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저Ⅶ   지구 인류의 어버이

by devascenter posted Mar 1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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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저Ⅶ

 

 

 

지구 인류의 어버이

 

 

1. 보아라. 정(情)을 가진 형체 없는 생명의 시작을(a).

시초의 신성한 (매체)(b), 즉 어머니-영(아트만)에서 온 하나. 다음은 영적인 것(아트마-붓디, 영-혼)(c). (그 다음) 하나에서 셋이(d), 하나에서 넷이(e), 그리고 다섯(f). 이로부터 셋, 다섯, 일곱. 이들은 3중이며 아래로 향한 4중이다(g). 즉 최초의 주의 “마인드에서 태어난 자식들”이고, 빛나는 일곱인 것이다.

그들이 바로 그대이자 나이며 그이니라, 오! 제자여. 그대와 그대의 어머니 부미(Bhūmi, 지구)를 지키는 자가 바로 그들이니라.

 

(a) 창조적 권능자들의 하이어라키는 황도십이궁에 기록되어 있는 열 둘의 대그룹 내에서, 일곱(또는 넷과 셋)의 비교적 힘으로 나누어져 있다. 게다가, 현현하는 일곱 단계는 일곱의 혹성과 관계가 있다. 이 모두는 신성한 영적 존재들, 반영적 존재들, 정묘한 존재들의 무수한 그룹으로 나누어진다.

 

이들 가운데 주된 하이어라키들은 현교적으로 위대한 4개조 혹은 브라흐마들(Brahmās)의 “네 개의 체와 세 개의 능력”, 혹은 판차스야(Pañchāsya) 즉 다섯의 브라흐마 또는 불교에서 말하는 다섯 디야니 붓다 속에 암시되어 있다.

 

최고의 그룹은 성스러운 불꽃들, 혹은 소위 이야기되는 “불의 사자들”과 “생명의 사자들”로 구성된다. 그의 비교적인 뜻은 12궁의 사자궁안에 안전하게 숨겨져 있다. 그것은 상위의 신성한 세계의 핵(核, nucleole)이다.(부록의 첫 몇 페이지에 있는 주석을 참조) 그들은 형체가 없는 불의 숨들이고, 어떤 면에서는 상위의 세피로트의 3개조와 같은 것이다. 카발리스트들은 이 3개조를 “원형계”로 지칭한다.

 

이와 동일한 수를 가진 똑같은 하이어라키는 일본의 창조신화에서 “태초들”속에 발견된다. 이것은 신도(神道)와 불교의 종파 양쪽에서 가르치고 있다. 하이어라키의 체계에서는 인류 발생론이 우주 발생론보다 먼저 오며, 신성이 인간 속으로 녹아들어(물질 속으로 내려오는 동안에)눈에 보이는 우주를 창조한다. 오모이에(Omoie)에서 경건하게 말하기를, 전설적인 존재들은 “높은 (비밀의) 가르침과 그 깊은 진리의 형을 내려주신 상징으로 이해돼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을 자세히 말하려면 너무도 지면을 많이 차지하지만, 여기서 몇 마디 말해두는 것이 적절하겠다. 아래는 이 인류-우주 발생론의 간단한 요약이다. 그리고 이것은 일반적 개념과는 가장 거리가 먼 개념들조차도 하나의 동일한 고대의 가르침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 보여준다.

 

모두가 아직 카오스(Kon-ton)였을 때, 셋의 영적 존재가 미래의 창조의 무대에 나타났다. 이들은 (1) "중앙 하늘의 신성한 군주, Ame no ani naka nushi no Kami" (2) "하늘과 땅의 지고의 신성한 자식, Taka mi onosubi no Kami“, 그리고 (3) 단순히 "신들의 자손, Kamu mi musubi mo Kami"이다.

 

이들은 형체나 실질적 질료를 띠지 않았다. (이들은 우리들이 말하는 아루파의 3개조이다) 왜냐하면 천상계의 질료도, 지상계의 질료도 그때 분화되지 않았으며, 만물의 본질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b) 조하르는 “우화적인 우주 발생론의 철학”을 13세기에 모세, 태레온과 그를 도운 시리아와 칼테아의 그노시스파의 기독교도에 의해 모아져서 재편집되었고, 또 그후 많은 기독교도에 의하여 고쳐지고, 가필이 되어 거의 성서만큼이나 현교적인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해서 조하르에서의 신성한매체Vehicle란 것은 칼데아의 수(數)의 책에서 나와있는 것과 같지 않다. 말할 것도 없이, 절대적 끝이 없는 무(NO-THING)인 아인-소푸도 현상세계에 하강해 나타내기 위해 자신의 탈것(히브리어로는 메르카바(Merkābāh), 산스크리트어로는 바하나(Vāhana)) 혹은 매체로 하여, 유일한 것의 형체, 즉 현현해 있는 천상의 인간(최초의 원인)의 형상을 사용한다. 그러나, 카발리스트들은 절대자에게는 속성이 전혀 없는데, 어떻게 해서 절대자가 사물을 사용하거나 어떠한 속성을 발휘할 수 있는가를 명백히 밝히고 있지 않다. 또한 실제로 최초의 원인(플라톤이 말하는 로고스), 즉 원초의 영원한 이데아가 아담카드몬(제2 로고스)을 통해 현현한다는 것도 설명하지 않고 있다. “수의 책”에서는 엔(EN)(아인Ain, 아이오루Aiōr)은 유일하게 스스로 존재하는 자(自存者)이지만, 반면 그의 “깊음”(그노시스파의 바이토스(Bythos) 또는 부톤(Buthon)이고, 또한 프로파토르(Propator)라고도 부른다)은 주기적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그 “깊음”은 브라흐마(Brahmā)인 것이고, 브라흐마(Brahma)나 파라브라흐만(Parabrahman)은 아니다. 그의 광선이 “남성과 여성”의 아담-카드몬 즉 현현한 로고스(객관우주)의 현현을 위한 매체로 삼는 것은, 아인-소푸가 아니고, 깊음, 빛의 뿌리, 푸로파토루(Propatōr), 바꾸어서 말하면 미현현의 로고스, 추상적인 이데아인 것이다. 그러나 조하르에서는 다음과 같은 앞뒤가 맞지 않는 문장이 있다.

 

“아주 오랜된 것들에는 숨어있으며, 행방을 모르게 하고 있지만, 마이크로프로소푸스는 나타났다 나타내지 않았다 한다”. 이것은 틀린 것이다. 왜냐하면. 마이크로프로소푸스는 소우주이고 현현해 있는 동안만 존재하고 마하-프랄라야 동안에는 소멸되고 말기 때문이다. 로젠로트(Rosenroth)의 카발라는 안내서가 되지 못하고 수수께끼 같은 의문점이 너무 많다.

 

일본의 체계, 이집트의 체계 그리고 모든 고대의 우주 발생론에 있어, 내려오는 세 개의 그룹은 “유일한 것”인 신성한 불꽃에 불을 점화한다. 세 그룹의 잠재적 본성은, 더 높은 그룹 안에 있지만, 그들은 이제 확실하게 서로 다른 별개의 존재로 된다. 그와 같은 존재들은 “생명의 처녀들”이나 “대환영(Great Illusion)”등으로 부르고 있으며, 집단적으로 “육망성(六芒星, six-pointed Star)”이라고 부른다. 거의 모든 종교에서 육망성은 최초의 발산물로서 로고스의 상징이다. 인도에서는 이것을 비쉬누의 상징, 즉 차크라(혹은 차륜)이고, “사문자(四文字)의 그”인 것이다. 마이크로프로소푸스의 팔과 다리인 테트라그라마톤의 상징이기도하다.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카발라에서 “마이크로프로소푸스의 체의 구성부분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의 구성부분은 10인 것도 있고 6인 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세의 카발리스트들 특히 크리스트교의 신비가들은 이런 장엄한 상징을 슬프게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렸다. 천상의 인간의 “10의 구성부분”은 10 세피로트이기는 하지만 최초의 천상의 인간은 미현현한 우주영인 것이고, 지상계의 인간의 원형인 마이크로프로소푸스 즉, 작은 얼굴로까지 지위를 끌어내려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음에 논하기로 한다. 육망성(6각별)은 대자연의 6개의 힘, 6계(界), 6개의 원질 등을 지칭하고, 그것들은 일곱 번째의 것들, 즉 별의 중심점에 의해 통합되어진다. 위쪽이나 아래쪽의 하이어라키들 모두가 “하늘의 처녀 혹은 천상의 처녀”로부터 생겨 나오는 것이다. “하늘의 처녀”란 모든 종교에 있어 대모신(大母神), 남녀양성을 지닌 자, 세피라-아담-카드몬인 것이다.

 

동일체로 해서의 근원적인 광은 7번째, 즉 마지막의 원질이며, 다이비프라크리티(Daivīprakṛiti)이며, 미현현의 것인 로고스의 광이다. 그러나 분화를 하고 나면, 그것은 포하트, 즉 “일곱의 자식들”이 된다. 근원적인 광(光)은 이중의 삼각(육망성)의 중심점으로 되어 상징되며, “일곱의 자식들”은 육각형(六角形) 그 자체의 것, 즉 마이크로프로소푸스의 “여섯 구성부분”에 의해 상징되는 것이다. 마이크로프로소푸스의 일곱 번째 구성부분은 말쿠트(Malkhuth), 기독교 카발리스트들이 말하는 “신부(자식의 처)” 즉 우리 지구이다. 그러므로 주석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유일한 것의 뒤이어 나오는 첫 번째는 신성한 불이다. 두 번째는 불과 에테르(Aether)이며, 세 번째는 불과 에테르와 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네 번째는 불, 에테르, 물과 바람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유일)인 것은 인류의 삶의 집이 될 구체(지구)와는 아무관계가 없으며, 눈으로 볼 수 없는 내면의 영역만이 관계가 있다. “말하자면 최초로 태어난 것들은 우주의 생명과 마음(하트)과 맥박인 것이고, 두 번째 태어난 자는 그것의 마인드 즉 의식인 것이다.”

 

(c) 천상의 존재들, 즉 (영과 혼 또는 아트마-붓디에 상응하는) 불과 에테르의 존재들(이들의 이름은 레기온(군대)이다)의 두 번째 그룹은 여전히 형태가 없으나 보다 명확히 “실질적”이다. 이들은 두 번째 진화 혹은 “창조”(이것은 잘못된 명칭이다), 최초로 분화한 존재이다. 그 이름이 보여주듯이, 그들은 화신하는 지바들 혹은 모나드들의 원형이며, 생명의 불의 영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에 의해 미래의 체, 신성한 혼, 붓디(Buddhi)를 제공받는 광선이 순수한 태양광선처럼 바로 이들을 통과한다. 이들은 우리 시스템의 높은 세계의 천군들과 직접 관계가 있다. 이 이중적인 단위들로부터 3중적인 단위들이 발산된다.

 

일본의 우주생성론에서, 혼돈의 질료에서 알과 같은 하나의 핵이 자체에 모든 지상의 생명뿐만 아니라 우주적인 모든 생명이 씨앗과 잠재력을 가지고서 나타날 때, 조금 전에 이름을 이야기한 바로 그 “삼중적 존재”가 분화한다. “남성 에테르”(Yo) 원리는 상승하고 여성적 원리보다 조잡한 혹은 보다 물질적인 원리(In)는 물질적 측면의 실질 우주 속으로 떨어진다. 그때 하늘과 땅의 분리가 일어난다. 이로부터 여성, 어머니, 최초로 기본적인 객관적 존재가 태어난다. 그것은 정묘하여 형상이나 성(性)이 없다. 그러나 바로 이것과 어머니로부터 일곱 영들이 태어나며, 이 일곱 영들로부터 일곱 창조물이 발산된다. 나자렛 사본에서 카랍타노스(Karabtonos)와 어머니 스피리투스(Spiritus)로부터 일곱의 악한 (물질적) 영들이 탄생한다. 여기서 일본의 우주생성론에 등장하는 이름을 이야기하자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번역을 하면 그 순서는 아래와 같다.

 

(1) “눈에 보이지 않는 독신자”는 창조하지 않는 “아버지”의 창조적 로고스이며 현현한 아버지의 창조적 잠재력이다.

(2) “(카오스의) 광선 없는 깊음의 영(또는 신)”은 분화된 질료 혹은 세상의 질료이며, 또한 광물계이다.

(3) “식물계의 영”, “풍부한 식물”이 있다.

(4) 이것은 이중성 성격을 띠며, “지구의 영”인 동시에 “모래의 영”이다. 전자는 남성적 요소의 잠재력을 담고있으며, 후자는 여성적 요소의 잠재력을 포함하고 있다. 이 둘이 결합된 하나의 본성을 형성한다.

이 둘은 하나이지만, 둘인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이 이중성 속에 (a) Tsu-no-gai-no-kami, 남성적, 어둡고 강한 존재와 (b) Iku-no-gai-no-kami, 여성적, 아름답고 약한 혹은 더 섬세한 존재가 포함되어 있다. 그후, ―(5번째와 6번째) 영들(이들은 양성적이다) 그리고 마침내,―일곱 번째 영이, “어머니”에게서 마지막으로 발산된 존재가, 남성과 여성의 모습을 명확히 한 최초의 신성한 인간의 형상으로서 나타난다. 그것은 푸라나에서와 같이 일곱 번째 창조였다. 푸라나에서는 인간은 브라흐마의 일곱 번째 창조물이다.

 

이들 Isanagi-Isanami는 천상의 다리(은하수)를 타고 우주 속으로 하강했다. 그리고 “Isangi는 그 아래에 구름과 물이 혼돈 상태로 덩어리를 이루고 있음을 알고서 보석으로 장식된 그의 창을 그 깊은 속을 찌르자 마른땅이 나타났다.“ 그때 그 둘은 오노꼬로 즉 새로 창조된 섬-세계를 탐험하기 위해 분리되었다. 등등... (Omoie)

일본의 현교적인 우화는 그렇다. 이 우화는 씨크릿 독트린에서 말하는 것과 똑같은 진리의 핵심을 감추는 겉모습이다.

 

(d) 제3그룹(혹은 단계)은 아트마-붓디-마나스 즉 영, 혼과 지성에 상응하며, 3개조들이라고 말한다.

 

(e) 제4단계는 실질적인 존재들이다. 이들은 루파들(원자적 여러 형체들) 중에서 최고의 그룹이며, 인간적인 의식적이고, 영적인 혼들을 양육한다. 그들은 “불멸의 지바들”로 불리며, 바로 아래 단계의 그룹을 통해서 최초의 칠중의 천사단의 첫 그룹이 된다. 이것은 인간적 의식과 지성을 가진 존재의 대신비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훗날에 생식하게 될 씨눈이 “결여상태”로 숨어있는 영역이다. 이 씨눈은 태아의 발달을 지도하며, 인간의 능력과 모든 선천적 성질을 유전하는 원인인, 물질 세포 속에 있는, 영적인 잠재력이다. 그러나, 후천적인 성질이 유전된다고 하는 다윈의 이론을 오컬티즘에서는 가르치지도 않으며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오컬티즘에서는 진화가 완전히 다른 길로 진행된다. 비교에 의하면 물질적인 것들은 영적, 멘탈적, 사이킥(아스트럴)적인 것들에서부터 천천히 진화한다. 물질 세포의 내면에 있는 이 혼(씨눈의 원형질을 지배하고 있는 이런 “영적 원형질”)이야말로, 오늘날 발생학의 밝혀지지 않은 신비라고 하는 생물학자의 “미지의 나라”의 문을 언젠가 열어주게 될 열쇠이다. (아래의 원문과 주를 보라)

 

f) 다섯 번째 그룹은 대단히 신비적인 것이다. 인간을 상징하는 오망성(五芒星, 오각별)이 소우주적인 오각형(Pentagon)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인도와 이집트에서는 이러한 디야니들은 악어와 관계가 있고, 그들의 집은 염소자리(山羊座)이다. 인도의 점성학에서는 악어와 산양은 서로 바꾸어 쓸 수 있는 용어이다. 왜냐하면 황도십이궁의 열 번째는 마카라(Makara)로 불리며, “악어”라고 대충 번역되기 때문이다. 마카라라는 말은 오컬트적으로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살펴보게 될 것이다. 이집트에서는 상징적으로 사자(死者)(사자에 대한 상징은 오각형 혹은 오망성인데, 오망성의 다섯 끝점은 인간의 수족(手足)과 머리를 표시한 것이다)가 악어로 변형된다. 게랄드 마세이(Gerald Massey)가 이야기하는 바와 같이, 세바크(Sebakh) 혹은 세베크(Sevekh) 또는 “일곱 번째”는 지성의 상징이었음을 보여주는데, 실제로는 악어가 아니고 용(龍)이다. 그는 “지혜의 용”, 마나스, “인간혼”, 마인드, 지성적 원질이고, 우리들의 비교철학에서는 제5 원질이라 불린다.

 

「사자의 서」혹은 의식서 88장의 “오시리스화된” 사자는, 악어의 머리를 가진 미이라 형상의 신 아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나는 공포를 주재하는 신(악어)이다........ 그의 혼이 인간들 가운데 도착할 때. 나는 파괴를 위해 준비된 신-악어이다. (이것은 인간이 선과 악의 지식을 획득할 때 신성한 영적 순수성이 파괴되는 것을 언급한다. 그리고 신들의 기원을 언급한 모든 문서에 나타나는 “타락한” 신들 혹은 천사들을 언급한다.)

(2) “나는 위대한 호루스의 물고기이다. (마카라는 “악어” 즉 바루나가 타고 다니는 것처럼) 나는 섹텐(Sekten) 속에 융합되어 있다.“

이 마지막 문장은 불교의 비전적인 가르침을 확증해주며 그 가르침을 반복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문장은 제5 원질(마나스), 혹은 그 원질의 가장 영적인 부분을 직접 가르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영적인 부분은 인간이 죽은 후 아트마-붓디 속으로 녹아 들어가 흡수되어 하나가 된다. 왜냐하면, 세켐(Sekhem)은 신 켐(Khem)(호루스-오시리스 혹은 아버지와 아들)의 거처 혹은 로카(loka)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트마-붓디의 “데바찬”이다. “사자의 의식(儀式)”에서는 사자는 호루수-토트(Thot)와 함께 세켐으로 들어가서, “순수한 영이 되어 거기에서 나오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64장 29) 그래서, 사자는 말한다. “나는 (여러 인간의 모습을 한) 나 자신의 형상들이 영원히 그 모습을 바꾸는 것을 본다. . . . 나는 이 장(章)을 알고 있다. 이것을 아는 자는. . . . 모든 종류의 살아있는 형체를 취한다. . . . ”

 

35절에서, 사자는 이집트의 비교에서 말하는 “선조의 심장”, 즉 윤회하는 원질, 영원한 자아(Ego)를 마술적인 주문으로 다음과 같이 말을 건다.

“오! 나의 심장이여, 나의 변형을 위해 필요한 나의 선조의 심장이여, . . . . 저울의 수호신 앞에서 나와 헤어지지 말아다오. 그대는 나의 가슴속에 있는 나의 인성(개성)이며, 나의 육체(몸)를 주시하는 신성한 동료이니라. . . .”

 

바로 세켐 속에, “신비스러운 얼굴”이 숨겨져 있다. 그 얼굴은 거짓된 인격 아래 숨겨져 있는 진정한 인간이며, 이집트의 삼중적인 악어이자, 상위의 삼위일체, 즉 아트마, 붓디, 마나스의 상징이다. 고대의 모든 파피루스에서, 악어는 세베크(일곱 번째)라고 불리는 반면, 비교에서 물(水)은 제5 원질이다. 앞에서 말한대로, 악어는 “일곱 번째의 혼이고, 일곱 중에서 가장 지고의 혼이며. . . . 눈에 보이지 않는 보는 자인 것을 젤라드 마세이씨는 보여준다. 현교적으로도, 세켐은 신 켐(Khem)의 집이고, 켐은 살해당한 부친 오시리스의 원수를 갚는 호루스이다. 따라서 인간은 육체에서 벗어난 혼이 될 때 인간의 죄를 벌한다. 이리하여 오시리스화된 “사자(死者)는 아루(Aaru)의 들판에 떨어져있는 이삭을 줍는 신 켐이 되었다. 즉 그는 상이나 벌을 받는다. 왜냐하면 그 들판은 천상의 장소(데바찬)인 것이며, 거기에서 사자는 신성한 정의의 음식인 밀을 받기 때문이다. 천상계의 존재들의 제5그룹은 이중의 속성 즉 우주의 영적 및 물질적 측면을 둘 다 자신 속에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다시 말하자면 우주적 지성인 마하트의 양극인 것이며, 인간의 이중성 즉 영성과 물질성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다섯이라는 숫자는 두 배가 되어 열이 되고, 따라서 십이궁의 열 번째인 마카라와 관계가 있다.

 

(g)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그룹은 4개조의 저급성질 쪽에 가담한다. 그들은 의식이 있는 정묘한 존재로서 에테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4개조의 최초의 중심적인 그룹에서 나뭇가지처럼 뻗어 나와서 무수한 더 작은 그룹을 곁가지처럼 뻗어낸다. 그 중에서 가장 낮은 것들은 자연령이나 헤아릴 수가 없이 많은 종류의 엘리멘탈들이다. 즉, 그의 창조자의 이상적인 상념에서 원자적이지만, 인간의 감각에 있어서는 눈에 볼 수가 없는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다종다양한 것들이 있다. 이와 같은 원자적인 것들은 물질 원자부터 거슬러서 한 단계 떨어져 있으며, 지성은 없어도 유정(有情)한 것들임으로, “원자의 영”이라 생각하게 한다. 그들은 모두가 카르마에 따르고, 각 주기 동안에 카르마를 정산소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씨크릿 독트린이 가르치는 바와 같이, 서구의 종교나 유태교의 천사와 같은 특권을 가지는 존재는, 이 우주에서는 태양계 안이나 밖이나, 외적세계에서나 내적 세계에서도 있을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디야니-초한은 (태어나면서부터 디야니-초한이 아니라) 디야니-초한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가 완전한 천사로서 탄생하거나 생명계에 갑자기 나타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지금의 만반타라(현주기)의 천상계의 하이어라키는 다음 생명주기에는 더 높은 상위 세계로 옮겨가고 현 인류 중에서 선발된 자들이 그들(초성인)의 자리를 대신하여 새 하이어라키를 구성하게 된다. 존재란 유일한 절대적 영원 내부에 있는 끝없는 주기이고, 그 안에서 유한하며 제한된 주기가 무수하게 펼쳐지고 있다. 창조된 신들은, 신이란 것만으로 우수하다거나 가치를 표시하지는 못한다. 고생하는 인류와 인류보다는 낮은 생물의 고통을 생각하면, 단지 자신이 고유한 결점이 없는 특별한 성질의 덕택에 이와 같은 완벽한 천사로 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아주 불공평하고 넌센스한 것이며 완전히 사탄적인 “영원한 부정”의 상징이 되어, 어디로 가더라도 피할 수 없는 죄가 될 것이다. 그것은 변칙인 것이고, 자연계 안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넷”이나 “셋”은 다른 모든 존재와 똑 같이 육체화신(化身)을 해야만 한다. 게다가, 이 여섯 번째의 무리는 인간과 거의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인간은 최고의 원질인 영과 최저의 원질인 육체를 제외한 자신의 모든 원질을 그 그룹으로부터 얻어낸다. 즉 중간에 있는 다섯 개의 인간의 원질은 그러한 디야니들의 에센스인 것이다. 단지, 신성한 광선(아트마)만이 유일자로부터 직접 나온다. 어떻게 해서 그와 같은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이러한 “신들” 혹은 천사들이 자기자신의 발산인 동시에 개별적 자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물질계에서는 자식은 아버지의 핏줄이고, 아버지의 뼈중의 뼈이며, 살 중에 살이기 때문에 아들은 아버지라는 뜻으로 이야기는 것과 같은 의미인가?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하여 스승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진실로 그러하다.” 그러나, 이 진리를 충분히 이해하기 이전에 먼저 존재의 신비를 깊이 탐구해야 한다.


 

 

2. 한줄기의 광선은 작은 광선들을 무수하게 만들어낸다. 생명은 형체보다 앞서고, 형체(스툴라-사리라(Sthūla-śarīra), 외부의 몸)의 마지막의 원자보다 더 오랫동안 생존한다. 무수한 광선들을 통하여, 생명 광선 즉 유일한 광선은 많은 보석(진주)을 꿰맨 실처럼 이어져 나아간다(a).

 

a) 이 부분은 생명의 실 즉 수트라트마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많은 세대를 뚫고 나간다는 개념을 표현한다. 이것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순수한 베단타적인 개념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가? 어느 비유를 사용하더라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의 비유 즉 잘 알려져 있는 예로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에 앞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나 하고 싶다. 태아가 성장하여 몇 파운드나 되는 건강한 아기가 된다고 알려진 그 과정을 생각할 때 이것이 초자연적인 것이 결코 아닐지라도 부자연스럽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는지 묻고 싶다. 무엇이 발단이 되어서 아기가 생겨나는가? 극히 작은 하나의 난자와 하나의 정자의 세포분열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훗날에 아기는 자라서 약 2미터의 사람이 된다! 원자적이고 물질적인 것이 극히 미세한 상태에서 매우 큰 것으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에서 눈에 보이는 객관적 실체로 팽창하는 것을 나타낸다. 과학은 이러한 사실을 모두 설명했다. 그리고 물질적 현상을 엄밀히 관찰한 점에서는, 발생학적, 생물학적, 생리학적인 과학의 학설은 매우 정확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지만, 과학의 발생학에는 두 가지 큰 난점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결코 정확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즉, 태아의 형성에는 어떤 힘이 작용하는가 또 하나는 육체적, 도덕적, 정신적인 유사성이 유전되는 원인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아직 명확하게 해결되지 않았으며, 과학자가 오컬트 학설을 받아들일 때까지 결코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 물질적 현상이 발생학자들의 머리를 복잡하게 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왜 우리의 지성적 및 내적 성장 즉 인간-영적인 단계에서 신-영적인 단계로의 진화가 다른 육체적 성장보다 더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하고 또한 그렇게 느끼는가? 이제 비유를 들어 말해보자.

 

앞의 각주에서 말하는 육체적인 원형질, 즉 모든 물질적인 가능성을 가진 인간의 “생식세포”를 “영적인 원형질”, 말하자면 여섯 개의 원질을 지닌 디야니의 다섯의 저급 원질을 포함한 유체(流體)로 완성하라. 당신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영적인 경지에 있다면 그 비밀을 알게 될 것이다.

“동물인간의 남성의 씨가 동물인간의 여성의 토양에 뿌려진다해도, 6중적 천상의 인간의 5원질(속성)에서의 유체 혹은 발산물에서 보양(保養)을 받지 않는 한 성장 할 수 없다. 그래서 소우주는 ”대우주“ 즉 6각별 속에 있는 오각형으로 상징되고 있다. 또 “지상계에서의 지바의 기능은 5중적 성격을 띤다. 광물원자의 경우, 지바는 지구의 영들(6중의 디야니)의 가장 낮은 원질과 맺어지고, 식물의 분자의 경우는 영들의 두 번째의 원질 즉 프라나와 맺어지고, 동물의 경우는 여기에다 세 번째와 네 번째의 원질과 맺어진다. 그리고 인간의 경우, 씨앗은 다섯 개의 원질이 모두 결실을 얻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면, 인간은 동물과 다름없는 상태로 태어난다.” 다시 말해 선천적인 백치(白痴)로 태어난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있어서만 지바는 완성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의 제7 원질에 관해서 말한다면, 이 원질은 우주적 태양의 한 줄기의 광선에 불과하다. 그것은 이성적 생물에게 일시적으로 빌려주어지는 것뿐이며, 그 뿌리로 당연히 되돌아가게 된다. 한편 인간의 육체는 물리적, 화학적, 생리학적인 진화를 거치면서, 가장 낮은 지상의 생명들에 의하여 그 형태를 갖추게 된다. “축복을 받은 분들은 물질의 정화에는 아무런 관계를 가진 것이 없다.”(카발라, 칼데아의 「수의 서」)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최초의 원형적 그림자 같은 형태였을 때의 인류는 생명의 엘로힘(피트리들)의 자손이다. 속성이나 육체적인 면에 있어서, 인류는 “선조들” 즉 지구의 영들인 가장 낮은 디야니들의 직계 자손이다. 인류의 도덕적, 사이킥적(혼적), 영적인 특성은 어떤 신성한 존재들의 그룹으로부터 얻어진 것이다. 그 그룹의 이름과 특성은 제 2권에서 설명할 것이다. 집단으로서의 사람들은 여러 영들의 무리의 산물이고, 개별적으로 볼 때 사람들은 그러한 무리들의 거처였으며, 종종 희귀한 일이긴 하지만, 그 무리 중 얼마의 매체로 되는 경우도 있다. 현재 대단히 유물주의적인 우리 제5인종의 경우, 제4인종의 세속적 정신(earthly Spirit)이 아직도 강하다. 그러나 진화의 흐름이 상향적으로 진행되어, 인류를 태고의 제3근본 인종과 같은 영성(靈性)의 단계로 나아가게 하는 시대에 우리는 다가가고 있다. 초창기의 인류는 완전히 천사단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천사단은 제4 인종의 괴물 같은 거대한 “흙으로 지은 거처”(육체)에 생명을 불어넣은 내재하는 영들이었다. 이 주거는 (현재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생명체로서 만들어지고 이루어져 있었다. 이것에 관해서는, 이 주석의 나중 부분에서 설명할 생각이다. 그 “주거들”은 자신을 낳은 지구와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면서, 그 형태조직과 형태의 균형도 향상되었지만, 이러한 육체적 향상은 영적인 내면의 인간과 성질을 희생시키면서 일어났던 것이다. 지구와 인간 속에 있는 3개의 중간 원질은 각 인종이 진화할 때마다 더욱 물질적으로 변했다. 다시 말하면 혼(영혼)은 육체적 지성에 자리를 내어 주면서 후퇴하고 말았다. 그리고 원소의 에센스는 지금 알려져 있는 것처럼 물질적 합성원소로 되어갔다.

 

인류는 “주 하나님”의 완전한 작품은 아니며, 또한 그렇게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단수의 남성명사로 바꾸어버린 엘로힘의 자식이다. 최초의 디야니들이 인간을 자신들의 형상으로 “창조”하라는 위임을 받았을 무렵, 물질의 자연령이 세공(細工)하기 위해서, 정묘한 원형이 되도록 자신의 “그림자(영)”를 투사(投射)시키는 것만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2권을 보라) 인간의 육체는 흙의 먼지로 형성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를 창조하고 형상을 만든 존재들은 많았다. 또한, 만일 주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편재하는 “유일한 생명”과 동일하지 않다면 그리고 신성한 영 혹은 루아흐(Rūach)가 아니라, 모든 살아 있는 혼(네페쉬(Nephesh)이며 생명의 혼)을 위하여 (인간에게 행한 것과) 동일한 일을 한 “하나님”이 아니라면, “주 하나님이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었다”라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신성한 영인 루아흐는, 동물은 이번의 윤회 사이클에서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불사성(不死性)이라고 말하는 신성의 단계를 인간에게는 어느 정도 확실하게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태인이나 현재의 서구 철학자들은 영, 혼, 몸이라고 말하는 삼중의 인간의 개념 이상의 것을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함으로, “생명의 숨”과 불사의 영을 혼동한다. 이것은 신교의 신학자들에게 특히 해당된다. 그들은 요한 복음 3장 8절을 번역할 때, 그 참뜻을 완전히 왜곡해버렸다. 사실 3장 8절은, “영은 가고 싶은 곳으로 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원문과 그리스 동방교회에서 나타내는 것처럼 “바람은 생각나는 그대로 분다”라고 해야한다.

 

그와 같이, 인간의 육체적인 기능과 사이킥적, 영적, 지성적인 것들의 관계에 대한 사상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혼란이 오고 말았다. 고대 아리안의 심리학이나 이집트의 심리학은 지금도 올바로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내면 원질에 관한 비교의 칠중적 분류, 또는 적어도 베단타의 5중적 분류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그것들은 결코 이해할 수가 없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디야니-초한(천사)과 인류사이의 형이상학적 그리고 순전히 정신적인 관계와 심지어 생리학적인 관계를 이해하기는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동방(아리안)의 비교 서적은 아직 출판된 적이 없지만, 7개의 원질 혹은 “인간의 7개의 혼”에 대해서 분명히 이야기하는 이집트의 파피루스를 우리는 가지고 있다. 자신의 원질을 하나씩 벗어버리면서, 사자(死者)가 경험하는 모든 ‘변형’을 「사자(死者)의 서」에서는 열거하고 있다. 좀더 명확히 하기 위해 여러 원질에 정묘한 존재나 물체 같은 구체적인 형을 주고 말았다. 고대 이집트인은 윤회에 대해서 모르며 윤회를 가르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자(死者)의 혼(에고 또는 자아)이 영원 안에 살아있으며 그것은 불멸이고, 필요의 주기 동안 “태양의 배와 함께 존재하고 함께 사라진다”라고 말하는 부분을 주지시켜야 한다. 이 “혼”은 (생명의 원인의 영역인) 티아오우(Tiaou)에서 출현해, 주간에는 지상의 살아있는 것들과 같이 있다가, 밤이 되면 티아오우에 돌아간다. 이것은 자아의 주기적인 존재를 표현한다.(사자의 서 cvxliii)

 

그림자 즉 아스트럴 형체는 “우라에우스(Uraeus)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어 ”집어삼켜 버린다“.(cxlix., 51) 마네스(Manes)는 절멸되고, 쌍둥이(제4 및 제5 원질)는 흩어질 것이다. 그러나, 혼의 새(Soul-bird), “신성한 제비, 그리고 불꽃의 우라에우스”(마나스와 아트마-붓디)는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머니의 남편들이기 때문이다.

 

같은 부류만이 같은 부류를 낳는다. (말하자면 사자는 사자를 낳고 호랑이는 호랑이를 낳는다.) 지구는 인간에게 그의 체를 주고, 신들(디야니들)은 인간의 5개의 내면의 원질 즉 사이킥적인 그림자를 준다. 그 신들은 그림자를 활성화시키는 원질이다. 영, 즉 아트마는 하나이다. 그리고 나뉘어져 있지 않다. 그것은 티아오우 안에는 없다.

 

그러면 티아오우란 것은 무엇일까? 「사자의 서」안에 종종 언급되는데 그 안에는 하나의 신비가 있다. 티아오우는 밤의 태양이 다니는 길, 하반구, 또는 이집트에서는 지옥인 것으로, 그들은 달의 숨겨진 부분에 있다고 생각했다. 이집트의 비교에서는 인간이 달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이것은 3중의 신비이다. 말하자면, 천문학적, 생리학적이며 동시에 심리학적 신비인 것이다) 인간은 존재의 주기를 다 마치고 나면, 자신의 출생지로 뒤돌아가서, 거기서 다시 나온다. 그러므로 사자(死者)는 서쪽에 이르면, 오시리스 앞에서 판결을 언도 받고, 호루수 신이 되어 부활해 천공(sidereal heavens)을 돌고 나서(이것은 태양신 라(Ra)와 동화됨을 상징한다), 누트(Nūt, 천상의 심연)를 건너가서 다시 한번 티아오우로 되돌아온다. 이것은 생명과 생식의 신으로서 달에서 살고 있는 오시리스에게로 동화됨을 의미한다. 플루타르크는 이집트인이 “오시리스가 달에 들어간다”라는 축제를 행한 것을 보여준다. 41장에서는, 사후(死後)의 생을 약속 받고, 생명의 재생은 달의 신 오시리스-루누스(Osiris-Lunus)의 지배하에 놓여있다. 왜냐하면 매달 성장하고 쇠약해지고 죽었다가 다시 나타나는 것은 생명의 부활 혹은 윤회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단크멜러에(Denkmähler)에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오! 오시리스-루누스여, 저것이 그대를 부활시켜 새롭게 하는구나.” 그리고 사페크(Safekh)는 세티(Seti) 1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대는 갓난아기일 때 루누수 신으로서 다시 태어난다.” 루브르의 하 파피루스에서는, 그것을 더 잘 설명하고 있다. “그(오시리스-루누스)가 하늘이 보이는 그날에는, 성교와 수태가 많이 있다.” 오시리스는 말한다, “오, 유일하게 달에서 빛나는 이여! 회전하는 그대의 큰 힘(의 생물)으로부터 나는 나간다.... 나에게 티아오우를 열어다오. 살아있는 자들 가운데서 내가 할 일을 행하도록 나는 낮에 오시리스 N.을 내보내고자 하기 때문이다 즉, 수태를 이루게 한다는 것이다.

 

오시리스는 “생식때 나타나는 신”이였다. 왜냐하면, 고대인은 수태의 신비에 대한 달의 진정한 오컬트적 영향을 근대인보다도 훨씬 더 잘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편주28) 후세에, 달이 다이아나, 이시스, 아르테미스, 쥬노 등의 여신들과 관련되었을 때, 그 관련성의 근거는 생리학과 여성의 본성(사이킥적인 만큼 육체적인)에 대한 철저한 지식 때문이었다.

 

그러나, 원래는 해와 달은 유일하게 눈에 보이고, 말하자면 (그 결과로서) 느낄 수 있는 정신적이고 생리적인 신들이며, 아버지와 자식이었다. 반면에 공간과 공기 전체, 또는 이집트인이 누트라고 부르는 광대한 하늘은 그 둘의 숨겨진 영 혹은 숨이었다. 이 “아버지와 자식”은 자신들의 역할을 서로 바꿀 수 있고, 조화롭게 협력하여 지상계의 자연과 인류에게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개별화된 존재로서 두 사람인 것인데, 한 사람으로 보여져 왔던 것이다. 양자는 남성이며, 인류발생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독자적인 일도 있었고 함께 협력해서 하는 일도 있었다. 천문학적 및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아주 많은 것이 상징적인 언어로 표현된 것을 보게되지만, 과거의 우리 인종들에게서 그 상징 언어는 신학적이고 독단적으로 되고 말았다. 그러나 우주적이고 점성학적인 상징의 베일 이면에는, 인류사와 원초의 인류 발생에 관한 오컬트 신비가 있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상징에 관한 어떤 지식이거나 유태인의 대홍수 이후의 상징 언어의 열쇠조차도 아무런 도움이 될 수는 없다. 그러한 지식은 모두 현교적인 목적에서, 여러 민족의 성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데만 도움이 될 뿐이다. 그러나 아무리 멋지게 감추어 놓았다 해도, 그 성전을 전부 합쳐도 각 민족의 고대 역사의 아주 미미한 부분에 불과하고, 많은 경우 예컨데 히브리어의 성전도 그러하지만, 그 민족의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역사만을 이야기하며, 그 나라의 신성한 생명과는 무관한 것이다. 그러한 정신적이며 영적인 요소는 비의나 비전에 속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두루말이 책에도 결코 기록돼있지 않고, 중앙 아시아에서처럼 바위나 지하의 동굴의 벽에 새겨져 있는 것도 있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전세계는 “하나의 언어로 말을 하고 하나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시대가 있었다. 그 무렵, 인간은 지금보다도 자신의 기원에 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태양과 달이 인간의 체의 구성과 성장과 발육에 실제로 큰 역할을 한다해도, 인간이 지구에 출현하게된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한 존재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직접적으로 작용한 존재는 오컬티스트가 디야니-초한들이라 부르는 살아있는 지성적인 권능자들이였기 때문이다.

 

이 일에 관해서, 유태교의 비교를 아주 잘 알고있는 숭배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있다. “엘로힘은 하나의 ”일반적인 추상적 개념“이라고 카발라에서는 명확하게 말한다. 즉, 우리들이 수학에서 정계수 혹은 일반함수라고 부르며, 특정한 작도에 관계된 것이 아니라 보편적 비율 1:31415(천문학적 디야니-초한의 수이며 엘로힘의 수)로서 모든 작도에 관계가 있다.”

 

이에 대해, 동양의 오컬티스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물론 그렇다. 엘로힘은 우리의 육체적인 감각에 있어서는 추상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영적인 감각과 우리 안에 있는 영적인 눈에는, 우리의 혼과 영이 추상적인 것이 아닌 것처럼 엘로힘이나 디야니들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다. 엘로힘이나 디야니의 존재를 부정하면 우리의 혼과 영의 존재 역시 부정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죽은 후에도 살아 남는 우리 속의 실재는 부분적으로 그러한 천상의 존재의 직접적 발산인 동시에 부분적으로는 그 존재들 자체이기 때문이다.”

 

한가지는 분명하다. 유태인은 사악한 마술과 해를 주는 여러 세력에는 완벽히 정통했지만, 다니엘과 에스켈 같은 몇 사람의 위대한 예언자를 제외하고 (에녹은 훨씬 고대의 인종에 속하며, 일반화된 인물로서 어느 한 나라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나라에 해당한다.) 그들은 참으로 신성한 오컬티즘에 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몰랐고, 또한 이를 다루려고도 하지 않았다. 유태인의 국민성은 자신들의 민족적, 부족적, 혹은 개인적인 이익에 직접 관계를 갖지 않는 것이면 무엇이든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 나라의 예언자들과 이 “목이 뻗뻗한 민족”에게 예언자들이 퍼부은 저주를 보라. 그러나 카발라조차도 세피로트 혹은 엘로힘과 인간과의 직접의 관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따라서, 카발라에서 여호와와 여성적 세피로트 비나를 동일시하는 것은 또 다른 오컬트적인 의미가 있음을 우리에게 증명할 때, 바로 그때 비로소 오컬티스트는 그 카발리스트에게 완벽하다고 기꺼이 칭찬할 것이다. 그때까지는, 여호와가 하나의 “유일하게 살아있는 신”이라는 추상적인 의미에 있어, 하나의 수(數)이고, 형이상학적인 허구이며, 하나의 발산물 혹은 세피로트로서 적합한 자리에 놓아지는 하나의 실체가 되기 때문에, 조하르는 (어쨌든 우리가 「수의 서」에서 목격한 것처럼) 크리스트교의 카발리스트들이 왜곡하기 전에는 우리와 똑같은 가르침을 원래 전해주었으며 지금도 전해주고 있다고 주장할 권리가 있음을 단언한다. 말하자면, 인류는 천상의 인간 하나로부터 발산되는 것이 아니고, 마치 “성스러운 생각인 파이만더(Pymander)”에 나오는 것처럼, 천인들 혹은 천사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7중적 그룹에서 발산하는 것이다.

 

 

 


3. 유일한 것이 둘로 되었을때, “3중”이 나타난다(a). 그 셋은 하나이다(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우리의 실(thread)이다. 오! 제자여, “삽타파르나(Saptaparna)”라 불리는 인간수(人間樹)의 심(芯)이다(b).

 

(a) “유일한 것이 둘로 나누어지게 될 때, 3중이 나타난다”는 것은, 유일 영원한 것이 자신의 반영을 현현의 영역으로 떨어뜨릴 때 반영 즉 “광선”이 “공간의 물”을 분화시키는 것이다. 「사자의 서」에서 나와 있는 말로 하면 “(중앙) 태양의 말씀의 위대한 마법의 권능에 힘입어, 원초의 빛의 광선이 내뿜은 광휘가 어둠을 완전히 사라지게 함으로써 혼돈은 없어진다.” 혼돈은 남성―여성이 되고, 그리고 빛을 통해 부화(孵化)된 물이 된다. 그리고 “3중적 존재는 그의 최초로 태어난 자로서 나온다. 대주기 동안에 “자신의 여러 가지의 모습을 구체화시키는 신들을 창조해서 (브라흐마처럼) 오시리스-프타(Osiris-Ptaḥ)(혹은 라)는 자신의 몸의 지체를 창조한다.(17장 4) 심연에서 출현하는 이집트의 라는 현현의 측면에서 보면 신성한 우주적 혼이며, “아카샤 안에 숨어서 있지만, 에테르 안에 나타나는” 나라야나(Nārāyaṇa) 즉 푸루샤(Purusha)이다.

 

이것은 형이상학적인 설명이며, 바로 진화의 시작 다시 말해서 신들의 계보의 시작을 언급한다. 그러나, 인간과 그의 기원에 관련된 다른 관점에서 설명하면, 스탠저의 뜻은 이해하기 더욱 어렵게 된다. 유일한 것이 둘로 되고 그후 3중으로 변형된다는 말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얻기 위해서는, 신지학도나 독자는 “라운드”를 철저하게 이해해야 한다. 태고의 우주 발생론의 개요를 간단히 설명하고자 한 최초의 시도였던 「에소테릭 부디즘」을 참고해 보면, 라운드란 초기의 물질자연의 연속적 진화를 의미한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각각 광물계와 식물계와 동물계 (인간은 동물계에 포함되며 동물계 중 가장 높다)를 가진 우리의 체인의 일곱 천체가 생명주기의 전기간 동안 연속적으로 진화하는 것을 나타낸다. 바라문들은 이 생명의 전 주기를 “브라흐마의 낮”이라 말한다. 간략히 말하면, 라운드는 일곱 천체로 된 “수레바퀴”(우리의 혹성 체인)가 한번 도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일곱의 천체(여기서는 다른 의미로 일곱의 다른 “수레바퀴(輪)”)로 이루어져 있다. 진화가 (7개의 천체를 각각 A에서 G라고 할 때) A 천체에서부터 G천체까지로, (서구의 학도들이 말하는 Z구까지) 아래로 진행되면서 물질 속에서 진화과정이 이루어질 때, 이것을 1라운드라고 한다. 혹성체인을 네 번째 도는 (현재 우리의 라운드) 동안, “진화는 물질적인 발달이 정점에 이르고, 완전한 육체인간을 탄생시킴으로써 하강하는 진화가 완성되어, 바로 이 시점부터 영으로 향해 가는 진화가 시작된다”. 이것은 모두 「에소테릭 부디즘」에서 잘 설명되어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반복할 필요가 없다. 한편 그 책에서는 인류의 기원에 관해서는 거의 설명되어 있지 않았고, 언급된 그 부분조차도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했기 때문에, 스탠저를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만 조금 더 설명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진화과정은 SD 2권에서 적당한 곳에 충분히 설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질로 내려오는 중인) 모든 라운드는 앞에 있던 라운드가 더욱 구체적인 형태로 재현되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의 지구인) 제4 천체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천체는 자신 앞에(3개의 상위계에)차례로 있는 더욱 정묘한(shadowy) 천체의 더 조잡하고 더 물질적인 복사판이다.(스탠저 Ⅵ의 주석6을 보라) 상승하는 현(弦 arc)을 따라 위로 올라갈 때 진화는 만물의 전반적인 성질을 영적으로 변화시키며 말하자면 정묘하게 하여, 짝을 이루는 반대편에 있는 쌍둥이 천체가 위치한 그 계와 같은 수준에 이르게 한다. 그 결과 (어떠한 라운드에서든지) 일곱 번째 천체에 도달하게 되면 진화하고 있는 모든 것들의 성질은 출발할 때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이렇게 매번 되돌아갈 때마다 새롭고 더 높은 의식상태를 성취하게 된다. 그러므로, 현재의 우리 라운드 즉 이 지구상의 생명의 주기에서, 소위 “인류의 기원”은 각각의 특정한 여건과 시간에 바탕을 둔 세부사항을 제외하고는 이전의 라운드에서와 같은 순서로 같은 장소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다시 설명하고 기억해야할 것은, 각 라운드의 일이 소위 “창조자들”이나 “건축가들”의 다른 그룹에 배정되는 것처럼, 각 천체의 일도 그렇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특별한 “건설자”와 “감시자”인 여러 디야니-초한들의 관리와 지도를 받는다.

 

그러므로 인류를 “창조하는” 일을 위임받은 하이어라키의 그룹은 특별한 그룹이다. 하지만 더 높고, 더 영적인 그룹이 제3라운드에서 (명확한 물질육체를 아직 갖추지 못하여) 그림자처럼 (어슴푸레한 모습의) 인간들을 진화시켰듯이, 이 하이어라키의 그룹도 이번 사이클에서 그림자 같은 인간을 진화시켰다.

 

그러나 영성이 하강하는 측면에서는 이 그룹은 여섯 번째이기 때문에,(최후의 일곱 번째 그룹은 (인간이 갖게될) 육체의 모습을 서서히 가다듬고, 각 부분을 조잡한 질료로 형성하여 이를 응축시켜 육체를 만드는 지상계의 영들(엘리멘탈들)이다) 미래의 인간이 갖게될 그림자 같은 형체, 즉 아주 엷은 필름처럼 거의 눈에 띄지 않는 투명한 (자신의) 복사판만을 진화시킨다. 텅 비어있는 정묘한(에테르적) 동물형체에 지성을 불어넣고, 그것을 이성적인 인간이 되게 하는 일은 다섯 번째의 하이어라키의 임무가 된다. 이들은 인도나 이집트에서 산양좌[염소자리], 마카라, “악어”를 지배하는 신비적인 존재들이다. 이것은 일반 사람들에게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 그런 주제 중의 하나이다. 우주 안에는 지성과 의식을 가진 영적 존재가 있음을 거부하고, 완전한 의식은 인간만의 것이며, 그 의식이란 “두뇌의 기능”에 불과한 것으로 제한하는 사람에게만 사실 하나의 큰 신비인 것이다. 영적인 실체들 가운데에는, 인류가 나타난 이후로 육체로 인간 가운데 화신했던 존재들이 많으며, 또한 어쨌거나 무한히 넓은 공간 속에는 이전과 같이 지금도 독립적으로 살고 있는 존재들이 많다.

 

보다 명확히 말하면, 눈으로 볼 수가 없는 실재는 초감각적인 영역에서의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버리지 않고, 몸체를 가지고 지상계에 존재할 수가 있다. 이것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면, 독자에게 심령주의에서 일어나는 이와 같은 사례를 상기시키는 것 이상은 더 좋은 방법이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 실재의 본질이 화신하거나 영매를 일시적으로 사로잡는 즉 영매에게 일시적으로 빙의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살아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비슷한 예를 들어보면, 어떤 사람들은 독특한 신체조직을 가지고 있거나 습득한 신비지식의 힘을 통해 육체가 몇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지만 “육체의 복체”로서 어떤 장소에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더 높은 존재에게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

 

철학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외형으로서의 인간은 동물에 불과하며 제3라운드의 유인원 같은 조상보다 그다지 진화하지 못한 상태다. 그는 살아있는 실재가 아니고, 살아있는 몸체인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존재 즉 “자아-전체(Ego-Sum)”를 깨닫는데는 자기의식이 필요하지만, 동물에게는 직접의식 또는 본능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이것을 잘 이해했으며, 카발리스트조차 혼과 몸이 서로 독립된 두 개의 생명으로 생각했다. 육체가 죽음을 맞아 혼은 떠났는데 아스트럴, 즉 에텔적 실질로 이루어져 있는 껍질은 혼이 떠난 죽음 후에도 여전히 지상계에 살아 있을 수가 있다. 말하자면 광기나 발작을 하거나 영적 및 육체적 타락 등과 같은 여러 가지 이유로 혼은 육체라고 말하는 일시적 숙소를 떠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사람들(비전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방해가 되는 몸(육체)을 지니고 있지 않는 디야니들은 훨씬 더 잘 해낼 수가 있다. 이것은 대홍수 이전의 인류들의 신념이었고, 천사들이 편만하게 존재한다고 가르치는 그리스의 정통교회나 로마카톨릭 교회의 신앙이고 또 심령주의를 통해 빠른 속도로 근대 지성사회의 신념으로 되어가고 있다. 배화교도는 그들의 암샤스펜드들을 2중의 실재(Ferouer)로 여기며, 적어도 그의 2중성을 눈에 보이는 공간에서의 무수의 세계에 살고 있는 영적인 것은 눈에 안 보이는 존재들에게도 맞추어 적용한다. 칼데아의 계시에 관해 (6세기경의) 다마시우스(Damascius)의 한 주석에서, 이 가르침의 보편성에 대한 3중적인 증거가 주어졌다. “이 계시에 의하면, 우주의 7인의 지배자(성바오로가 말하는 세계의 주(柱))는 2중인 것이다. 하나의 칠 인조가 상급의 세계 즉 영과 별의 세계를 지배한다. 또 하나의 칠 인조는 물질세계를 감독하며 지도하도록 위임받았다.” 이암블리쿠스(Iamblichus)도 같은 견해여서, 대천사와 “지배자(Archōns)”를 확실히 구분한다. 위에서 말한 것은 영적인 존재의 여러 단계와 종류를 구별하는데 물론 적용된다. 그래서 바로 이런 의미로 로마 카톨릭 교회는 영적 존재의 차이를 해석하여 가르치려고 하고 있다. 왜냐하면 로마 카톨릭교회의 가르침에서 대천사들은 신성하고 청정(淸淨)하지만, 그들의 일대(一對)인 복체들(doubles)은 악마로서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프라바쉬(fravashi)”라는 말은 그런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이것은 실제에 있어 어떤 속성 혹은 성질의 뒷면 또는 반대면을 의미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컬티스트가 “악마는 신의 뒷면이다”(동전의 뒷면처럼 악은 선의 뒷면)라고 말할 때, 그 둘이 별개의 실제라는 뜻이 아니고, 동일한 하나의 실체의 두 가지 상(像) 혹은 두 가지 측면을 뜻한다. 가장 훌륭한 인간이 대천사와 함께 나란히(신학에서 설명하는 바에 의하면 악마와 함께)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원형보다 훨씬 더 깊이 물질에 빠져든 “복체”를 더 낮게 평가하는데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악마라고 보아서는 안된다.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모든 이성과 논리에 역행하면서도 그들을 악마라고 계속 주장하고 있다.

 

(b) 이 귀절의 끝 문장에서, 인간의 구조가 7중적이라는 믿음과 가르침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인간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모든 가상(假想)의 인격, 즉 지상계에서의 육체 화신을 뚫고 있는 실(수트라트마에서 말하는 실糸) 더불어, 인간의 모든 영을 뚫은 실은, 앞서 말한 일들을 모두 포함하는 “3중의 것”과 “4중의 것”과 “5중의 것”의 에센스부터 짜여져 나오는 것이다. 이 그룹들은 앞서 말한 모든 것을 포함한다. 바가바타 푸라나(V.XX.25-28)에 의하면 판차시카(Pañchāśika)는 비쉬누를 경배하기 위해 스베타-드비파(Śveta-Dvīpa)에 가는 일곱의 쿠마라 중의 하나이다. 나중에 우리는 “생식(번식)하기”를 거부한 “독신의” 순결한 브라흐마의 자식들과 지상계의 인간들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인간수(人間樹)”인 삽타파르나는 7가지 원질을 나타내는 것이며, 불교도가 대단히 신성시해오고 있는 삽타파르나라는 이름의 일곱 잎사귀를 가진 식물은 인간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삽타파르나와 상징학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오컬티즘에서도 7이라는 숫자의 중요성에 관한 세부사항을 더 알고 싶은 독자는 제 2권 2부의 상징론에 “삽타파르나,” “베다에 있어서의 7중적 원질”, 등에 관한 부분을 참조하라.


 

 

4. 그것은 결코 죽지 않는 뿌리이며, 네 개의 초의 심지에 세 개의 설(舌)을 지닌 불꽃이다(a).. . . 심지들은 불꽃이고, 칠자(七者)에 의해 사출(射出)된 세 개의 설(舌)을 가진 불꽃에서 자신들의 불꽃을 끌어낸다. 유일의 달의 광선과 불꽃은 지구(“부미(Bhūmi)” 혹은 “프리티비(Prirhivī)”)의 모든 강(河)으로 흘러 내려가는 파(波)에 반영된다(b).

 

(a) 결코 꺼지지 않는 “세 개의 설(舌)을 지닌 불꽃”은 불사의 영적 3개조, 즉 아트마, 붓디, 마나스이다. 지상계에서의 생애를 마칠 때마다, 마나스가 거둔 결실은 아트마와 붓디에 의하여 동화되어 버린다. 불이 꺼지는 “4개의 초의 심지”는 육체를 포함한 네 가지의 저급 원질이다.

“나는 3개의 초의 심지를 지닌 불꽃이고, 나의 심지들은 불멸이다”라고 사자(死者)는 말한다. “나는 세켐(육체를 떠난 혼에 의해 행해졌던 행위의 씨앗을 뿌리는 손을 가진 신)의 나라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들의 적들을 파괴한, 다시 말해 죄를 짓는 ”네개의 심지“를 제거한 나는 그 불꽃들의 영역으로 들어간다.”(「사자의 서」 1장과 7장, 그리고 「로스탄(Ro-stan)의 신비]를 보라.)

 

(b) 단 하나의 달이 비추는 바닷물 위에 무수히 많은 밝은 섬광들이 춤을 추듯이, 불사의 모나드-에고가 입는 환영적 몸(envelope)인 덧없는 우리의 인격들은 마야의 파도 위에서 반짝거리며 춤을 춘다. 달빛에서 생겨난 수천 개의 반짝이는 불꽃처럼, 흐르는 생명의 물에 밤의 여왕이 광휘를 비취는 동안, 즉 만반타라의 동안만 우리의 인격들은 나타나서 존속한다. 그 후에 불꽃은 꺼져 사라지고, 우리의 영원한 영적 자아의 상징인 달빛만이 살아 남아 어머니-근원속으로 다시 융합되어 이전과 같이 일체로 된다.


 

 

5. 불꽃은 “포하트”의 가장 가는 실로 불꽃에 매달려있다. 그것은 “마야”의 일곱 세계를 두루 여행한다(a). 제 1계에 멈추어서 광물이 된다. 두 번째 계로 옮겨간다. 보라! 식물이 된다. 식물은 일곱 개의 형상을 통과하면서 신성한 동물(물질 인간의 최초의 그림자)이 된다(b).

이것들의 속성이 조합되어서, “마누”(인간) 즉 생각하는 자가 만들어진다.

누가 그의 형상을 만드는가? 바로, 7개의 생명들과 유일한 생명이다(c). 누가 그의 형상을 완성하는가? 5중의 “라(LHA)”이며, 그리고 마지막 몸은 누가 완성하는가? 물고기, 죄(罪), 그리고 “소마”(달)이다(d).

 

(a) 여기서 말하는 “마야의 일곱 세계”란 지구 연쇄의 7개의 구체와 7개의 라운드를 가리키는 것이며, 각각의 “거대한 생명의 주기” 즉, 만반타라의 처음에는 “불꽃”, 다시 말해 모나드가 활발하게 활동하며 통과해야하는 49개의 존재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포하트의 실”이란 위에서 말한 생명의 실이다.

 

이것은 철학의 최대 문제, 즉 생명의 물리적이고 실질적인 성격에 관련된다. 근대 과학은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음으로, 생명의 독립적 성질을 부정한다. 윤회나 카르마를 믿는 사람들만이 생명의 온전한 비밀은 그 생명이 (육체 속에 있든지, 육체에서 떨어져 있든지 간에) 중단 없이 연속적으로 현현한다는데 있음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다.

 

“여러 가지 색깔이 유리를 통해 뒤섞어 나누어져 있는 것처럼

생명은 영원히 흰(白) 광채(光彩)를 물들게 한다.“

 

하지만 생명 자체는 영원의 일부이다. 생명만이 생명을 이해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화염에 매달려있는” 이 섬광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지바이고, 마나스와 결합한 모나드, 혹은 오히려 마나스의 향기이다. 말하자면, 이 섬광은 인격이 가치가 있을 때는 계속해서 그 인격에 연결되어있고, 불꽃인 “아트마-붓디”에 생명의 실로 매달려있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든지, 그리고 인간이 몇 개의 원질로 이루어져 있든지 간에, 이 가르침은 베다에서부터 이집트의 종교에 이르기까지, 조로아스터교에서 유태교에 이르기까지, 고대의 모든 종교에서 확인되고 있음을 쉽게 보게될 것이다. 유태교의 경우, 카발라 서적에서 이것을 충분히 증명한다. 카발라의 수(數) 체계 전부가 3개조에 매달려 있는 신성한 7개조(그래서 10개조가 된다)와 이것의 변형인 7, 5, 4, 3에 근거하고 있다. 결국 그 모든 것은 바로 유일자 즉, 하나의 끝없는 무한한 원안으로 융합되어 하나가 된다.

조하르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영원히 눈으로는 보이지 않은 실재]은 10개의 세피로트를 통해 자신을 나타내며, 광휘를 발하는 세피로트는 그의 증인이다. 신은 지혜라는 강물이 흘러나오는 바다와 같으며, 강물은 지성이라는 호수 안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 호수 깊숙한 곳에서부터 7개의 수로처럼 7개의 세피로트가 발산된다. 왜냐하면 10은 7과 같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10은 4개의 단일개체와 3개의 2조를 포함한다.

 

10개의 세피로트는 인간체의 10부에 해당한다. 조하르에서 엘로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아담카드몬의 뼈대를 형성했을 때, 영원의 영은 부근의 모든 면에서 번갯불처럼 그의 몸에서 섬광이 나고, 얼마 후에 7백만 개나 되는 하늘의 파도에 빛났다. 그리고 나의 10개의 영광은 그의 지체가 되었다.

 

그러나 아담카드몬의 머리나 어깨를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세프라 디제니오우타(Sephra di Tseniouthā)(“숨겨진 신비의 서”의 1절 16이하)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간이 시작 될 때, 엘로힘(”빛과 생명의 자식들“, ”건설자들“)이 영원한 에센스에서 하늘들과 땅을 만든 후, 그들은 여러 세계를 6개 단위로서 형성했다.

 

7번째의 세계는 말쿠트(Malkuth)이다. 말쿠트는 가장 낮은 존재계의 우리 지구(만투안 코덱스(Mantuan Codex)를 보라)이다. 지구는 의식이 존재하는 다른 모든 계에 비해 가장 낮은 세계들을 의미한다. 칼데아의 「수의 서」는 이 모두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아담카드몬의 3개조[7존재계 중 위에 있는 3개의 계]는 혼이 “해(日)의 늙은 자(Ancient of Days)”의 앞에 서게 될 때까지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위의 삼개조의 세피로트는 다음과 같다. “1, 케텔(왕관)은 매크로프로소푸스의 이마로 상징된다. 2, 쵸크마(지혜이자 남성원리)는 그의 오른쪽 어깨로 상징된다. 3, 비나(지성이자 여성적인 원리)는 왼쪽 어깨로 상징된다.” 그 후에, 7개의 지체(세피로트)가 현현의 계에 온다. 이 네 개의 현현계 전부가 마이크로프로소푸스(작은 얼굴), 혹은 “4문자”의 신비, 혹은 테트라그라마톤으로 상징된다. “현현했던 일곱 지체와 숨겨진 세 개의 지체가 신의 몸이 된다”.

이와 같이 우리의 지구, 즉 말쿠트는 제 7계이자 제 4계이다. 위의 시초의 구체부터 헤아리면 제 7계이고, 존재계에서 헤아리면 제4계인 것이다. 말쿠트는 여섯 번째의 구체 혹은 세피로트인 “예소드” 즉 “기초”에서 생긴다. 「수의 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예소드를 통해서 그(아담카드몬)는 원초의 헤바(Heva)(이브 혹은 우리의 지구)를 수태시킨다.” 신비 언어로 말할 것 같으면, “아래의 어머니” 즉 마트로나(Matrona), 여왕 그리고 기초의 왕국이라 불리는 말쿠트가 테트라그라마톤 혹은 마이크로프로소푸스(제 2 로고스), 천인(天人)의 신부로 나타나는 이유를 이것이 설명한다고 한다. 그녀가 모든 부정에서 벗어나게 될 때 “안식 날” 즉 “사바트(SABBATH)”의 날에 재생한 후, 제 7라운드의 제 7 인종에서 영적 로고스와 일체가 된다. 왜냐하면 “제 7일” 또한 우리 신학자들이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는 비교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마트로니타(Matronītha) 즉 어머니가 떨어져서 안식의 지고함 속에서 왕과 얼굴을 맞대게 될 때, 만물은 일체가 된다.

“일체가 된다”는 것은, 만물은 또 다시 유일의 원소 안으로 흡수되어 버린다는 뜻이다. 인간의 영은 니르바니스(Nirvānīs, 열반에 이른 자)가 되고, 다른 모든 것의 구성 요소는 이전의 상태인 프로타일(protyle), 즉 미분화의 질료가 된다. “안식(Sabbath)”이란 휴식 즉 열반을 뜻한다. 그것은 6일 후에 오는 제 7일이 아니고, 7개의 “날들” 즉 7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져있는 어떤 기간과 똑같은 길이의 계속되는 기간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프랄라야의 지속기간은 만반타라와 같고 브라흐마의 밤은 낮과 똑같은 기간인 것이다. 만약 크리스트교도가 유태교의 관습을 따르고자 하면, 죽은 문자가 아닌 그 진수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말하자면, 일주간을 일했다면 일주간 휴식을 해야 된다. “사바트”란 말에 신비적인 뜻이 있다는 것은, 예수가 안식일에 대하여 매우 경멸을 나타낸 사실과 누가복음 18장 12절을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가 있다. 거기에서 사바트는 일주간이라는 뜻이다.(일주간이 사바트라고 하는 그리스어의 원문을 보라. “나는 사바트에 2회 단식을 한다.") 비전가인 바울은 그 뜻을 잘 알고 있어, 천국에서의 영원한 안식과 지복을 사바트(안식)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행복은 영원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언제까지나 주님과 (하나로) 있어 하나의 영원한 안식(Sabbath)을 누릴 것이기 때문이다.“(히브리서 4:2)

 

현재의 왜곡된 크리스트교 신비가들의 카발라가 아닌, 칼데아의 「수의 서」에 포함되어 있는 카발라와 태고의 비교적 비드야(Vidya)를 비교해 보면, 그 두 체계 사이의 차이는 사실상 아주 적으며, 차이가 있다면 문서의 양식과 표현의 차이에 불과하고 이것은 중요하지 않은 사항이다. 이리하여 동양의 오컬티즘은 우리 지구를 네 번째 세계 즉 체인(연쇄)의 가장 낮은 세계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지구 위에는 양편으로 세 개씩 여섯 개의 다른 구체가 있다고 한다. 한편, 조하르에서는 지구를 보다 낮은 세계 또는 7번째 세계로 부르며, 지구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여섯 개의 세계 즉 “마이크로프로소푸스”에 의존한다고 덧붙여져 있다. “작은 얼굴”인 마이크로프로소푸스(현현하여 유한하므로 보다 작은 얼굴이다)는 “여섯 개의 세피로트로 구성되어 있다”고 조하르는 말한다. “일곱의 왕이 와서 세 차례 파괴되는 세계 동안에 죽는다.”(말쿠트 즉 우리 지구는 자신이 거쳐온 3개의 라운드를 각각 통과한 후에 파괴되었다) “그리고 그들(일곱 왕들)의 통치는 중단되어 버릴 것이다.”(「수의 서」1권 7장 3절) 이것은 일곱 인종에 관한 것이다. 다섯 인종은 이미 나타났고(그 중 넷은 지나갔다), 그 뒤의 두 인종은 이번 라운드에 나타날 예정이다.

일본의 신도에서 말하는 우주생성과 인간의 기원에 관한 우화적인 이야기는 위와 동일한 내용을 암시한다.

 

파운즈 선장(C. Pfoundes)은 일본의 사원에서 거의 9년동안 일본의 여러 종파의 근간을 이루는 종교를 연구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창조에 대한 신도의 개념은 다음과 같다. 혼돈(Konton)에서 지구(in)는 침전되어 쌓인 퇴적물이었고, 하늘(yo)은 상승하는 에텔적(정묘한) 에센스였다. 그런데 마(Maa 즉 jin)가 그 둘 사이에 나타났다. 최초의 인간은 쿠니-토 코 탓치노-미코-토라고 불렸으며, 그에게는 5개의 다른 이름도 주어졌다. 그때 인류가 남자와 여자로 나타났다. 이사나기와 이사나미는 텐쇼코 도이진을 낳았다. 그는 지구의 다섯 신 중 최초의 신이었다.” 이 “신들”은 우리의 다섯 인류일 뿐이다. 그리고 이사나기와 이사나미는 두 종류의 “조상들”이며, 동물인간과 이성적 인간을 낳는 앞의 두 인류이다.

SD 2권 2부에서 인간의 7중의 구성뿐만 아니라 7이라는 수가 모든 비교체계에서 매우 두드러진 특징이라는 것을 보게될 것이다. 7은 동양의 오컬티즘에서뿐만 아니라 서구의 카발라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엘리파스 레위는 7이라는 수를 “모세의 창조와 모든 종교의 상징을 푸는 열쇠”라고 부른다. 카발라는 인간이 7중적 원질로 이루어져있다는 것에 충실하게 따르고 있음을 그는 보여준다. 그의 저서 「대비의(大秘義)의 열쇠」("Clef des Grands Mysteres)에 나오는 그림은 7중적인 인간을 표현하고있다. 그의 저서 389p의 “파라셀수스의 예언과 여러 사상”에서 보면, 그의 진정한 생각이 대단히 교묘하게 숨겨져 있더라도, 이것을 쉽게 알 수가 있다. 또 엘리파스 레위가 지은 「대비의의 열쇠」에서 발췌한 (맥그래거 매더즈의 「카발라 언베일드」에 있는 “혼의 구성”에 대한 그림을 보면, 비록 설명은 다르더라도 같은 것임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카발라적의 명칭과 오컬트적 명칭을 같이 적었는데, 매더즈의 책에는 다음 그림(그림Ⅶ)처럼 나와있다.

 

그림7.png

 


아주 조심스러운 엘리파스 레위가 자신의 그림을 설명한 내용과 비교의 가르침을 표로 나타냈다. 그 둘을 비교해 보라. 레위 자신도 카발라의 기학(氣學, pneumatics)과 오컬트의 기학을 구별한다. (“마법의 역사” pp.388, 389를 보라.)

 

카발리스트인 엘리파스 레위에 의한 카발라 기학(氣學)

신지학도들에 의한

비교의 기학(氣學)

(1)혼(또는 자아)은 옷을 입은 빛이며, 그 빛은 3중적이다.

(1)왼쪽과 같다. 혼은 아트마-붓디-마나스이기 때문이다.

(2)네샤마― “순수영”

(2)같다.

(3)루아흐―혼 혹은 영

(3)영적 혼

(4)네페쉬―가소성의 중개자

(4)영과 그의 인간과 사이의 중개자. 인간에 있어서 이성(理性)의 자리, 마인드.

(5)혼의 옷은 이미지(아스트럴 혼)의 외피(몸체)

(5)정확하다.

(6)이미지는 2중적이다. 왜냐하면 선을 악으로 투영시키기 때문이다.

(6)그렇게 수수께끼같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아스트럴(이미지)은 나쁜 인간뿐만 아니라 선한 인간도 모두 반영을 한다고 말하면 된다.

인간은 언제나 위쪽의 세 개조와 결합하려는 경향이 있으나, 그렇지 않으면 아래의 네 개조와 같이 사라져 버린다.

(7)이마고(Imago), 체.

(7)지상계의 이미지

 

엘리파스 레위에 의한

오컬트의 기학(氣學)

오컬티스트에 의한

오컬트의 기학(氣學)

(1)네페쉬는 형체를 파괴함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새롭게 하기 때문에 불사인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네페쉬 즉 “생명의 숨”은 오컬트학도에게는 그릇된 명칭이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수수께끼에 불과하다.]

(1)마나스가 불사라고 말하는 것은, 매번 화신한 후 마나스는 아트마-붓디에게 자신의 일부를 보태어, 자신을 모나드에 동화시킴으로써 모나드의 불사성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2)루아흐는 사상(혹은 관념!?)이 진화해 감에 따라 진보한다. [!?]

(2)붓디는 인간이 매번 새롭게 하신하고 죽은 후에 자신이 마나스로부터 얻는 그 증가물로 의식하게된다.

(3)네샤마는 잊어 버리는 일이나, 사멸하는 일도 없이 전진한다.

(3)아트마는 앞으로 나아가거나 잊어버리거나. 기억을 하는 일도 없다. 아트마는 이 물질계에 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물질을 비추어주고 있는 영원한 빛의 광선인 것이고, 물질이 허락해주면 물질의 어둠 속을 비춘다.

(4)혼에는 세 개의 집이 있다.

(4)혼(전체적으로는, 상위의 세 개조)은 네 번째 존재계 즉 이승뿐만 아니라, 세 개의 존재계에서도 살아있다. 또 세 개의 존재계 중 가장 높은 계에서는 영원히 존재한다.

 

 

(5) 이러한 집이란 인간의 세계, 위의 에덴과 아래의 에덴이다.

(5)이러한 집이란, 육체적 인간 혹은 동물적 혼을 위한 지상계, 육체를 탈피한 인간 혹은 그의 껍질(아스트럴 쉘―역주)을 위한 카마-로카(지옥, 혹은 연옥), 상위의 삼개조를 위한 데바찬이다.

(6)이미지(인간)는 탄생의 수수께끼를 내는 스핑크스이다.

(6)왼쪽과 똑같다.

(7)치명적인(fatal) 이미지(아스트럴)는 그의 소질을 네페쉬에 부여하지만, 루아흐는 이런 잘못되어간 네푸쉬를 네샤마의 영감에 의해 획득한 이미지로 바꿀 수가 있다

(7)카마(욕망)를 통해 아스트럴체는 마나스를 물질적인 정욕과 욕망의 영역으로 끊임 없이 끌어 내리고 있다. 그러나 보다 좋은 인간 즉 마나스가 치명적인 인력(引力)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며, 아트마 즉, 영을 갈망하면, 그때 붓디(루아흐)는 정욕과 욕망을 정복해버리고, 마나스를 영원한 영의 영역으로 데리고 간다.

 

 

 

 

프랑스의 카발리스트 엘리파스 레위는 진정한 가르침을 깊이 알지 못했든지, 아니면 자신의 생각과 목적에 따라 그 가르침을 왜곡한 것이 아주 분명하다. 같은 주제에 관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다시 말한다. 그러나 오컬티스트인 우리들은 그와 그의 숭배자들에게 아래와 같이 대답한다.

 

(1)체는 네페쉬의 형(型)이고, 네페쉬는 루아흐의 형이고, 루아흐는 네샤마의 옷들의 형이다.

(1)체는 선하든지 악하든지 간에 마나스의 마음가짐에 따른다. 마나스는 붓디의 빛을 따르려고 하지만, 종종 실패한다. 붓디는 아트마의 옷들의 형(型)이다. 아트마는 체도, 모양도, 다른 어떤 것도 아니며 붓디는 단지 비유에서만 그의 체로서 표현되기 때문이다.

(2)빛(혼)은 몸을 입을 때 인격을 얻게된다. 그리고 입은 그 옷이 완전한 경우만 인격이 안정을 가진다.

(2)모나드는 육체화신 할 때 인격을 지닌 자아가 된다. 마나스가 붓디를 동화할 수 있을 정도로 완전해질 때, 마나스를 통하여, 그의 인격이 좀 남아있다.

(3)천사들은 인간이 되려고 노력한다.

완성된 인간, 즉 인간―신은 모든 천사보다는 우위에 있는 것이다.

(3)같음.

(4) 14,000년마다, 혼은 다시 젊어져(원기를 회복하여),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환희의 잠속에서 휴식한다.

(4)“대시대” 즉 브라흐마의 낮 동안에 14인의 마누가 통치한다. 그후, 프랄라야가 닥쳐오게 되면 모든 혼(=자아)은 열반에서 휴식을 한다.

 

비전적인 가르침이 왜곡된 사본이 카발라의 책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또 SD 2권의 「인류의 원래의 마누들」을 참조하라. 이제 스탠저Ⅶ로 돌아가자.

 

(b)유명한 카발라의 금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돌은 식물이 되고, 식물은 동물이 되고, 동물은 인간이 되고, 인간은 영이 되고, 영은 신이 된다.” 즉 불꽃(火花)은 신성한 인간 속에 들어와서 생기를 불어넣기 전에, 모든 자연계에 순서대로 생명을 불어넣는다. 신성한 인간과 그 앞에 있던 인간 즉 동물적인 인간과는 전혀 다르다. 아마 비전을 받지 못한 자들을 속이기 위한 것이겠지만, 「창세기」의 인류학은 순서가 거꾸로 되어 있으며 처음부터 잘못되어 아무 것도 얻어낼 수가 없다. 올바른 순서로 시작했더라면, 먼저 천상의 로고스 즉 “천상의 인간”이 등장해야하고, 로고스들의 복합체로서 펼쳐지는 것이어야 한다.

 

유리판 위에 뿌려진 작은 수은방울이 차츰 한 덩어리로 뭉치듯이, 마야적인 세계 곳곳에 산재해있던 작은 것들(ciphers)이 모이는 프랄라야의 수면에서 깨어나면, 앞서 말한대로 로고스들은 전(全)의 최초의 “남과 여”, 즉 아담 카드몬, 성서에 나오는 “빛이 있으라”로서 총합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변형은 지구상, 혹은 어떤 물질계에 일어난 것이 아니고, 영원한 근원질료가 최초로 분화를 이루는 공간의 심연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우리 지구의 초기에는 사물은 다른 형태로 진화하였다. 「이시스 언베일드」1권의 302p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모나드 즉 지바는 먼저 진화의 법칙에 의해 물질의 가장 낮은 형체 즉 광물에 투사된다. 돌(혹은 제4 라운드에서 광물과 돌이 되는 것)안에 들어있던 모나드는 7바퀴를 회전한 후, 모나드는 돌에서 기어 나오는데 가령 하나의 이끼가 되어 나온다. 이때부터 모든 형태의 식물적 실질(matter)을 거쳐 동물실질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때쯤 모나드는 앞으로 육체적 인류가 될 동물의 배종(胚種)이 되는 시점에 이르게된다. 제 3라운드까지는 이 모두가 물질로서는 무형이었으며, 의식에서는 무감각이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모나드 혹은 지바 자체는 영이라고도 부를 수가 없다. 모나드는 하나의 광선, 절대자의 광선과 숨이며, 혹은 절대성, 절대적 동질성의 광선의 숨이며, 제한적이고 상대적인 유한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에, 우리의 계에서는 무의식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미래에 갖게 될 인간형체에 필요한 재료 외에도, 모나드는 다음의 두 가지를 필요로 한다. (a) 그 재료가 형상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영적 모델 즉 원형과 (b) (형상을 취한) 그 재료의 진화와 진보를 지도할 지성석 의식이 필요하다. 동질의 모나드나 살아있지만 감각이 없는 물질도 그와 같은 요소를 지니고 있지 못한다. 먼지로 만들어진 아담은 생명의 혼이 불어넣어져야만 한다. 그 두 개의 중간의 원질은 이성이 없는 동물의 유정(有情)의 생명과 인간적 혼이다. 인간적 혼이 없으면 유정(有情)의 생명은 이성(理性)이 없는 그대로인 것이다.

 

잠재적인 양성을 지닌 체의 상태로부터 남과 여 둘로 나누어지게 되면, 비로소 인간은 의식적, 이성적, 개인적인 혼(마나스) 즉, “엘로힘의 원질인 지성”을 부여받게 된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 그는 선과 악의 나무에서 지식의 열매를 따먹어야 하는 것이다. 그가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까? 모나드가 아래로 내려와 물질로 순회하는 동안, 바로 이들 엘로힘(피트리, 하위의 디야니 초한)들은 더 높은 영적인 존재계에서 모나드와 나란히 보조를 맞추어 진화하면서 자신들의 의식계에서 상대적으로 물질 속으로 내려온다. 이것을 역진화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들은 특정한 지점에 도달한 후, 최저의 물질에 싸여 화신하는 무감각한 모나드와 만나서 두 개의 잠재력 즉 영과 물질을 융합시키는데, 그 둘이 하나가 됨으로써 공간에 있는 “천상의 인간”의 지상계의 상징인 완벽한 인간이 태어난다. 비교에서는 이렇게 가르치고있다. 샹카야철학에서는 프라크리티(물질)의 어깨에 타지를 못한다면 푸루샤(영)는 무력한 것으로 말하고 있는데, 프라크리티 역시 혼자 있을 때는 무감각한 것이다. 그러나 비교철학에서는, 그것들은 여러 등급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원래 영과 물질은 완전히 똑같은 것이었는데, 분화의 단계에 들어서자마자 진화는 서로 상반된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해, 영은 차츰 물질로 떨어지고, 물질은 원래의 상태 즉 순수한 영적 질료의 상태로 상승하게 되었다. 영과 물질은 불가분인 것이지만 늘 서로 떨어져 있다. 물질계에서 극성이 같은 두 개의 극은 항상 서로 반발하지만, 음극과 양극은 서로가 끌어당기듯이 영과 물질 또한 이와 같은 관계이다. 영과 물질은 동질의 질료, 즉 우주의 근원적 원리의 양극이다.

 

그러므로, 푸루샤가 완벽한 인간을 형성하기 위해 프라크리티의 어깨에 탈 때가 되었을 때(제 1근본인종, 제 2근본인종, 그리고 제 3근본인종의 중반까지의 원시적 인간은 포유동물의 초기단계에 불과하였으며 차츰 진화를 이루어 가장 완전한 포유동물로 이르게 되었다) 피트리들이 물질 인간 혹은 동물인간을 형성하려고 들어와서 그 동물인간 속에 화신한 것처럼, 천상의 “선조들”(이전의 세계들에서 온 존재들, 이들은 인도에서는 시쉬타(Sishta)라고 불린다)이 우리의 세계로 들어온다. 그러므로 그 과정(두개의 창조, 즉 동물인간의 창조와 신성한 인간의 창조과정)은 커다란 차이가 있다. 피트리들은 자신의 희박한 체들로부터 한층 더 희박하고 희미한 자신과 유사한 형체를 발산시킨다. 말하자면 그것은 우리들이 지금, “복체” 혹은 “아스트럴 형체”라고 부르며, 그 자신들을 그대로 빼 닮은 것이다. 이것이 모나드에게 첫 집을 마련해주고, 생명은 있지만 지각은 없는 물질에게 나중에 지을 (집의) 모델을 제공한다. 그러나, 인간은 아직까지는 불완전하다. 「마누의 법전」의 1권에 보면, 스와얌부바 마누에서 태어난 7인의 원시적 마누 혹은 프라자파티는 각각 원시적 인종을 하나씩 낳았다고 한다. 코덱스 나자레우스(Codex Nazareus)에서는, 카랍타노스(Karabtanos) 혹은 페타힐(Fetahil)(맹목적이고 호색적인 물질)은 그의 어머니 “스피리투스(Spiritus)”에게서 일곱의 인간을 낳았는데, 이들은 고대의 일곱 인종의 각각의 조상이라고 한다. 이러한 가르침은 고대의 모든 경전에 나온다.

 

(c) “누가 마누(인간)를 만들고, 누가 그의 몸체를 만드는가? 생명과 생명들이다. 신과 달. 여기서 마누는 영적인 천상의 인간, 즉 우리 속에 있는 진정한 불사의 자아이며, “유일한 생명” 혹은 절대적인 신의 직접적 발산이다. 혼이 살고 있는 사원(집)인 우리들의 바깥 육체에 관해 씨크릿 독트린에서는 불가사의한 것을 가르친다. 실로 불가사의한 것이라 철저하게 가르침을 얻어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그 이론을 충분히 입증해 주는 것은 미래의 정밀과학뿐일 것이다.

 

코스모스 안에는 무기물이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오컬티즘에서 주장한다고 이미 말했었다. 과학에서 “무기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불활성(자동력이 없는) 물질”의 분자 속에 잠자고 있는 잠재적 생명을 인식해낼 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불과하다. 모두가 생명인 것이고 먼지같이 미세한 광물입자의 각 원자조차도 하나의 생명인 것이다. 그것은 오컬티즘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여러 법칙의 범주를 벗어나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이해와 인식을 넘어선 것일지도 모른다. “원자 자체는 생명에의 욕망으로 넘쳐흐르고 있는 것 같다”고 틴달(Tyndall)은 말한다. 그러면, “유기적 형체로 되려고”하는 그 성향은 어디에서 오는지 우리는 당연히 묻고싶어진다. 오컬트 과학의 가르침에 의하지 않고서는 그것을 설명해 낼 수 있을까?

 

어느 주석서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속적인 사람들에게는 모든 세계들이 이미 알려져 있는 원소들로 이루어져있다. 아르하트의 생각에는, 이 제원소들 자체는 총체적으로 보면 하나의 신성한 생명체이고, 현현 세계에 분배되어져 무수한 생명들이 된다. 하나인 실재의 세계에서는 불(Fire)만이 하나(ONE)인 것이고, 현현했다. 그래서 환영적인 존재계에서는 불의 입자들은 화적(火的) 생명체인 것이다. 불의 생명들은 자신이 태워버리고 마는 다른 모든 생명물을 희생시키면서 살고 존속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탐욕스럽게 먹어치우는 자”라고 말해지고 있다. . . . . . 위로는 의식을 지닌 성스러운 근원적 인간에서부터 아래로는 물질을 만드는 무의식 존재(agent)들에 이르기까지, 이 우주에 있는 눈에 보이는 모두가 그러한 생명들로 만들어졌다. . . . . . 무형으로, 창조되어 있지 않는 하나인 생명으로부터 생명들의 우주가 생겨난다. 시초에는 심연(카오스)의 안에서 차갑게 빛나는 불(기체의 광?)이 나타나서, 공간 속에 응유(