 하거나(凝神) 숨을 안정시키는 것(定息)은 처음 배우고 익히는 기틀(初機)이요, 비밀스러운 자리에 되돌아와 감춤이 바로 형상形相을 여의고 변함이 없음(常)이며 번뇌를 끓음(寂)이다.
내가 접때에 장진노張珍奴라는 사람에게 두 마디 글귀를 주어서 우리의 가르침의 큰 진리를 깨닫게 하여 이끌어 주었다. 子의 뒤이니 午의 앞이니 하는 것들은 시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며 후천後天팔괘 방위에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後天팔괘 방위에 있어서의 감坎괘와 이離괘를 가리키는 것이며, 사람의 몸에 있어서 그 방위에 해당하는 곳을 가리키는 것이다.
숨을 머무른다.(定息)는 것은 숨을 쉴 때마다 그 숨이 마음과 서로 하나가되고 氣가 우리 몸의 가장 한 가운데(中黃)에 있는 뿌리(丹田)로 돌아가는 모습(息息歸根)을 말한다.
앉아있다(坐)는 것은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하는 것이다.
등뼈(夾脊)라는 것은 등뼈의 마디마디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늘나라로 곧바로 뚫고 올라가는 큰길 즉 독덕督脈을 말한다. 등뼈에 나란히 있는 두 개의 관문(雙關)이라는 것은 이곳에서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모든 것을 잊고 神이 지켜 주어서 마음을 텅 비게 하고 번뇌를 끊으며, 아무것도 없음(無)에로 돌아가는 경우에만 이 관문을 보게 되고 또한 뚫고 지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옥 같은 액체(玉液)도 이곳에서 변화되고, 피도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태어난 뒤에 이루어진 요소들이 이곳에서 태어나기 이전으로 돌아가며, 氣도 이곳에서 神으로 돌아가고, 神도 이곳에서 텅 빔(虛)으로 돌아가며, 텅 빔(虛)도 이곳에서 진리의 길에 합하게 되고, 진리의 길도 이곳에서 그 공변된 뜻(志)의 처음과 끝을 이어서 원圓을 이루어 완전하게 할 수 있으며, 공변된 뜻(志)도 이곳에서 그 바라는 바를 다 채울 수 있는 곳이다. 말로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것이 이곳이다. 그리하여 땅에서 번개와 천둥이 쳐서 산봉우리를 흔들어 놓는 경지에 이르면, 진리에 합하는 참된 기(眞氣)가 생기는 것이다.
노란 새싹(黃芽)이 땅속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진리에 합하는 참된 약(眞藥)이 생기는 것이다. 그 모든 일의 터전은 오직 나란히 있는 두개의 관문과 그로부터 이어지는 큰길(雙關)을 神이 지킴으로 말미암아 쌓여진다. 위의 두 글로써 진리의 길을 닦아 나아가는 일을 이미 다 말하였다. 이것들을 똑똑하게 알게 되면, 남들의 이렇다 저렇다 하는 말에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할 것이다.
접때에 孔子와 그의 제자인 안자顔子가 태산의 봉우리에 올라가 오나라 땅(吳門)에서 노니는 흰 말의 떼를 바라본 적이 있다. 안자는 그것을 보고, 비단을 필疋채로 쭉 펴놓은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자 공자가 급히 그의 눈을 가려 주었는데, 그 이유는 안자가 눈의 능력을 너무 많이 써 버려서 神의 나타남인 빛(神光)을 다 써 버릴까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顔子는 젊은 나이에 죽었다.
빛을 돌리는 일(回光)을 부지런히 배우고 익히지 아니하면 안 되는 것이다. 빛을 되돌리는 일(回光)은 잡됨이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배우고 익혀 나가느냐 하는데 달려 있으니, 오직 마음과 숨이 하나로 합하여져서 몸의 한 가운데 해당하는 곳(中宮)을 초점을 맞추어 비추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오래도록 지켜 나가면, 저절로 신령해질 수 있고 변화에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이 움직임(念)과 변화를 여의고, 고요한(靜心)가운데 氣가 안정되어야만 그 위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은 그 자체를 잊어버리고(心忘), 氣는 모여서 덩어리를 이루면 모든 것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氣조차도 사라지고 마음이 깨끗이 비어 있게 되면(心空) 丹이 이루어진다. 마음과 氣가 완전히 섞여서 하나로 되면, 마치 어머니가 아이의 태胎를 열 달 동안 따뜻이 기르듯이 진리의 태아(道胎)를 따뜻이 기르게(溫養)된다. 마음이 밝게 빛나고 본성이 나타나면(明心見性), 진리의 길(道)을 다 지나와서 마친(了)는 것이다.
수행하는 이들이여!
그대들은 각자 제 나름대로 힘써 배우고 익혀 왔지만(修行),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는가.
그것은 마치 전 인생을 헛된 것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이 제물로 바쳐 버리는 것이라 안타깝고 안타깝도다.
하루라도 이것(回光)을 行하지 아니하면 그 하루는 살아 있는 귀신이 되어 사는 것이며, 한 번의 호흡에서 이것을 배우고 익히면 그 한 숨(一息)동안은 神仙인 것이다.
수행하는 이(行者)들이여 부지런히 배우고 익힐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