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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장. 빛을 돌게 하고 중을 지킨다.[回(회)光(광)守(수)中(중)]


呂(여)祖(조)꺼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빛을 돌린다.回(회)光(광))는 말이 어찌하여 나왔는가? 文(문)始(시)眞(진)人(인) 곧 關(관)尹(윤)子(자)의 文(문)始(시)眞(진)經(경)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하였다. 빛을 돌게 하면 하늘과 땅의 陰(음)하거나 陽(양)한 氣(기)가 모두 모여서 엉기지 아니함이 없게 된다. 이른바 깔끔하고 세밀하게 깊이 생각한다는 것도 이것을 말하는 것이고, 氣(기)을 잡된 것이 섞이지 아니하도록 순수하게 한다는 것도 이것을 말하는 것이며, 그려보는 생각(想(상))을 잡된 것이 섞이지 아니하도록 순수하게 한다는 것도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처음에 이 방법을 행할 때에는 어떤 존재가 있는 가운데에 있으면서도 마치 그것이 없는 듯이 느끼며 행하지만, 그렇게 오래도록 계속하여 보람이 이루어져서 피와 살로 된 보통의 몸 바깥에 또 하나의 어떤 몸이 이루어지는 때가 되면,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에서 그 어떤 존재가 있는 듯이 느껴지는 것이다. 해가 떴다가 지기를 백 번 거듭하는 동안 오로지 이 일만을 하게 되면, 그제야 빛이 태어나기 이전의 상태와 같이 참답게 된다. 이렇게 된 뒤에야 그 빛이 신령한 불(神(신)火(화))이 되고 바른 생각(正(정)念(염))을 이루게 된다.

 

위와 같이 배우고 닦으면서 해가 떴다가 지기를 백 번 거듭하고 나면, 빛이 저절로 모여들고 그 가운데에서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으며 참으로 양(眞(진)陽(양))한 어떤 하나의 점이 저절로 갑자기 생겨나오는데, 마치 기장쌀 알맹이 같은 구슬 이다. 부부가 서로 합하면 아이가 생겨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마땅히 변화와 움직임을 여의고 조용히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빛이 돌면 몸속에 있는 불(火(화))이 운행을 하는데, 마치 해가 운행을 하여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이 생기듯 빛이 되돌려 비추는 곳에 따라서 몸속의 불(火(화))이 운행하면서 여러 가지 정황을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빛의 돌아감이 곧 몸속의 불(火(화))이 엮어내는 계절(候(후))이 되는 것이다.

 

우주 자연의 운행과 변화 가운데에는 어떤 陽(양)한 빛이 있어서 그것을 主(주)宰(재)하고 있는데,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해(日(일))가 된다. 사람에게 있어서는 눈(目(목))에 해당된다. 神(신)과 인식능력(識(식))을 밖으로 달려 나가 버리고 흘러나가 버리게 하는 일은 이 陽(양)한 빛을 병들게 하는데, 그것은 이것이 매우 순하게 변화를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황금 꽃(金(금)華(화))를 피우기 위한 길은 모든 것을 거꾸로 거스르는 방법을 쓴다.

 

빛을 돌린다.回(회)光(광))는 것은 한 사람의 몸에 있고 뛰어나고 훌륭한 광채(精(정)華(화))를 돌린다는 것만이 아니고, 곧바로 우주 자연의 운행 변화를 일으키는 그 先(선)天(천)의 참된 기(眞(진)氣(기))를 돌린다는 말이며, 그때그때 일어나는 헛된 생각을 한때 그친다는 것만이 아니고, 곧바로 천겁 동안이나 돌고 돌 輪(윤)廻(회)을 그쳐서 빌붙을 바 없는 空(공)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숨 한 번 쉬는 동안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거치게 되니, 인간의 시각으로 따져서 일 년이 흐른 것과 같고, 캄캄한 가운데에서 숨 한 번 쉬는 동안에 지옥에서부터 하늘 꼭대기까지 두루 돌아오게 되니, 그 欲(욕)界(계). 色(색)界(계). 無(무)色(색)界(계)을 거치는 기간이 마치 백 년 동안이나 걸리는 긴 밤중과 같다.

 

 보통 사람은 “으앙” 하고 한번 크게 울면서 땅에 떨어진 뒤로 계속해서 환경의 변화가 일어나는 대로 따라서 살아갈 뿐 늙기 전에 한 번도 그 변화를 거슬러 보지 아니한다. 그리하여 陽(양)한 氣(기)가 줄어들어 없어지고 마니 곧바로 끝없는 밑바닥의 세계(九(구)幽(유))로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楞(릉)嚴(엄)經(경)에서는 “잡된 것이 섞이지 아니하고 순수한 생각(想(상))은 그 자체로서 위로 날아올라 가고, 잡된 것은 그 자체로서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純(순)想(상)卽(즉)飛(비), 純(순)情(정)卽(즉)墜(추))”라고 말하였다.

 

보통 배우는 사람은 생각(想(상))은 적고 精(정)이 많아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길을 따라 가라앉게 마련이다. 오직 진실하고 헛됨이 없는 진리를 깨달으면서 자세히 살피고(滯(체)觀(관)) 숨을 고르고 가늘고 길고 부드럽게 쉬어야만(息(식)靜(정))바른 깨달음을 이룰 수 있게 되는데, 그러한 것이 바로 거꾸로 거스르는 방법을 쓰는 것이다.

 

 陰(음)符(부)經(경)에서는 “그 열쇠가 되는 기틀이 눈(目(목))에 있다”라고 하였고, 黃(황)帝(제)內(내)經(경) 素(소)問(문)에서는 “사람의 몸에 있는 뛰어나고 훌륭한 광채(精(정)華(화))는 모두가 위에 있는 텅 빈 구멍으로 올라가서 쏟아 부어진다”라고 말하였는데, 그 모든 것이 다 이러한 사정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한 구절을 알아듣고 몸으로 얻으면 오래도록 사는 사람도 이에서 나오고, 굴레를 벗고 뛰어넘어서 높은 세계로 올라가는 사람도 이에서 나온다. 이것은 儒(유). 佛(불). 仙(선)이라는 세 종교의 어느 것에나 통하는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는 것(工(공)夫(부))이다.

 

빛은 몸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몸 밖에 있는 것도 아니다. 산과 물과 땅과 해와 달이 모두 이 빛 아닌 것이 없으므로 오직 몸에만 있는 것이 아니겠으며, 총명함이나 지혜나 간에 모든 정신 작용이 운행되고 전환되는 것이 모두 이 빛 아님이 없으므로 또한 몸 밖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하늘과 땅과 빛은 그대로 이 세계를 천 곱의 천 곱을 또 천 곱한 만큼의 세계(大(대)千(천))에 가득 퍼져 있으며, 사람의 한 몸 빛도 역시 저절로 한번 빛을 돌리면(回(회)光(광)) 하늘과 땅과 산과 물 모든 것이 모두 도는 것이다. 사람의 빛은 위로 눈(目(목))에 모여드니 이것이 바로 사람의 몸에 있어서의 큰 열쇠가 되는 사실이다.

 

그대들은 이 사실을 깊이 생각하라 하루라도 변화와 움직임을 여의고, 조용히 앉아(靜(정)坐(좌))있지 아니하면 이 빛이 흘러서 돌아다닌다. 어느 곳에서 막아서 그치게 할 것인가? 만약 한 시각이라도 변화와 움직임을 여의고 조용히 앉아(靜(정)坐(좌)) 있을 수만 있다면, 지나온 전생(前(전)生(생))이 만겁 도안에 천 번을 태어났을지라도, 이 한 시각으로 완전히 끝내 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모든 가르침은 결국 변화와 움직임을 여의고 조용하라(靜(정))는 것으로 돌아온다. 참으로 보통사람의 생각으로는 미처 이루어 헤아릴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묘한 진리(妙(묘)諦(체))인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실제로 배우고 익히는 일(工(공)夫(부))을 처음 시작함에 있어서는, 얕은 곳에서부터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거친 곳에서부터 세밀한 곳으로 들어간다. 통틀어서 말하면 사이사이에 끊어짐이 없이 계속하는 것을 훌륭하다고 하며, 끊임이 없으면 묘한 보람이 저절로 생겨나게 마련이다. 실제로 배우고 익히는 일(工(공)夫(부))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一(일))라는 글자에 달려있다. 다만 그렇게 한결같이 하나를 지켜 내고 있노라면 저절로 차가운 느낌도 오고 더운 느낌도 겪게 되는데(冷(냉)暖(난)自(자)知(지)), 그러한 경지나 느낌이야 어떻든 중요한 것은 눈앞에 나타나는 하늘은 텅 비어 있고, 바다는 드넓어져서 모든 존재나 이치(萬(만)法(법))가 하나같이 하나같아지고 평등해지느냐(如(여)如(여)),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데 달려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고 나서야 바라던 바를 얻었다고 할 수가 있다.

 

聖(성)人(인)에서 聖(성)人(인)으로 서로 전하여 내려온 것은 되돌려 비추는 방법(反(반)照(조))아닌 것이 없었다. 孔(공)子(자)는 “지혜에 이른다.致(치)知(지))”라고 말하였고, 釋(석)迦(가)(世(세)尊(존))는 “마음을 살핀다.觀(관)心(심))”라고 말하였고, 老(노)子(자)는 “안으로 살핀다.內(내)觀(관))”라고 말하였는데, 그 모든 것이 결국 이 방법이었던 것이다. 다만 되돌려 비춘다.反(반)照(조))는 용어를 사람마다 말로는 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기를 바라서 실제로 얻지를 못한다면, 이 용어의 뜻을 참으로 알았다고는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되돌린다.反(반)照(조))는 것은 보통사람으로서 가지고 있으면서 對(대)象(상)을 알고 깨닫는 능력(知(지)覺(각))이 되는 마음 상태로부터, 육신의 모습(形(형))과 그 神(신)이 아직 드러나기 이전인 사람으로서의 최초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의 이 여섯 자밖에 안 되는 육신 가운데에서 하늘과 땅이 아직 생겨나기 이전의 본바탕을 되찾는다는 뜻이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단지 한두 시간 할 일 없이 앉아서 자기만이 무엇인가를 눈여겨보고는 곧 “되돌려 비추었다(反(반)照(조))”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하여서야 어찌 첫머리 시작이 되었던 곳에든 꼭대기 높은 곳에든 이르러 낼 수가 있겠는가? 佛(불)敎(교)나 道(도)敎(교)의 祖(조)師(사)들이 사람들에게 “코끝을 보아라.看(간)鼻(비)尖(첨))”고 가르치는 것은 생각을 코끝에 매어 두라는 말도 아니고, 눈으로 코끝을 보면서 생각은 또한 단전(丹(단)田(전).中(중)黃(황))에 쏟아 부으라는 말도 아니다. 눈길이 이르는 곳에는 마음이 또한 이르고 마음이 이르는 곳에는 氣(기)도 또한 이른다. 어찌 하나는 위에 있고 하나는 아래에 있게 할 수가 있으며 또한 순간적으로 위에 있다가 순간적으로 아래에 있다가 할 수가 있겠는가? 결국 이 말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 것과 같은 것인데,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고서 손가락을 달이라고 잘못 알아듣는 것과 같은 사정이다.

 

그렇다면 결국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코끝(鼻(비)端(단))이라는 용어가 가장 그 뜻이 묘하다. 이 용어는 코를 가지고 눈길을 잡는 가늠쇠로 삼고 있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처음 배우고 익히는 사람이 눈길을 코끝 가운데에 두지 아니하고 눈을 크게 뜨면 먼 곳을 보게 되어 코를 보지 않게 되며, 눈을 너무 감으면 눈꺼풀이 붙어 버려서 역시 코를 보지 않게 된다. 눈을 크게 뜨면 눈빛이 바깥으로 달아나서 잃게 되어 쉽게 흩어지고 어지러워지며, 너무 감으면 눈빛이 안으로 달아나서 잃게 되며 쉽게 잠이 들어 어두움 속으로 가라앉게 된다. 오직 발을 내려서 가려 놓은 듯한(垂(수)簾(렴)) 상태만이 옳은 방법에 맞는 것인데, 그렇게 하자면 마치 코끝을 물끄러미 바라보듯이 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코끝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으로써 가늠쇠를 삼은 것이다.

 

이 “발을 내려서 가려 놓은 듯함(垂(수)簾(렴))”이란 상태는 마치 햇볕이 자연스럽게 발을 뚫고 들어오는 상태이지 애써 그것을 내려 쬐게 하거나, 내려 쬐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다. 코끝을 본다.(看(간)鼻(비)端(단))는 것은 제일 처음으로 변화와 움직임을 여의고 조용함(靜(정))을 배우고 익히고자 하는 경우에 눈길을 모아서 그곳을 한번 보라는 것이다. 가늠쇠로서의 자리가 확실하게 잡히고 나면 저절로 이루어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마치 泥(이)水(수)에 사는 훌륭한 목수가 줄을 이용하여 일을 하는 것과 같은데, 처음 시작할 때에 한 번 줄을 써서 좌우를 분명하게 갈라놓고는 끝마칠 때까지 그에 따라서 일을 해 나가는 것이지, 계속해서 줄을 잡고 좌우를 번번이 맞추어 가면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헛된 모든 생각을 그치고(止(지)) 비추어 살핀다.(觀(관))”는 것은 불교의 가르침인데 원래는 비밀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뜻을 부어가면서 두 눈으로 코끝을 살피듯이 보며 몸을 바르게 하여 편안하게 앉아서, 마음을 이끌어다가 緣(연)中(중)이라는 곳에다가 매어 두는 것이다. 道(도)家(가)에서는 丹(단)田(전) 즉 中(중)黃(황)이라고 하는 것을 佛(불)家(가)에서는 緣(연)中(중)이라고 하지만 결국 같은 하나이다. 그리고 반드시 머리의 가운데에다가 생각을 매어 두어야 한다고 말할 필요는 없고, 다만 두 눈의 가운데로서 편편한 곳인 이른바 先(선)天(천)祖(조)竅(규)라는 곳에다가 생각(念(념))을 매어 두면 되는 것이다.

 

빛은 살아서 펄펄 뛰는 듯이 힘찬 물건이라서 생각(念(념))을 두 눈 사이의 편편한 곳, 즉 祖(조)竅(규)에다가 매어 두면 빛이 저절로 그곳으로 뚫고 들어간다. 반드시 뜻을 머리의 한가운데인 어떤 장소에다가 달라붙어 있게 하지 아니하여도 된다. 이상의 몇 마디 말로써 모든 중요한 방법과 요령을 이미 모두 다 말하여 버렸다. 그 나머지 변화와 움직임을 여의고 조용함(靜(정))에 들어가고, 그로부터 나오는 요령과 그러한 요령에 앞서서 해야 하는 일과 그 뒤에 해야 하는 일들은 아래의 헛된 모든 생각을 그치고(止(지)) 비추어 살핌(觀(관))에 대한 짤막한 글을 맞추어 봄으로써 증명해 낼 수 있을 것이다.

 

緣(연)中(중)이라는 용어의 뜻이 지극히 묘하다. 中(중)이라는 뜻 속에는 없는 것이 없다. 이 세계를 천 곱에 천 곱에 천 곱을 한 그 많은 세계가 모두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다.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사람뿐만 아니라 우주 자연의 운행 변화의 기틀(造(조)化(화)之(지)機(기))이 이를 말미암아서 질서 있게 제자리를 잡게 된다는 이치를 가르치는 용어인 것이다. 緣(연)이라는 용어는 이로 말미암아서 무엇인가 이루어지게 되는 실마리 또는 인연이라는 뜻이며, 확실하게 어느 하나의 사실만을 내용으로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中(중)이라는 용어와 緣(연)이라는 용어의 뜻은 매우 걷잡을 수 없도록 살아 움직이는 것이고, 매우 알아내기 힘든 것이지만 깨닫고 보면 참으로 훌륭하게 사용한 용어이다.

 

“헛된 모든 생각을 그친다.止(지))”는 뜻과 “비추어 살핀다.(觀(관))”는 뜻은 각각 용어의 뜻은 다르지만, 그에 따라서 배우고 익히는 경우의 실제에 있어서는 본래 따로 떨어져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을 흐트러짐 없이 한곳에 머물러서(定(정)) 슬기의 빛으로 조용히 비추고 있는(慧(혜)) 것이다. 이러한 경지가 이루어진 뒤에는 어떠한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구태여 지난날처럼 다리를 틀고 오롯이 앉을 필요는 없게 된다. 마땅히 이 생각(念(념))이라는 것이 “어떠한 곳에 들어 있는가?”, “어디에 가서 사라지는가?” 하는 문제를 붙들고 거듭거듭 끝까지 헤치고 들어가 봐야 하지만 마침내 그러한 곳을 붙잡아 낼 수는 없고, 다만 그 자체로써 이 생각(念(념))이라는 것이 일어나는 곳을 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 생각(念(념))이라는 것이 일어나는 그곳에 관하여 이러쿵저러쿵 토론할 필요도 없으니 이른바 마음을 찾는다는 일(覓(멱)心(심))도 깨닫고 보면 본래 그렇게 될 수 없었던 일이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나와 너 즉 主(주)觀(관)과 客(객)觀(관)의 마음이 안정된 상태 이것이 곧 비추어 살핌을 바르게 하는 일(正(정)觀(관))이고, 이러한 이치에 어긋나는 것 곧 비추어 살피는 마음과 그 대상이 서로 맞지 아니하는 것을 비추어 살핌을 바르게 하지 못하는 것(邪(사)觀(관))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상태로 되는 일은 그렇게 되고자 노력하여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처음 배우고 익힘을 시작하였던 때의 상태를 그대로 계속해서 끊어짐 없이 이어나가노라면 이루어지는 것이다. 헛된 생각을 그치고(止(지)) 그것을 끊임없이 이어나가노라면 비추어 살피는(觀(관)) 경지가 이루어지고, 비추어 살피는 경지에 이르러서(觀(관)) 그것을 끊임없이 이어나가노라면 헛된 모든 생각이 그쳐지게(止(지)) 된다.

 

이러한 이치가 곧 “마음을 흐트러짐 없이 한곳에 머물러서(定(정)) 슬기의 빛이 조용히 비치게 함(慧(혜))을 함께 닦는다.(慧(혜)修(수))”는 가르침이 된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빛을 돌린다.(回(회)光(광))”는 것이 되는데 돌린다.回(회))는 것은 헛된 모든 생각을 그친다.(止(지))는 것과 같은 내용이고, 빛(光(광))이라는 것은 비추어 살핀다.(觀(관)) 는 것과 같은 내용이다. 생각을 그쳤다고 하는데(止(지)) 비추어 살핌이 되지 아니하면, 돌리는 일(回(회))은 하고 있으나 빛(光(광))이 없다고 말하고 비추어 살피는 일(觀(관))은 하고 있으나 헛된 생각이 그쳐지지(止(지)) 아니하였으면 빛(光(광))은 있으나 돌리는 일(回(회))은 없다 고 말한다. 잘 알아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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