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사념의 작용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면 어떻게 해서 이런 지식을 사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실제 문제에서는 어떤 생각을 가져야 좋을지 알아보도록 하자.
먼저 이런 지식을 통해 어떻게 우리들 스스로 진화해가며 또한 다른 사람들을 도와 줄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사념의 작용을 과학적으로 고찰해보면 우리들이 진화에 관하여 보통 생각해 왔던 것보다 훨씬 중대한 문제라는 것이 명백해진다.
모든 사념과 감정은 하나의 성향을 강하게 하기도 하고 약하게 하기도하여 영속적인 효과를 생기게 한다. 더욱이 모든 사념파와 사념 형태는 그 사념이 향하는 상대에게 필연적인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임으로 마음에 품은 사념과 감정은 최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보통 사람은 감정을 점검해보고자 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마음속에 솟구쳐 오르는 감정을 느끼면 그는 자신의 감정에 몸을 맡기고 그것을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념의 힘이 작용하는 것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사람은 그와 같은 감정의 발산을 하나 하나 세심히 짚어보고 그 감정이 자신을 지배하기 이전에 자신의 진화에 해로운가 해롭지 않은가를 검토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에게 이익일 뿐 아니라 의무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감정은 나오는 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철저하게 조절해야 한다. 현재 우리들이 도달해 있는 진화 단계는 멘탈체의 발달에 있으므로 이 문제를 보다 신중히 취급해 자신의 진화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마음이 가는 대로 두는 대신에 마음은 인간이 아니고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라는 것을 이해해서 마음을 조정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마음을 불안정한 상태로 두어서는 안 된다. 멍하고 흐린 상태에서는 어떤 사념 형태일지라도 마음 속으로 스며들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존경하는 와트박사가 이전에 말했듯이, 악마는 한가한 사람을 찾아내어 악을 행하게 한다. 이 말은 위의 내용에 적용시켰을 경우 확실한 진실이다. 왜냐하면 멍한 상태의 마음은 좋은 인상보다는 나쁜 인상을 훨씬 쉽게 취하기 때문이다.
마음의 통제를 얻어내는 첫 걸음은 늘 마음에 유익한 생각을 지니도록 하는 일이다. 마음의 움직임의 배후에 확실하고 바람직하며 쓸모 있는 일련의 사념을 지니도록 해야 한다. 해야 할 명백한 의무가 없을 때 언제든지 되돌아 올 수 있는 사념을 간직해 두는 것이다.
마음을 훈련하는 또 하나의 필요한 점은 해야 할 일을 철저히 해낸다는 신념을 마음에 새겨두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집중력을 기르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한 훈련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마음을 완전히 하나의 일에 잠깐동안이라도 고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 알 수 있다.
마음은 이것저것 헤매고 다니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다시 말해, 각기 다른 여러 생각들이 한꺼번에 섞여 들어온다. 하나의 주제를 단 5분 동안만이라도 마음에 고정시키려고 하면, 마음은 여러 차례 옆길로 빠져나가 몇 번이고 다시 그 주제로 되돌아오게 된다.
집중 그것자체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다행히 그것을 해볼 기회가 자주 주어진다. 결국은 집중할 수 있게 된다면 일상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무엇을 하든지 간에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 그것에 주의를 집중하고 될 수 있는 한 높은 성취를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만약 편지를 쓰고 있다면, 세세한 사항에 대한 부주의로 편지의 목적이 흐려지지 않도록 매우 정확히 써야 한다. 책을 읽고 있다면 설령 그것이 소설이라 해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을 집어내어 거기에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은 모두 얻어야 한다.
무엇을 배우는데 있어 마음에 대한 확실한 훈련을 하지 않고는 그냥 지나쳐버리지 않겠다는 노력은 대단히 유익한 것이다. 왜냐하면, 힘이 불어나는 것은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노력을 하지 않고 마음이 가는 대로 따라가기만 한다면 마음은 늘 약한 상태로 남게 된다.
또 하나 매우 중요한 점은 자신의 에너지를 절약하는 요령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제각기 일정량의 에너지밖에 지니지 못하므로 그것을 얼마나 유효하게 잘 사용하는가는 자신의 책임이다.
보통 사람은 그의 힘을 가장 쓸모 없는 곳에 낭비해 버린다. 그러나 오컬티즘의 학도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보통 사람은 단지 불안정한 진동의 중심에 불과하다. 그들은 언제나 고뇌와 걱정을 가지고 있거나 매우 소심해 있으며 혹은 무엇인가 얻어내려고 애태우고 있다. 이런 저런 이유에서 그들은 늘 불필요하게 흥분해 있으며, 그것도 거의가 쓸모 없는 일에 대한 것들이다.
자신은 전혀 의식해 본적이 없겠지만 그들의 아스트럴체와 멘탈체는 늘 주위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들은 언제나 이러한 진동과 동요를 불행하게도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염시키고 있는 것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어리석은 욕망이나 감정에 의해 불필요하게 흥분해 버린다. 감이 빠르고 쉽게 느낌을 받는 사람이 도시에 살거나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 가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사람들이 막대한 활력을 낭비해 버리는 또 하나의 원인은 불필요한 논쟁에 의해서다. 어떠한 의견이든, 설령 그것이 종교나 정치에 관한 것이든 일상생활에 관한 것이든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지니고 있는 의견을 제압하고자 하는 욕망을 지니고 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어떤 믿음을 갖고 살건 그것이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며, 자기가 이 세상을 단 하나의 사상과 습관으로 통일시키기 위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아니라는 아주 단순한 진실을 받아들이기는 매우 힘들 것이다.
하지만 현명한 사람이라면 진리는 여러 면으로 이루어져 있고, 한 사람 혹은 하나의 신조를 믿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전체가 파악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또한 사고하는데 있어 의견의 차이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자신의 의견과 대립하는 견해를 가진 사람 또한 그러한 신조를 따르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사람들이 논쟁을 일삼고 있는 대부분의 주제는 그토록 골치를 썩여가며 토론할 가치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며, 가장 확고하고 목소리가 큰 사람일수록 아는 것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오컬티즘의 학도는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누군가가 물어오면 대단히 즐겁게 답을 해주지만 무익한 말싸움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는 않는다.
힘을 낭비하게 되는 또 하나의 원인은 마음의 걱정이다. 많은 사람은 늘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닥칠지 모르는 재난에 대해서 걱정한다. 즉 죽음이나 사후의 일에 대한 두려움 혹은 경제적인 파멸이나 사회적 지위의 실추 등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민한다.
막대한 양의 힘이 이와 같은 무익하고 불쾌한 면에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이 세계는 절대적인 정의로운 법칙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지고의 길로 올라가는 것이야말로 신의 의지이고 그와 같은 진보의 길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러한 어리석은 행동을 모두 버리게 될 것이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과 자신에게 닥친 모든 것들은 진화를 돕기 위해 있는 것이며, 자신의 진화를 늦추게 하는 유일한 것은 결국 자기 자신임을 이해해야 한다.
자신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고민하거나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오직 앞으로 나아가며 가장 가깝게 있는 의무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렇게 해 나가는 것이 자신에게 선이 된다는 것을 확신하고, 마음의 걱정이 남을 돕거나 심지어 최소한의 역할조차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많은 재난과 힘을 낭비하는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현명한 사람은 악의가 섞인 감정으로 힘을 낭비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말이나 마음에 걸리는 어떤 것으로 인해 화를 내지 않는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거짓이나 불쾌한 말을 했다 해도 십중팔구 그의 말 뒤에는 악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설령 그의 말에 악의가 있다고 해도 감정을 자극하도록 그대로 둔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행동이다.
일부러 끄집어내어 오래도록 생각함으로써 스스로 상처받거나 스스로의 감정에 의해 자극 받지 않는 한 불쾌한 말만으로 상처를 입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말을 조용히 넘기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다른 사람이 말한 것 때문에 자신의 마음에 동요가 일어났다면, 자신의 멘탈체의 동요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에게 있을 뿐,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없다.
다른 이들은 마음에 상처를 입히려 행동하지도 않았으며 할 수도 없다. 만약 학도가 불쾌하게 되거나 마음이 상했거나 그에 의해 큰 고통을 겪게 된다면, 그 책임은 스스로가 져야 하는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의 말로 인해 자신의 멘탈체나 아스트럴체에 동요가 온다면, 그것은 아직까지 자신의 매체를 완전히 제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며, 아직까지는 이러한 모든 것을 혼의 입장에서 내려다보면서 다른 이들의 어리석은 행동이나 평판에 눈을 돌리지 않고 오직 자신의 길을 걷고 자신의 일에 충실할 수 있을 만큼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