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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을금화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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呂祖게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빛을 돌리는 법(回光之法)은 원래 사람의 모든 행동 곧 가거나(行) 멈추거나(坐) 눕거나(臥) 모두에 통하는 것인데, 중요한 문제는 스스로 그 통하는 기틀의 구멍(機竅)을 찾아 가지는 것일 뿐이다. 내가 앞에서 ‘텅 빈 방에 흰 것이 생긴다.(虛室生白)’고 설명하여 보인 적이 있었는데 빛(光)이 곧 흰 것(白)이 아니겠는가? 다만 처음에 아직 빛이 나타나지 아니할 때에 이러한 효험이 일어난다고 생각하고서, 만약 빛이 나타났다고 여기에 그것에 뜻을 붙여 놓게 되면 그 자체로써 意識에 떨어지게 되니, 본성의 빛(性光)이 아니라는 말도 있다. 

그대들은 그와 같이 빛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문제에 얽매이지 말고, 오직 생각 없이(無念) 생각을 살려야(生念) 할뿐이다. 어떻게 하는 것을 생각을 살린다.(生念)고 하는가? 한평생 지킬 수 있는 하나의 생각(一念)은 빗나감이 없는 바른 생각(正念)이니, 보통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같이 아니하다. 알고 보면 마음이 생각으로 되는 것이니 생각이라는 것은 나타나 있는 마음이다. 이 마음은 그 자체가 빛(光)이요 황금 꽃 가운데의 암꽃술(葯)인 것이다. 보통 사람이 물건을 볼 때에는 우선 눈(眼)으로 비추어 보게 되는데 처음에는 가름(分別)을 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르지 못한다. 이러한 상태가 본성의 빛(性光)이다. 마치 거울이 아무런 마음 없이 비추는 것과 같고 물(水)이 아무런 마음 없이 비추는 것과 같다. 그러다가 조금 지나면 의식의 빛(識光)이 생긴다. 거울에 그림이 비쳐서 나타나니 이미 거울은 없어진 것이고, 물(水)에 모습이 비치어 나타나니 이미 물(水)이 아닌 것이다. 빛에 意識이 생기고 나면 이제는 빛이라 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대들의 경우 처음에는 본성의 빛(性光)이었지만 그것이 생각으로 바뀌게 되면 意識이 되는데, 의식이 일어나게 되면 빛(光)은 어두워져서 찾아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빛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빛이 이미 의식으로 되어 버린 것이다. 黃帝內經에서 ‘소리가 움직이면 소리를 생기게 하지 아니하고 울림을 생기게 한다.’라고 말한 것이 이러한 의미이다. 楞嚴經의 어떤 해설서의 앞부분에서 ‘티끌에도 있지 아니하고(不在塵), 의식에도 있지 아니하고(不在識), 오직 뿌리를 가려잡을 뿐이다(惟選根)’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무슨 뜻인가? 티끌(塵)이란 바깥 세계의 물질이니 이른바 일체 중생이 모여서 사는 세계(器界)라는 것이다. 본질에 있어서 나 자체와는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 바가 없는 것이다. 이 티끌을 쫓아가게 되면 바깥 세계의 물질을 나(己)라고 여기게 된다. 물질은 반드시 어디론가 돌아가는 곳이 있으니(有還), 통함(通)은 문과 창(戶牖)으로 돌아가고, 온전한 밝음인 해와 달의 합쳐짐(明)은 해(日)와 달(月)로 각각 돌아가게 된다. 남(他)을 빌어서 나(自)라고 하니 끝내 나(吾) 아닌 것만 있게 되지만, 楞嚴經에서처럼 이치를 파고들어서 마침내 너(汝)가 돌려보내지 못하게 됨에 이르게 된 것(不汝還者)에 이르면 너(汝)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해와 달이 합쳐진 밝음(明)은 해(日)와 달(月)로 돌아가지만 해나 달의 밝음(明)을 보는 자체(見)는 돌아가지 아니하는 것이다. 하늘에는 해나 달이 없는 때도 있지만 사람에게는 해나 달을 보는 본성이 없을 때가 없다. 그와 같다면 해와 달을 가름(分別)을 일으킨다고 하는 이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본성의 세계 곧 내가 있다는 이치(吾有)에로 돌아갈 수 있지 아니 하겠는가?

밝음과 어두움을 원인으로 하여서 본성이 가름(分別)을 일으킨다고 하는 이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본성의 세계 곧 내가 있다는 이치(吾有)에로 돌아가서 밝음과 어두움이 둘 다 없어질 경우에 이르면, 가름(分別)이라는 것이 어디에 있게 될까? 그러므로 가름이라는 것(分別) 즉 意識도 돌아갈 곳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내면의 세계에 있는 티끌(內塵)이 된다. 오직 본성을 봄(見性)만이 돌아감이 없다고 하는데, 본성을 볼 때에의 그 본다는 것(見)은 봄(見) 자체가 아니니, 본성을 본다는 것(見性)도 돌아갈 곳이 있는 것이다. 돌아가는 것(還者)은 그 의식이 온갖 세계를 돌고 돌면서 변하는 가운데에서 본성을 보게 되더라도 그와 같이 본성을 봄(見性)은 돌아갈 곳이 있어서 돌아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楞嚴經에서 “阿難아 너로 하여금 온갖 세계를 돌고 돌아서 변하게 하는 것은 마음과 눈 탓이다(使汝流轉, 心目爲咎)”라고 말한 것과 같은 것이다. 楞嚴經에서 처음에 밝음(明), 어두움(暗), 통함(通), 막힘(壅), 연분(緣), 어리석은 텅 빔(頑虛), 힘차게 가득 참(鬱勃), 말고 밝음(淸明)이라는 여덟 가지 돌아갈 곳이 있는 모습들(八還)과 본다는 관념(見)을 가려 밝히는 떼에 위의 일곱 가지는 모두 그 하나하나가 돌아갈 곳이 있음을 밝혔다. 그러므로 마지막으로 본성을 본다는 것(見性)만이 남아서 阿難으로 하여금 마치 길을 가는 禪僧들이 柱杖子라는 지팡이를 잠시도 손에서 떼어놓지 않듯이 그것을 잠시도 떼어 놓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깊이 파고들어 가면 결국 본성을 본다는 것(見性)에는 이미 여덟 가지 의식(八還)이 함께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이미 참으로 돌아갈 곳이 없는 궁극적인 것이 아니다. 가장 마지막에 가서 이러한 상태조차도 한 번에 깨뜨려야 참다운 의미에서 본성을 깨달음(眞見性)이 될 것이고, 참다운 의미에서 돌아갈 곳이 없는(眞不還) 나 자신의 主人이 될 것이다. 

그대들이 빛을 돌린다.(回光)고 할 경우에는 바로 그 가장 처음의 더 이상 돌아갈 곳 없는 빛을 돌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털 한 오라기만한 意識과 생각(念)도 이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너(汝)로 하여금 온갖 세계를 돌고 돌면서 변하게 하는 것은 이 여섯 가지 감각 기관(六根)에 지나지 아니하지만 너(汝)로 하여금 깨달음(菩提)을 이루게 하는 것도 역시 이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일 뿐이다. 티끌(塵)과 의식은 어느 것이나 쓰이지 아니한다. 감각 기관(根)을 쓰는 것이 아니고 그 감각 기관의 가운데에 있는 본성(根中之性)을 쓰는 것이다. 이제 意識에 의하여 빛을 돌리는 잘못(識回光)에 떨어지지 아니하면 감각 기관(根) 가운데에 있고 의식으로 변한 성(議性)을 쓰는 것이다. 털끝만 한 차이라고는 하지만 그를 가려내는 기준이 또한 여기에 있다. 

마음을 쓰면(用心) 그 자체로서 議識에 떨어진 빛(議光)이 되고,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그대로 본성의 빛(性光)이 된다. 털끝만 한 차이가 천리의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니, 가려내지 아니 하여서는 아니 된다. 議識을 끊어 버리지 못하면 神이 살아나지 못하고 마음이 그에 아무것도 빌붙을 수 없도록 비어 있지(空) 못하면 丹이 맺히지 아니한다. 마음이 움직임과 변화를 여의고 조용하면(靜) 곧 丹이 이루어지고, 마음이 그에 아무것도 빌붙을 수 없도록 비어 있으면(心空) 그 자체로서 丹을 이루는 原料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황금 꽃의 암꽃술(葯)이 된다. 하나의 사물도 붙여 두지 아니하는 것(不着一物)을 마음이 움직임과 변화를 여의고 조용하다(心靜)고 부르고, 하나의 사물도 남아 있지 않게 하는 것(不留一物)을 마음이 그에 아무것도 빌붙을 수 없도록 비어 있다(心空)고 부른다. 그에 아무것도 빌붙을 수 없이 비어 있음(空)으로 보게 되면, 그 빌붙을 수 없이 비어 있음(空)은 아직 참으로 비어 있음이 되지 못한다.(未空). 그에 아무것도 빌붙을 수 없이 비어 있되(空), 그 아무것도 빌붙을 수 없이 비어 있음(空)조차도 잊어 버려야 참으로 아무것도 그에 빌붙을 수 없는 비어 있음(眞空)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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