呂祖게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心印經에서 “호흡과 빛을 섞어서 임. 독맥을 돌리기를 백날 동안 계속하면, 그 효험이 신령 해진다(回風混合 白日功靈)”라고 하였다. 한마디로 말하여 터전이 되는 일을 배우고 익히기를 백날 동안 계속하면 진리의 참된 빛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마치 그대들의 현재 상태의 눈빛은 신령한 불(神火)도 아니요 본성의 빛(性光)도 아니요 슬기의 횃불이나 촛불(慧智炬燭)도 아니지만, 백날 동안 계속해서 임, 독맥을 돌리게 되면 精과 氣가 저절로 충분해지고 태어나기 이전부터 있은 참된 양(眞陽)이 저절로 생겨나는 것과 같다. 그렇게 되면 진리의 참된 불(眞火)이 저절로 물(水) 가운데에 있게 되는데, 이러한 일을 그침이 없이 계속해서 배우고 익혀 나가면, 저절로 坎과 離가 서로 어우러지게(交構)되고, 진리의 태아(道胎)가 맺혀지는 일도 저절로 이루어진다. 그제야 나는 한 번 가본적도 없고 들어서 안적도 없는 하늘에 가 있게 되고, 진리의 아들(道胎)이 저절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애를 쓰거나 꾸임이 있으면 그것은 옆길로 들어가는 것이다.
백날 동안 계속해서 터전을 쌓는다.(白日立基)고 말하였지만, 그것은 세상에서 낮과 밤이 백번 갈아드는 그러한 백날(白日)이 아니다. 한 날 동안 터전을 세운다.(一日立基)고 말할 때에도 낮과 밤으로 이루어지는 하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숨에 터전을 세운다.(一息立基)라고 말할 때에도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부는 호흡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숨(息)이라는 것은 스스로의 마음이다. 스스로의 마음이 숨으로 되는 것은 태어나기 이전부터 있었고 사람의 본바탕을 이루고 있는 으뜸 되는 신(元神)과 으뜸 되는 기(元氣)와 으뜸 되는 정(元精)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올라가거나(昇) 내려가거나(降) 서로 떨어지거나(離) 서로 합쳐지는(合) 것이 모두 마음을 따라서 일어나는 것이며, 있음(有)과 없음(無)과 속이 비었음(虛)과 속이 차있음(實)은 모두 생각(念) 가운데에 들어 있는 것이다. 한숨(一息)은 한평생 지켜 나가야 되는 것이니, 어찌 백날 동안 계속하는 것에 그치겠는가? 그런가 하면 백날(百日)이라는 것도 또한 한숨(一息)이다. 백날(百日)이라는 것은 다만 깊이 깨달아 얻는 바에 달려 있을 뿐이다. 낮 동안에 깊이 깨달아 얻은 것이 밤사이에 받아서 이용하고, 밤 동안에 깊이 깨달아 얻은 것은 낮 사이에 받아서 이용한다.
‘백날 동안 계속해서 터전을 쌓는다.(百日立基)’고 하는 말에는 단학의 깊은 뜻(玉眞)이 들어 있다. 높은 진리의 용어는 사람의 몸에 적용해서 맞지 아니한 것이 없으며, 참된 스승의 말은 배우는 사람마다에 적용되지 아니함이 없다. 이것은 아득한 가운데 아득함이요 道敎의 진리 가운데 진리(玄中之中)로서 보통사람은 풀어낼 수 없는 것이다. 본성을 보고 깨닫게(見性) 되면 알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참된 스승의 말이나 글로 써서 가르쳐 주심을 찾아서 배우고 익혀야하며, 그렇게 하여 본성에 맡겨서 저절로 피어 나오게 하여야 하며 하나하나 모두 증험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