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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자를 애통해하는 이에게

2017.03.19 01:48

아이들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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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감으로 가장 비통한 경우의 하나는 아이들이 이 물질계로부터 떠나버렸을 경우이다. 뒤에 남겨진 부모에게는 아이가 차지하고 있던 빈자리와 사랑스러운 한마디 목소리조차 들을 수 없는 적적한 고요함만이 남겨진다.

 

이때에 이러한 지식이 없는 아이들에게는 생소한 영계에서 어떤 일이 생기고 있을까?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은 그곳의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확실하게 그리고 즉시 적응할 수가 있다.

 

그들은 사랑하는 어버이나 형제나 자매 그리고 친구를 잃어버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아이들은 지금은 낮을 대신해 밤이라 부르는 시간에 놀고 있는 것뿐이다. 따라서 아이들은 잃어버리거나 헤어져있다는 느낌을 갖지 않고 있다.

 

낮 동안에도 그들은 혼자가 아니다. 거기서는 여기의 낮과 똑같이 아이들이 모여서 함께 놀고 있다. 지복의 땅에서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에 넘쳐 놀고 있는 것이다.

 

여기 물질계에서의 아이들은 역사상의 인물들을 흉내내거나 모든 아름다운 동화나 모험담의 주인공이 되어 놀이를 하며 논다. 상위 세계의 섬세한 물질에 있어서 사념은 보이는 형을 취한다. 따라서 자신을 어떤 주인공으로 상상을 하는 아이들은 일시적이지만 즉시 그 주인공의 실제의 모습을 취한다.

 

만약 마법의 성을 원한다면 사념만으로 마법의 성을 세울 수가 있다. 만약 군대에게 호령해보고 싶은 생각을 한다면 즉시 군대가 나타난다. 그래서 죽은 자들의 사이에서 아이들은 대부분 늘 즐거움에 차있고 실제로 종종 너무 지나칠 정도로 행복해한다.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기질을 지닌 아이들, 자연스럽게 종교적인 문제를 생각하는 아이들은 반드시 자신이 구하는 것을 찾아낸다.

 

왜냐하면 천사나 먼 옛날의 성자들이 존재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더 이상 경건한 공상의 산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필요로 하거나 믿는 사람들은 곧바로 끌어 당겨지고 그들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훌륭하고 친절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질적인 형상으로 나타낸 신을 보고 싶어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들도 실망할 것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매우 부드럽고 친절한 선생들로부터 모든 형상은 바로 신의 형상(나타냄)이며, 그는 어디에든지 있고, 그의 가장 낮은 창조물에 대해서도 돕고 봉사하는 사람들은 실은 신을 돕고 봉사하는 것임을 배운다.

 

어떤 아이들은 보람을 느끼는 행동을 하고 싶어한다. 그들은 다른 이를 도와주고 위로하는 일을 좋아한다. 그와 같이 도와주고 위로하는 일을 원하는 아이들에게는 상위 계에 있는 무지한 인간들에 대한 광대한 활동분야가 열려 있다.

 

그런 영광에 채워진 분야를 자비와 사랑의 사자로서 거쳐가는 동안에 그들은 훌륭한 옛 가르침의 진리를 배우게 된다.

 

“네가 나의 형제들에게 베푸는 것은 곧 나에게 베푸는 것이다.”

 

태어난 지 얼마 안된 젖먹이 아이들은 놀기에는 아직 너무 어리지 않을까? 이것도 걱정할 것이 없다. 많은 죽은 어머니들이 기다리고 있어 자신의 아이들이나 되는 것처럼 가슴에 품고 받아들여서 사랑하기 때문이다.

 

보통 이와 같은 젖먹이 아이는 영계에서 잠깐 머물렀다가 다시 한번 지상으로 되돌아오는데, 그것도 종종 같은 부모에게로 돌아온다.

 

이러한 젖먹이 아이들에 대해 중세의 수도사들은 아주 잔혹한 공포를 만들어냈다. 세례를 받지 않은 젖먹이는 어버이 되는 자로부터 영원히 떠나간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세례는 실제 신성의 상징이며, 그 효력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와 같은 외면적인 의식을 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누구나 그것이 신의 영원의 법칙에 영향을 행사한다든가, ‘그’를 사랑의 신에서 무자비한 폭군으로 바꿔버리는 비과학적인 망상을 갖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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