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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칠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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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7본질과 내장 여러 기관과의 대응

-H.P.B의 비교 강론 제 5교과에서

 

 

 

이제는 의식에 대해서 더욱 깊이 있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인간의 7중 구성체와 그의 각부에 작용하는 의식에 대해 충분히 이해해야만 한다.

 

이미 그림에서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상위 4개조와 그것을 통하여 나타나는 의식의 작용을 이해하고 있다고 학도는 말할 것이다. 하위 3개조에 관한 연구는 앞으로 가르치게 될 것이다. 상위 4개조를 이해하려면 하위 3개조에 관해서 어느 정도의 이해를 필요로 한다. 우선 학도에게는 영적인 일을 육체의 눈을 가지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육체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영적 지성의 눈을 써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 연구는 성공할 수 없으며 열매가 맺어질리 없다는 것을 확실히 이해해야 한다. 성장은 안에서 밖으로 파급되는 것이며 어디까지나 내부의 것들이 보다 완전하다.

 

육체 감각의 발달조차 반드시 지적 감정에 앞서 있는 것이고 그것이 육체감각을 진화시킨다. 모든 감각은 하나의 감각-의식(sense-consciousness)의 분화에 불과한 것이며 지각적 생명이 시작하는 아스트럴계에서 분화한다. 그리고 분화는 우리들의 육체분자가 속해 있는 물라프라크리티계의 가장 낮은 하위계까지 계속된다. 예를 들어, 캄캄한 동굴 속에서 살고 있는 물고기는 눈이 보이지 않지만, 그 물고기를 밝은 연못에 놓아주면 2, 3세대에 이르러 시력이 회복된다. 하지만 캄캄한 지하수 안에서도 비록 물질적인 시력기관은 없지만 그 고기의 감각은 훌륭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캄캄한 어둠 속에서 어떻게 먹을 것을 찾을 수 있으며 방해물이나 위험을 피할 수 있겠는가?

 

감각-의식을 덮고 있는 덮개가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비전은 선명하게 된다. 덮개란 환영이 더해져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통찰력, 즉 식별력이 생기면 겨우 환영을 극복하게 된다. 이와 같은 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마나스와 부디의 합일에 의한 것이며 그것이 아데프트가 되는 길이므로 그 길로 향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야 한다. 데바찬에서의 존재물(인간)이 환영 아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존재, 즉 마인드가 육체를 지녔었던 때에 아트마․부디․마나스의 삼위일체를 완성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환각이 끝나는 것은 살아있는 인간이었을 때 삼위일체의 합일을 완성했을 때이다. 저급의 계로 내려올 때마다 환영은 증가한다.

 

내적 비전을 활발하게 하는 것은 자신의 모든 성질, 말하자면 도덕적, 지적, 육체적 성질을 정화하는 것이다. 마인드의 정화는 육체의 정화에 비해 훨씬 중요하다. 만약 우파디1)가 완전히 청정하지 못하면 고급 상태로부터 오는 회상(回想, 영계에서 과거 생을 기억하는 것)을 할 수가 없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서도 행동할 수는 있으나 그와 같은 행동은 중요하지 않다. 그렇지만 만약 마인드에 의한 숙고를 했다면, 그 결과는 몇 천 배나 큰 것이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생각의 청정을 지키는 것이다. 말하자면 삼각형 안에다 사각형을 넣어야 하는 이치와 같다. 바꾸어 설명하면 아래의 하위 4중 체가 위의 상위 3개조와 함께 진동하도록 정화시켜야 한다.

 

1) 우파디란 힘을 움직이는 매체라는 뜻이다. 매체라는 말이 때로는 같은 생각을 전한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만약, 힘을 행동으로 간주한다면 물질은 이를 통해 행동하는 우파디인 것이다. 이처럼 저급 마나스는 고급 마나스가 일하도록 하는 우파디이다. 육체는 물질계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본질의 우파디인 것이다.

 

하위 4중 체를 상위의 3개조와 공명할 정도로 정화시키면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육체, 즉 물질부분의 인간을 물질계에 따르게 하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 최고의 아데프트도 새 육체를 입게 되면 육체와 싸운다. 육체를 진정시켜 따르게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어려움이란 육체의 자동작용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그의 뿌리의 충동이 생각에서 오기 때문이다. 더 설명하면, 우리들이 육체의 욕망이라 말하는 것은 생각 속에 있는 것이다. 생각은 욕망 이전에 생겨난다. 생각은 저급 마나스의 대리인인 뇌에 일을 시작해서 뇌에서 육체기관에 일을 하게되면 욕망이 깨어난다. 육체기관을 깨어나게 하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자극이 아니고 생각에 의해 인상을 받게된 뇌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잘못된 생각은 사라져야만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욕망이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욕망이란 물질(육체) 안에서 자기 만족을 바라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인 것이다.

 

그 무엇이든 간에, 육체란 습관성인 것이며 육체가 받은 인상에 따르는 기계적인 충동(좋은 충동이나 나쁜 충동 모두)을 계속 반복한다. 그러므로, 육체가 주어진 운동을 자동적으로 반복해 유혹을 부르는 그 뿌리는 육체가 아닌 저급 마나스이다. 저급 마나스는 스스로의 이미지에 의하여 육체를 유혹으로 인도한다. 그러면 육체는 자동적으로 반복을 시작하게 된다. 즉, 습관이 되는 것이다.

 

악에 물들어 있는 인간이 갑자기 마음을 고쳐서 아주 선한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하는 것은 의심해 볼 여지가 다분한 것이다. 이런 사람의 매체는 너무도 오염되어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이 발동시키는 악의 카르마의 원인을 어느 정도 수정해서 악을 중화시키는 것이 고작이다. 원유가 담겨있던 통에 장미기름을 넣을 수는 없는 일이다. 원유 통에는 원유의 진이 꽉 배어 있기 때문이다. 나쁜 경향 및 충동이 육체의 성질에 강하게 심어져 있는 경우 그러한 경향이나 충동은 쉽게 바뀔 수가 없다.

 

육체의 분자는 욕망과 그 방향이 일치되어 있으며 같은 수준에서는 비록 구별을 잘 할 지라도, 즉 자기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것은 잘 피해낼 수 있으나, 고급계로부터 내려오는 충동으로 방향전환을 한다는 것은 그들에겐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다. 만약 고급 충동이 심하게 강제로 변환시키려고 하면, 병이나 정신병자가 되거나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경우까지 생긴다.

 

습관이라고 말하는 육체의 자동작용은 꿈속에서의 좋은 경험, 나쁜 경험 모두를 가능하도록 한다. 이와 같은 것은 우리들이 육체에 받게 된 인상, 특히 카마가 관계해 있는 인상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는 또 하나의 이유인 것이다. 감각적인 꿈에서는 저급 마나스는 깊숙한 잠을 자고 있다. 관능적 경향이 욕망에 의하여 동물의식에 인상을 주게 되면, 동물 의식은 카마에 의해 아스트럴광에서 오는 화상에 한층 쉽게 인상을 각인 시키기 때문에 감각적 꿈은 언제나 동물 의식으로 향해 간다. 따라서 감각에 치우친 꿈을 꾸게 되면 똑바로 깨어나도록 자기 훈련을 해야 한다. 의식이 깨어있는 동안 불순한 생각을 즉각 그 자리에서 떨쳐버릴 수 있으면 수면 중에서도 불순한 생각을 자동적으로 떨쳐버릴 수 있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다.

 

꿈속에서나 혹은 명상을 하려고 조용히 앉아 있을 때면, 늘 엘리멘탈들이 우리들의 내면의 눈에 여러 가지 종류의 화상을 나타나게 한다. 이런 종류의 화상은 이전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거나 우리들의 지적 및 육체적 상태의 결과일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들이 어떤 생각으로 혼란을 겪던가 혹은 방해를 받는다면, 비록 표면적으로 혼란스럽게 나타나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 화상은 더욱 더 혼란스러울 것이다.

 

따라서 학도는 행위의 발생원인 자신의 생각을 바로 잡도록 해야만 한다. 5분 동안의 생각은 5년 동안의 노력을 쓸모 없는 것으로 만들 수가 있다. 설령 쓸모 없이 되어 버린 일이 두 번째에서는 처음보다 쉽게 이루어졌다고 해도 시간을 손실한 것은 분명하다.

 

학도는 여러 가지의 분류나 7중의 구분 다음에는 무엇이 올 것인지 생각할 것이다. 학도는 인간의 어느 본질에서도 일곱 가지 면이 있고, 모든 세포나 기관에는 각각 일곱 개의 구성부분이 있다는 것을 잘 기억해 두어야 한다. 하나의 본질은 특정한 체 안에 그의 본질과 관계가 있는 기관을 가지고 있다. 예로서 비장은 링가 샤리라와 관계가 있다. 그렇지만 링가 샤리라는 비장뿐만이 아닌 육체내의 모든 세포와 다른 중요 기관과도 대응이 된다.

 

뇌에는 일곱 개의 구분이 있고 각각은 하나의 본질과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뇌 전체는 정신-지적 인간에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초보의 학도가 어떤 하나의 본질에 서로 다른 대응물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상상하게 되는 것과 같은 모순은 여기에 없다. 오직 모든 분자는 소우주인 것이고 모든 소우주는 대우주의 거울이라고 말하고 있는 대 진리가 있을 뿐이다.

 

인간의 육체에는 일곱 가지의 면이 있고 그의 각 면은 하나의 본질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하나 하나는 일곱으로 나뉘어진 각각의 부분이 있고, 그 각각의 부분은 또한 하나의 본질을 대표하고 있다. 스툴라 샤리라(육체)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들에게는 49개의 불이 있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대우주의 모든 영역에 접촉할 수가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세세한 점에서 복잡한 대응이 있기 때문이다.

 

 

스툴라 샤리라(Sthūla-Śarīra)

 

엄밀한 비교적 의미에서 육체는 하나의 본질이라고 볼 수 없다. 즉, 본질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우파디인 것이다. 그러나 육체는 의식의 매체이므로, 의식을 연구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것과 별도로 육체는 링가 샤리라의 농밀한 면에 불과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육체와 링가 샤리라는 같은 계에 존재하고 있으며 링가 샤리라는 육체와 마찬가지로 분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구와 지구의 아스트럴광은 육체와 링가사리라의 관계와 같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즉, 지구는 지구의 아스트럴광의 우파디인 것이다. 물질계 중에서 가장 낮은 것이 지구이고, 가장 높은 것은 아스트럴광이다. 그러나 지구의 아스트럴광과 우주의 아스트럴광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심장

 

단순한 동물 의식은 심장의 세포를 제외한 육체 내에 있는 모든 세포 의식을 만들어 내고 있다. 심장은 영적 의식의 기관이기 때문이다. 심장은 실제로 프라나(Prāṇa)에 대응하고 있다. 그것은 그저 프라나와 오라의 덮개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프라나는 우주적 신성인 지바(Jīva)와도 같은 것이다. 전체로 볼 때, 심장은 고급 3개조를 상징하고 간장과 비장은 저급 4개조를 나타내고 있다. 심장은 영적인 인간의 거주처이지만, 정신-지적인간은 일곱 개의 출구를 가진 머리에 주거를 정하고 있다. 머리에는 일곱 개의 뇌가 있는데 일곱 개의 하이어라키의 우파디이며 그것을 상징하고 있다. 현교적으로는 네 개이지만 비교적으로는 일곱인 것이다.

 

심장은 육체의 왕이고, 가장 중요한 기관이다. 가령, 머리가 몸통에서 떨어져 나가도, 심장은 삼십 분간 맥동을 친다. 솜으로 싸서 따뜻한 곳에 두면 맥동은 몇 시간 동안 계속된다.

 

심장에는 마지막으로 죽는 어떤 지점이 있고 이 지점은 작은 보라색 빛으로 표시된다. 그것은 생명의 자리이고, 육체 안의 모든 것의 중심이며 브라흐마인 것이다. 태아 안에서 맨 처음 생명을 시작하는 지점도 바로 이 지점이다. 삼매중의 요기를 흙 속에 묻어 육체의 나머지 부분이 죽어버려도 이 지점만은 살아 있다. 그리고 요기가 부활될 때까지 살아있다. 이 지점은 잠재적으로 마인드, 생명, 에너지 및 의지를 포함하고 있다. 생존 중에는 불처럼 반짝이며 하얀 광채를 방사한다.

 

뇌는 지적의식의 중심이지만, 심장은 영적 의식의 중심이다. 그러나 한 개성이 완전하게 부디-마나스와 합일을 이룰 때까지는 영적 의식을 지배할 수 없으며 그 에너지를 조절할 수도 없다. 그 때까지는 영적 의식에 의해 지배된다. 말하자면 영적 의식은 각고의 노력을 통해 저급 의식에 인상을 준다. 각자의 청정함에 따라 이러한 노력을 통해 인상이 각인 되는 정도도 다르다. 악을 자제하고 선을 활성화하며 잘못한 행위에 대하여 후회하는 것과 양심의 가책은 심장에서 나온다. 이런 것이 머리에서 오지는 않는다. 심장에는 현현해 있는 유일신이 계신다. 나머지 둘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아트마․부디․마나스의 삼위일체는 이 현현의 신을 상징한다.

 

이런 영적 의지를 이루어냈을 때에는, 말하자면 생각 그대로 영적 의지를 받을 수 있게 되었을 때는 모두가 마나스와 일체가 된다. 이것은 아데프트가 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다. 그러나 고급 마나스는 보통의 인간을 직접 지도할 수 없고 저급 마나스를 통해서만 일을 할 수가 있다. 고급 마나스의 영적 의식은 저급 의식에 이른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심장에 의식을 집중하도록 노력해, 영적 의식의 격려를 앉아서 흘려보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성공이 제 아무리 먼 곳에 있어도 시작해야만 도달할 수 있다. 그렇게 애를 쓴다면 길이 열리게 된다.

 

인간의 체에는 세 가지 중심이 있다. 그것은 심장, 머리, 배꼽이다. 앞서 말했지만 심장은 영적 의식의 중심이고, 머리는 정신 의식의 중심이며 배꼽은 카마 의식의 중심이다. 이런 세 가지 중심은 어느 본질이 다른 것에 우세한 가에 따라 서로간에 양(陽)이 되고 음(陰)이 된다.

 

물질계에 현현하기 위해서, 각각의 기관도 마찬가지이다. 양과 음이라고 말하는 뜻은 전기 과학에서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뜻이다. 흐름은 양에서부터 음으로 흐르고, 인상은 양에 의하여 음에서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송과선의 오라는 뇌 속에서 의식이 활동중일 때 진동하며 일곱 색의 섬광을 낸다. 송과선의 둘레에서 발하는 이런 칠 중의 진동과 섬광은 심장에 반영된다. 혹은 오히려 보통의 인간은 뇌에 비하면 음이 되는 심장의 오라에 반영된다고 볼 수 있다.

 

송과선의 오라가 뇌의 일곱 중심에 빛을 주는 것처럼, 이런 오라는 심장의 일곱의 뇌를 진동시켜서 빛을 준다. 만약에 이 때에 심장이 양으로 되어 거꾸로 뇌에 인상을 줄 수 있다면, 영적 의식은 저급의식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영적 의식은 깊은 수면 중에 활발하다. 만약 소위 꿈이 없는 수면에서 일어나는 꿈을 심장에 의해 뇌에 인상을 줄 수 있다면, 당신의 의식은 이미 당신의 개인적 인생의 범위에 제한 당하지 않는다. 만약, 깊은 수면 중에 꿈을 기억할 수 있다면, 당신은 모든 과거사를 생각해 낼 수가 있다. 이것은 “심장의 기억”인 것이다. 이런 기억이 뇌 의식의 일부가 되게끔 뇌에 인상을 받게 되면 제 3의 눈을 개안시킬 수가 있다. 깊은 수면에서는 제 3의 눈이 열리지만, 열린 상태가 그대로 지속하는 것은 아니다. 또 어느 정도의 영적 의식부터는 어느 인상이 뇌에 이르게되어 저급 자아를 반응할 수 있게끔 한다. 뇌를 통하여 받은 인상은 여러 가지이지만, 그것들이 우리들의 전생의 경험은 아니다. 아데프트의 경우, 뇌는 이러한 인상을 지닐 수 있도록 훈련되어 있다.

 

동양의 비교학파는 심장에 관하여 자세하게 나누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각 부분에는 이름이 있는데 신들의 이름을 붙여서 부른다. 즉, 브라흐마의 거실이라든가 비쉬누의 거실 등으로 부른다. 이러한 것의 각 부는 뇌의 일부와 대응하고 있다. 학도는 명상을 할 때, 심장을 왜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지, 또 옛 인도의 문헌에 심장 안의 푸르샤(Purusha)에 대해 왜 그렇게 방대하게 말하고 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일심집중에 관해서 쿠트후미대사는 다음과 같이 쓰고 계신다.

 

“당신들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행법은 자신의 안에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고 대사에게 일심집중 하는 것이다. 자신의 심장에 대사의 인상을 만들어서 육체적 존재의 모든 감각을 하나의 생각에 녹아들어 가도록 집중의 초점을 만들어라. 물질계에서 고급자아의 지식이 나타나도록 극복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것이다. 이것을 이루어 내려면, 육체의 뇌는 고급의식 외의 모든 것에 텅 비워져 있어야 한다.”

 

뇌가 텅 비면 심장으로부터의 인상이 뇌에 이르고 유지된다. 대사는 편지에서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을 이어가신다.

 

“일심집중의 힘을 얻어내는 첫걸음은, 일종의 텅 비어있음(blankness)인 것이다. 집중의 정도에 따라, 결국에는 고급의식과 저급의식이라 말하는 두 가지 상태의 추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빠르고 쉽다.”

 

이런 것을 해 낼 수 있는 자는 생각한대로 아데프트가 될 것이다. 그리고 육체적 기억을 통해 얻은 지식을 저장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이 인체 내에 있는 심장의 최고의 기능인 것이고 전체로서는 카마 루파 안에서 왕좌를 점하고 있는 저급 마나스의 매체인 뇌와의 관계인 것이다.

 

 

의식의 기관으로서의 뇌는, 저급 마나스의 객관적 세계에서의 매체이고, 지금부터 설명하는 것은 저급 마나스가 뇌의 물질분자에 작용하는 것을 말한다. 뇌의 하위 부분은 저급 마나스의 하위 부분에 대응하고 그의 기관이기도 하다. 뇌에서 일어나는 회전으로 인해 생각이 생겨나고 사고 원리의 활동으로 인해 더욱 복잡한 회전을 만들어 낸다.

 

뇌에는 일곱 개의 공동이 있고 살아 있는 동안, 우리들이 말하는 보통의 감각으로는 비어있으나 실제로는 아카샤(Ākāśa)로 꽉 채워져 있다. 각 공동에는 의식의 상태에 따라 독특한 색이 있다(이런 색은 정화된 시력을 가진 자에게만 보인다). 이러한 공동을 오컬티즘에서는 일곱 개의 하모니 혹은 신의 하모니의 음계라고 말한다. 만약 뇌의 기억에 비전이 남는 것이라고 한다면 비전이 반영되어야 할 곳은 이와 같은 공동의 안이 될 것이다. 이것들은 심장으로부터의 인상을 받는 뇌의 부분이며 심장에서 기억한 것을 뇌 기억의 인상에 각인 시키도록 한다.

 

제 4공동은 뇌하수체이고, 고급지성의 교량인 마나스-안타스카라나(Manas-Antaskaraṇa)에 대응한다. 뇌하수체에는 여러 가지의 에센스가 포함되어 있다. 제 5공동은 제 3뇌실에서 살아 있는 동안은 비어 있지만(진동하고 있는 빛을 제외하고), 죽은 후에는 어떤 액체로 채워진다. 제 6공동은 송과선이고 이것도 생존해있을 동안은 비어 있다. 죽은 후에는 뇌사가 응결해서 침전한다. 송과선은 쿤달리니의 진동하는 빛에 닿을 때까지는 마나스에 대응한다. 쿤달리니의 빛은 부디(Buddhi)에 와서는 부디 마나스로 된다. 마나스가 부디로 합일할 때, 또는 부디와 아트마가 마나스에 집중하게 되면, 마나스는 제 3 고급공동 안에 작용을 해서 광륜을 방사한다. 아주 신성함을 갖춘 사람의 경우에는 때로는 눈으로 볼 수도 있게 된다.

 

불은 언제나 송과선의 둘레를 돌고 있으며 쿤달리니가 잠시 그 불을 비추면 전우주가 보인다. 이것은 제 3의 눈이 열렸을 때, 깊은 수면 중 간혹 일어난다. 저급인간이 제 3의 눈의 개안에 이르지 못해 기억하지 못한다해도 제 3의 눈이 열리는 경우는 마나스에 있어서는 좋은 것이다. 제 7공동은 모든 공동의 총합인 것이고 아카샤로 채워져 있는 두 개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아트마의 오라(Ātmic aura) 즉, 신성한 오라의 란(蘭)에 대응한다.

 

지각 즉, 뇌지각은 송과선의 오라 속에 있다. 그러나 빛에 비추어진 송과선은 신의 생각에 대응한다. 뇌하수체는 본질적으로는 심령계(the psychic plane)의 기관이다. 순수한 사이킥 시각2)은 뇌하수체의 분자의 운동에 기인하고 눈의 신경에 직접 관계가 있으므로 시력에 영향을 주어 환각이 일어나게 한다. 머리 안에서 보이는 이 운동은 빛의 번쩍이는 섬광에 의해 일어나고 안구에 자극을 주면 보이는 것과 흡사하다.

 

2) 보통의 투시력으로는 이 기관을 사용할 수 없다.

 

이것은 눈 신경의 분자 운동에 원인이 있다. 분자작용이 뇌하수체 안에서 처음 보이게 되면 이와 같은 번쩍임이 보이고, 그 이상으로 작용하게 되면 송과선 안에서 일어나는 영적 투시력의 움직임과 같은 사이킥 비전을 보는 것이다. 술에 취하거나 열이 나면 뇌하수체에 무질서한 운동을 일으켜서 환영이나 비전을 만들어낸다. 뇌하수체는 술에 취함으로 인해 영향을 받게되면 마비가 되므로 오컬티즘의 학도는 알콜 음료를 엄격히 금해야 한다. 알콜은 뇌하수체와 송과선을 몽롱하게 만들어 버린다.

 

송과선은 영적인 초점이다. 그러므로 비유적인 지각기관인 것이다. 송과선의 작용은 혈액의 순환과는 관계가 없으나, 혈액으로부터 오는 영적 불꽃의 발산에는 관계가 있다. 거기에 인체의 위쪽의 극인 송과선은 아래쪽의 극인 자궁(남자의 경우는 자궁과 유사한 부위)에 대응한다. 송과선의 뇌각(腦脚)은 자궁의 나팔관에 대응한다. 뇌하수체는 송과선의 심부름꾼에 불과하다. 비유하자면 여왕의 마차 앞에 서서 횃불을 들고 뛰어가고 있는 심부름꾼과 같은 것이다.

 

인간은 머리에 관한 한, 암수 양성이다. 중뇌 하단의 사구체는 카마 마나스에 대응한다. 이와 같은 인간 뇌의 지적 영역에 카마가 쓰여지는 것이다. 카마 자체는 힘의 중심이고 저장고인 소뇌에 대응한다. 소뇌는 아이디어를 만들기 위한 재료를 준비한다. 대뇌의 전엽은 소뇌에 의하여 공급된 재료를 마지막 손질하는 연마공인 셈이며, 자신은 이와 같은 재료를 창조할 수 없다. 육체의 낮은 부분에서 카마가 대응하는 기관은 간장과 위이다.

 

이를 요약하면,

카마는 소뇌와 대응

카마 마나스는 중뇌 하단의 사구체에 대응

마나스 안타스카라나는 뇌하수체와 대응

마나스는 송과선에 대응

마나스 부디는 쿤달리니의 불에 닿은 송과선에 대응

오라의 란은 아카샤가 채워져 있는 두개(頭蓋)의 공동에 대응한다.

 

이와 같이 카마와 저급 마나스의 매체인 뇌의 하위 부분은 활동하고 있는 마나스의 하위 부분 혹은 하위 측면과 서로 대응한다. 또한 뇌 안의 공동은 육체의식에 인상을 각인 시키는 역할을 하는 심장과 관계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 안에서 일어나는 작용은 물질계에서의 부디 마나스의 작용을 가능케 해주어 영적 투시력을 발달시킨다.

 

간장과 위

 

앞에서 말한 대로, 간장과 위는 몸통 안에 있는 카마의 대응물이다. 이것은 배꼽 및 생식기관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카마가 링가 샤리라와 관계가 있는 것처럼 간장은 비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것들은 양쪽 모두가 혈액의 생성을 함께 분담한다. 간장은 장군인 셈이고 비장은 부관인 셈이다. 간장이 해낼 수 없는 모든 일을 비장이 완성시킨다.

 

 

비장

 

비장은 링갸 샤리라에 대응해 있으며 링가 샤리라의 안식처를 제공해준다. 링가 샤리라는 비장의 안에 감겨있는데 육체를 위한 생명의 저장고인 셈이다. 또한 프라나의 매체이다. 비장은 체내의 프라나의 중심으로 작용해서 생명을 퍼올려 순환시킨다. 비장은 매우 정묘한 기관으로서 육체의 비장은 진짜 비장의 방패에 불과하다.

 

 

혈액

 

육체를 통해서 생명 즉, 프라나를 순환시키는 것은 혈액의 역할이다. 프라나라기보다는 오히려 프라닉이 우리들에게는 활력 본질인 것이며, 카마 및 링가 샤리라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혈액의 본질은 프라나가 침투해 있는 카마인 것이고, 그것은 이 물질계에 있어서는 보편적인 것이다. 카마가 혈액을 떠나면 혈액은 응결한다. 그러므로 혈액을 카마 루파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며, 어느 의미에서는 “카마의 형체”라고도 말할 수가 있다. 카마는 혈액의 에센스이고 적혈구는 여러 가지 기관의 모든 세포로부터 새어나온 분비물인 전기적인 액체의 방울이다. 그것은 전기적인 작용에 의해 나오게 되며 적혈구는 포하트 본질의 자손이다.

 

해부학자들은 인체를 새롭게 구분하고 새로이 수정해야 한다는 것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완전히 진리를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조금씩 진리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미 말한바 있듯이 비장이 백혈구의 제조소라고 하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앞에서 설명했듯이 사실 비장은 링가 샤리라의 매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혈구는 인체 내의 나쁜 것들을 모조리 먹어버리는 청소부와 같다. 사실, 백혈구는 본질적으로 링가 샤리라의 에센스와 같은 에센스를 지니고 있다. 백혈구는 비장에서 나온다. 그러나 비장은 백혈구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말한 바 있듯이, 비장에 감겨 있는 링가 샤리라로부터 새어 나온다. 백혈구는 차야(Chhāyā)에서 생겨난 땀이다.

 

이와 같이 혈액은 카마, 프라나 및 링가 샤리라를 위해서 육체를 매체로 일을 하고 있다. 학도는 동물 경제에 있어서 왜 혈액이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프라나의 생명 요소에 의해 강화된 비장이 프라나 요소의 매체로서 일을 하는 링가 샤리라의 혈구 즉, 인체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소멸시키기도 하는 유해물을 먹이로 삼고 송두리째 먹어 치우는 백혈구는 인체 내의 구석구석까지 이러한 프라나를 운반하여 분배해주면서 체내를 두루 순회한다. 적혈구는 카마와 프라나에 밀접하게 맺어져 있는 체내의 포하트 에너지를 대표한다. 그렇지만, 혈액의 본질은 카마인 것이고 몸의 모든 부분에 존재해 있다.

 

 

교감체계

 

교감 코드는 트리데니(Trideni)라고 말하는 연수(Medulla Oblongata) 위에 있는 신성한 점에서 일어난다. 이 점에서는 이다와 핑갈라가 시작되는데, 교감 및 뇌척수신경의 맨 위쪽의 접합점에서 제 2경추가 만들어진다.

 

교감 코드는 동물진화의 어떤 단계가 끝난 다음에야 겨우 발견되었고, 제 2척수를 만들기 위해 복잡하게 진화해 왔다. 다음의 라운드의 끝 무렵에 인류는 모두 다시 자웅 동체가 되고 그 때에는 인체에 두 개의 척수가 생길 것이다. 제 7근본 인종에서 자웅은 하나로 될 것이다. 인간의 성적(性的) 창조력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즉, 시초에는 없었다. 성적 창조력은 인간 또는 신성한 성질의 과정에서 이상한 방향으로 전환했기 때문에 모든 것들은 이같은 힘을 모두 소진해 버리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제 6인종 및 제 7인종의 끝 무렵에는 인간의 성 기관이 없어질 것이다.

육체의 진화는 인종에 대응하고 인종의 진화와 함께 교감 코드는 진정한 척수를 발달시켜 두 개의 척수는 하나로 합쳐질 것이다. 우리들은 자기 의식이 더해져서, 신성한 본성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있다. 제 6인종은 “푸딩 주머니”인 제 1인종에 대응하지만 최고의 지성과 영성을 겸비한 형체로 완성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1인종과는 차이가 있다.

 

교감 체계는 마나스보다는 링가 샤리라, 프라나, 카마와 연결되어 있다. 교감 신경은 탄트리카(Tāntrikas)에 의해 작용하는데, 이 탄트리카를 시바의 비나(Vīṇā) 또는 칼리의 비나(Vīṇā)라고 말한다. 탄트리카는 하타 요가에서 사용하는 방법이다.

 

교감 신경의 가장 중요한 신경총은 태양신경총으로서, 복부의 뇌이며 카마와 대응해 있기 때문에 이 곳에서 정서를 느낀다. 봉해져 있는 편지도 읽어 내거나 사이코메트리를 일으키는 사이킥적 투시력을 인지하는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척주

 

척주는 브라흐마단다(Brahmadaṇḍa)라고 말해지고 있으며 브라흐마의 지팡이다. 고행자가 쓰고 있는 대나무 지팡이와 요기의 칠 단 지팡이는 이를 상징한다. 칠 단은 척수에 따라 있는 일곱의 나디(Nāḍī)이다. 히말라야를 넘어와서 마나사사로바라(Mānasasarovara) 호수에 정기적으로 모여드는 요기들은 삼 단 대나무 지팡이를 쓰고 있는데 이를 트리단다스(Tridaṇḍas)라고 부르고 있다. 세 개의 단은 척주에서 일하고 있는 세 개의 생명의 기를 나타내고 있으며, 세 줄의 브라흐마의 실로도 상징된다.

 

세 줄의 실에는 다른 의미가 있는데 그것에 관해 설명하면 브라흐마의 세 개의 비전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첫 번째 비전은, 아이들이 태어날 때 점성술사로부터 신비의 이름을 받게 되는데 그 이름을 신으로부터 받은 비전이라고 여긴다. 인도 사람들은 이 이름이 신으로부터 받은 비전이기 때문에 그 이름을 누설하면 죽는다고 생각한다. 제 2의 비전은 일곱 살에 일어난다. 그 때 아이들은 자신의 실을 받는다. 제 3의 비전은 카스트로 들어가는 비전으로 11세나 12세 때에 행해지는 의식이다.

 

7개의 육체적인 나디는 척주 위쪽의 선골에서 제 1경추에 이르고 있다. 초육체적인 나디는 머리 안에 있으며 그 중에 네 번째의 것은 점액 즉, 뇌하수체이다. 육체적인 나디는 해부학자에게 알려져 있는 척수의 부위에 상응한다. 척수를 타고 내려온 여섯이나 일곱 개의 나디 또는 신경총이 있다. 그렇지만 나디라고 말하는 언어는 전문 용어가 아니다. 그것은 매듭, 중심, 신경절 또는 그와 비슷한 것을 묘사할 때 쓰여진다.

 

신성한 나디는 수슘나의 길이에 따라서 있는 위의 것들이다. 그의 여섯 개는 과학에 알려져 있으나 일곱 번째의 제 1경추 가까이 있는 것은 알려져 있지 않다. 라자 요기들조차 여섯 개의 신성 나디에 관해서 말할 뿐 일곱 번째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수슘나는 정 중앙의 통로이고 이다는 척수의 왼쪽, 핑갈라는 오른쪽에 있다. 앞에 말한 바 있는 교감신경이 새로운 척수신경을 만들기 위해 함께 있게 되면 이다와 핑갈라는 수슘나에 합쳐져서 이 세 줄기는 하나로 합쳐진다. 교감 신경은 남성보다는 여성이 발달해 있으며 내분비 조직과 대단히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또 뇌척수신경은 근육조직과 관계가 있어, 여성보다는 남성이 발달해 있다. 교감신경과 뇌척수신경은 언젠가 평형을 이루고 자웅 동체가 전형적인 인간이 된다.

 

순수한 아카샤는 수슘나를 통해 올라온다. 아카샤의 두 면은 이다와 핑갈라를 통한다. 이다와 핑갈라는 수슘나가 들어가 있는 척수의 굴곡진 벽을 따라서 일을 한다. 이다와 핑갈라는 반물질이며 한편은 적극적이며 또 한편은 소극적이다. 하나는 태양이고 다른 하나는 달인 셈이다. 그리고 이 두 개는 수슘나가 자유롭게 영적인 흐름을 하도록 해준다. 이다와 핑갈라는 자신들만이 다니는 길이 명백히 정해져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들은 온 몸에서 번쩍일 것이다.

 

이다와 핑갈라에 집중함으로써 “신성한 불꽃”을 일으킬 수 있다. 또한 한 쪽만의 작용으로도 수슘나의 흐름을 활동시킬 수가 있기 때문에 서로 감시하는 역할도 한다(그러나 일심집중의 과정이 아직까지는 자세하게 소개되지 않았다).

 

수슘나와 이다와 핑갈라, 세 가지는 기(氣)이고 브라흐마의 실로 상징되어 있다. 이러한 기가 활발해지면, 중앙의 관에서 시작해, 그 곳으로(시작점) 돌아오는 전신을 통하는 일종의 순환이 일어난다. 이러한 것은 나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양분이 안쪽을 타고 올라가서 바깥쪽을 타고 내려가는 것과 같은 순환이다. 여기에서 인간을 나무로 부르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상징으로는 디야니-초한의 몸을 나무로 나타내고 있다.

 

남자든, 여자든 독신이 아니고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실천적 오컬티즘을 바르고 안전하게 공부할 수 없는 이유를 이제서야 알았을 것이다. 또, 하타 요가의 훈련을 보통의 가정 생활 안에서 시작하거나, 성적으로 방종한 생활 속에서 시작했다면 어느 정도 성공했더라도 병을 얻게 되거나 더러는 미치광이가 된다. 척수는 뇌와 생식기관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고 이 연결은 교감신경에 의해 한층 강해진다. 그러나 척수는 뇌의 주요한 공동에 열려져 있는 통로이다. 생식기관의 흥분은 척수의 관을 통해 어떤 충동과 정묘한 에센스를 뇌로 올려 보낸다.

 

그렇다면, 세 개의 생명의 기는 의지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다. 의지와 욕망이란 똑같은 측면의 고급과 저급일 뿐이다. 이러한 것들의 기는 앞에서 말한 바 있는 관속에서 일을 하는 것이기에 관속의 절대적인 청정이 대단히 중요하다. 만약 관이 더러워졌을 때, 의지에 의하여 기가 활기에 넘쳐 있을 경우, 병이 생기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흑마술에 빠져들게 된다. 따라서 모든 성적행위는 실천적 오컬티즘을 행하는 학도에게는 엄하게 금하고 있다.

 

실천적 오컬티즘의 가르침은 집중의 힘을 필요로 한다. 그 다음에는 어떤 일정한 지도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의 마인드와 의지를 집중시키는 힘을 아직 얻지 못하고 있는 학도는 지도를 받아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매일 명상을 하도록 규칙을 정하는 것은 낮은 단계에서의 훈련이 끝난 다음부터이다. 일심집중의 힘을 얻어내는 방법은 별다른 것이 없다. 또 실천적 오컬티즘을 수행함에 있어서 일심집중력이 없으면 크게 진보할 수 없는 것은 고사하고 다른 어떤 진보도 이룰 수 없다. 아니, 시작조차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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